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여호수아가 없어도 주님은 여전히 함께 하신다. [삿 1:1-10]
 – 2021년 11월 01일
– 2021년 11월 01일 –

사사기(쇼페팀, Judges/재판관들)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 사무엘이 등장하기까지 약 350여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사들의 기록이다. 이 기록은 BC 1,050년에서 1,00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유대의 전승에 따르면 사무엘이 저자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대략 사무엘이나 혹은 어떤 다른 이가 이 기간 동안의 기록들을 모아 정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사사기는 여호수아에서 사무엘로 이어지는 사이에 유다 지파로 옮겨진 지도력의 배경 하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가게 되면 어떤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지를 잘 보여준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 2:10).” 라는 말씀이 이를 잘 요약해서 이해하게 한다.

사사기 묵상의 여정 속에서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는 것을 좋아하는지 깨달아 이런 악행에서 돌이켜서 그 하나님을 더욱 내밀하게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1.여호수아가 죽은 후(1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 펼쳐지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여호수아… 모세와 함께 광야를 오롯이 견뎌내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던 지도자다. 모세가 모압 땅에서 죽은 후 갈렙과 함께 가나안 정복을 이끌었던 불세출의 명장이다. 그가 죽었다. 리더십의 큰 공백이 생긴 것이다. 더 특이한 것은 여호수아의 뒤를 잇는 지도자를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는다. 문제는 여전히 정복하지 못한 땅들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땅을 분배 하면서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은 분배 받은 지파들이 끝까지 싸워 차지하라고 당부했다(수 23:5). 이스라엘 민족들을 하나로 단합시켜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 불세출의 인간 지도자가 죽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변함이 없는 듯 하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1절)” 가나안 족속과의 싸움에 앞서 하나님께 여쭙는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응답으로 “유다”가 올라가라는 말씀을 따라(2절)  유다가 올라간다. 그런데 유다는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함께 올라가자고 요청한다. 그러면 시므온이 제비 뽑은 땅을 함께 올라가서 싸우겠다고 한다(3절). 음…. 이게 뭔가 싶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지혜롭게 연합하여 싸운 것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온전한 순종이 아닌 듯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온전한 순종이 아니었다면 전쟁의 판세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둘째 가라면 서러울 강력하게 큰 지파였고, 시므온은 가장 작은 지파에 속하였다. 유자 지파만 올라가도 충분했다는 것이다. 제비뽑아 차지한 땅은 유다지파가 유대산지 남쪽의 대부분 지역이었고 시므온 지파는 그 안의 일부 지역을 분배 받았다. 형세로 본다면 유다 지파의 땅 안에 시므온 지파가 자리 잡았다. 유다지파는 가장 약한 시므온 지파를 배려한 것이다. 그들을 위해(3절) 하지 않아도 될 연합과 연대를 해 준 것이다.

유다와 시므온이 먼저 올라가서 차지한 땅은 자신들에게 배정 받은 땅이기에 유다 지파만의 힘으로 먼저 올라가 차지해야 옳다. 그럼에도 그의 형제 시므온 지파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자신들에게 분배 받은 베냐민 지파와의 경계인 북쪽의 예루살렘 지역과 남쪽의 헤브론 지역을 정복하는 쾌거를 올린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다지파가 지금 차지한 땅은 가나안 중남부 지역으로 장차 다윗의 국경선이 확정될 때까지 지속적인 국지전이 일어나게 될 장소이다. 지금은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의 땅인 베섹을 차지하고 이어 예루살렘과 헤브론을 점령하여 유다 산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다윗이 완전하게 평정할 때까지 블레셋 족속과 뺏고 빼앗기는 진흙탕과 같은 국지전이 지속되었다. 결국 다윗의 왕권이 서기까지 이 땅은 블레셋 족속의 끊임없는 도발을 감내해야 할 곳이었다. 그 역사의 수레바퀴가 지금 막 돌아가기 시작했다.

*걸출한 지도자가 죽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한명의 지도자를 하나님께 돌려 보내며 진정한 지도자이신 하나님을 붙든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어지는 은혜다. 안정적으로 믿음의 여정을 이끈 것은 눈에 보이는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셨다. 40여년전 시내산에서 늘 함께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여전히 차지해야 할 땅이 남아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복 전쟁을 도우신다.

*그럼에도 지도자의 부재에서 오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그 허전함 속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잊지 않는다. 차지 해야할 땅 앞에서 함께 하시는 참 지도자이신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울까요?”


2.위기, 그러나 굳건하게(1-3절)
모세가 생존해 있을 때는 모세가 여호수아가 살아있을 떄는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에게 전달되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었으니 누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을까? 당연히 제사장이다. 여호수아가 죽고 성막이 임시로 거하는 실로에서 아론의 후손들인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것이다. 성막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이고 가르치시겠다는 말씀을 따라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없는 시대, 그의 부재가 겉으로 드러날 때 공백을 느낄 틈이 없었다.영원한 지도자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고 제사장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께서 나아가 그의 뜻을 구했다. 여전히 가나안 땅에 물리치지 못한 족속들이 있었고 차지 해야 할 땅이 버티고 있었지만, 여기에 이미 세워진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있었고, 그들을 통해 성막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그러니 딱히 여호수아의 부재를 느낄 틈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차지 하지 못한 땅을 치러 올라가려 할 때, 누군가는 결정해야 했고 그 누군가의 통솔을 따라 함께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아마도, 모세와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리더십이 세습되는)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제비뽑아 분배받은 땅의 주인 지파가 올라가라 하신다.

