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드디어 여기에, 지금 함께 하신다! [출 40:17-38]
 – 2021년 10월 31일
– 2021년 10월 31일 –
출 40:17-38 드디어 여기에, 지금 함께 하신다!

성막이 드디어 조립된다. 역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이 문장은 무려 7번(19,21,23,25,27,29, 32절)이나 기록되어 있다. “명령하신 대로”는 “말씀하신 대로”이다. 말씀하신 대로 (백성들의 온전한 순종으로) 만들어졌다. 마치 창세기 1장에 기록된 “하나님이 이르시되”가 9번(3,6,9,11,14,20,24,26,29절), “그대로 되니라”가 5번(7,9,15,24,30절) 기록되었다. 말씀하시면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1.말씀하신 대로(17-33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전 우주와 지구와 에덴동산과 사람이 창조 되었다. 마찬가지로 “말씀하신 대로” 성막과 모든 집기와 도구들이 만들어 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은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역사는 펼쳐진다.

*오늘 나에게 말씀하신 것은 곧 나에게 이루어질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렇기에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내 삶이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의 삶이라면 당연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앞에 늘 함께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 하나님의 오심을 약속하신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여 주심으로 “말씀해 주셨던,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감동을 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을 살아간다!

*말씀이 들려지고, 들린 대로 살아내는 백성이 곧 주님의 백성이다. 나는 말씀이 들려지는 대로 순종하며 나아가는가 고민이 되는 아침이다.


2.충만한 여호와의 영광(34-38절)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어진 성막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 이 모습을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34,35절)” 이 구절을 새번역은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라고 했다.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을 채우기에는 버거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상관하지 않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 위해 내려 오셨다. 35절은 모세가 성막에 가득찬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까지 표현했다.  이 모든 것을 성막을 완성하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분명하게 보였다. 이 놀라운 경험은 향후 40여년동안 백성들의 시선이 늘 진영 중앙에 있는 하나님의 장막에 고정된 이유였다. 성막을 세운 후 임재한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의 모습으로, 불의 모습으로 늘상 한 가운데 존재하였기에 하상 시선을 성막에 고정하고 40년을 광야에서 보낼 수 있었다.

사실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구름과 불은 출애굽 후 시내산에 이르기 전 약 50여일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를 지났고, 모세가 시내산에 올랐을 때 산 위에 있었으며, 성막이 완성된 후 성막 위에 임했다. 그리고 광야 40년동안 이스라엘의 여정을 이끌었다. 이 구름과 불은 시내산 정상에 나타날 때 두터운 구름, 강렬한 불, 번개, 우뢰소리, 나팔 소리로 나타났다. 이것은 에스겔(10:4,43:5)과 요한 계시록(4:5)에서 그려진 하늘 성전에서 나타나는 모습이었고 출애굽기에서는 “여호와의 영광”으로 묘사 되었다(출 16:10, 24:17).

이 영광을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이라고 고백했다. 즉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함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심을 가리킨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고전 3:16, 6:19). 움직이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되는 것은 곧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복종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38절)” 이다. “그들의 눈”, 즉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눈으로 실제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목격한다.

*하나님은 실재 하시며 살아서 움직이고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3.새해 첫날에…(17절)
출애굽하여 2년째 첫째 달 초하루, 즉 1월 1일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성막을 세웠다.” 성막의 모든 물품을 만든 후 조립하여 세우는 시기를 첫달 초하루로 잡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새해의 시작을 하나님과 동행 하겠다는 의지이다. 특히 출애굽의 흥분에서 끝나지 않고 출애굽의 하나님과 늘 함께 하고픈 행동이었다. 아침마다 이러한 의지를 북돋으며 살기를 다짐해 본다. 매일이 첫날처럼 믿음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고 날마다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다. 날마다 이런 마음이 퇴색되지 않기를 결심해 본다.


나는?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 모두가 하나님의 실제를 바라보았다! 맞다! 우리는 첫날 뿐 아니라 매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한다. 날마다 나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한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우리의 움직이는 어느곳에서나 그곳에서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실제 하는 하나님 이심을 잊으면 안 된다. 


