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비상식적이고 초라하며 황당한 숫자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보다! [삿 7:1-14]
 – 2021년 11월 15일
– 2021년 11월 15일 –

양털 시험 끝에 기드온과 3만 2천의 군사들은 하롯샘 곁에 진을 친다. 미디안이 북서쪽 모레산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었으니 그들은 요단강 쪽으로 퇴로가 막힌 형세가 되었다. 즉, 퇴로를 확보하지 않는 진을 쳤다. 이스라엘을 얕잡아 본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사들의 수를 3만 2천명에서 1/100수준인 300명으로 줄이신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1.숫자의 힘을 의지하지 말라
므낫세와 아셀, 스불론과 납달리에서 모인 군대가 32,000명이었으니 꾀 많이 모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의기 양양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하나님은 달랐다. “그들이 너무 많다(2절)” 그리고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하니 22,000명이 빠져 나간다. 만명이 남았지만 그 또한 많다고 하시면서 하롯샘으로 데리고 가서 물 마시는 태도를 보고 더 줄이라고 하셨다.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 무릎을 꿇고 입으로 물을 마시는 자,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로 나눈 후 손으로 움켜 대고 핥아 먹는 자를 구별하셨다. 이렇게 구별하신 이유는 단순하다. 숫자가 가장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 숫자는 300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300명으로 충분했다. 세상은 숫자에 더 중심을 둔다. 기드온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미디안 족속들이 메뚜기 떼와 같이 밀려 왔다는 표현을 했다(6:5). 이번에 올라온 미디안도 다르지 않다. “미디안과 아말렉, 동방 사람들이 모두 함께 모여(6:33) 올라왔다고 했다. 그들에 비하면 300명은 전쟁하기에 턱없는 숫자였다.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숫자”가 필요하지 않다.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 사람들은 숫자의 힘을 맹신한다. 규모의 경제를 더 신뢰한다. 그래서 인지 세상은 자신들의 세력을 더 많이 불리는데 집중한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다르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2.하나님과 함께 이기에!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3절) 하여 22,000명이 돌아갔다. 이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7년간의 미디안의 압제는 두려움을 쉬이 떨쳐 내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강력 했고 자신들은 약하고 초라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두려워 하는 이들은 전장에서 돌려 보내야 했다.

두려움에 팽배해진 군대는 백전백패다.

그런데 이런 용기만으로는 전쟁에 나설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의지하는 것이다. 겨우 남은 300명… 미디안의 군대 숫자와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한 병력이 거대 군대와 대치하고 있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은 300명에게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사기를 진작 시키시려고 기드온과 그의 부하 부라를 몰래 미디안 군영에 보내 보초서는 자의 말을 엿듣게 하신다. 놀라운 대화가 오갔는데, 결국 미디안 군대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르렀을 때에, 마침 한 병사가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고 있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보리빵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 장막에 이르러서 그 장막을 쳐서 뒤엎으니, 그만 막이 쓰러지고 말았다네” 하고 말하니까, 꿈 이야기를 들은 그 친구가 말하였다.”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인 기드온의 칼이 틀림없네.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을 그의 손에 넘기신다는 것일세(새번역_13-14절).”

두려움에 떤 군대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미디안 군대 였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겨우 300명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이미 전쟁의 결론은 나 있는 상태였다. 미디안은 이미 싸워 보기도 전에 패배하였다.

*하나님과 함께 이기에 이길 수 있다. 우리가 구비한 숫자가 많으면 하나님이 보이질 않는다.


3.승리보다 중요한 것!
미디안의 압제, 우상 숭배에 물든 민족… 혼란 스럽기 그지 없는 시대였지만, 하나님의 부름에 32,000명이 응답했다. 물론 미디안 연합군에 비하면 턱없는 숫자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백성이 너무 많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이번 전쟁의 핵심은 승리보다 “어떻게 이기는가?”있다는 것이다. 규모, 무기, 전략, 전술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전쟁, 전쟁은 여호와의 것”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싶으셨다.

그래서 “네가 거느린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 이대로는 내가 미디안 사람들을 네가 거느린 군대의 손에 넘겨 주지 않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제쳐놓고서, 제가 힘이 세어서 이긴 줄 알고 스스로 자랑할까 염려된다(새번역_2절).”
고 하신 것이다.

