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자기 생각이 왕인 시대 [삿 21:13-25]
 – 2021년 12월 14일
– 2021년 12월 14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 아내를 얻지 못한 200명의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를 구해 주기 위해 묘책(?)을 마련한다. 놀랍게도 “여호와 하나님의 출애굽 은혜와 광야의 보호하여 주심”을 기념하고 지켜야 할 초막절 절기에 기뻐하고 춤을 추는 실로의 여인들 중에 한 명씩 보쌈을 해 가라는 것이었다.

이 절기가 초막절일 가능성이 가장 큰 이유는 유대의 처녀들이 춤을 출 수 있는 유일한 절기 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이 은혜를 즐겁게 외치며 춤을 추는 그때 베냐민 청년들에 의해 실로의 여인들이 납치를 당하는 것이다. 아주 상식에 벗어나는 말도 안되는 방법이었기에 이렇게 납치한 후에 당사자간의 감정과 부모의 승인이 타진 되었을 것으로 유추한다. 또한 베냐민 지파의 멸족을 피하기 위해 마련된 아주 비상적인 방법이어서 전례가 될 수는 없었다.

아무튼 도무지 말이 안되는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일어났다. 이런 일은 이방 민족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통치에 온전히 순종 하지 않을 때 비상식이 상식처럼 여겨진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이 시대는 몰상식도 상식이 되는 시대였다.

한편 납치 당한 여인들의 아버지들을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달랜다. 지파들의 멸족은 막아야 했고, 허나 자신들의 딸을 주지 않기로 결의 했으니 이렇게 납치 해서라도 그들의 멸족을 막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공동체 전체의 짐을 몇몇 사람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렇게 지파 멸족의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난 베냐민 지파가 각기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모든 것이 파괴되어졌고, 가족들이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 고통의 땅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시 시작해야 했다…

놀라운 것은 훗날 이들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사사 “에훗”이 등장한 것이다(3:15)


나는?
-사사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심란하다. 말씀을 읽으면 평안과 기쁨이 있는 법인데, 사사기나 예언서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사사기는 더욱 그렇다.

-자기들 소견대로 주도한 전쟁으로 베냐민 지파는 소멸될 위기에 처한다. 이에 고육지책으로 미스바에 모이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을 진멸하고 여자 4백명을 끌고와서 림몬 바위에 숨어있던 베냐민 지파 4백명에게 신부감으로 주고 평화를 선포했다. 이게 뭔가….

-기브아의 불량배들과 다를 바 없는 무수한 살육과 약탈을 저지르고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지도자가 없다. 회개와 반성은 커녕 수습하려고 하는 짓이 또 다른 살육과 진멸, 납치이다. 여기에 부족한 숫자의 신부감은 출애굽의 구원을 기뻐하는 여호와의 절기인 초막절에 여자들을 납치하라고 부추긴다. 도대체 이게 뭔가….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하려고 시도할 수록 꼬이고 꼬인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내놓는 처방은 상황을 더욱 악화 시켰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고 발버둥 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전통, 꾀에 집중하여 해결하려 하니 자꾸 빈틈이 생겼다. 조그만 고민하고 신중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생각과 계획을 다졌다면 금새 알아 챌 수 있었음에도 꽉 막힌 생각, 시선으로 도무지 발견하지 못했다.

-수렁에 빠졌다. 죄가 반복 되고 가중됐다. 아… 하나님의 통치를 외면한 하나님의 나라에 자기 소견이 난무하니 악영향이 그치질 않았다!


-25절은 사사기의 결론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본문을 좀 더 정확하게 의역 하자면,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다”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관심조차 없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선봉에 서서 학살과 약탈을 자행한 부대는 고니시 유찌나가가 이끄는 기시리단(크리스찬)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군의 상당수가 루터교 성도였음에도 나치의 광기를 막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조선에서 벌어지는 악행에 대하여 침묵하였다…. 도대체 왜 이런 모습들이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가?

-자신들이 저지르는 일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으면 누구나 “악의 평범성”에 젖어 든다. 악한 몇몇의 악인이 악행을 저질러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일어나는 악행들에 대하여 생각하여 분별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그것은 “평범한 것(일)”이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말도 안되는 상황들을 바라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근접하고, 깨닫는 이가 없었다. 적어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고민조차 하지 않으니 총회에서 결정한 하나님의 마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주저하지 않고 행한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악의 평범성”이 보편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은 이스라엘에게 꼬인 상황들 속에 내놓은 고육지책은 가장 합리적이고 탁월하게 보이는 묘책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기 그지 없는, 후세에게 그 부담을 가중 시키는 혜안 없는 고통의 결정임을 깨닫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깊은 한 숨과 함께 사사기 묵상이 마무리 됐다. 어릴 적 부디 이런 시대가 오지 않기를 바랬으나 이미 우리는 그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어느 것 하나, 더하면 더했지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이는 모습들 앞에 고통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한 숨만 내쉬고 있으면 안 된다. 꼭 반면교사를 삼아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에 민감하고, 순종하여 나의 삶의 영역에서 부터 더욱 말씀 안에 거하리라! 이것이 후대에게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넘치는 세상을 맛보아 알게하는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주님, 고육지책도 죄가 되어버린 결정을 오늘도 조급하게 결정합니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주님,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각하고 고민하는 영성을 주십시오.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고민하며 치열하게 깨닫겠습니다.
*주님, 사사기가 자기 생각이 최고인 것을 포기하지 않는 답답한 시대였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생각, 하나님 뜻이 최고, 최선인 하나님 나라 백성 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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