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상식으로 살아가는 나, 상식이 넘치는 교회….[잠 12:1-14]
 – 2021년 05월 22일
– 2021년 05월 22일 –
여러 가지 교훈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주어진다. 악인과 의인으로 대조하여 그들의 삶을 비교한다. 이들의 삶이 분명한 대조를 보이는 것은 “훈계”와 “징계”에 대한 자세가 다르기(1절) 때문이다. 자세가 삶을 만든다. 하나님에 대한 자세에 따라 삶의 열매가 다르다.

“바른 인생길 알려는 사람은 훈계를 달갑게 받고 미련한 사람은 책망을 싫어한다.(공동번역_1절)” 바른 인생길을 살아가려는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가르침)을 기쁘게 받는다. 하지만 인생을 바르게 살려는 마음이 없는 이는 바르게 살게 하려는 책망을 싫어하기 마련이다. 나의 하나님께서 바른 인생길을 살게 하려고 가르치고 행하시는 훈계와 책망을 “달갑게(기다렸다는 듯이)” 받는 신뢰의 관계 이기를 되짚어 보는 아침이다. 훈계를 따라 사는 바른 길은 어떤 길인가?


1.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2-5절, 7-9절, 11-12절, 15절)
“좋은 일 하면 은총을…악한 일은 꾀하여도 벌을…(공동번역_2절)”, “나쁜 일을 하면 선 자리가 위태하다 착하게 살면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다(공_3절)”, “어진 아내는 면류관, 주책없는 아내는 등뼈를 갉아먹는 벌레(공_4절)”, “착한 사람은 바른 일…나쁜 사람은 남 속일 궁리만 한다(공_5절)”

“악인은 쓰러진다..의인은 든든히 선다(새번역_7절)”, “지혜대로 칭찬받고,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멸시 받는다(새번역_8절)”, “밭 가는 사람은 먹을 것이 넉넉하나 헛된 것을 꿈꾸는 사람은 지각이 없다(새번역_11절)”, ” 악인은 열매를 빼앗으려하나, 의인은 뿌리로 부터 열매를 맺는다(12절)”, “미련한 자는 자기의 행실만 옳게 여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새번역_15절)”

너무나 상식적인 말들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런 보편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처럼 보여도 결국 이렇게 된다. 앞선 생을 살아간 선진들이 이를 경험했고, 나도 이를 통감하며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젊을 때” 듣는 이런 말들은 고리타분하게 여겨진다. 세상이 만만해 보이는 것이리라. 그저 무엇이든 내 힘으로 할 수 있겠다 싶으니 그런 것이다.

하지만 잠언은 분명히 깨우친다. 그리 홀로 의기양양하게 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성실하게, 정직하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렇게 이끌어 가신다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훈계, 어른의 지혜를 멸시하면 그에 따른 응보가 반드시 따른다고…. 이 지혜(훈계와 가르침)을 잘 따르는 의인과 멸시하고 거절하는 악인의 삶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너무나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말씀의 가르침조차 고리타분하게 여겨 멸시하는 이의 결말을 무시하면 안 된다.


2.정직한 말(6, 13-14절)
“못된 말 하는 것은 자기 피를 보려고 길목을 지키는 격이다. 올곧은 사람은 자기가 한 말로 구원받는다.(공_6절)” 개역한글과 새번역은 “정직한 사람”으로 번역했다. 정직한 사람의 정직한 말은 사람을 구원한다.

또, “못된 사람은 입술을 잘못 놀려 올가미에 걸리지만 착한 사람은 곤경에서 벗어난다. 입을 잘 놀리면 좋은 것을 배불리 먹고 수고하면 그만큼 돌려 받는다.(공_13-14절)”라고 했다. 정직한 말의 습관은 불시에 닥쳐오는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고, 삶의 성실한 댓가를 그대로 누린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은 “듣기 좋은 말”이기 보다, “정직한 말”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임기응변의 화려한 수사보다 진리를 따라 말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나를 통해 들려질 말의 위력(가치)를 알기에 더욱 조심하게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즐겨 듣는 훈계”를 따라 말하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하나님의 훈계가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선명한 증거는 나의 말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말, 세상에서 유행하는 말보다, 깊게 우려진 하나님의 말이 나의 입술의 말이어야 한다. 그 말은 마음에 말씀이 담겨 있지 않으면 결코 새어 나올 수 없다. 말씀이 깊이 깊이 우려져서 나오는 말… 그 말이 사람을 살린다. 나를 살린다. 주님, 제게 그런 말을 주십시오…


