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아!(15, 19, 26절) 부르며 간곡히 전하는 잠언이다. 악은 결국 허망하게 망할 것이니 부러워 말 것과 하나님을 경외 하라(17-18절), 술과 음식을 탐하는 것(19-21절), 하나님을 성실하게 의뢰하는 자녀(24-25절), 술 취함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29-35절)로 구성 되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지를 가르친다. 본문은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1.’마음’으로 힘써야 할 것(15-19절)
지혜자는 아들이 ‘마음이 지혜롭고 입술의 정직함’이 삶의 활력소임을 밝힌다. “내 아이들아 너의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의 마음도 또한 즐겁다. 네가 입을 열어 옳은 말을 할 때면, 나의 속이 다 후련하다(새번역_15-16절)”
또, 마음으로 죄인들의 잘 됨을 부러워 말고 늘 주님을 경외하면, 아들의 미래가 밝아지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을(17-18절) 강조했다. 이런 삶은 결국 지혜자의 말을 “잘 듣고” 얻는 지혜로 마음을 바르게 이끌때 가능하다. “내 아이들아, 너는 잘 듣고 지혜를 얻어서 너의 마음을 바르게 이끌어라(새번역_19절)”
*마음으로 힘써야 할 것은 지혜를 채우고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다. 지혜롭게 살아가는 아들은 죄인들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굳게 지킨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마음을 지혜로 채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2.주탐(酒貪), 식탐(食貪), 음행(淫行)을 멀리하라(20, 27, 30-35절)
마시는 것과 먹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결국 몸의 쾌감, 만족함을 가리킬 것이다. 살아가면서 적절한 만족함, 즐거움은 삶의 활력소가 되지만, 단지 이런 즐거움에 탐닉하기만 한다면 어리석은 삶이 될 것이다. 지혜자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롭게 사는 이들에게 크게 세 가지를 멀리하라고 당부한다.
“너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나 고기를 탐하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아라(새번역_20절)” “탐하다(잘랄)”는 ‘가볍게 여기다’, ‘탕진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적당한 선을 넘어서 이성을 잃고 함부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식수가 부족한 이스라엘 땅에서 포도즙과 포도주는 매우 중요한 음용수이다. 하지만 적당한 선을 넘기면 포도주의 알콜이 그의 삶을 망가뜨린다. 지혜자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술과 음식을 탐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말 것을 가르친다.
또, 음행을 멀리하라 고도 당부한다. “음란한 여자(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부정한 여자(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다(새번역_27절)” 음란한 여인이나 이방 여인은 모두 음란함을 상징한다.
*신앙적인 측면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기 보다 다른 것을 즐기고 탐닉하며 사랑하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방탕하여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렇기에 세상의 문화(방식)을 더 사랑하고, 재물을 더 사랑하는 것은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한참 떠나 있다는 것이 된다.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말고 음란함(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에서 더 멀어져라!
*삶을 후회 없이 사는 것은 참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부지런함은 방탕함이 넘치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의 물질을 많이 소유하여도 하나님을 마음에 소유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세상의 것을 내세울 만한 것이 내게 하나도 없어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마음이 가득 찬 삶은 가장 부요한 삶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삶이다.
*세상의 어떤 것이든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탐, 식탐, 음행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참 신기하게도 지혜자는 주탐, 식탐, 음란이 하나의 매개로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바로 “술”이다. 그리고 그 “술”로 인해 맞이하게 될 파탄을 이렇게 의문문으로 격하게 토로한다. “재난을 맞을 사람이 누구냐? 근심하게 될 사람이 누구냐? 다투게 될 사람이 누구냐? 속상해 할 사람이 누구냐? 애매하게 상처입을 사람이 누구냐? 눈이 충혈된 사람이 누구냐?(새번역_29절)”
바로 술이다. 술에 취하는 술꾼이다. 전형적인 술꾼을 이렇게 묘사했다. “술자리를 뜰 줄 모르고 혼합주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다.(새번역_30절)” 그리고 술에 취한 추한 모습도 오늘날과 다를 바 없이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눈에는 이상한 것이 보이고 입에는 허튼 소리를 담게 된다. 바다 한가운데 누운 것 같고 돛대 꼭대기에 누운 것 같아, “아무리 때려보아라. 아프지도 않다. 아무리 맞아도 아무렇지 않구나. 술이 깨면 또 마셔야지.” 하고 말한다.(새번역_33-35절)”
그래서 분명하게 경고했다. “잔에 따른 술 빛깔이 아무리 빨갛고 고와도 거들떠보지 마라. 결국은 뱀처럼 물고 살무사처럼 쏠 것이다.(새번역_31-32절)”
*한국은 개인 평균 음주량이 세계 평균을 웃도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히 음주 왕국이다. 희한하게도 지혜자가 경고하는 음주 문화가 고스란히 보여진다. 이런 문화 속에서 대부분의 교회 공동체는 음주에 대하여 매우 보수적이다. 헌데 입장만 보수적이고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 하여 우려 스럽다.
