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마른 떡(매우 적은 음식)한 조각으로도 화목한 가정(1절), 유업을 나눠 받는 슬기로운 종(2절), 악한 행동과 조롱하는 말이 가져 올 형벌(4-5절) 등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을(3절) 의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여기에 미련함(어리석음)이 가정과 사회에 끼칠 해악들을 일깨운다. 지혜롭지 못한 미련한 말과 행동들은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위험에 빠뜨린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혜로운 삶은 어떤 것 일까?
1.화목한 가정, 화목한 공동체(1절)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으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①진수성찬을 가득히 차린 집에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 / ①또는 ‘제사음식을'(새번역_1절)”
개역개정은 “제육”, 새번역은 “진수성찬”으로 번역한 ‘제바흐’는 고기를 의미하지만, 하나님께 감사제나 화목제로 드리고 남은 고기를 지칭한다. 화목제는 고기의 일부분은 태워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고기를 제사에 참여한 이들과 나눠먹으며 하나됨을 일깨우는 제사이다. 그런데 그 고기를 “가득” 놓아두고 먹으면서 다툰다면 과연 하나님께 올바로 드리는 화목제일까? 아무리 그 고기를 함께 먹는들 하나됨, 화목의 의미가 지켜질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주님은 ”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⑬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 ⑬그, ‘네 형제’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⑭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 ⑭그, ‘네 형제'(새번역_마 5:23-24)” 라고 당부하셨다. 예배가 중요하나, 화목하지 못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마른 떡(빵) 한 조각을 놓고도 온 가정이 기뻐하며 감사의 예배, 화목의 예배를 드리는 가정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우리의 교회가 “하나되고, 화목한” 공동체로 하나님 앞에 서 있기를 소망 한다. 가정, 교회의 정체성이 외적인 환경과 조건의 풍성함으로가 아닌 “마음의 풍성함”으로 인격적인 관계, 하나된 화목함이 “기쁨”으로 나타나는 생동감있는 가정(공동체, 교회) 이어라!
2.하나님의 연단을 감수하면서(3절)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신다.(새번역_3절)”
순도 높은 은과 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대장장이는 망치질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 도가니(용광로)와 화덕을 수시로 오간다.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도 높은 은과 금을 만들어 내려면 이 작업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이처럼 연단 하시며 지혜자로 살아내는 인생으로 연단 하신다. “마음”은 사람의 내면과 인격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연단(시험)은 지혜와 내적 성장과 성숙을 위한 과정인 것이다.
“연단(바한)”이란 “검사하고 시험하여 확인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과정이 연단의 과정인데 하나님께서 지혜자의 삶을 살도록 반드시 이 과정을 거치신다. 성경은 마음을 연단시키는 이 과정이 “환난과 핍박”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이 과정을 견디고 인내하며 받아들인다. 주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시기까지 하나님의 연단은 더욱 가중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견디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약 1:12).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새번역_약 1:12)”
*하나님께서 마음을 연단 시킬 때, 참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참 된 것인지 증명되는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하나님은 연단의 대상을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 하셨다. 지혜가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지혜를 “마음”에서 연단 하여 순도 있게 뽑아 내신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순도 높은 지혜로움으로 정련되어 나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연단을 멈추지 않으신다.
*내 삶에 일어나는 환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 답게 연단하는 하나님의 손길이기 때문이다. 믿고 의지하면서 견뎌내면 지혜로움이 삶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지혜로 산다!
3. 약자를 돌보며(5, 9절)
“가난한 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다. 남의 재앙을 기뻐하는 사람은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새번역_5절)”, “허물을 덮어 주면 사랑을 받고, 허물을 거듭 말하면 친구를 갈라놓는다.(새번역_9절)”
“조롱(라아그)”은 자기보다 다른 이들이 못하다고 여길 때 나오는 비웃음이다. 잠언에서는 힘과 재물이 있다고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이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자신들이 무시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주님은 재림 때 이루어질 심판들을 말씀해 주시면서 사람들을 왼편과 오른편으로 나누고 오른편에 세운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새번역_마 25:34-36)”
이렇게 하신 이유를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새번역_ 마 25:45)”라고 하셨다.
*가난하고 약한 약자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태도다. 주님께서 먼저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찾아 다니며 병든 것, 연약한 것을 고쳐 주신 것 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살아있는 교회는 약한 자들을 돌보는 교회다. 더온누리교회가 이런 건강한 교회로 성숙해져 갔으면 좋겠다.
