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어떻게 올바르게 처신할까?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할까? 본문은 성실과 겸손,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성실하고 겸손한 삶은 지금 당장의 작은 이익에 현혹되지 않고 먼 미래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함을 덧붙인다.
1.솔로몬이 말하는 삶(1절)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새번역_1절)”
자신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야고보도 솔로몬의 잠언과 연결된 권면을 했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시간에 있어 인간은 지극히 제한적인 권리만 있을 뿐이다. “주어진 시간”을 누릴 수만 있다” 시간을 만들지도, 거두지도 못한다. 주어진 시간 만큼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 시간은 철저히 주어지는 것이다. 나의 주권이 개입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저 겸손히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고 누릴 수 있을 뿐….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시간은 자기 것이라고 착각한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날 지도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사람은 참 제한적인 존재다….
그러니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시간이 언제나 내게 넘칠 줄 알았다-혈기 왕성한 그 때는… 그래서 시간을 하찮게 여겼다. 그런데…
*시간은 잡아둘 새 없이 흘러간다-시간이 아쉬워 지는 지금은… 그래서 찰나의 시간도 붙잡고 싶어서 아둥 거린다….
2.처세들(칭찬은 타인에게서, 성실로 시간을 채워라_2-27절)
칭찬은 스스로 하지 말고 타인, 외인이 하도록 해라(2절). 타인, 외인의 눈에 띄고 감동 될 정도로 칭찬 받을 만한 삶을 살아라는 것이겠지?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어떤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감당하여 낸 이들에게 세상도 칭찬하게 된다.
*요즘 교회 칭찬 들어본 지 오래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칭찬보다 저주한다. 아…. 세상이 칭찬하는 교회가 그립구나! 그런데 자화자찬은 늘어가는 것은 웬 일인가! 스스로에게 스스로 칭찬하는 꼴이 너무나 천연덕스럽고 무안하게 펼쳐진다…. 에구…. 자화자찬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칭찬이 무척이나 그립구나!!
돌, 모래보다 무거운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성가시게 구는 것이다(3절). 분노와 진노는 사람의 질투를 이길 수 없다(4절). 앞에서 꾸짖는 것은 감춘 사랑보다 낫다. 친구의 충고가 이와 같다(5-6절). 다정한 친구의 충고는 최고의 감미료이다(9절). 친구를 저버리지 말고 가까운 이웃의 소중함을 알아라(10절). 지혜로 살라.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11절). 슬기로운 이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 해를 받는다(12절). 보증의 무서움을 알아라(13절).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자는 끊임없이 새는 비와 같다. 이런 여인은 다스리기 어렵다(15-16절). 지혜는 친구들과 부대끼며 다듬어지고(16절) 사람의 마음은 사람을 드러낸다(19절). 사람은 칭찬으로 단련한다(21절). 성실하게 살아라(23-27절)….
여러가지 일상과 관련된 잠언을 이어 놓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너의 양 떼의 형편을 잘 알아 두며 너의 가축 떼에게 정성을 기울여라(새번역_23절)” “형편을 잘 알아두며… 정성을 기울여라”… 나는 나의 목양의 현장에서 이런 각오가 되어 있나? 나의 목양은 이렇게 성실하게 채워져 있나?
성실로 시간을 채우면 삶의 열매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재물과 왕관에(명예와 성공에) 욕심을 내는 것은 영원히 남아 있지도 않고 물려 줄 수도 없는 것이지만, 성실을 쏟아 부은 삶에서 일상을 채우는 은혜의 열매가 이어진다. “풀은 벤 뒤에도 새 풀이 돋아나, 산에서 꼴을 얻을 수 있고, 어린 양의 털로는 옷을, 숫양으로는 밭을 살 수 있다.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식구들 뿐 아니라 여종의 먹을 것까지 채워준다(새번역_25-27절)”
성실하게 “양 떼의 형편을 잘 알아 두고, 가축 떼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서 자연의 섭리 속에서 베풀어 주시는 풍성함을 누린다.
나는?
-결국 삶은 성실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실의 열매는 다른 열매로 이어지지만, 게으름과 어리석은 탐욕(재물,권력)은 심판만 남는다.
-묵상을 하면서 가장 마음을 끄는 잠언이 “네가 너를 칭찬하지 말고, 남이 너를 칭찬하게 하여라. 칭찬은 남이 하여 주는 것이지, 자기의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새번역_2절)” 이다. 개인적인 적용도 물론 되지만,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에서 이 말씀이 마음을 꼭 찌른다.
-교회는 지금 자화자찬의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세상과 상관없이 자신들을 셀프칭찬하는 교회가 부지기수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세상은 혀만 찰 뿐이다. 그래서 한없이 낯부끄럽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당당하게 전하기 위해 셀프 칭찬한다고 스스로 궁색한 명분을 들이 대지만, 어느 누구도 반응하지 않아 초라해 질 뿐이다. 교회가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무시와 조롱을 받는 것이 복음을 제대로 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 보다 더 악한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고, 세상 보다 못한 윤리에 화들짝 놀랐기 때문이며, 세상보다 못한 지성에 실소를 금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세상이 즐겨 씹는 “껌”처럼 되어 버린 교회를 생각하면 속상하고 속상하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을 가져본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23절)” 말씀이다. “부지런히 살피고, 마음을 두며” 성실하게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살아내면 회복이 일어나고 필요가 공급된다.
-풀이 베임 당한 후에도 다시 새순이 돋는 것 처럼, 그 순들이 자라 꼴이 되어 주는 것처럼, 의식주를 채워주는 산물이 되는 것처럼…말씀으로 부지런히 살아가면, 말씀에 마음을 두고 성실하게 살아내면… 보살펴주시는 은혜가 마르지 않는다.