전쟁의 승리가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기를 원하셨다. 7년 동안 하나님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백성들에게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며 느끼고 동행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깨닫게 해 주고 싶으신 것이다.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력하게 여겨지는 미디안의 연합군 쯤이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리시는 것이 이번 전쟁의 목적이었다. 기드온이 하나님에게서 “여호와 샬롬”의 은혜를 경험하고 집안의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찍어내고’ 양털 시험을 거쳐 출정한 전쟁에서 정작 자기 힘으로 이룬 것으로 여기고, 백성들은 자기들의 힘과 기드온의 능력으로 된 것으로 여겨 오히려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될 것을 차단 하신다.

*오직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라고 말할 수 있게만 상황을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비상식적인 소수만 남기셨다. 아예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말할 수 없을 초라한 소수만 남기셨다. 또, 이런 소수를 선발하여 훈련시킨 자들로 세우지도 않으셨다. 조금이라도 자기의 힘을 과신할 여지 자체를 없애고 오직 하나님께서 승리로 이끄신 전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황당한 소수”까지 줄이셨다.

*혹자들은 물을 마시는 방법(태도)를 가지고 준비된 자를 선발하셨다고들 하지만 아니다. 오직 “비상식적이고 초라하며 황당한” 숫자까지 그저 걸러 내신 것이다. 무릎을 꿇고 손으로 떠서 핥는 자가 가장 적은 300명이어서 그들만 남기신 것이 분명하다. 더 적은 숫자를 선택하신 것 뿐이다.

*준비된 용사가 되자.. 이런 말은 본문과 맞지 않는다. “준비된”에 초점을 맞추면 나팔을 불 때 올라온 32,000명이어야 한다. 준비가 되었어도 개전 직전 두렵고 떨리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나는?
-기드온에게 남은 인원은 300명이다. 처음 소집에 응한 32,000명 중에서 “두려워 떠는 자”는 다 돌려 보내라고 했을 때는 기드온은 두렵고 떨지 않았다. 하지만 300명이 남았을 때 기드온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300명만 남은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야밤기습을 명하신다(9절). 그런데 이어지는 10절은 이렇다. “네가 쳐내려가기가 두려우면, 너의 부하 부라와 함께 먼저 적진으로 내려가 보아라(새번역_10절)” 이다.

이제는 기드온이 두려운 것이다. 32,000명의 숫자는 사기가 출중할 숫자였다. 해 볼만하다고 생각할 숫자였다. 그런데 300명까지 줄이신 하나님 앞에 기드온은 이미 하나님 보다 “비상식적이고 초라하며 황당한 숫자”앞에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부하 부라와 함께 미디안 진영에서 들은 말은 “숫자 강박”에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했다. 오히려 더욱 용기를 내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인 기드온의 칼이 틀림없네.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을 그의 손에 넘기신다는 것일세(새번역_14절).”

-기드온은 보초병들의 말을 듣고서 “비상식적이고 황당하며 초라한 숫자”까지 줄이신 하나님의 권능을 비로소 깨닫는다. “기드온의 칼”을 쥔 자신이 아니라 “기드온의 칼”을 쥐어 주신 하나님을 확신하게 된다. 두렵고 떨리는 자신의 손에 하나님께서 권능의 칼을 쥐어 주신 것을 알았다.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절실히 깨닫고 확신케 하시려고 “비상식적이고 초라하며 황당한 숫자(상황)”으로 인도하신 적이 꽤 있었다. 하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용기를 잃을 수도 있었던 나에게 하나님의 권능의 은혜들을 부어주신 것들을 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선하게 인도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오늘 나의 삶을 표현 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성장 과정이 그랬고, 사역의 현장에서 큰 위기를 경험 했던 청년시절도 그랬다. 세상 기준으로 한없이 부족함에도 오늘 이 자리에 세우신 것도 그렇다. 내가 의지하려 했던 숫자(상황, 규모, 여건, 재정 등등)를 맥없이 무너뜨리시고서야 하나님의 권능의 은혜가 보였다.

*숫자(여건, 재정, 관계 등)은 내가 의지하는 것이지만, 이것으로 승리를 구현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다. 내가 미련스럽게 의지하는 “숫자”를 버리니 하나님의 권능, 은혜, 사랑, 긍휼이 보였다.

*하나님의 은혜, 능력, 권능… 그것이 승리를 가져올 뿐…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들 때 승리를 누릴 뿐… 그러므로 주님의 손, 늘 나를 붙잡아 주시기만 바라고 바랄 뿐이다.

*숫자가 줄어드니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더 커(풍성해)졌다!. 내 힘과 의지의 한계가 드러나니 무한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님, 숫자를 의지하던 마음을 허물어 주시니 비로소 하나님의 손이 보입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 보다 주님(의 손)을 더욱 붙잡겠습니다.
*주님, 비상식적이고 초라하며 황당한 숫자를 만드신 권능의 하나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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