4.말, 말, 말(4, 7, 9, 10절)
“악을 행하는 사람은 사악한 말에 솔깃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중상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새번역_4절)”, “거만한 말이 미련한 사람에게는 안 어울린다. 하물며 거짓말이 통치자에게 어울리겠느냐?(새번역_7절)”, “허물을 덮어 주면 사랑을 받고, 허물을 거듭 말하면 친구를 갈라놓는다.(새번역_9절)”,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10절)”
사악한 말, 거짓말은 경계한다. 거만한 말, 거짓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간하는 말을 삼간다. 충고하는 말로 일깨운다… 지혜로운 이는 말을 특히 조심한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악과 동조하고 악을 드러내는 “사악한 말”, 자신의 탐욕을 위한 “거짓말”, 약한 자를 조롱하는 “거만한 말”, 관계를 악화 시키는 “이간하는 말”이다. 적절하게 해야 할 말은 총명한 자를 더욱 총명하게 하는 “충고”이다.
*해서는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나락으로 쓰러뜨릴 수도 있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나의 말은 어떤 말이어야 할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살리는 말이다. 나의 말은 영혼을 격려하고 마음에 용기를 불어 넣어서 삶의 의지를 세우는 살리는 말일까? 나의 말에 이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아침이다.
나는?
-화목하게 사는 것, 연단을 받아들이는 것, 약자를 돌보는 것, 살리는 말을 하는 것… 지혜로운 이의 삶은 이렇게 사는 삶이다.
-화목함을 위해 외적인 조건을 채우기 위한 것 보다, 나의 마음을 연단하시며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며 더욱 의지해야 하겠다.
-구제적으로 약자를 돌보는 긍휼과, 말에서부터 겸손하게 사람을 세우는 생명의 말을 추구해야지… 나의 언행을 통해 사람들이 상처 받지 않고 격려를 받았으면 좋겠다.
-특히 사악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과 이간 하고 중상 하는 말과 조롱하는 거만한 말이 마음에서부터 나오지 않도록 더욱 하나님의 마음을 구해야지…
*주님, 화목한 가정을 일구도록 제게 더욱 사랑의 마음을 주십시오.
*주님, 연단을 기꺼이 받아들여 나의 마음이 지혜의 보고가 되게 하소서.
*주님, 약자를 돌보는 겸손함을 잃지 않게 하소서.
*주님, 나의 말이 영혼을 살리는 말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혜로운 삶은 어떤 것 일까?
1.화목한 가정, 화목한 공동체(1절)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으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①진수성찬을 가득히 차린 집에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 / ①또는 ‘제사음식을'(새번역_1절)”
개역개정은 “제육”, 새번역은 “진수성찬”으로 번역한 ‘제바흐’는 고기를 의미하지만, 하나님께 감사제나 화목제로 드리고 남은 고기를 지칭한다. 화목제는 고기의 일부분은 태워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고기를 제사에 참여한 이들과 나눠먹으며 하나됨을 일깨우는 제사이다. 그런데 그 고기를 “가득” 놓아두고 먹으면서 다툰다면 과연 하나님께 올바로 드리는 화목제일까? 아무리 그 고기를 함께 먹는들 하나됨, 화목의 의미가 지켜질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주님은 ”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⑬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 ⑬그, ‘네 형제’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⑭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 ⑭그, ‘네 형제'(새번역_마 5:23-24)” 라고 당부하셨다. 예배가 중요하나, 화목하지 못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마른 떡(빵) 한 조각을 놓고도 온 가정이 기뻐하며 감사의 예배, 화목의 예배를 드리는 가정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우리의 교회가 “하나되고, 화목한” 공동체로 하나님 앞에 서 있기를 소망 한다. 가정, 교회의 정체성이 외적인 환경과 조건의 풍성함으로가 아닌 “마음의 풍성함”으로 인격적인 관계, 하나된 화목함이 “기쁨”으로 나타나는 생동감있는 가정(공동체, 교회) 이어라!
2.하나님의 연단을 감수하면서(3절)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신다.(새번역_3절)”
순도 높은 은과 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대장장이는 망치질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 도가니(용광로)와 화덕을 수시로 오간다.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도 높은 은과 금을 만들어 내려면 이 작업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이처럼 연단 하시며 지혜자로 살아내는 인생으로 연단 하신다. “마음”은 사람의 내면과 인격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연단(시험)은 지혜와 내적 성장과 성숙을 위한 과정인 것이다.