*주님, 말씀하신 대로 꽉찬 영광으로 임하신 하나님이어서 감동입니다. 나의 삶의 현장에도 꽉찬 영광으로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매일 제가 바라보는 것이 실제 하시는 하나님이어야 함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바알브올의 음행과 우상숭배 사건은 앞선 발람의 네 번의 예언과(22-24장) 이스라엘의 두 번째 인구조사(26장)  사이에 위치한다.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도 세 번째 예언이 선포된 브올이다. 자기 백성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선명하게 선포되었으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연약하고 죄악된 모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공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에 기초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1.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진노(1-5절)
발람을 통해 자기 백성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드러났지만 이스라엘은 모압 여인들과 하나님께 범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보이지 않은 모압 왕의 저주는 피하였지만, 눈에 보이는 모압 여인의 유혹에는 넘어가버렸다. 민 31:36에서는 이 사건의 배후가 발람이었음을 밝히지만 정작 본문에는 어떤 기록도 없다. 싯딤은 여리고성에서 불과 16km 떨어진 곳이다. 가나안 입성 직전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모압 여인들의 유혹을 받아 음행 했다는 것은 단순한 유혹의 문제가 아니다. 당시의 신전에는 합법적인 음행을 하면서 자신들의 신을 섬기는 풍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여인들과 함께 이방 신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식사 자리에 동참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 가담했다는 것은 바알브올에게 제의적 의미에서 헌신하고 복종했다는 뜻이다. 이 사건은 마치 모세가 산 위에서 하나님에게서 십계명을 받고 있을 때 산 아래에서 으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음행했던 사건을 연상케 한다. 산 위에서 발람이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강력한 축복을 선포한 그 곳의 산 아래에서 바알브올을 섬기며 음행을 저지른 것이다. 발락의 저주 시도를 철저하게 막으시며 자기 백성을 축복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무색하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모압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가 바알제의에 동참하고 만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축복하시며 지켜주시기 원하시지만, 그 백성이 스스로 무너지면 속절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매우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을 매달도록 명령하신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떠나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바알브올에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2.비느하스의 열심(6-13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도자들을 대낮에 목을 매달라고 명령하셨지만 모세는 바알브올에 가담한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하게 준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백성들은 선포된 심판으로 인해 회막 문 앞에서 모세의 명령을 준행 하지 않고 울고 만 있다. 그런데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모두가 절망하며 울고 있을 때, 한 이스라엘 사람이 모세와 회중이 보는 앞에서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게에 왔다.
 
공개적으로 이스라엘 진영 안으로 음행의 죄를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해 지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의 명령을 공개적으로 멸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 특이한 것은 1절에서는 모압 여인이 유혹했다고 되어 있는데, 6절에서는 미디안 여인이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왔다고 언급한다.
 
이스라엘 진영 안으로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들어온 모습을 본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는 끓어 오르는 거룩한 분노로 즉시 창을 들고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인이 들어간 막사로 달려가 두 사람을 창으로 배를 꿰뚫어 죽인다. 하나님 앞에서 보인 비느하스의 열정과 분노로 인해 두 사람은 심판 받았고 하나님의 진노도 그친다. 그러나 이만 사천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염병으로 죽는다. 이 사건은 두 번째 인구조사 직전에 일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심판을 받은 마지막 장면이다. 이로 인해 출애굽 1세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마무리하는 의미도 갖는다.
 
비느하스의 행동이 매우 과격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행동을 칭찬하셨다. “그가 하나님의 질투심을 가지고 질투했기 때문이다.” 비느하스의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자를 백성들 중에서 처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 하였다고 하셨다(13절).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와 그의 자손들과 함께 영원한 제사장의 언약을 세우신다. 그리고 이 언약을 “평화의 언약(12절)”이라고 규정하셨다. 이제 비느하스와 그 후손들은 영우너토록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 헌신하는 직무를 감당할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의 계보는 정식으로 비느하스의 혈통이 이어가게 될 것이다.
 
 
 
3.미디안에 대한 심판 선언(14-18절)
본문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을 범죄에 빠지게 한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한다. 죽임 당한 이스라엘 남자는 시므온 지파의 시므리였고 죽임당한 미디안 여인은 수르의 딸 고스비이다. 둘 다 자신들의 지파에서 지도자의 아들 딸이었다. 즉 지도계층으로 각 지파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들이었다. 이름까지 공개한 명분이 충분하다. 바알브올의 음행은 지도계층에서조차도 분별하지 못하고 도리어 앞장서 행음한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 각 지파 지도자의 목을 매달라는 명령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시므온 지파는 레위 지파와 함께 저주에 가까운 예언의 유언을 받았고 고라의 반역 사건때 다단과 아비람등과 함께 반란에 동참했던 지파들 중의 하나였다. 
 
또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을 치라고 명령하신다. 그들은 속임수로 이스라엘을 유혹하였고 염병으로 이스라엘에게 죽음의 심판이 임하게 한 일에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민수기 22:4, 7에서는 미디안 족속이 모압 왕 발락과 결탁하여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계획에 적극 동참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명령을 따라 31장에서 미디안을 대적하는 거룩한 전쟁이 펼쳐진다.
 
