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함(1-12절)과 게으름(13-16절)에 대한 잠언이다. ‘미련하다’라는 의미는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리는 매우 어리석고 둔한 것’이다. ‘아둔하다’와 비슷한 말이다. ‘교만함’과도 통한다. 고집불통과 어리석음이 만나니 미련함이 꽃을 피운다. 인생에서 이런 미련함이 꽃핀다면 … 그것 참…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미련한 것은 교만한 것이라….
1.미련함의 특징(1-12절)
미련한 사람의 특징은 시편에서 선명하게 정의했다.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면서, 부패, 가증하여 악을 행하는 자(시편 53:1)”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그 뜻에 순종하지 않는 이가 미련한 사람이다. 본문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정의한다.
먼저, 영예(카보드_영광)가 적당하지 않다(1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 추수 때에 비오는 것과 같단다. 매우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며, 당혹스러운 것임을 드러낸다. 영예란, 창찬과 영광, 즉 존경의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상 기후를 대하는 불길한 마음처럼, 가까이 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다. 또, 까닭 없는 저주를 퍼붓는 사람이다(2절). 이런 사람에게는 ‘영예’가 아닌 ‘막대기’가(3절) 필요할 뿐이다.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4절)이다. 어리석은 말을 할 때는 같은 말로 대응하여 지혜로운체 하지 못하도록 하라(5절). 미련한 사람도 잠언을 말한다. 하지만 도무지 영향력은 없다(7절). 그런데 미련한 이가 입에 담는 잠언은 어떤 피해를 입힐 지 모른다. 술 취한 이의 손에 들려 있는 가시나무와 같아서(9절) 예측할 수 없고 제어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듯이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 하는 사람이다(11절). 무엇보다 스스로 지혜있는 체 하는 사람은 진실로 미련한 사람보다 더 위험하다(12절)
*하나님 말씀에 미련한 자, 즉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 하지도 않는 자는 “막대기”가 기다린다.
*왕실에서 이루진 교육의 내용이 참으로 구체적이다. 특히 사람을 바라보고 분별하는 것에 있어 철두철미하게 이루어진 것을 짐작케 한다.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지 생각하게도 한다. 반복하여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하는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거나 상대하지 말하고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인사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교육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왕실이 아니더라도 나의 삶의 현장에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분별해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리더십의 위치에 있는 사람일 수록 어떤 임무보다도 막중할 수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는 말이 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미련한 자”을 알아보는 것 이리라. 미련한 자는 어리석은 말을 남발하는 사람이다.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긴다. 삶의 결과는 엉망인데, 늘 자기 주장이 강하다. 헛똑똑이다. 뿐 만 아니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며, 중상모략을 일삼는 사람이다. ‘잠언’을 흉내 내지만 말의 힘은 없다.
*묵상 하면서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내가 바로 “미련한 자”일 수 있겠다 싶다. 특히 “미련한 사람이 입에 담는 잠언은, 술 취한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가시나무와 같다.(새번역_9절)”의 말씀에서 시선이 멈춘다. 내가 가르치고 전하는 설교가 ‘술 취한 사람 손에 쥐고 있는 가시나무’와 같으면 안되는데….
*바른 말 해준답시고 마음을 찌르고 상처 내면서 “마음을 돌본다고 하거나, ” “알량한 지식”을 자랑해서는 안되는데… 나의 말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찌르는 잠언이 아니라 그저 고통받게 하고 찢겨지게 하는 잠언이어서는 안될 텐데…
*그래서 매일 말씀 묵상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의 말이 마음을 돌보고 영혼을 일깨우는 말이 되기 위해 나의 손에 가시나무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술 취하여 흐느적 거리는 것이 아닌 성령에 취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확고하게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이어야 하리라…
2.게으름(13-16절)
게으름(히_아첼, 헬_아탁토스)의 의미에는 “질서를 따르지 않고 불복종하는”이라는 뜻도 담겨있다. 게으른 자라는 표현은 질서를 위반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게으른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으신 삶의 기본적인 것을 따르지 않는 자세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하여 늘 “핑계”댄다. 심지어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13절)”며 밖으로 나가기를 거절하고 침대에서 뒹굴기만하고, 음식조차 먹는 것을 귀찮아 한다(14-15절). 그러면서 스스로 다른 지혜로운 사람보다 자신이 더 훨씬 ‘잘났다’고 생각한다. 행동은 게으르면서 말은 부지런하다. 자신에 대하여 지나치게 관대하고,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보다 자신이 더 지혜롭다는 망상 속에 산다(16절). 이런 인생을 어찌하면 좋을까….
