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은 ‘여호와의 날’의 심판이 어떻게 임할런지, 그리고 그때가 얼마나 가까운지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이를 통해 ‘이제라도’ 유다가 하나님 앞에 돌이키기를 촉구한다.
1.당할 자가 누구이랴(1-11절)
임박한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은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다(2절). 메뒤가 온 지면과 하늘을 덮는 날처럼 묘사한다. “셀 수 없이 많고 강한 메뚜기 군대가 온다. 마치 어둠이 산등성이를 넘어오듯이 새까맣게 다가온다. 까마득한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이런 일은 없었다. 앞으로 마치 어둠이 산등성이를 넘어오듯이 새까맣게 다가온다. 까마득한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이런 일은 없었다. 앞으로 천만 대에 이르기까지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새번역_2절)”
충격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는 여호와의 날은 언제나 승리의 날, 자신들이 축복 받는 날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엘 선지자는 그 날이 어둡고 캄캄하고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고, 심판의 날이라고 선언한다.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강한 메뚜기 군대가 다가와(2절) 불처럼 초목을 삼키고(3절), 떼를 지은 말과 군마와 같이(4절) 전열을 갖춰(5절) 용사처럼 공격하여(7절), 성 위를 넘는다(8절). 그들의 기세는 해와 달이 어두워 지고 별들이 빛을 잃을 정도다(9-10절).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11절은 “주님께서 큰 음성으로 당신의 군대를 지휘하신다. 병력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명령을 따르는 군대는 막강하다. 주님의 날은 놀라운 날, 가장 무서운 날이다. 누가 감히 그 날을 견디어 낼까?(새번역)” 이라고 했다. 주님께서 친히 이 군대를 통솔 하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께서 직접 지휘하는 강한 메뚜기 군대를 통해 자신들에게 향하여 있다는 말 자체가 충격이었다. 여호와의 날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날인 것이다.
*오늘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은 충격을 받을 날이 다가온다. 교회라는 장소만 다니면 언제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면책권이 보장되는 것 처럼 착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나님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주시는 존재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굳이 기다리지 않는 날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그 날에 복을 받을 것이라고도 여전히 착각한다.
*선지자는 이렇게 착각하는 백성들에게 경보를 울린다(1절). ‘아무도 당할 자가 없으니 미리 대비하라’고 일러주는 것이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2.이제라도(지금이라도_12-13절)
요엘의 ‘여호와의 날’이라는 심판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12절)”고 촉구한다. 새번역은 “지금이라도 너희는 진심으로 회개하여라”라는 번역을 추가했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날이 재앙이 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회개하라”고 선포한다. 회개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요엘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심판을 목전에 두고 그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만이 여호와의 날을 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제라도, 지금이라도’의 표현은 이미 늦었다고 여겨져도 라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 회개해야 할까? 회개 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라도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식하고 애통하며 통곡하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가식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이라도” 회개해야 한다.
*자신의 죄와 이 시대의 죄악을 마음에 품고 통곡하고 슬피울며 회개해야 하는 때는 언제나 “지금이라도” 이다.
*이제라도 주님께 돌이키는 것, 지금이라도 미루지 않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 그것이 여호와의 날을 선고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위로이고 희망이다.
*세상의 논리는 “지금이라도”는 이미 늦은 때이다. 누구도 받아 주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이라도”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시간 제한을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언제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이제라도, 지금이라도”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머뭇거리지 말고 금식과 성회를 열어서 지금이라도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3.주께서 혹시(행여_14-17절)
지금이라도 회개를 시작하면, 강한 메뚜기 군대를 이끌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심판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행여 …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오히려 복까지 베푸셔서, 너희가 주 하나님께 곡식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을 바칠 수 있게 까지 하실는지 누가 아느냐?(새번역_14절)”고 절규한다.
