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8:1-12 들리고, 더욱 자세히 들어서, 함께 예배하는 이들의 공동체
아말렉의 비열한 공격을 물리치고(17장)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 전에(19장)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소식을 듣고 딸과 손자(모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장인께 들려 주었다. 이 모든 일들을 들은 이드로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제사를 드렸다.
모세에게는 매우 기쁘고 격려가 되는 일이었다.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굽으로 떠날 때 함께 출발했으나 다시 집으로 돌려 보낸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게르솜, 엘리에셀)을 다 만났기 때문이다. 이것 뿐만 아니라 장인 이드로와의 대화는 모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반응하고 찬양하는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이드로와의 대화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드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고 제사까지 드렸다.
중요한 것은 이드로가 단지 모세의 말만 듣고 그 모든 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미디안의 제사장(이방종교의 제사장일 가능성이 크다)이던 장인 이드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고 주저없이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었다. 이것 자체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심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모세를 통해 전달된 간증이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였다.
또, 기막힌 것은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전해 들은 사람이었음에도 직접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에서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더 확고한 신앙고백을 드렸다는 점이다. 모세에게 불평하고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교되는 인정하는 말들과 기꺼이 헌신하여 제사를 드리는 모습은 어쩌면 이제 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훨씬 성숙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드로를 모세는 진심으로 존경하며 영접하였다. 그의 조언을 마음으로 받아 들인다. 그의 성숙함이 돋보인다.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9, 11-12절)”
*모세는 이드로의 방문이 너무나도 기뻤다. 마치 지난 출애굽의 전 여정 가운데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기뻐한 적은 없었을 것 같다. 가족이 그런 존재인 거다.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그저 잔잔한 기쁨이 있는 것이 가족이다.
*이드로는 참 성숙한 인물인 듯하다. 딸과 손자들을 모세에게 데리고 온다는 것은 이제막 시작된 광야 생활 가운데로 이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는 모세에게 가족이 필요할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출애굽 성공의 소문이 들리자 마자 시내산 근처까지 가족들을 데리고 올 정도로 그의 배려심은 남다른듯 하다.
*사실 이드로는 모세가 자신을 떠날 때 그저 애굽에 있는 형제들을 돌아보려고 가는 줄로 알았었다. 하지만 함께 떠났던 십보라가 두 아들과 함께 돌아 왔을 때 십보라를 통해 애굽으로 가는 도중 남편 모세를 살리기 위해 아들들의 할례를 거행한 일들을(출 4:24-26) 들으면서 모세가 감당할 출애굽 사명을 대충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서 7개월 만에 시내산 앞에서 만난 것이다. 백성들의 반복되는 불평과 아말렉과의 전투 이후 심신이 크게 지쳐 있었을 모세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된 것은 분명하다.
-살다보면 가끔 교회와 상관 없는 이들의 입에서 “아이고 하나님!”이란 말이 튀어 나올 때가 있다. 깜짝 놀랄 일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닥쳤을 때 보이는 반응중 하나이다. 본문의 이드로가 이런 기분 아니었을까? 사위 모세로 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들으면서, 실제로 250만명의 엄청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것을 증거로 보면서, 아! 하나님은 정말 놀라운 분이시구나! 살아계신 하나님이 분명하구나! 라며 놀라고 또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충격이 일어나고 마침내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에 이르기까지 이드로의 모습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과정이 있다. 꼭 이런 과정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들인 것은 분명하다.
-먼저, “들었다(1절).
“하나님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다. 열 가지 재앙, 홍해 도하, 마라의 쓴 물, 신 광야에서부터의 하늘 양식, 아말렉과의 전투.. 모두를 소문으로 들었다! 이에 지체하지 않고 십보라와 손자들을 데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는 시내산 근처까지 온 것이다. 이드로는 소문을 “듣고” 모세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모세가 자세히 말하였다(8절)” 소문으로만 듣던 하나님이 하신일을 사위 모세는 차근 차근 자세하게 들려 주었다. 막연한 소문이 실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드로는 이 모든 일이 사실임을 당장 그 다음날 아침 하늘에서 내린 양식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감탄 했을 것이다. 아말렉과의 전투 이후 그들에게서 거둔 노획물들을 보면서 감탄 했을 것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일들이 실제로 모세의 입을 통해 증거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저런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영혼들에게 “더욱 자세하게” 하나님나라 복음을 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모세가 “더욱 자세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였던 “하나님께 함께 한 출애굽의 전 과정”속에 함께 한 삶이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다. 경험하였다. 경험하였기에 소문으로만 무성한 그 사실들을 “더욱 자세하게” 들려 줄 수 있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들려 주기 전에 하나님은 나에게 먼저 하나님 나라 복음의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하신다.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신비한 경험에서부터 일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고 광야에서 책임져 주신 것처럼, 놀라운 일들을 체험케 하신다. 그런 일들이 내 안에 차곡 차곡 쌓여 있으면, 언제든지 들려 줄 수 있다.
