매일성경 묵상
내가 원하는 예수가 아닌 들려주시고 보여주신 대로 바라보는 예수 [마 11:1-10]
 – 2023년 02월 14일
– 2023년 02월 14일 –
주님께서 열 두 제자를 향한 특별한 가르침을 마치시고 계속해서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그 동네를 떠나신다. 특이한 것은 짧게나마 파송받아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 사역을 기록한 마가와 누가와 달리 기록하지 않는다. 사역중에 투옥중인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 주님께 여쭙는다. 주님께서 “오실 그”인 메시아이신지 묻는다. 주님께서는 지금까지의 갈릴리 사역에서 성취된 이사야의 예언들을 통해 답을 주신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어떤 존재인지 세 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해 주신다.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 아닌, 선지자였다.” 주님께서는 이 가르침속에에 자신의 메시야 되심에 초점을 두고 진술을 이어가신다. 
 
 
 
1.세례요한의 질문(2-6절)
마태는 세례요한의 투옥을 4:12에서 언급했었다. 그때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기록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문제로 주님께 질문을 했었다(9:14). 그리고 본문에서 옥에 갇혀 있던 세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직접 반응을 소개한다. 
 
세례 요한은 옥중에서 주님의 사역에 대하여 제자들을 통해 전해 들었다(2절). 그는 이 과정에서 주님께서 “가르침, 복음 전파, 병고침과 축귀사역”속에 담긴 의미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 “오실 그분이 당신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요한이 기대한 ”오실 그“는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이다. 그런데 그가 생각한 메시아는 ”그가 와서 손에 키를 들고 타작하여 알곡은 들이고 쭉정이는 영원한 불에 태우는 구원과 심판의 사역“을 하실 것으로 기대했다(3:12). 그러나 그가 옥중에서 들은 소식은 이런 그의 기대와 사뭇 달랐다. 그래서 주님께 재차 질문했다.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3절)  요한은 자신이 기대하는 메시아 사역을 간절하게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세례요한의 질문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보는 것”을 그대로 전하라고 말씀하신다(4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 질문을 한 이후 상당 기간 주님과 함께 동행 했을 가능성이 크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지금까지 본 여섯 가지 일들이(5절 _ 사 29:18; 35:6; 25:4; 29:18; 26:19; 61:1) 모두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 되었음을 상기시키신다. 이것은 세례 요한 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주님의 메시아 되심을 확신하는 분명한 증거들이었다. 세례 요한의 질문에 정확한 대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더욱 확신을 심어 주시려고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6절)” 라고 말씀하셨다. 세례 요한을 걱정한느 것이 아니라 이 야기를 함께 듣고 있는 제자들에게, 궁극적으로는 마태복음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다. 기적의 현장에서는 실족할 수 없다. 하지만 주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현장에서 과연 실족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례요한은 제자들로부터 주님의 대답을 들은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참수 당했다(14:1-2).
 
 
 
2.주님께서 들려주신 이 사람, 세례 요한(7-10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자리를 뜬 후에 주님께서는 무리들에게 그에 대한 말씀을 이어가신다. 이번에는 주님께서 무리들에게 질문하신다. “너희는 무엇을 보기 위해 광야에 나갔더냐?” 이 질문은 본 단락에서 세 번이나 반복된다(7,8,9절). 분명 이 질문을 듣는 무리들 중에는 세례 요한이 광야의 소리로 활동할 당시 회개의 세례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그에게 갔던 이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너희들은 도대체 그때 왜 광야로 몰려 갔느냐?” 그런데 주님은 스스로 던지는 질문에 스스로 또 다른 질문으로 대답하신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러 나갔느냐?”(7절) 여기서 갈대는 대부분 요한으로 해석한다. 바람은 세속과 권력을 상징한다. 세속의 권력의 바람이 그를 강하게 내몰아도흔들릴 지언정 꺾이지 않았다. 요한은 왕실 권력의 위협에도 꺽이지 않는 정결한 삶을 살았다. 오히려 물러섬 없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였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거룩한 삶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세상 가치에 꺾이지 않았다. 무리가 광야로 가서 본 것은 바로 그런 삶을 사는 요한이었다. 
 
또, 주님은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8절)을 보러 광야로 나갔느냐? 그런 사람들은 왕궁에 있다고 하셨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3:4). 매우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무리들은 광야의 걸인과 같은 요한을 광야에서 보았다. 
 