 
 
나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던 발락의 계획은 하나님의 저지로 실패 했지만, 모압의 지역(종교적인) 행사에 이스라엘 남자들을 초청하여 음행하게 하는데는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싯딤에 머물면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다가 스스로 바알브올에게 무릎을 꿇는다. 문화와 풍습으로 은밀하게 음행하게 하는 죄의 모습을 분별해야 할 것이다. 문화의 이름으로 포장된 음란함을 분별하고 거룩함을 지켜야 할 것이다.
 
-“바알브올”은 “브올에서 섬기는 바알”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바알 숭배에는 반드시 음행이 수반되었다. 농업이 생업의 근간이던 시대 풍요와 다산을 비는 바알 제사의 정점은 신과의 합일을 의미하는 “히에로스 가모스(거룩한 결혼)”이다. 이것은 남사제오 ㅏ여신도, 여사제와 남신도 사이에 이루어지는 신전 성관계였다. 가나안 종교의 음란함은 당시 생활상을 기록한 “우가릿 토판”에서 기록되어 있다. 가나안의 일상적인 문화를 처음 접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도 쉽게 이 문화에 흔들리고 말았다.
 
 
-이스라엘의 음행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백성의 지도자들을 목매달라고 하시고 염병을 보내 이만 사천명을 죽게 하신다. 우상숭배에 대하여 단호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시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명령을 모세와 백성들이 제대로 순종하고 있지 않고 회막 문 앞에서 울고만 있을 때 비느하스가 일어나 그들 앞에서 버젓이 음행하러 들어간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를 창으로 꿰뚫어 죽인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습을 보시고 백성들 가운데 있던 염병을 그치게 하셨다.
 
-비느하스의 행동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과 시각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가 자기의 마음을 따라 행동했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질투심(킨아_열정, 열심, 질투)으로 질투하여(카나_시기하다, 질투하다, 열심히 하다) 하나님의 노를 돌이켰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깨닫는 대로 순종한 비느하스의 용기가 대단하다. 이런 용기가 믿음의 영역에서 꼭 필요하다.
 
-오늘날의 문제는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분노”하는 지도자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특히나 지금은 종교 지도자들의 선한 분노가 필요한 시대임에 분명하나, 세상 문화에 동화 되어 하나님의 분노에 공감하며 꿋꿋하게 선 비느하스가 보이질 않는다.
 
-지금 이 시대 교회 공동체안의 문제는 시므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비느하스가 없어서 속절없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분개하는 지도자가 없어서 하나님의 이름이 무시를 당한다. 교회 안에서 노골적인 범죄가 공공연하게 일어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삶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내는 삶이 곧 하나님의 진노와 질투를 행동으로 표현한 비느하스의 열심을 따르는 삶일 것이다. 한 사람의 열심이 신앙과 삶과 공동체를 세울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다. 시므온 지파의 시므리는 자신의 정욕을 위한 열심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죽임 당했다. 나를 위한 열심이 공동체에 얼마나 큰 악영향으로 나타나는지 새겨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김없이 실패했다. 하나님의 진노로 또 이만 사천명이 죽임을 당할 정도의 실패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계보를 이어가도록 비느하스와 그의 후손들을 임명하신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은혜를 멈추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 실수하고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있는 존재지만,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서 다시 회복하여 시작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제사장의 계보를 이어가신다.
 
-시내산 아래에서는 레위 지파의 열심이 금송아지 우상 숭배로 인해 심판 받던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었다. 40년이 지나 싯딤에서 비느하스의 열심이 바알브올에 가담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었다. 이후에 또 죄악이 반복되더라도 비느하스의 후손이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속죄를 이어갈 것이다. 자기 백성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은 죄 가운데서 진노 받을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실수와 실패로 인해 구원과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거두지 않으신다.
 
-미디안 족속에게 철저한 심판을 선언하신다.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속인 죄를 분명하게 물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범죄하도록 올무를 놓은 미디안 족속에게도 응당한 심판을 행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반드시 물으신다. 그 하나님의 심판을 가볍게 지나치면 안 된다.
 
 
 
 
*주님, 비느하스의 하나님의 마음으로 충만한 질투심이 나의 마음에도 가득하여 죄에 대하여 생동하여 행동하는 신앙이 되겠습니다.   
*주님, 죄악이 반복되어 진노의 심판을 행하시더라도 용서의 길을 함께 예비하시는 사랑을 봅니다. 저도 정죄와 판단만이 아닌 용서와 돌이킴의 길을 함께 준비하는 성숙한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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