-하지만, 경험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제대로 아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만큼이나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출애굽의 전역사를 함께 경험하며 나왔어도 물, 식량 문제 때문에 불평과 원망을 감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는 단계이다. 모세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도긴개긴”이다. 그럼에도 모세는 “더욱 자세히” 말해 주었다.
-그곳이 바로 시내산 앞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모르는 곳인 시내산이 모세에게는 하나님을 만난 장소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다시 이곳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돌아오기 까지의 모든 여정을 “더욱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만남의 경험이 풍성할 수록 “더욱 자세히” 들려 줄 수 있다. 단지 소문으로만 듣고 자기 생각과 상상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진리 따라” 알아 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그랬으면 좋겠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더욱 자세히 나아게 깨닫게 해주셔서, 누구를 만나든지 자신있게 “더욱 자세히” 하나님을 들려 줄 수 있는” 생동감있는 목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서 함께 예배와 교제를 나눈다(12절)
이드로는 소문을 듣고, 모세의 더욱 자세한 간증을 듣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하나님께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드렸다. 아마도 미디안 지역에 드리는 형식으로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형식은 상관 없었다. 이드로는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일을 듣고 살아계신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에 대하여 분명한 신앙고백을 드린 것이다.
-또,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함께 참여한 아론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먹는다. 식탁의 교제를 나눈 것이다. 당시 율법이 정해지지 않았고, 제사법등과 같은 구체적인 규례들이 주어지기 전이었기에 이 모든 형식은 미디안의 제사 형식을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이드로는 그 제사와 식탁의 교제에 앞서 아론과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크게 외쳤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11절)”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심을 듣고 인정하여 고백하는 이런 신앙고백들을 “함께” 들을 때의 전율을 잊으면 안 된다. 교회 공동체에는 이런 “전율”이 넘쳐나야 한다. 불신자가 신자가 되고 신자가 제자가 되는 과정에서 언제든지 들려지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들”이 넘쳐나는 교회가 살아있고 건강한 교회이다. 더온누리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성령의 감동과 전율하심이 넘쳐나는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하신일들이 풍성하게 나눠진다. 그 소문들을 듣고 오는 이들에게 “더욱 자세하게” 하나님을 들려 주는 교회이다. 더온누리교회와 이 땅의 교회들이 이랬으면 좋겠다!
-성별, 수준, 학력차, 신분차에 상관 없이 모두가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을 행하신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고 예배하며, 한 식탁에서 교제하는” 그런 교회를 꿈꾼다!
-소문이 들리고, 와서 더욱 자세하게 들어서,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는 이드로의 모습이 우리 공동체에 끊임없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주님, 이드로처럼 격려해주고 기쁨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주님, 이드로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반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이야기로 인해 감동고 전율이 넘쳐나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아말렉의 비열한 공격을 물리치고(17장)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 전에(19장)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소식을 듣고 딸과 손자(모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장인께 들려 주었다. 이 모든 일들을 들은 이드로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제사를 드렸다.
모세에게는 매우 기쁘고 격려가 되는 일이었다.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굽으로 떠날 때 함께 출발했으나 다시 집으로 돌려 보낸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게르솜, 엘리에셀)을 다 만났기 때문이다. 이것 뿐만 아니라 장인 이드로와의 대화는 모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반응하고 찬양하는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이드로와의 대화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드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고 제사까지 드렸다.
중요한 것은 이드로가 단지 모세의 말만 듣고 그 모든 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미디안의 제사장(이방종교의 제사장일 가능성이 크다)이던 장인 이드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고 주저없이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었다. 이것 자체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심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모세를 통해 전달된 간증이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였다.
또, 기막힌 것은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전해 들은 사람이었음에도 직접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에서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더 확고한 신앙고백을 드렸다는 점이다. 모세에게 불평하고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교되는 인정하는 말들과 기꺼이 헌신하여 제사를 드리는 모습은 어쩌면 이제 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훨씬 성숙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드로를 모세는 진심으로 존경하며 영접하였다. 그의 조언을 마음으로 받아 들인다. 그의 성숙함이 돋보인다.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9, 11-12절)”
*모세는 이드로의 방문이 너무나도 기뻤다. 마치 지난 출애굽의 전 여정 가운데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기뻐한 적은 없었을 것 같다. 가족이 그런 존재인 거다.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그저 잔잔한 기쁨이 있는 것이 가족이다.
*이드로는 참 성숙한 인물인 듯하다. 딸과 손자들을 모세에게 데리고 온다는 것은 이제막 시작된 광야 생활 가운데로 이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는 모세에게 가족이 필요할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출애굽 성공의 소문이 들리자 마자 시내산 근처까지 가족들을 데리고 올 정도로 그의 배려심은 남다른듯 하다.
*사실 이드로는 모세가 자신을 떠날 때 그저 애굽에 있는 형제들을 돌아보려고 가는 줄로 알았었다. 하지만 함께 떠났던 십보라가 두 아들과 함께 돌아 왔을 때 십보라를 통해 애굽으로 가는 도중 남편 모세를 살리기 위해 아들들의 할례를 거행한 일들을(출 4:24-26) 들으면서 모세가 감당할 출애굽 사명을 대충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서 7개월 만에 시내산 앞에서 만난 것이다. 백성들의 반복되는 불평과 아말렉과의 전투 이후 심신이 크게 지쳐 있었을 모세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된 것은 분명하다.
