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기쁘게, 기꺼이, 함께 지어가는 성막 [출 35:20-29]
 – 2021년 10월 22일
– 2021년 10월 22일 –
출 35:20-29 기쁘게, 기꺼이, 함께 지어가는 성막

성막 제작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멈춤(안식)”의 명령에 충실하게 순종 하는 것이다. 나의 욕망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은 성실한 것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것이며, 내가 삶의 주인된 전형적인 증거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 된 사람은 “안식해야 할 때” 주저하지 않고 탐욕을 달음질을 멈춘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어도 하나님의 명령에 예외는 없다. “멈춰야 산다.”

또한 자원하여 재료들을 드리고, 재능(마음에 지혜)를 기꺼이 성막 제작하는 데 드리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성막과 각종 기구들의 제작에 들어간다. 물질을 드리고 시간과 재능을 드리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간다. 그저 이루어지는 나라는 없다.

성막을 세우라는 명령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 했는가?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



1.자원하는 기쁜 마음으로(21-22, 25-26, 29절)
마음이 감동(나사_들어올리다. 가지고 가다 21, 26절), 마음에 (자)원하는(나다브_자진하여, 즐겨, 자발적인, 재촉하는…22, 29절), 마음이 슬기로운(하캄(호크마)_지혜로운, 현명한 25절)…. 등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표현하는 몇 가지 관용구들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동(Stirred), 자원함(Made willing), 슬기로움(Wisdom)”의 마음으로 성막 제작 명령에 반응했다. 감동(나사)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들어올리셨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성막을 제작하기 위하여 드리는 각종 재물들을 내가 드려야 겠다는 들뜬(기쁜) 마음을 주셨다는 것이다. 자원함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드려야 겠다는 감동을 주실 때 반응하여 스스로 결정하여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슬기로움(지혜)는 본문에서 여인들이 각종 실을 빼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각종 실 재료들을 만드는 과정에 동참하는 여인들의  자세와 기술을 표현했다.

남녀 누구나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성막을 제작하는 일에 기쁨으로 동참 했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함께 기뻐했다. “감동, 원함, 슬기로움의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바치라 하신 재물들을 저마다 기뻐하며 기꺼이 가지고 나아왔다!

하나님의 성막은 “기쁨”의 마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감동된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셨다. 불과 바로 전, 금송아지 형상을 제작 하기 위해 금고리를 빼서 바치고, 그 앞에서 광란의 이교도 제사를 행한 이들의 모습과 딴판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있겠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중심에 함께 계시면 하나님의 영이 마음을 “들어 올린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에 동하게 하신다. 악령에 취했을 때 금송아지 앞에서 “통음가무”의 악을 행하였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선언한 직후 성막을 완성한 후에 임재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백성들의 마음을 주관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들어 올려졌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에 기쁨의 마음이 솟아났다!



2.기꺼이 드렸다(21-25, 27-28절)
본문에서 “드리다(21-22,24,29절)”, “가져오다(21,23-25,27-28절)”, “자원하는, 마음에 원하는(21-22절)”, “자원하여 드린(29절)”이란 표현들이 반복된다. 모두 “기꺼이(탐탁하여 마음이 기쁘게)” 드리는 마음의 자세를 표현한다.

인색함, 억지, 주저함으로 성막 재료들이 드려지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모두가 이 일이 탐탁하여 마음이 기쁘게 드린다.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실 처소를 만드는 일이 너무도 기쁜 나머지 너나 할 것 없이 기쁨으로 기꺼이 드렸다.

특히 “드리다(테누파_21-22, 24, 29절))”의 의미는 제물을 흔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요제를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기쁨으로 기꺼이 드리기로 감동을 받은 재물들이 하나님의 것임을 표현한다 하겠다. 감동 되어 드리기로 결정한 재물이나 재능, 시간은 나의 재물, 나의 재능, 나의 시간이 아니다. 이미 하나님께 올려 드린 것이다. 그러니 주저 없이 드려야 한다.

또, “가져 오다(보_21, 23-25, 27-28절)”라는 단어는 “들어오다”라는 뜻이다. 즉, 기쁨으로 감동하여 드리는 재물은 그 마음을 먹은 즉시 하나님께 들여보낸 것이라는 의미다. 이미 하나님께 드린 것이 된다. 그러니 주저함 없이 드리는 것이다.

주님의 일은 이와 같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기뻐하는 마음으로” 재물, 재능(지혜), 시간을 드리며 감당하는 것이다.



3.모두 함께(21-22, 25-26, 29절)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드리는 것에 남녀 구별이 없다. “모든 자(21절), 남녀가(22절), 모든 여인(25-26절), 남녀는 누구나(29절)”라는 표현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막을 만드는 일에 남녀노소의 벽이 없이 모두 함께 헌신 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의 백성 누구나 동참할 수 있었다. 교회 공동체 어떤 영역에서도 남녀 구분 없이 함께 드리고 동참했다.

하나님의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예외는 없다.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일은 주님께 하듯 해야 하며, 찾아서 해야 한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기쁨이 있다면 감당 못할 주님의 일은 없다.



나는?
-하나님은 이미 그의 백성들에게 성막 제작에 필요한 모든 재물들을 주셨다. 그래서 백성들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성막 제작에 필요한 물품들을 기쁜 마음으로 가져 왔다.

-없는 것을 구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것들 중에서 바치라고 하신다. 허! 그것 참… 신박하다! 다른 종교는 자신들이 있는 것 없는 것 싸그리 준비하여 “정성”을 다해, “힘”을 다해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바친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께 받았다! 받은 모든 소유 중에서 하나님께서 필요하다 하신 것을 기쁨으로 구별하여 드린 것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을 기꺼이 가져 온 것이다. 이는 “스스로 그렇게 하고 싶어서, 스스로 바치고 싶어 드리는 것 이었다. “스스로 바치고 싶어 하는 모든 남녀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려고, 기쁜 마음으로 물품을 가져다가 주님께 바쳤다(새번역_29절).”

-그렇게 하고 싶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린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이렇게 드려야 한다. 이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았는데, 소중하고 소중한 그것들 가운데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주님께서 필요하시다는 마음의 감동이 “들추어 지면” 그 성령의 감동에 드리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드리는 삶”도 역시 하나님의 영의 감동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언제든지 주님께서 나의 마음을 들추시면(감동하시면), 기꺼이(탐탁하여 마음이 기쁘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즐거워 하며 드리리라!!!


*주님, 기쁘게, 기꺼이, 함께 하나님 나라 감당하겠습니다.
*주님, 남녀 구분 없이 기쁘게, 기꺼이 드리는 모든 것을 받으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겠습니다. 나의 삶에도 남녀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나의 마음을 들추시면, 기쁘하며, 함께 마음모아 드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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