“연단(바한)”이란 “검사하고 시험하여 확인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과정이 연단의 과정인데 하나님께서 지혜자의 삶을 살도록 반드시 이 과정을 거치신다. 성경은 마음을 연단시키는 이 과정이 “환난과 핍박”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이 과정을 견디고 인내하며 받아들인다. 주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시기까지 하나님의 연단은 더욱 가중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견디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약 1:12).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새번역_약 1:12)”
*하나님께서 마음을 연단 시킬 때, 참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참 된 것인지 증명되는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하나님은 연단의 대상을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 하셨다. 지혜가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지혜를 “마음”에서 연단 하여 순도 있게 뽑아 내신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순도 높은 지혜로움으로 정련되어 나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연단을 멈추지 않으신다.
*내 삶에 일어나는 환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 답게 연단하는 하나님의 손길이기 때문이다. 믿고 의지하면서 견뎌내면 지혜로움이 삶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지혜로 산다!
3. 약자를 돌보며(5, 9절)
“가난한 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다. 남의 재앙을 기뻐하는 사람은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새번역_5절)”, “허물을 덮어 주면 사랑을 받고, 허물을 거듭 말하면 친구를 갈라놓는다.(새번역_9절)”
“조롱(라아그)”은 자기보다 다른 이들이 못하다고 여길 때 나오는 비웃음이다. 잠언에서는 힘과 재물이 있다고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이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자신들이 무시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주님은 재림 때 이루어질 심판들을 말씀해 주시면서 사람들을 왼편과 오른편으로 나누고 오른편에 세운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새번역_마 25:34-36)”
이렇게 하신 이유를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새번역_ 마 25:45)”라고 하셨다.
*가난하고 약한 약자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태도다. 주님께서 먼저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찾아 다니며 병든 것, 연약한 것을 고쳐 주신 것 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살아있는 교회는 약한 자들을 돌보는 교회다. 더온누리교회가 이런 건강한 교회로 성숙해져 갔으면 좋겠다.
4.말, 말, 말(4, 7, 9, 10절)
“악을 행하는 사람은 사악한 말에 솔깃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중상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새번역_4절)”, “거만한 말이 미련한 사람에게는 안 어울린다. 하물며 거짓말이 통치자에게 어울리겠느냐?(새번역_7절)”, “허물을 덮어 주면 사랑을 받고, 허물을 거듭 말하면 친구를 갈라놓는다.(새번역_9절)”,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10절)”
사악한 말, 거짓말은 경계한다. 거만한 말, 거짓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간하는 말을 삼간다. 충고하는 말로 일깨운다… 지혜로운 이는 말을 특히 조심한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악과 동조하고 악을 드러내는 “사악한 말”, 자신의 탐욕을 위한 “거짓말”, 약한 자를 조롱하는 “거만한 말”, 관계를 악화 시키는 “이간하는 말”이다. 적절하게 해야 할 말은 총명한 자를 더욱 총명하게 하는 “충고”이다.
*해서는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나락으로 쓰러뜨릴 수도 있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나의 말은 어떤 말이어야 할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살리는 말이다. 나의 말은 영혼을 격려하고 마음에 용기를 불어 넣어서 삶의 의지를 세우는 살리는 말일까? 나의 말에 이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아침이다.
나는?
-화목하게 사는 것, 연단을 받아들이는 것, 약자를 돌보는 것, 살리는 말을 하는 것… 지혜로운 이의 삶은 이렇게 사는 삶이다.
-화목함을 위해 외적인 조건을 채우기 위한 것 보다, 나의 마음을 연단하시며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며 더욱 의지해야 하겠다.
-구제적으로 약자를 돌보는 긍휼과, 말에서부터 겸손하게 사람을 세우는 생명의 말을 추구해야지… 나의 언행을 통해 사람들이 상처 받지 않고 격려를 받았으면 좋겠다.
-특히 사악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과 이간 하고 중상 하는 말과 조롱하는 거만한 말이 마음에서부터 나오지 않도록 더욱 하나님의 마음을 구해야지…
*주님, 화목한 가정을 일구도록 제게 더욱 사랑의 마음을 주십시오.
*주님, 연단을 기꺼이 받아들여 나의 마음이 지혜의 보고가 되게 하소서.
*주님, 약자를 돌보는 겸손함을 잃지 않게 하소서.
*주님, 나의 말이 영혼을 살리는 말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