마지막 세 번째 비유는 “선지자”이다. 주님은 무리에게 선지자를 보러 나갔느냐고 물으신다(9절). 주님은 무리의 긍정적인 대답을 기다리셨다. 당시 모든 유대인들은 요한을 선지자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로마의 혹독한 압제 속에서 세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기대와 열망이 무리들을 광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무리들에게 세례 요한은 “너희가 기대한 선지자보다 훨씬 나은 선지자다”(9절 하) 라고 하셨다. 주님께서는 말라기 3:1(“그가 내 앞에서 길읊 준비할 것”)을 인용하시면서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10절)고 소개해 주신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소개하신다. 그렇기에 다른 선지자들보다 훨씬 빼어날 수 밖에 없다. 
 
그가 비록 불의한 권력에 의해 옥에 갇혀 있지만 그의 사명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의 메시아 사역이다. 그는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일에 모든 생애를 불태웠던 선지자이다. 세례 요한이 “오실 그 메시아(3절)”이신지 묻는 질문에 주님께서는 요한이 메시아 앞에 올 바로 “그 선지자”라고 답을 해 주신 것이다. 
 
*요한이 “그 선지자”이기에 주님께서 “오실 그”이시다. 
 
 
 
나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은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열 메시아 예수를 전하다가 옥에 갇혔다. 제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르는 이들이라면 그는 예수님의 길을 앞서 간 사람이었다.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 당하는 길을 걸으셨다. 
 
-요한은 주님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악인을 심판하고 의인을 구원하지 않는 것을 들으며 진정 자신이 기다린 메시아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주님께서는 생명이 살아나고 죄악의 결과인 죽음이 물러가는 기적들을 알려주시면서 그가 알고 고대하던 메시아는 아니지만 그가 예고한 메시아가 맞는 것을 확인하여 주셨다. 
 
-당시 사람들이 광야로 달려가 보기 원했던 것은 그들에게 장미빛 미래를 선사해 줄 이였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혹독하고 오금이 저리는 회개의 요청을 서슴치 않았다. 그래서 그의 사역을 달가워 하지 않는 이들이 꽤 있었다. 불행히도 헤롯왕도 그중에 하나였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누구든지 세상은 달가워 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메시아인지 몰랐던 것은 세례 요한이나 제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아는 만큼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게 하셨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메사아가 오시면 일어나게 될 일을 자기가 아는 지식만큼만 이해하여 악인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예수님의 사역에 고민하였지만, 주님께서는 메시아 시대에만 볼 수 있는 회복과 해방, 치유와 생명의 역사에 관한 증거들을 그의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며 요한을 격려하셨다. 
 
*우리는 저마다 기대하는 주님의 모습이 있다. 우리가 고대하는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나라가 우리에게 가장 복된 생명의 나라이다. 신앙의 좁은 길을 걸으면서 끊임없이 유혹하는 사탄의 소리중의 하나는 “내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하나님 나라, 내가 고대하는 주님의 모습”에 맹신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지는 그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캄보디아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다. 11일에 먼저 와서 이모로 저모로 구슬땀을 흘린 팀원들이 대견스럽다. 이제 막 도착하여 피곤함 가운데서 사역을 시작할 본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꿈꾸고 그리는 단기선교의 환상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주님께서 이끌어 보여 주시는 선교의 현장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에 감격해야 한다.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 의 뜻대로 세워지는 그 나라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세례 요한이 꿈꾸며 고대하던 메시아는 예수를 통해 보이지도, 그의 가르침을 통해 들려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한은 체념하지 않고 주님께 여쭤 보았다. 그리고 주님께서 들려 주시고 보여 주신 대답을 들었다. 내가 원하는 메시아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어 회복과 자유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라는 대답을 들었다. 
 
*요한은 이 대답을 듣고 감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참수당할 때 실망스러운 마음이 아니라 이 땅에 시작된 하나님 나라 때문에 감격하며 이 땅을 떠나 하나님의 품에 안겼을 것이다. 약속한대로 이루어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며 그 품에 안겼을 것이다. 
 
 
*기억하자! “내가 원하고 바라는 그림이 안보여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림만으로도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 우리의 단기선교라는 것을….
 
*우리는 때로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보면서도 내가 주님께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주님의 은혜와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에게 들려 주시고 보여 주시는 대로” 듣고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와 역사인지 잊어버리면 안 된다. 올바로 듣고 올바로 보는 것이 곧 제대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사는 길이다.  
 
*오늘 하루 사역의 현장에서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을 통해 주신 메세지를 꼭 발견해보기를 바란다. 
 
 
 
*주님, 내가 원하여 기다리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들려 주시고 보여주시는 것을 올바로 듣고 올바로 보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은혜와 역사를 올바로 보고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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