*음주를 권하는 사회 풍조이어서 그런지 술에 취함으로 인해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도 “그 놈의 술이 문제지…”라고 자조 한다. 엄격하지 못하다. 그래서 인지 모르지만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는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믿음의 사람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말씀의 맛, 복음의 맛에 취하는 것 보다, 술 맛에 취하여 산다. 주탐(酒貪)에서 오는 삶의 몰락을 알고 절제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주탐, 식탐, 음란의 함정을 경계하고, 절제할 수 있을까?
3.그렇기에…(17절)
“….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날마다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라_새번역)”
날마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술, 음식, 향락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더 가까이, 더욱 가까이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술 맛보다 더 좋은 복음의 맛, 말씀의 맛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맛을 볼 수 있을까? 지혜자는 단언한다. “내 아들아, 잘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이끌어라(새번역_19절)” 잘 듣고, 얻어, 이끌어라!
은혜와 의지가 함께 필요하다. “얻는 은혜와 듣고, 이끄는 의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면 은혜를 바라고 의지를 다진다. 하나님의 은혜의 맛을 맛보고 누리면 늘 찾게 된다. 술맛이, 맛난 먹방이, 몸의 쾌락이 이 은혜의 맛을 넘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면 된다. “지혜의 말씀을 듣고, 이를 통해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얻어 산다” 어찌 술맛이, 산해진미가 이 은혜의 자리를 탐할 수 있겠나….
나는?
*주님, 제 마음에 은혜가 넘침을 믿습니다.
*주님, 술맛 보다 말씀의 맛, 복음의 맛에 취해 살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지를 가르친다. 본문은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1.’마음’으로 힘써야 할 것(15-19절)
지혜자는 아들이 ‘마음이 지혜롭고 입술의 정직함’이 삶의 활력소임을 밝힌다. “내 아이들아 너의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의 마음도 또한 즐겁다. 네가 입을 열어 옳은 말을 할 때면, 나의 속이 다 후련하다(새번역_15-16절)”
또, 마음으로 죄인들의 잘 됨을 부러워 말고 늘 주님을 경외하면, 아들의 미래가 밝아지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을(17-18절) 강조했다. 이런 삶은 결국 지혜자의 말을 “잘 듣고” 얻는 지혜로 마음을 바르게 이끌때 가능하다. “내 아이들아, 너는 잘 듣고 지혜를 얻어서 너의 마음을 바르게 이끌어라(새번역_19절)”
*마음으로 힘써야 할 것은 지혜를 채우고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다. 지혜롭게 살아가는 아들은 죄인들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굳게 지킨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마음을 지혜로 채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2.주탐(酒貪), 식탐(食貪), 음행(淫行)을 멀리하라(20, 27, 30-35절)
마시는 것과 먹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결국 몸의 쾌감, 만족함을 가리킬 것이다. 살아가면서 적절한 만족함, 즐거움은 삶의 활력소가 되지만, 단지 이런 즐거움에 탐닉하기만 한다면 어리석은 삶이 될 것이다. 지혜자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롭게 사는 이들에게 크게 세 가지를 멀리하라고 당부한다.
“너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나 고기를 탐하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아라(새번역_20절)” “탐하다(잘랄)”는 ‘가볍게 여기다’, ‘탕진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적당한 선을 넘어서 이성을 잃고 함부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식수가 부족한 이스라엘 땅에서 포도즙과 포도주는 매우 중요한 음용수이다. 하지만 적당한 선을 넘기면 포도주의 알콜이 그의 삶을 망가뜨린다. 지혜자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술과 음식을 탐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말 것을 가르친다.
