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꿀벌이지만, 번개처럼, 횃불처럼, 등불처럼 … [삿 4:1-10]
 – 2021년 11월 08일
– 2021년 11월 08일 –

여인천하의 시대가 열렸다! 아쉽게도 에훗이 죽은 후 “또” 악을 행한다(1절). 하솔 왕 야빈왕과 시스라는 철병거 900대를 앞세워 “심하게 억압” 한다. 울부짖는 이스라엘을 구한 사사는 “여선지자 드보라”였다.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바락에게 시스라와 철병거를 넘겨 주시겠다는 메세지를 전했으나 주저한다. 이에 시스라는 여인의 손에 죽게될 것을 예언한다.


1.드보라(4절)
드보라라는 이름의 뜻은 “꿀벌”이다. 저자는 “랍비돗의 아내(에쉐트 라파톳)”로 그녀를 소개하는데 랍비돗은 번개, 횃불, 등불이라는 의미가 있다. “~의 아내”로 번역된 “에쉐트”는 “~의 여자”라는 의미도 있다. 직역하면 “횃불의 여자(아내)”이다. 드보라(꿀벌)은 “번개(횃불, 등불) 여자”이다. 앞서 사사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히브리어 어순과 비교하면 “랍비돗의 아내”는 남편 랍비돗의 여자라는 의미보다 드보라의 별명일 가능성을 높게 본다. 더구나 드보라를 소개하는 문장의(4절) 단어들은 모두 여성형을 기록됐다. 드보라는 여성중의 여성이었다.

당시 사회에서 어울리지 않는 여성상이다. 에훗이나 삼갈과 같은 의외의 선택을 하나님께서 하신 듯 하다. 그럼에도 여선지자 드보라는 라마와 벧엘 사이에 거주하며 구원자 뿐 아니라 재판관으로서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 영향력은 상당하여 바락의 경우는 드보라가 함께 출정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까지 할 정도였다(8절)


2.어? 이번에도 이렇게?
에훗과 삼갈은 각각 훈련받은 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두었던 연약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시니 이스라엘을 모압과 블레셋에서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드보라도 마찬가지다. 당시 세계관에서 ‘여인’의 위치는 매우 열악했고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성을 통해 구원의 사역을 진행하셨다. 당시 세계관에서 여성 비하적인 문화 가운데 있었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여성에 대한 마음은 창조때 부터 변함 없이 “하나님의 형상(창 1:27)”으로 동등하게 창조하셨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 바울은 갈라디아에 보낸 서신을 통해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밝혔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 리더십은 모세와 함께 출애굽의 역사를 동역했던 미리암(출 15:20-21), 남 유다 요시야 왕때의 훌다(왕하 22:14-20), 예수님께서 출생하기 전 성전에서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한 ‘안나'(눅 2:36) 등을 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한 자리에 최적의 사람을 세우셔서 그 뜻을 펼치신다. 하나님 앞에 남성과 여성은 무의미하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일 뿐이다.

*그렇기에 드보라가 남자이냐 여자이냐의 문제이기 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드보라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하겠다.

*하나님의 세워 주심은 성별과 관련 없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주권에 따라 선택되고 진행된다. 남자인가? 여자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순종하는가의 문제다!

*구약성경의 여성 리더십은 여러 면에서 제약되었지만, 드보라처럼 여성 지도자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끼치는 리더십의 영향력이 어떤가일 것이다.

*놀랍게도 드보라의 리더십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5절)”와 납달리 지파의 유명한 장수인 바락이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나도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8절)”고 말한 장면을 통해 그녀의 탁월함과 권위를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세우시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사람”을 세우신다.


3.드보라와 바락의 차이
드보라를 소개할 때 “랍비돗의 아내(4절)”라고 했다. 랍비돗이 ‘번개, 횃불, 등불’등의 의미라고도 살펴 보았다. 드보라는 가나안 땅 북부 지역을 철병거 900대를 앞세운 하솔 왕 야빈의 “심한 학대(3절)” 속에서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4~6km)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판결하며 “하나님의 뜻(진리)의 횃불”을 든 여인이었다.

