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절부터 기록된 성도의 삶에 대한 구체적 권면을 마무리 짓는다. 용서와 사랑, 그리고 감사에 힘쓸 것을 권면한 바울은 기도에 힘쓸 것을 부탁하면서 복음의 일꾼된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중보해 달라고 요청한다. 1장에서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마무리하면서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또, 지혜롭게 말과 행동을 할 것을 권면한다.
“말”과 관련된 것을 집중저긍로 부탁했다. 기도는 하나님게 말로 아뢰는 것이다. 또 바울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대히 말하게 구하라고도 했다. 결국 초점은 “복음을 위하여” 기도하고 담대하게 전하라는 부탁이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까?
1.기도에 대하여(2-4절)
기도에 대해 강조한다. “계속하고(프로스카르테레오_2절)”의 원래 기본 의미는 ‘머무르다, 지속하다, ~의 수중에 있다’라는 뜻이다. 문맥에 따라 “머무르다, 충성하다, 굳게 계속하다”로 번역된다. *기도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끝까지, 굳건하게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지 기도 시간의 분량을 의미하기 보다는 “끈질긴, 계속되는” 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기도는 “포기하지 않는 것, 끈질기게 지속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지속하기 위해 “기도의 역사로 인한 감사(2절 하)”에 안목이 있다면, 기도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의 분명한 우선순위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는데, “또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비밀을 전하는 일로 매여 있습니다(새번역_3절)”, “그러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로 이 비밀을 나타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새번역_4절)”
*기도는 복음의 문이 열려 지도록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복음의 일꾼된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말”인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복음의 일꾼이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당연하게 손쉬운 것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의 최전선에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세상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의 유혹에 직면해 있는 골로새 지역과 같은 헬라 세계의 모든 지역은 “오직 복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 감수 해야 할 곤란함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깨어 있으면서 기도하라’고 말하면서 “깨어 있음”을 분별하는 방식을 “감사”로 언급한다. 감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새번역_2절)”
2.기도가 채워진 말의 능력(5-6절)
기도가 뒷받침되는 삶은 지혜로움이 묻어난다. 세월을 아낀다(기회를 선용한다). 지혜롭게,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 4절에서 ‘마땅히 할 말’을 가르쳐 주시는 기도의 은혜는 6절에서 “마땅히 대답할 것”으로 연결된다. 또, 기도로 복음을 전하는 것과 외인들에 대하여 은혜 가운데서 마치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 같이 말하는 것”과 연결 된다.
*기도가 뒷받침된 복음 전도의 능력을 몸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소금으로 간을 적당히 한 것처럼 맛깔 난 말 한마디로 은혜를 끼친다. 이런 능력은 기도가 채워질 때 나타난다.
*그래서 늘 부럽고, 간구하게 된다.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치는 말”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싶다. 주님, 제게 이 은혜를 주십시오!
*또, 중요한 것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 지를 알아야 한다”(6절)라는 바울의 권면이다. 잠언에서 알려주는 “때에 맞는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 25:11)”과 일맥상통한다. 기도의 은혜가 채워져서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 해 주어야 할 지를 민감하게 분별하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말을 따라 할 수 있는 은혜(은사)가 기도로 부터 맺혀진다.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는 말에 맛깔 나야 한다는 것이 이채롭다. 아니 어쩌면 당연하다. 생명의 언어가 딱딱하고 무겁고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생명을 소개하는 말은 활기차고 싱그럽고 생동력이 있을터이다. 그러니 그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말도 당연히 맛깔 스럽지 않을까! 아…. 나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언어가 정말 맛깔 스러웠으면 좋겠다!! 담백하고 깔끔했으면 좋겠고, 풍성한 풍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구나 들어도 맛깔난 복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너무 욕심일까….헌데 바울도 그렇게 할 것을 권면 했는데?
3.알려 주는 걸음,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신실함(7-9절)
7~9절에는 “알려 주리니, 알게 하고, 알려 주리라”라고 세번에 걸쳐 “알리다”라는 단어가 반복되었다. 역시 복음의 신실한 일꾼된 바울의 동역자들인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소개하며 공통적으로 반복된 표현들이다. 즉, 두기고와 오네시모가 바울에 대하여 궁금한 소식들을 자상하게 알려 줄 것이다는 소개이다. 그만큼 이들은 바울과 가까이 함께한 동역자들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준다.
바울은 가택연금 수준 이지만, 주위에 이렇게 “친구”이자 든든한 “동역자”들이 있었다. 두기고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유대인들의 모함과 음모로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마게도냐에서 드로아까지 바울과 함께 움직였던(행 20:1-4) 동역자이다. 바울은 그를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7절)”로 소개한다. 그는 에베소서 6:21에서도 동일하게 소개한다.