심판과 재앙의 뜻을 돌이키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복까지 베푸셔서” 다시 소제와 전제를 드릴 수 있을 형편으로 회복 시켜 주시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다. 요엘 선지자의 절박한 외침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이 엿보인다. 지금이라고 진심으로 회개하면 당장이라도 재앙을 철회하실 듯한 하나님이시다.
요엘 선지자 간절한 마음으로 제사장들에게 뿔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을 선포하고 선회를 열어 모든 백성들, 이제 막 결혼한 신랑 신부 뿐 아니라 심지어 젖먹이까지 모두 모이게 하라고 외친다(15-16절). 회개의 자리에 어느 누구도 열외가 없이 모이게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행여(혹시)” 심판과 재앙의 여호와의 날이 아니라 은혜와 구원의 여호와의 날이 되지 않겠는가! 라고 외친다.
특히 제사장들에게 더욱 간절하게 통곡 하며 호소 하라고 부탁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에게 통치를 받는 수모를 받지 않도록, 그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조롱하지 못하게 성전 낭실(현관)과 제단 (번제단) 사이에서 “울면서 호소하라(새번역_17절)”고 외친다.
*요엘은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대비하는 것이 이것 뿐임을 알았고 간절하게 외쳤다.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심판의 멈춤 뿐 아니라 “복까지” 다시 주시는 놀라운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 이심을 외치고 또 외친다!
나는?
-여호와의 날을 피할 이는 없다. 주님의 재림의 날에 일어날 최후의 심판을 당할 자는 없다. 그렇기에 그 날을 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이다.
-그 날을 준비하는 것은 “이제라도” 회개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 밖에 소망이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부르짖는 것이다. 금식의 자리에, 성회의 자리에 주저하지 말고 나아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내는 치열한 “하나님 우선, 중심의 자세”를 “지금이라도” 간구하고 구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너희는 진심으로 회개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늘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으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기도 하신다(새번역_12-13절).”
*주님, 이제라도, 지금이라도 주님의 이름을 붙잡습니다.
*주님, 코로나 재앙을 통해 주님의 재림을 바라봅니다. 재앙의 시간 속에서 마음을 찢으면 ‘한결같은 사랑을 늘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 재앙을 거두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1.당할 자가 누구이랴(1-11절)
임박한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은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다(2절). 메뒤가 온 지면과 하늘을 덮는 날처럼 묘사한다. “셀 수 없이 많고 강한 메뚜기 군대가 온다. 마치 어둠이 산등성이를 넘어오듯이 새까맣게 다가온다. 까마득한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이런 일은 없었다. 앞으로 마치 어둠이 산등성이를 넘어오듯이 새까맣게 다가온다. 까마득한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이런 일은 없었다. 앞으로 천만 대에 이르기까지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새번역_2절)”
충격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는 여호와의 날은 언제나 승리의 날, 자신들이 축복 받는 날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엘 선지자는 그 날이 어둡고 캄캄하고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고, 심판의 날이라고 선언한다.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강한 메뚜기 군대가 다가와(2절) 불처럼 초목을 삼키고(3절), 떼를 지은 말과 군마와 같이(4절) 전열을 갖춰(5절) 용사처럼 공격하여(7절), 성 위를 넘는다(8절). 그들의 기세는 해와 달이 어두워 지고 별들이 빛을 잃을 정도다(9-10절).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11절은 “주님께서 큰 음성으로 당신의 군대를 지휘하신다. 병력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명령을 따르는 군대는 막강하다. 주님의 날은 놀라운 날, 가장 무서운 날이다. 누가 감히 그 날을 견디어 낼까?(새번역)” 이라고 했다. 주님께서 친히 이 군대를 통솔 하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께서 직접 지휘하는 강한 메뚜기 군대를 통해 자신들에게 향하여 있다는 말 자체가 충격이었다. 여호와의 날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날인 것이다.
*오늘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은 충격을 받을 날이 다가온다. 교회라는 장소만 다니면 언제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면책권이 보장되는 것 처럼 착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나님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주시는 존재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굳이 기다리지 않는 날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그 날에 복을 받을 것이라고도 여전히 착각한다.