*게으름은 순종은 하지 않으면서 말은 번지르하게 한다. 그래서 교만함과 속성이 통한다. ‘미련함’과도 통한다. 지극히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미련한 자, 게으른 자는 어디에 가든지 환영받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착각”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모두 한숨을 내쉬어도 정작 자신은 스스로 괜찮다고 한다. 되려 자신을 한심해 하는 사람들에게 잠언까지 해준다. 더 지혜롭다고 까지 한다. 이런 망상을 어떻게 깨부술 수 있을까?
-그런데 어쩌면, 정말 어쩌면 목사인 내가 미련하고 게으른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다… 목사는 늘 고립되어 있는 이들 중에 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은 그 말씀에 게으를 수 있는 유혹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
-가장 부지런한 지혜로움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가장 어리석고 악하며 미련한 게으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한 끗 차이다. 말씀을 전하는 대로 사는가? 알면서도, 가르쳤으면서 이에 순종 하지 않고 살아내지 않는 가의 차이다.
-알고 있으면서, 가르쳤으면서 내가 살아내지 못하면 나는 가장 미련한 사람, 가장 게으른 사람이다. 그래서 두렵고 두렵다.
-내가 말씀을 사명과 같이 묵상 하는 이유는 말씀 앞에 곰곰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아니면 미련하고 게으른 자처럼 언제든지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가르치고 전하였으면서 이에 불순종하고 게으른 모습이 나에게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 미련한 자가 바로 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련하고 아둔한데 지혜로운 척 하지 않도록 말씀앞에 늘 겸손함을 주십시오.
*주님, 혹시 제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는지… 술 취한 이의 손에 있는 가시나무처럼 어디로 휘두를지 모르는 안하무인 하지 않는지… 스스로 지혜 있는 척하는 속 빈 요란한 깡통이 아닌지… 두렵고 두렵습니다.
1.미련함의 특징(1-12절)
미련한 사람의 특징은 시편에서 선명하게 정의했다.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면서, 부패, 가증하여 악을 행하는 자(시편 53:1)”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그 뜻에 순종하지 않는 이가 미련한 사람이다. 본문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정의한다.
먼저, 영예(카보드_영광)가 적당하지 않다(1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 추수 때에 비오는 것과 같단다. 매우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며, 당혹스러운 것임을 드러낸다. 영예란, 창찬과 영광, 즉 존경의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상 기후를 대하는 불길한 마음처럼, 가까이 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다. 또, 까닭 없는 저주를 퍼붓는 사람이다(2절). 이런 사람에게는 ‘영예’가 아닌 ‘막대기’가(3절) 필요할 뿐이다.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4절)이다. 어리석은 말을 할 때는 같은 말로 대응하여 지혜로운체 하지 못하도록 하라(5절). 미련한 사람도 잠언을 말한다. 하지만 도무지 영향력은 없다(7절). 그런데 미련한 이가 입에 담는 잠언은 어떤 피해를 입힐 지 모른다. 술 취한 이의 손에 들려 있는 가시나무와 같아서(9절) 예측할 수 없고 제어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듯이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 하는 사람이다(11절). 무엇보다 스스로 지혜있는 체 하는 사람은 진실로 미련한 사람보다 더 위험하다(12절)
*하나님 말씀에 미련한 자, 즉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 하지도 않는 자는 “막대기”가 기다린다.