또한 오네시모는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 빌레몬의 노예였다가 도망쳐서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빌레몬서를 쓰게 된 동기가 된 사람이다. 바울은 역시 그도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9절)”로 소개한다. 바울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신실(피스토스_7,9절)”하게 그를 도운 이들이었다. 자신의 인생 여정의 막바지에 낯설은 로마에서, 그것도 죄인의 신분으로 가택연금 수준이지만 옥살이를 하는 그에게 늘 함께 있고 도와준 이들이었다.
*힘들 때 함께 있어준 이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다. 자유가 억압된 상태에서 이런 좋은 동역자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할 일이다. 한편으로 나에게도 이런 동역자들을 붙여 주셨음을 믿는다.
*친구들이 존재하는 것은 인생의 큰 복중의 하나이다.
나는?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거짓 진리와 철학, 세상의 헛된 속임수에 현혹되지 않고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고 권면 했다. 구체적으로 “용서와 사랑, 감사와 기도”이다.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은 뜬구름 잡는 삶이 아니다. 지금 충분히 실현 가능한 삶으로 살아내는 삶이다.
-용서와 사랑, 감사와 기도를 추구하는 삶은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과 상관없는 삶이 아니라 세상에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는 “땅의 것”을 추구하는 세상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기도하라 하신 것 처럼 세상과 상관 없이 사는 삶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 가치와 다른 하늘의 가치로 살아내는 존재가 되어라는 당부이다.
-그런데 이런 삶은 철학적 지식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취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당부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삶이라는 뜻이다.
-땅에 살면서 땅의 질서가 아니라 하늘의 질서를 따라 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성령 하나님의 도와주심의 은혜”가 아니면 안된다. 기도하면서 땅의 것을 떨쳐내는 것 만으로 머물지 않고 “하늘의 것을 찾고 누리는 삶”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신뢰해야 한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고 겸손하게 그 은혜와 능력을 구하며 사는 삶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기도하라는 권면에는 “항상, 꾸준히”라는 부사가 붙는다. 기도는 하면 할 수록 더할 수 밖에 없다. 완성이 없고, 결승점이 없다.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은 맛있는 복음을 이야기 해주는 일꾼이 되고 싶다. 기도의 능력이 드러나는 곳은 다름 아닌 복음을 이야기하는 현장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기쁜 소식들을 나누는 자리는 늘 맛있다! 이는 우리들의 능력으로 낸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맛깔 난 만져주심이 역사하는 것이다. 기도가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한다.
*주님, 기도에 계속하며 땅의 것에 휘둘리지 않고 하늘의 것을 누리는 삶이 되겠습니다.
*주님, 복음의 맛난 맛을 낼 수 있도록 기도에 힘쓰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이들을 붙여 주십시오.
*주님, 친구들이 귀합니다. 믿음의 친구들, 동역자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들이 나에게, 내가 저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함을 흉내 내며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과 관련된 것을 집중저긍로 부탁했다. 기도는 하나님게 말로 아뢰는 것이다. 또 바울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대히 말하게 구하라고도 했다. 결국 초점은 “복음을 위하여” 기도하고 담대하게 전하라는 부탁이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까?
1.기도에 대하여(2-4절)
기도에 대해 강조한다. “계속하고(프로스카르테레오_2절)”의 원래 기본 의미는 ‘머무르다, 지속하다, ~의 수중에 있다’라는 뜻이다. 문맥에 따라 “머무르다, 충성하다, 굳게 계속하다”로 번역된다. *기도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끝까지, 굳건하게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지 기도 시간의 분량을 의미하기 보다는 “끈질긴, 계속되는” 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기도는 “포기하지 않는 것, 끈질기게 지속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지속하기 위해 “기도의 역사로 인한 감사(2절 하)”에 안목이 있다면, 기도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의 분명한 우선순위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는데, “또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비밀을 전하는 일로 매여 있습니다(새번역_3절)”, “그러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로 이 비밀을 나타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새번역_4절)”
*기도는 복음의 문이 열려 지도록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복음의 일꾼된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말”인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복음의 일꾼이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당연하게 손쉬운 것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의 최전선에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세상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의 유혹에 직면해 있는 골로새 지역과 같은 헬라 세계의 모든 지역은 “오직 복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 감수 해야 할 곤란함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깨어 있으면서 기도하라’고 말하면서 “깨어 있음”을 분별하는 방식을 “감사”로 언급한다. 감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새번역_2절)”
2.기도가 채워진 말의 능력(5-6절)
기도가 뒷받침되는 삶은 지혜로움이 묻어난다. 세월을 아낀다(기회를 선용한다). 지혜롭게,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 4절에서 ‘마땅히 할 말’을 가르쳐 주시는 기도의 은혜는 6절에서 “마땅히 대답할 것”으로 연결된다. 또, 기도로 복음을 전하는 것과 외인들에 대하여 은혜 가운데서 마치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 같이 말하는 것”과 연결 된다.
*기도가 뒷받침된 복음 전도의 능력을 몸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소금으로 간을 적당히 한 것처럼 맛깔 난 말 한마디로 은혜를 끼친다. 이런 능력은 기도가 채워질 때 나타난다.
