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무엘’은 ‘하나님을 위한 자’, ‘하나님께 바친 자’라는 뜻이다. “서원하여 얻은 아들(2절)”이라는 고백과 통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가 솔로몬이며 르무엘이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부르는 애칭 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다. 공동번역에서는 “마싸 왕 르무엘”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아라비아의 한 부족의 왕이었다는 견해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잠언이 히스기야 시대 솔로몬의 잠언을 편집한 것이라면 굳이 아라비아의 한 부족의 왕의 잠언을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럼에도 만약 솔로몬이라면 밧세바가 들려주는 잠언이 된다. 솔로몬의 출생은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인해 충직한 부하 우리야를 죽이고 처절한 회개와 함께, 간음으로 생긴 아들을 먼저 데려가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후 얻은 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특별한 아이에게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뜻의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주었다. 충직한 부하의 아내와 간음하여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취하신 후,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누구보다 힘들었을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녀와 동침하여 얻은 아들이 ‘솔로몬’이었다. 고통스러운 삶의 페이지를 함께 채운 밧세바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으로서의 태도와 자세를 말해주는 잠언은 자뭇 진지하다. 왕으로서 피해야 할 것과 반드시 해야 할 것을 당부한다.
1.서원하여 얻은 아들(2절)
먼저 왕의 어머니는 그를 “서원하여 얻은” 아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소중하게 얻은 아들이라는 의미다. 어떤 서원인지 밝히지 않지만, 하나님께 서원하며 아들을 주실 것을 구했다면,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바랬던 아들이었는지 짐작하게 된다. 또, 내가 무엇을 말하랴?”라는 표현을 세 번 반복하면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들려 주는 이 지혜의 가르침이 매우 중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환기 시킨다.
그만큼 이 아들이 잘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러니 어렸을 때 부터 아들에게 쏟았을 정성을 짐작하게 한다. 무엇보다 지혜로운 아들이 되기를 바라며 이 잠언들을 들려 주었을 것이다.
2.여인과 술을 피해라(여자, 포도주, 독주_3-7절)
여자에게 지나치게 힘과 에너지를 쓰지 말라고 충고한다(3절). 고대 근동의 사회는 왕들이 많은 여인들과 결혼이나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 르무엘의 어머니는 이러한 행동은 지도자를 파괴하는 것이며 성적 남용을 경계하고 절제하는 이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전한다. “여자에게 너의 힘을 쓰지 말아라. 여자는 임금도 망하게 할 수 있으니, 여자에게 너의 길을 맡기지 말아라(새번역_3절)”
아쉽게도 르무엘이 솔로몬이라면 이와 같은 당부를 지키지 못한 셈이 됐다. 그는 여자로 인해 이스라엘이 다시 남과 북으로 분단되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여자에게 기력을 쏟고(공동번역_3절) 자신의 길을 맡김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그가 기력을 쏟은 여인들이 가져온 우상들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솔로몬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3)”라는 잠언을 남겼다.
또 송사와 재판의 자리에서 항상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술(독주와 포도주)을 절대 마시지 말라고 언급한다. 술은 정신을 흐리게 하고 판단을 서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이 잠언을 가르칠 때는 “르무엘아…”라고 이름을 부르며 가르쳤다. 매우 엄중하게 강조했다는 의미다. 이는 단지 아들의 건강 유지 차원이 아니라 아들로 인해 결정짓게 될 백성들의 삶 속에 이루어 져야 할 공의가 굽어지기 때문이다.
“르무엘아, 임금에게 적합하지 않은 일이 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임금에게 적합한 일이 아니다. 독주를 좋아하는 것은 통치자들에게 적합한 일이 아니다. 술을 마시면 법을 잊어버리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판결을 불리하게 내릴까 두렵다.(새번역_4-5절)” “적합하지 않다”가 세 번이나 반복된다. 그만큼 술에 이끌리는 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강조이다. 그렇게 술을 주의해야 할 이유는 “법을 잊어버리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판결을 불리하게 내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3.약자들의 편에 서라(공의로 재판하라_8-9절)
고대 세계의 왕의 의무에는, 약자를 보호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지지하고 돕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왕들은 이 의무에 충실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 의무가 지켜지지 않았고, 오늘날은 더욱 마찬가지이다.