-살다보면 가끔 교회와 상관 없는 이들의 입에서 “아이고 하나님!”이란 말이 튀어 나올 때가 있다. 깜짝 놀랄 일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닥쳤을 때 보이는 반응중 하나이다. 본문의 이드로가 이런 기분 아니었을까? 사위 모세로 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들으면서, 실제로 250만명의 엄청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것을 증거로 보면서, 아! 하나님은 정말 놀라운 분이시구나! 살아계신 하나님이 분명하구나! 라며 놀라고 또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충격이 일어나고 마침내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에 이르기까지 이드로의 모습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과정이 있다. 꼭 이런 과정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들인 것은 분명하다.
-먼저, “들었다(1절).
“하나님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다. 열 가지 재앙, 홍해 도하, 마라의 쓴 물, 신 광야에서부터의 하늘 양식, 아말렉과의 전투.. 모두를 소문으로 들었다! 이에 지체하지 않고 십보라와 손자들을 데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는 시내산 근처까지 온 것이다. 이드로는 소문을 “듣고” 모세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모세가 자세히 말하였다(8절)” 소문으로만 듣던 하나님이 하신일을 사위 모세는 차근 차근 자세하게 들려 주었다. 막연한 소문이 실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드로는 이 모든 일이 사실임을 당장 그 다음날 아침 하늘에서 내린 양식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감탄 했을 것이다. 아말렉과의 전투 이후 그들에게서 거둔 노획물들을 보면서 감탄 했을 것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일들이 실제로 모세의 입을 통해 증거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저런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영혼들에게 “더욱 자세하게” 하나님나라 복음을 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모세가 “더욱 자세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였던 “하나님께 함께 한 출애굽의 전 과정”속에 함께 한 삶이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다. 경험하였다. 경험하였기에 소문으로만 무성한 그 사실들을 “더욱 자세하게” 들려 줄 수 있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들려 주기 전에 하나님은 나에게 먼저 하나님 나라 복음의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하신다.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신비한 경험에서부터 일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고 광야에서 책임져 주신 것처럼, 놀라운 일들을 체험케 하신다. 그런 일들이 내 안에 차곡 차곡 쌓여 있으면, 언제든지 들려 줄 수 있다.
-하지만, 경험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제대로 아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만큼이나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출애굽의 전역사를 함께 경험하며 나왔어도 물, 식량 문제 때문에 불평과 원망을 감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는 단계이다. 모세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도긴개긴”이다. 그럼에도 모세는 “더욱 자세히” 말해 주었다.
-그곳이 바로 시내산 앞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모르는 곳인 시내산이 모세에게는 하나님을 만난 장소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다시 이곳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돌아오기 까지의 모든 여정을 “더욱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만남의 경험이 풍성할 수록 “더욱 자세히” 들려 줄 수 있다. 단지 소문으로만 듣고 자기 생각과 상상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진리 따라” 알아 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그랬으면 좋겠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더욱 자세히 나아게 깨닫게 해주셔서, 누구를 만나든지 자신있게 “더욱 자세히” 하나님을 들려 줄 수 있는” 생동감있는 목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서 함께 예배와 교제를 나눈다(12절)
이드로는 소문을 듣고, 모세의 더욱 자세한 간증을 듣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하나님께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드렸다. 아마도 미디안 지역에 드리는 형식으로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형식은 상관 없었다. 이드로는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일을 듣고 살아계신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에 대하여 분명한 신앙고백을 드린 것이다.
-또,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함께 참여한 아론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먹는다. 식탁의 교제를 나눈 것이다. 당시 율법이 정해지지 않았고, 제사법등과 같은 구체적인 규례들이 주어지기 전이었기에 이 모든 형식은 미디안의 제사 형식을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이드로는 그 제사와 식탁의 교제에 앞서 아론과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크게 외쳤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11절)”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심을 듣고 인정하여 고백하는 이런 신앙고백들을 “함께” 들을 때의 전율을 잊으면 안 된다. 교회 공동체에는 이런 “전율”이 넘쳐나야 한다. 불신자가 신자가 되고 신자가 제자가 되는 과정에서 언제든지 들려지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들”이 넘쳐나는 교회가 살아있고 건강한 교회이다. 더온누리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성령의 감동과 전율하심이 넘쳐나는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하신일들이 풍성하게 나눠진다. 그 소문들을 듣고 오는 이들에게 “더욱 자세하게” 하나님을 들려 주는 교회이다. 더온누리교회와 이 땅의 교회들이 이랬으면 좋겠다!
-성별, 수준, 학력차, 신분차에 상관 없이 모두가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을 행하신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고 예배하며, 한 식탁에서 교제하는” 그런 교회를 꿈꾼다!
-소문이 들리고, 와서 더욱 자세하게 들어서,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는 이드로의 모습이 우리 공동체에 끊임없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주님, 이드로처럼 격려해주고 기쁨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주님, 이드로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반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이야기로 인해 감동고 전율이 넘쳐나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도와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