3.생명을 돌보는 삶(10절)
“마음이 바른 사람은 가축의 생명도 돌보지만 악한 사람의 뱃속은 잔인하다.(공_10절)” 공동번역이 눈에 확 들어온다. 마음이 바른 사람은 “가축의 생명도” 돌본다. 즉,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그 생명을 사랑하며 돌본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 뿐 아니라 가축들의 생명까지도 아끼고 돌보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이리 할 수 있을까? 새번역은 같은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의인은 집짐승의 생명도 돌보아 주지만, 악인은 자비를 베푼다고 하여도 잔인하다.(새번역_10절)”

“돌본다(야다)”라는 의미는 “알다, 이해하다, 관심을 가지다, 깊은 관계를 가지고 깨닫다”라는 뜻이 있다. 사람뿐 아니라 가축에게까지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돌본다는 의미다. 긍휼의 마음이 풍성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악한 사람은 다르다. 그의 뱃속은 잔인하다. 개역본은 “악인의 긍휼은 잔인하다”고 번역했다. 겉은 번지르하게 자비로운 모습을 보인다 해도 그의 속은 서슬퍼런 잔인함이 있다는 것이다.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척 하면서 자신만을 위해 악한 시도를 서슴치 않는다. 그 사악하고 비열한 마음, 전혀 자비없는 마음이 악인의 마음이다.

*이런 악인의 모습은 나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주저함 없이 행동하는 것을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세상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도 이런 모습 충분히 있겠지…

*나의 유익을 위해 “긍휼의 마음 조차” 이용하는 강팍한 마음이 서글프다. 이런 세상을 살다, 악해져만 가는 이런 세상을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도 고통스럽다. 이런 세상 속에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치며 가축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해 주는 것이 부모의 소중한 유산이 아니겠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긍휼의 마음을 너무도 강조하셨다.고아와 과부에 대한 마음을 가족처럼 대하며 책임지라고 하셨고, 이방인과 나그네를 선대하라고 하셨다. 나그네의 삶을 애굽에서 살았으니 그들의 심정을 너무도 잘 이해하며 잘 섬기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긍휼이시다.

*주님께서도 인간의 삶을 사셨기에 인간의 연약함을 정죄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사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셨습니다.(공동번역_히 4:15)”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도 긍휼로 우리는 도우신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새번역_롬 8:26)”


나는?
-훈계를 따라 사는 바른 길은 상식적이다. 정직하다. 사랑(긍휼)하며 산다.

-1절과 15절은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한다….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라는 인클루오지오 구조를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고 듣는 자의 삶은 이러하다 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하다.

-말씀을 즐겨 듣는 자는 말씀대로 산다.

-말씀대로 사는 삶은 “특별” 하지 않다. 매우 보편적이고 상식적이다. 누구나 마음으로 인정하는 일상속의 상식대로 산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가치와 방식과 확연히 다르다 할지라도 결국 인간다움의 상식적인 것을 더 충실하게 요청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내면의 질서가 아무리 죄로 인해 파괴된 세상이어도 그 질서를 따라 섭리(통치) 하시기 때문이다.

*요즘은 교회가 비상식적인 집단으로 치부 되고 있다.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깃든 지극히 상식적인 삶을 회복해야 할 것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늘 “특별”함을 좋아하고 강조하는 교회이기 때문일까? 잠언과 전도서처럼 상식적인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에 대하여 경각 조차 하지 않는다.


**주님, 상식이 살아있는 교회 되게 하소서
**주님의 상식, 정직(공의)과 사랑(긍휼)이 특별하지 않고 상식적인 교회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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