하솔 왕의 ‘심한(호즈카_무력, 폭력, 강압, 세력)’ 학대( 라하츠_압착하다, 압박하다)’ 속에서 말씀의 횃불을 치켜들고 어둡기만한 가나안 북부 지역을 밝히고 있었다. 때로 ‘번개’처럼 이스라엘의 주눅들고 나약한 믿음을 일깨워 주었을 것이다. 때로는 ‘등불’처럼 잔잔하게 위축된 마음 속을 밝혀 주기도 했을 것이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번개, 횃불, 등불을 비추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시내산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드보라를 통해 엿보인다. ‘번개, 불(횃불, 등불)’은 시내산 꼭대기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모습이며, 광야 40년동안 추운 밤을 따뜻하게 덮었던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20년간의 하솔 왕 야빈의 극악한 무력아래 짓밟히고 눌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종려나무 아래에서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판단은 “번개였고, 횃불이었으며, 등불이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이와같은 말씀의 은사를 주시기를 갈망하게 된다. 때로 번개처럼, 때로 횃불처럼, 때로 등불처럼 나를 통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 주시기를 갈망한다. 나를 통해 전하는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이 때로 번개처럼, 횃불처럼, 등불처럼 받아들이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를 갈망해 본다. 주님, 행하시옵소서!


그런데 하나님께서 드보라를 통해 야빈과 시스라를 심판하실 장수로 ‘바락’을 부르셨다. 드보라는 평소에 거하던 라마와 벧엘 사이에서 납달리 게데스에 거주하던 바락을 부른다. 바락은 드보라의 부름에 한걸음에 갈릴리 동북쪽에서부터 그 먼 거리를 달려왔다. 그리고는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 1만명을 거병하여 다볼산으로 출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바락은 “하나님께서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 무리를 (다볼산 아래)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네 손에 넘겨 주리라(7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번개의 여인 드보라”가 함께 가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8절) 어깃장을 놓는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먼저, 그만큼 하솔 왕 야빈의 무력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 보다 더 두려운 것 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특히 3절의 기록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동기에 대해 사사기 저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3절)”. 원문의 어순에 따르면 철병거가 두려워서 부르짖는 편에 더 가깝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을 기손강에서 직면해야 한다.

당연한 두려움이 바락을 덥쳤다. 철병거의 위용을 알고 있기에 기손강의 드넓은 평야는 철병거가 활약하기에 안성마춤인 곳이어서 더더욱 두려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그러니 “번개의 여인, 횃불의 여인, 등불의 여인”인 드보라 라도 함께 가야 하지 않겠나! 싶은 거였다.

드보라를 세우신 하나님,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려고 이미 결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다. 철병거 900대와 악명 높은 시스라와 야빈 왕은 하나님 보다 더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무려 20년을 그렇게 짖눌려 살았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분별하여 판결하는 사사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횃불이었고 등불”이었지만, 바락은 자신의 이름의 의미인 “천둥, 번개”라는 뜻이 한낱 그의 성품을 평가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질적인 차이가 삶의 태도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를 만들었다. 사람보다, 계획보다, 현실과 현장보다, 경험보다 더 결이 다른 말씀이 선포될 때 필요한 것은 “그 말씀을 선언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결국 그 믿음이 삶의 차이를 만든다.


나는?
-현실의 벽에 절망할 때가 있다. 사방에 적이 강력하고 지금 시도하는 것들을 전망하면 좌절감만 밀려 올 때가 있다. 그런데 하필 그때 믿음의 도전을 하라고 촉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감동도 함께 온다. 이 딜레마를 어찌 해야 하나…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앞 일을 알지 못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다 계획이 있다! 현실과 하나님의 계획 사이의 간격을 믿음으로 메워야 한다.

-여선지자이자 사사인 드보라는 현실과 하나님의 말씀의 비전을 믿음으로 메워 선포하고 바락을 따라 함께 담대하게 올라 갔다. 하지만 바락은 연약한 믿음을 인간적인 의지대상, 즉 눈에 보이는 것으로 메꾸며 나아가려 했다. 이것이 드보라와 바락의 결정적인 차이다.

-그렇다면 고심할 필요 없다. 드보라처럼 현실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의 간격을 “믿음”으로 채워내 야지!

-꿀벌(드보라) 이었지만, 그녀가 감당한 사역은 “번개처럼, 횃불처럼, 등불처럼” 이스라엘을 비춘 것처럼, 나에게 맡겨주신 더온누리교회도 번개와 같고 횃불과 같으며 등불과 같은 말씀을 말씀대로만 전하도록 은혜 주실 줄 믿는다.


*주님, 드보라의 삶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번개, 횃불, 등불임을 믿습니다. 나에게 맡기신 말씀을 전할 때 번개처럼, 횃불처럼, 등불처럼 역사하실줄 믿습니다.
*주님, 그렇기에 저도 드보라처럼 번개, 횃불, 등불의 삶을 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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