*그래서 늘 부럽고, 간구하게 된다.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치는 말”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싶다. 주님, 제게 이 은혜를 주십시오!
*또, 중요한 것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 지를 알아야 한다”(6절)라는 바울의 권면이다. 잠언에서 알려주는 “때에 맞는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 25:11)”과 일맥상통한다. 기도의 은혜가 채워져서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 해 주어야 할 지를 민감하게 분별하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말을 따라 할 수 있는 은혜(은사)가 기도로 부터 맺혀진다.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는 말에 맛깔 나야 한다는 것이 이채롭다. 아니 어쩌면 당연하다. 생명의 언어가 딱딱하고 무겁고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생명을 소개하는 말은 활기차고 싱그럽고 생동력이 있을터이다. 그러니 그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말도 당연히 맛깔 스럽지 않을까! 아…. 나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언어가 정말 맛깔 스러웠으면 좋겠다!! 담백하고 깔끔했으면 좋겠고, 풍성한 풍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구나 들어도 맛깔난 복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너무 욕심일까….헌데 바울도 그렇게 할 것을 권면 했는데?
3.알려 주는 걸음,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신실함(7-9절)
7~9절에는 “알려 주리니, 알게 하고, 알려 주리라”라고 세번에 걸쳐 “알리다”라는 단어가 반복되었다. 역시 복음의 신실한 일꾼된 바울의 동역자들인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소개하며 공통적으로 반복된 표현들이다. 즉, 두기고와 오네시모가 바울에 대하여 궁금한 소식들을 자상하게 알려 줄 것이다는 소개이다. 그만큼 이들은 바울과 가까이 함께한 동역자들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준다.
바울은 가택연금 수준 이지만, 주위에 이렇게 “친구”이자 든든한 “동역자”들이 있었다. 두기고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유대인들의 모함과 음모로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마게도냐에서 드로아까지 바울과 함께 움직였던(행 20:1-4) 동역자이다. 바울은 그를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7절)”로 소개한다. 그는 에베소서 6:21에서도 동일하게 소개한다.
또한 오네시모는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 빌레몬의 노예였다가 도망쳐서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빌레몬서를 쓰게 된 동기가 된 사람이다. 바울은 역시 그도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9절)”로 소개한다. 바울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신실(피스토스_7,9절)”하게 그를 도운 이들이었다. 자신의 인생 여정의 막바지에 낯설은 로마에서, 그것도 죄인의 신분으로 가택연금 수준이지만 옥살이를 하는 그에게 늘 함께 있고 도와준 이들이었다.
*힘들 때 함께 있어준 이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다. 자유가 억압된 상태에서 이런 좋은 동역자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할 일이다. 한편으로 나에게도 이런 동역자들을 붙여 주셨음을 믿는다.
*친구들이 존재하는 것은 인생의 큰 복중의 하나이다.
나는?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거짓 진리와 철학, 세상의 헛된 속임수에 현혹되지 않고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고 권면 했다. 구체적으로 “용서와 사랑, 감사와 기도”이다.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은 뜬구름 잡는 삶이 아니다. 지금 충분히 실현 가능한 삶으로 살아내는 삶이다.
-용서와 사랑, 감사와 기도를 추구하는 삶은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과 상관없는 삶이 아니라 세상에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는 “땅의 것”을 추구하는 세상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기도하라 하신 것 처럼 세상과 상관 없이 사는 삶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 가치와 다른 하늘의 가치로 살아내는 존재가 되어라는 당부이다.
-그런데 이런 삶은 철학적 지식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취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당부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삶이라는 뜻이다.
-땅에 살면서 땅의 질서가 아니라 하늘의 질서를 따라 살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성령 하나님의 도와주심의 은혜”가 아니면 안된다. 기도하면서 땅의 것을 떨쳐내는 것 만으로 머물지 않고 “하늘의 것을 찾고 누리는 삶”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신뢰해야 한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고 겸손하게 그 은혜와 능력을 구하며 사는 삶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기도하라는 권면에는 “항상, 꾸준히”라는 부사가 붙는다. 기도는 하면 할 수록 더할 수 밖에 없다. 완성이 없고, 결승점이 없다.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은 맛있는 복음을 이야기 해주는 일꾼이 되고 싶다. 기도의 능력이 드러나는 곳은 다름 아닌 복음을 이야기하는 현장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기쁜 소식들을 나누는 자리는 늘 맛있다! 이는 우리들의 능력으로 낸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맛깔 난 만져주심이 역사하는 것이다. 기도가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한다.
*주님, 기도에 계속하며 땅의 것에 휘둘리지 않고 하늘의 것을 누리는 삶이 되겠습니다.
*주님, 복음의 맛난 맛을 낼 수 있도록 기도에 힘쓰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이들을 붙여 주십시오.
*주님, 친구들이 귀합니다. 믿음의 친구들, 동역자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들이 나에게, 내가 저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함을 흉내 내며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