*선지자는 이렇게 착각하는 백성들에게 경보를 울린다(1절). ‘아무도 당할 자가 없으니 미리 대비하라’고 일러주는 것이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2.이제라도(지금이라도_12-13절)
요엘의 ‘여호와의 날’이라는 심판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12절)”고 촉구한다. 새번역은 “지금이라도 너희는 진심으로 회개하여라”라는 번역을 추가했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날이 재앙이 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회개하라”고 선포한다. 회개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요엘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심판을 목전에 두고 그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만이 여호와의 날을 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제라도, 지금이라도’의 표현은 이미 늦었다고 여겨져도 라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 회개해야 할까? 회개 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라도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식하고 애통하며 통곡하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가식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이라도” 회개해야 한다.
*자신의 죄와 이 시대의 죄악을 마음에 품고 통곡하고 슬피울며 회개해야 하는 때는 언제나 “지금이라도” 이다.
*이제라도 주님께 돌이키는 것, 지금이라도 미루지 않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 그것이 여호와의 날을 선고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위로이고 희망이다.
*세상의 논리는 “지금이라도”는 이미 늦은 때이다. 누구도 받아 주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이라도”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시간 제한을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언제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이제라도, 지금이라도”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머뭇거리지 말고 금식과 성회를 열어서 지금이라도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3.주께서 혹시(행여_14-17절)
지금이라도 회개를 시작하면, 강한 메뚜기 군대를 이끌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심판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행여 …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오히려 복까지 베푸셔서, 너희가 주 하나님께 곡식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을 바칠 수 있게 까지 하실는지 누가 아느냐?(새번역_14절)”고 절규한다.
심판과 재앙의 뜻을 돌이키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복까지 베푸셔서” 다시 소제와 전제를 드릴 수 있을 형편으로 회복 시켜 주시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다. 요엘 선지자의 절박한 외침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이 엿보인다. 지금이라고 진심으로 회개하면 당장이라도 재앙을 철회하실 듯한 하나님이시다.
요엘 선지자 간절한 마음으로 제사장들에게 뿔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을 선포하고 선회를 열어 모든 백성들, 이제 막 결혼한 신랑 신부 뿐 아니라 심지어 젖먹이까지 모두 모이게 하라고 외친다(15-16절). 회개의 자리에 어느 누구도 열외가 없이 모이게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행여(혹시)” 심판과 재앙의 여호와의 날이 아니라 은혜와 구원의 여호와의 날이 되지 않겠는가! 라고 외친다.
특히 제사장들에게 더욱 간절하게 통곡 하며 호소 하라고 부탁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에게 통치를 받는 수모를 받지 않도록, 그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조롱하지 못하게 성전 낭실(현관)과 제단 (번제단) 사이에서 “울면서 호소하라(새번역_17절)”고 외친다.
*요엘은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대비하는 것이 이것 뿐임을 알았고 간절하게 외쳤다.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심판의 멈춤 뿐 아니라 “복까지” 다시 주시는 놀라운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 이심을 외치고 또 외친다!
나는?
-여호와의 날을 피할 이는 없다. 주님의 재림의 날에 일어날 최후의 심판을 당할 자는 없다. 그렇기에 그 날을 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이다.
-그 날을 준비하는 것은 “이제라도” 회개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 밖에 소망이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부르짖는 것이다. 금식의 자리에, 성회의 자리에 주저하지 말고 나아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내는 치열한 “하나님 우선, 중심의 자세”를 “지금이라도” 간구하고 구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너희는 진심으로 회개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늘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으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기도 하신다(새번역_12-13절).”
*주님, 이제라도, 지금이라도 주님의 이름을 붙잡습니다.
*주님, 코로나 재앙을 통해 주님의 재림을 바라봅니다. 재앙의 시간 속에서 마음을 찢으면 ‘한결같은 사랑을 늘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 재앙을 거두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