이렇게 중요한 시대, 결정하고 판단해야 할 여호수아가 없다. 그의 지도력이 누구에게 이양 되어야 하는지 정해지지도 않은 채 여호수아가 죽은 것이다. 그럼에도 영원한 지도자이신 하난미의 결정이 백성들에게 전달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특출난 지도자보다 각 지파별로 힘을 합하여 자신들이 분배 받은 땅을 차지해 나가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즉, 한 사람의 결정권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계시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그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말씀을 따라 순종 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자신들이 분배 받은 유다 산지의 남은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기 위해 누가 올라갈까라고 물어서는 안된다. 당연히 분배 받은 유다 지파가 올라가야 하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권위와 인정을 통해 이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임을 확인 받고 싶어 한다. 사사기의 시작은 이런 믿음의 자세가 이어지는 모습으로 출발한다.

*의지하던 지도자의 부재가 가져오는 상실감보다 산적해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 리더십의 부재를 느낄 새 없이 맞선다. 하지만 모세가 그렇게 했고, 여호수아도 그랬던 것 처럼 하나님께 묻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믿음이 이상 없다!

*리더십이 부재할 때 직면하는 문제, 하나님께 여쭙고 길를 구해야지… 사람을 바라볼 때 한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여쭐때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겠다.

*공동체의 위기는 지도력이 상실 될 때이나, 자연스럽게 리더십이 이양 되는 시기를 거쳐도 흔들리는 것이 사회이다. 하물려 인생들이 모여있는 교회 공동체라고 다를까! 그럼에도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공동체이기에 걱정 없다. 그래서 더온누리교회도 걱정 없다.



3.그럼에도 우려되는 것은(4-10절)
유다와 시므온은 승승장구하였다. 그 원인은 분명하다. “… 내가 그 땅을 유다 지파의 손에 넘겨 주었다(새번역_2절 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약속하신대로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4절)” 하나님께서 유다지파에게 승리를 주셨다.

그런데 우려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사사기의 전체 주제인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의 모습이 여기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가나안 족속과 브리족속의 땅 “베섹”의 아도니 베섹(베섹의 주인)을 잡아 그의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잘라 버린다(6절). 문제는 이런 해우이가 잘림을 당한 아도니 베섹의 한탄에서 발견되듯, 가나안 족속들의 잔인한 전쟁 문화였다. 가나안 땅의 잔인한 행동들을 따라 행동한 것이다.

가나안 민족과 싸우면서 가나안 민족들의 행태를 따라가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가나안 민족과 싸우면서 가나안화 되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나는?
-본문을 묵상하면서 유다와 시므온의 연합을 보면서 “힘이 강한 지파가 가장 열악한 지파와 연합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어쩌면 자신이 분배 받은 땅에 인접한 시므온 지파에게도 강력한 위협이 되는 예루살렘과 헤브론 지역의 “아도니 베섹”을 함께 제거하고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훗날의 안녕을 기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시므온 단독으로 그 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유다는 시므온에게 함께 이 전쟁을 참여할 것을 요청하면서 자신들도 시므온의 전쟁에 함께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얼마나 힘있는 자의 배려인가?  “우리와 함께 우리 몫으로 정해진 땅으로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을 치자. 그러면 우리도 너희 몫으로 정해진 땅으로 함께 싸우러 올라가겠다(새번역_2절).”

-공동체와 공동체가 연합할 때 먼저 힘 있는 공동체가 연약한 공동체를 배려하는 법을 유다지파에게서 배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것” 그것이 연합이다. 더온누리공동체가 지역의 교회들을 섬길 때 이런 정신을 기억하고 감당하면 좋겠다.

-리더십의 교체가 점점 다가온다. 오늘 말씀도 이에 따른 감동을 보게 하신다. 인간 지도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진정한 지도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목사님의 은퇴 해가 빠르게 다가 왔다. 그동안 정목사님의 그늘 아래 수월하게 분립 초기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은퇴 이후 오롯이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 말씀 속에서 힘이 난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주님께서 나의 영원한 기업, 나의 영원한 목자 되어 주시니 걱정 없다. 나는 그저 “주님 어떻게 할까요?”더욱 잘 물으면 된다. 묻고 순종하면 된다.

-순종 하되 공동체의 연약함을 감당하며 순종해야겠다.  순종 하되 함께 지체로 불러주신 성도님들과 “함께” 순종해야겠다.  우리의 영원한 목자 되신 주님의 인도하심에 기꺼이 반응하며 순종해야겠다.


*주님, 여호수아가 없는 가나안 전쟁이지만, 주님은 여전히 함께 하심을 보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서로 힘을 합하여 더온누리공동체 잘 섬기겠습니다. 공동체가 차지해야 할 영적 지경을 함께 순종하며 차지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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