또, 음행을 멀리하라 고도 당부한다. “음란한 여자(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부정한 여자(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다(새번역_27절)” 음란한 여인이나 이방 여인은 모두 음란함을 상징한다.
*신앙적인 측면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기 보다 다른 것을 즐기고 탐닉하며 사랑하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방탕하여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렇기에 세상의 문화(방식)을 더 사랑하고, 재물을 더 사랑하는 것은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한참 떠나 있다는 것이 된다.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말고 음란함(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에서 더 멀어져라!
*삶을 후회 없이 사는 것은 참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부지런함은 방탕함이 넘치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의 물질을 많이 소유하여도 하나님을 마음에 소유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세상의 것을 내세울 만한 것이 내게 하나도 없어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마음이 가득 찬 삶은 가장 부요한 삶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삶이다.
*세상의 어떤 것이든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탐, 식탐, 음행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참 신기하게도 지혜자는 주탐, 식탐, 음란이 하나의 매개로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바로 “술”이다. 그리고 그 “술”로 인해 맞이하게 될 파탄을 이렇게 의문문으로 격하게 토로한다. “재난을 맞을 사람이 누구냐? 근심하게 될 사람이 누구냐? 다투게 될 사람이 누구냐? 속상해 할 사람이 누구냐? 애매하게 상처입을 사람이 누구냐? 눈이 충혈된 사람이 누구냐?(새번역_29절)”
바로 술이다. 술에 취하는 술꾼이다. 전형적인 술꾼을 이렇게 묘사했다. “술자리를 뜰 줄 모르고 혼합주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다.(새번역_30절)” 그리고 술에 취한 추한 모습도 오늘날과 다를 바 없이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눈에는 이상한 것이 보이고 입에는 허튼 소리를 담게 된다. 바다 한가운데 누운 것 같고 돛대 꼭대기에 누운 것 같아, “아무리 때려보아라. 아프지도 않다. 아무리 맞아도 아무렇지 않구나. 술이 깨면 또 마셔야지.” 하고 말한다.(새번역_33-35절)”
그래서 분명하게 경고했다. “잔에 따른 술 빛깔이 아무리 빨갛고 고와도 거들떠보지 마라. 결국은 뱀처럼 물고 살무사처럼 쏠 것이다.(새번역_31-32절)”
*한국은 개인 평균 음주량이 세계 평균을 웃도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히 음주 왕국이다. 희한하게도 지혜자가 경고하는 음주 문화가 고스란히 보여진다. 이런 문화 속에서 대부분의 교회 공동체는 음주에 대하여 매우 보수적이다. 헌데 입장만 보수적이고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 하여 우려 스럽다.
*음주를 권하는 사회 풍조이어서 그런지 술에 취함으로 인해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도 “그 놈의 술이 문제지…”라고 자조 한다. 엄격하지 못하다. 그래서 인지 모르지만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는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믿음의 사람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말씀의 맛, 복음의 맛에 취하는 것 보다, 술 맛에 취하여 산다. 주탐(酒貪)에서 오는 삶의 몰락을 알고 절제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주탐, 식탐, 음란의 함정을 경계하고, 절제할 수 있을까?
3.그렇기에…(17절)
“….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날마다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라_새번역)”
날마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술, 음식, 향락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더 가까이, 더욱 가까이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술 맛보다 더 좋은 복음의 맛, 말씀의 맛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맛을 볼 수 있을까? 지혜자는 단언한다. “내 아들아, 잘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이끌어라(새번역_19절)” 잘 듣고, 얻어, 이끌어라!
은혜와 의지가 함께 필요하다. “얻는 은혜와 듣고, 이끄는 의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면 은혜를 바라고 의지를 다진다. 하나님의 은혜의 맛을 맛보고 누리면 늘 찾게 된다. 술맛이, 맛난 먹방이, 몸의 쾌락이 이 은혜의 맛을 넘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면 된다. “지혜의 말씀을 듣고, 이를 통해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얻어 산다” 어찌 술맛이, 산해진미가 이 은혜의 자리를 탐할 수 있겠나….
나는?
*주님, 제 마음에 은혜가 넘침을 믿습니다.
*주님, 술맛 보다 말씀의 맛, 복음의 맛에 취해 살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