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복음이 가져온 변화,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사랑… [몬 1:1-16]
 – 2021년 12월 21일
– 2021년 12월 21일 –
빌레몬서는 바울이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에게 쓴 편지다. 감옥 안에서 만나 믿음의 형제된 오네시모가 빌레몬으로부터 도망친 종임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종이 아니라 형제로 받아 들이라는 권면을 위해 기록 되었다.

빌레몬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복음을 전하는 동안 주님을 영접 했고 에바브라를 도와 골로새 교회를 개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의 집이 예배 장소로 사용 되었고(2, 5-7절), 많은 성도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종을 부릴 정도로 부유한 재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으나 그의 재산을 훔쳐 도망 쳤으나 붙잡혀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때 사도 바울을 만나 회심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개인적인 양육을 받고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동역자가 되었다(11-13절).

당시 로마 시대는 노예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인의 소유물로 인정되어 그가 주인에게서 달아 났을 때는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은 오네시모가 인생의 막장에서 주님을 붙잡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후 오네시모는 바울에게서 개인적인 양육을 받고 없어서는 안 될 동역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이 되었다. 바울은 비록 주인인 빌레몬에게 큰 손실을 끼친 노예였지만 그를 용서하고 더 나아가 믿음의 형제로 받아 줄것을 간청한다.


사랑만큼 복잡한 단어는 없는 듯 하다. 환경과 대상에 따라 이 단어대로 행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울 수도, 혹은 깊은 괴로움일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다. 예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은 어땠을까? 기쁨과 고통을 함께 감내하고 베푸신 사랑임을 알기에 결코 그 사랑을 배신 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기대하시는 사랑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도 흉내내며 살아야 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랑을 해야 할까?


1.빌레몬의 사랑(4-7절)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가 자기의 집에서 모이도록 헌신하였다. 바울은 이를 두고 “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새번역_4절)”이라고 고백했다. 빌레몬에게 이렇게 감사하는 이유는 “주 예수에 대한 빌레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빌레몬의 사랑”을 에바브라를 통해 충분히 들었기 때문이다(5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바울은 자연스레 빌레몬을 위해 ‘그의 믿음의 교제가 깊어지고, 하나님 나라의 선한 일을 깨달아 예수님께 자라나는(6절)” 삶이 되기를 중보했다.

또, 빌레몬의 이런 사랑이 바울에게 큰 기쁨과 위로가 되었으며, 성도들은 빌레몬으로 인해 마음에 생기를 얻었다고 고백한다(7절).

*그리스도인이 사랑하는 것은 듣는 이마다 감사의 고백과 기쁨과 위로, 생기를 얻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거하는 곳에서 이런 생동감이 일어나고 있을까? 예수님을 닮은 믿음과 사랑이 베풀어지는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런 생명력 있는 기운이 흘러가면 좋겠다. 우리가 그랬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동감 있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빌레몬에게 큰 도전이 찾아 왔다. 그 사랑이 형식이었는지, 진실함이었는지가 드러날 도전이었다. 빌레몬은 어떻게 반응할까?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이런 도전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더 큰 용기를 내야 할 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 말이다.


2.더 큰 용기 필요한 사랑(8-16절)
바울은 빌레몬의 사랑의 마음을 기대어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영적 권위자로서 당연히 명령할 수 있지만(8절) “간청(9,10절)”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며 진심으로 부탁한다.

빌레몬에게서 도망친 종인 ‘오네시모’에 대하여 로마 감옥에서 만나 양육하고 이제는 믿음의 동역자(쓸모있는 사람_11절, 그를 내 곁에 두고, 그대를 대신하여_13절)가 되었음을 밝히면서 빌레몬의 승낙을 받기를 원했다(14절). 오네시모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그대의(빌레몬의) 곁에 있을 수 있도록(16절) 빌레몬이 더욱 마음을 열어 결행하여 줄 것을 요청한다.

*빌레몬의 입장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이제 그를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고 도망친 노예가 아닌 믿음의 형제로 받아 들여야 한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어려운 순종임을 알기에 바울은 “간청”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간청 속에는 “복음이 변화 시킨 주님을 따르는 삶을 보여 달라”는 마음도 깃들어져 있을 것이다.

*현실의 전통과 관습, 문화를 뛰어 넘는 “더 큰 용기”는 복음을 받은 이들에게는 그리 두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 번씩 “더 큰 용기”를 내어 사랑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긴다. 사랑은 “더 큰 용기”를 먼저 몸소 보여 주신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에게 늘상 따라오는 도전임에 틀림없다.

*더 예수님처럼, 더 큰 용기를 내야 할 순간을 직면할 때 그 결론이 사랑이기를 놓지 말아야지…


3.복음이 바꾸어 놓은 인생들
바울이나, 빌레몬이나, 특히 오네시모는 모두 “복음”이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바울은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는 한 노예를 위해 당대 으뜸가는 복음 전도자이었음에도 철저히 자신을 낮추며 부탁한다. 도대체 오네시모가 바울에게 어떤 존재 였길래 이토록 그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할 수 있을까?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친 비천하고 비참한 노예라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복음의 은혜”안에 거하는 삶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바울의 이런 마음이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어떤 형편에 있는 성도를 만나더라도 이처럼 귀히 여기고 섬길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늘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복음의 사랑을 잊지 않고 나도 그렇게 누구에게든지 사랑에 빚진 마음으로 섬겨야지…


빌레몬도 에베소에서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한 후 골로새의 자신의 집에 에바브라와 함께 교회를 개척하였다. 골로새 교회다! 그는 바울이 기뻐할 정도로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겼다(4-7절). 복음을 받아들이기 이전과 이후의 분명한 변화이다. 이제 그는 더큰 용기를 내어 그의 복음의 변화가 진실한지 가름받는 순간에 섰다. 물론 가뿐히 오네시모를 받아 들임으로 그가 받은 복음의 사랑을 선명하게 보여 줄 것이다.

또한 오네시모는 전에는 주인에게 무익하고,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존재 였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주님의 복음을 위해 매우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11절). 복음이 변화 시킨 오네시모의 전과 후가 이렇게 다르다. 복음이 바꾸지 못한 인생은 없다.

*그런데 이런 복음이 어떤 이들에게는 전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경우도 흔하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된 삶이 얼마나 귀하고 축복된 인생인지 모른다.

*복음을 만난 것은 인생 최고의 축복이고, 복음의 길을 따라 사는 것은 최고의 기쁨이 틀림 없다.


나는?
*주님, 복음 이전과 이후가 이렇게 다릅니다. 저의 삶도 더 큰 용기를 주저하지 않고 발휘하여 복음의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복음에 알맞는 삶의 걸음 속에 “더 큰 용기”를 발휘해야 할 순간,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순종하려고 몸부림 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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