*왕실에서 이루진 교육의 내용이 참으로 구체적이다. 특히 사람을 바라보고 분별하는 것에 있어 철두철미하게 이루어진 것을 짐작케 한다.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지 생각하게도 한다. 반복하여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하는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거나 상대하지 말하고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인사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교육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왕실이 아니더라도 나의 삶의 현장에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분별해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리더십의 위치에 있는 사람일 수록 어떤 임무보다도 막중할 수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는 말이 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미련한 자”을 알아보는 것 이리라. 미련한 자는 어리석은 말을 남발하는 사람이다.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긴다. 삶의 결과는 엉망인데, 늘 자기 주장이 강하다. 헛똑똑이다. 뿐 만 아니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며, 중상모략을 일삼는 사람이다. ‘잠언’을 흉내 내지만 말의 힘은 없다.
*묵상 하면서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내가 바로 “미련한 자”일 수 있겠다 싶다. 특히 “미련한 사람이 입에 담는 잠언은, 술 취한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가시나무와 같다.(새번역_9절)”의 말씀에서 시선이 멈춘다. 내가 가르치고 전하는 설교가 ‘술 취한 사람 손에 쥐고 있는 가시나무’와 같으면 안되는데….
*바른 말 해준답시고 마음을 찌르고 상처 내면서 “마음을 돌본다고 하거나, ” “알량한 지식”을 자랑해서는 안되는데… 나의 말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찌르는 잠언이 아니라 그저 고통받게 하고 찢겨지게 하는 잠언이어서는 안될 텐데…
*그래서 매일 말씀 묵상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의 말이 마음을 돌보고 영혼을 일깨우는 말이 되기 위해 나의 손에 가시나무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술 취하여 흐느적 거리는 것이 아닌 성령에 취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확고하게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이어야 하리라…
2.게으름(13-16절)
게으름(히_아첼, 헬_아탁토스)의 의미에는 “질서를 따르지 않고 불복종하는”이라는 뜻도 담겨있다. 게으른 자라는 표현은 질서를 위반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게으른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으신 삶의 기본적인 것을 따르지 않는 자세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하여 늘 “핑계”댄다. 심지어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13절)”며 밖으로 나가기를 거절하고 침대에서 뒹굴기만하고, 음식조차 먹는 것을 귀찮아 한다(14-15절). 그러면서 스스로 다른 지혜로운 사람보다 자신이 더 훨씬 ‘잘났다’고 생각한다. 행동은 게으르면서 말은 부지런하다. 자신에 대하여 지나치게 관대하고,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보다 자신이 더 지혜롭다는 망상 속에 산다(16절). 이런 인생을 어찌하면 좋을까….
*게으름은 순종은 하지 않으면서 말은 번지르하게 한다. 그래서 교만함과 속성이 통한다. ‘미련함’과도 통한다. 지극히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미련한 자, 게으른 자는 어디에 가든지 환영받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착각”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모두 한숨을 내쉬어도 정작 자신은 스스로 괜찮다고 한다. 되려 자신을 한심해 하는 사람들에게 잠언까지 해준다. 더 지혜롭다고 까지 한다. 이런 망상을 어떻게 깨부술 수 있을까?
-그런데 어쩌면, 정말 어쩌면 목사인 내가 미련하고 게으른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다… 목사는 늘 고립되어 있는 이들 중에 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은 그 말씀에 게으를 수 있는 유혹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
-가장 부지런한 지혜로움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가장 어리석고 악하며 미련한 게으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한 끗 차이다. 말씀을 전하는 대로 사는가? 알면서도, 가르쳤으면서 이에 순종 하지 않고 살아내지 않는 가의 차이다.
-알고 있으면서, 가르쳤으면서 내가 살아내지 못하면 나는 가장 미련한 사람, 가장 게으른 사람이다. 그래서 두렵고 두렵다.
-내가 말씀을 사명과 같이 묵상 하는 이유는 말씀 앞에 곰곰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아니면 미련하고 게으른 자처럼 언제든지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가르치고 전하였으면서 이에 불순종하고 게으른 모습이 나에게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 미련한 자가 바로 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련하고 아둔한데 지혜로운 척 하지 않도록 말씀앞에 늘 겸손함을 주십시오.
*주님, 혹시 제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는지… 술 취한 이의 손에 있는 가시나무처럼 어디로 휘두를지 모르는 안하무인 하지 않는지… 스스로 지혜 있는 척하는 속 빈 요란한 깡통이 아닌지… 두렵고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