“너는 벙어리처럼 할 말을 못하는 사람과 더불어, 고통 속에 있는(버림 받은_공동번역)) 사람들의 송사를 변호하여 입을 열어라.너는 공의로운 재판(바른 판결_공동번역)을 하고, 입을 열어, 억눌린 사람과 궁핍한 사람들의 판결을 바로 하여라.(새번역_8-9)”
세상에는 벙어리처럼 할 말을 못하는 사람, 고통 속에 있는 사람, 억눌린 사람, 궁핍한 사람이 넘쳐 난다. 사회적으로 약자의 자리에 있는 그들은 자기 권리조차 제대로 찾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르무엘의 어머니는 왕은 그런 가난한 자들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왕은 사회적으로 약자인 백성들이 가까이 하기에 쉬운 자리에 있어야 한다. 백성들의 대변자가 되어 줘야 한다.
*왕이 입을 열어야 할 것은 여인, 포도주, 독주가 아니라 약자인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말이어야 한다.
*왕이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사회적 강자들에게 당하는 “억울한 일”에 할 말을 못하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대변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다. 고통 속에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법에 의지하려고 시도하는 마지막 몸부림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입을 열어” 힘없는 자들”을 위해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입을 열어” 공의로운 재판으로 이들의 곤고함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솔로몬의 재판은 지혜롭고 공의롭기로 유명했다. 그의 지혜로움의 명성은 재판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께서 주신 “듣는 마음”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판결은 백성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어머니의 간절한 가르침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고 있을까? 이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이성과 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고 있나?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음주량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1인당 주류 소비는 세계에서 상위권에 속한다. 이에 따른 사회적인 문제는 늘 골치 아픈 문제가 되었다. “그 놈의 술이 웬수다”는 말이 당연한 듯 사람들의 정서에 박혀 있다. 그런데도 주류 소비량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술과 담판을 짓듯 술을 마셔 댄다. 오죽하면 술자리가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시작하지만 결국 술이 사람을 마셔 버린다는 말이 무색하지가 않다. 오히려 이 말처럼 술을 마시자고 덤벼든다! 어리석기 그지 없다. 성경은 내가 아무리 떳떳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 지라도, 나의 음식(음주) 문제로 다른 이가 실족하는(고전 8:13) 지체가 있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끊어야 할 것을 권고한다.
*이성, 술, 공의로움… 이런 삶의 자세가 비단 왕이나 지도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지혜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빠지지 말아야 할 것, 취하지 말아야 할 것, 치우치지 말아야 할 것에 분명한 삶이어야 한다.
*이성에 빠져 맥을 못추는 어리석은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희한하게도 청년들은 연애를 시작하면 눈이 멀고 귀가 멀어 버린다. 이성을 만나면 이성이 마비된다… 올바른 분별이 지극히도 어려워 진다. “이성에게 기력을 다 쏟기” 때문이다. 모든 관심과 마음을 집중한다. 이것은 망하는 길이다. 이성을 만나서 교제 할 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공정, 정의가 화두다. 정치적으로 이 단어는 좋은 공격거리가 되었다. “내로남불”의 부끄러운 평가가 남발 된다.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않으려 하고 상대방의 옷에 조금 묻어 있는 흠을 확대하여 까발린다.
*한 사람에게라도 억울한 판결이 이루어져서는 안 될 재판정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비아냥이 끊이질 않는다. 억울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끊이지 않는다. 공의로움이 재판정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학연과 지연, 정치적인 연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는 의식이 혹시 재판에 임하는 이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 줄 때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주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는 이런 나라여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친히 보여 주신 것처럼 철저하게 약자들(창기, 세리, 병자, 죄인들…)을 찾아 나서서 복음을 전하고 치유하신 그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인 교회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해 기꺼이 그들의 편이 되어 주어야 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다!
*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왕 같은 제사장”들인 성도가 참으로 진지하게 르무엘의 어머니의 지혜로움 가르침에 응답해야 한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전하는 지혜로움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지혜자가 되어야지…
**주님, 빠지지 말아야 할 것, 취하지 말아야 할 것, 치우치지 말아야 할 것에 빠지지 않고, 취하지 않고, 치우치지 않게 하소서.
**주님, 피해야 할 것과 해야 할 것, 반드시 순종하게 하소서.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111:1-10]
이 시는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찬양시이다. 구조적으로 72개의 단어로 구성된 이 시의 특징은 할렐루야 이후 마지막 시행까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첫 글자가 시작되는 알파벳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