**자화자찬에 자멸하지 말고, 말씀으로 성실하게, 마음을 다하여…. 자자말성마…
*주님, 자화자찬에 취하는 어리석음을 거두어 주십시오.
*주님, 부지런히 살피고, 마음을 두어 제게 맡겨주신 더온누리를 목양하게 해주십시오. 성실로 행할 기회와 대상을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1.솔로몬이 말하는 삶(1절)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새번역_1절)”
자신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야고보도 솔로몬의 잠언과 연결된 권면을 했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시간에 있어 인간은 지극히 제한적인 권리만 있을 뿐이다. “주어진 시간”을 누릴 수만 있다” 시간을 만들지도, 거두지도 못한다. 주어진 시간 만큼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 시간은 철저히 주어지는 것이다. 나의 주권이 개입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저 겸손히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고 누릴 수 있을 뿐….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시간은 자기 것이라고 착각한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날 지도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사람은 참 제한적인 존재다….
그러니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시간이 언제나 내게 넘칠 줄 알았다-혈기 왕성한 그 때는… 그래서 시간을 하찮게 여겼다. 그런데…
*시간은 잡아둘 새 없이 흘러간다-시간이 아쉬워 지는 지금은… 그래서 찰나의 시간도 붙잡고 싶어서 아둥 거린다….
2.처세들(칭찬은 타인에게서, 성실로 시간을 채워라_2-27절)
칭찬은 스스로 하지 말고 타인, 외인이 하도록 해라(2절). 타인, 외인의 눈에 띄고 감동 될 정도로 칭찬 받을 만한 삶을 살아라는 것이겠지?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어떤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감당하여 낸 이들에게 세상도 칭찬하게 된다.
*요즘 교회 칭찬 들어본 지 오래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칭찬보다 저주한다. 아…. 세상이 칭찬하는 교회가 그립구나! 그런데 자화자찬은 늘어가는 것은 웬 일인가! 스스로에게 스스로 칭찬하는 꼴이 너무나 천연덕스럽고 무안하게 펼쳐진다…. 에구…. 자화자찬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칭찬이 무척이나 그립구나!!
돌, 모래보다 무거운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성가시게 구는 것이다(3절). 분노와 진노는 사람의 질투를 이길 수 없다(4절). 앞에서 꾸짖는 것은 감춘 사랑보다 낫다. 친구의 충고가 이와 같다(5-6절). 다정한 친구의 충고는 최고의 감미료이다(9절). 친구를 저버리지 말고 가까운 이웃의 소중함을 알아라(10절). 지혜로 살라.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11절). 슬기로운 이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 해를 받는다(12절). 보증의 무서움을 알아라(13절).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자는 끊임없이 새는 비와 같다. 이런 여인은 다스리기 어렵다(15-16절). 지혜는 친구들과 부대끼며 다듬어지고(16절) 사람의 마음은 사람을 드러낸다(19절). 사람은 칭찬으로 단련한다(21절). 성실하게 살아라(23-27절)….
여러가지 일상과 관련된 잠언을 이어 놓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너의 양 떼의 형편을 잘 알아 두며 너의 가축 떼에게 정성을 기울여라(새번역_23절)” “형편을 잘 알아두며… 정성을 기울여라”… 나는 나의 목양의 현장에서 이런 각오가 되어 있나? 나의 목양은 이렇게 성실하게 채워져 있나?
성실로 시간을 채우면 삶의 열매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재물과 왕관에(명예와 성공에) 욕심을 내는 것은 영원히 남아 있지도 않고 물려 줄 수도 없는 것이지만, 성실을 쏟아 부은 삶에서 일상을 채우는 은혜의 열매가 이어진다. “풀은 벤 뒤에도 새 풀이 돋아나, 산에서 꼴을 얻을 수 있고, 어린 양의 털로는 옷을, 숫양으로는 밭을 살 수 있다.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식구들 뿐 아니라 여종의 먹을 것까지 채워준다(새번역_25-27절)”
성실하게 “양 떼의 형편을 잘 알아 두고, 가축 떼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서 자연의 섭리 속에서 베풀어 주시는 풍성함을 누린다.
나는?
-결국 삶은 성실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실의 열매는 다른 열매로 이어지지만, 게으름과 어리석은 탐욕(재물,권력)은 심판만 남는다.
-묵상을 하면서 가장 마음을 끄는 잠언이 “네가 너를 칭찬하지 말고, 남이 너를 칭찬하게 하여라. 칭찬은 남이 하여 주는 것이지, 자기의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새번역_2절)” 이다. 개인적인 적용도 물론 되지만,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에서 이 말씀이 마음을 꼭 찌른다.
-교회는 지금 자화자찬의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세상과 상관없이 자신들을 셀프칭찬하는 교회가 부지기수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세상은 혀만 찰 뿐이다. 그래서 한없이 낯부끄럽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당당하게 전하기 위해 셀프 칭찬한다고 스스로 궁색한 명분을 들이 대지만, 어느 누구도 반응하지 않아 초라해 질 뿐이다. 교회가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무시와 조롱을 받는 것이 복음을 제대로 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 보다 더 악한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고, 세상 보다 못한 윤리에 화들짝 놀랐기 때문이며, 세상보다 못한 지성에 실소를 금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세상이 즐겨 씹는 “껌”처럼 되어 버린 교회를 생각하면 속상하고 속상하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을 가져본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23절)” 말씀이다. “부지런히 살피고, 마음을 두며” 성실하게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살아내면 회복이 일어나고 필요가 공급된다.
-풀이 베임 당한 후에도 다시 새순이 돋는 것 처럼, 그 순들이 자라 꼴이 되어 주는 것처럼, 의식주를 채워주는 산물이 되는 것처럼…말씀으로 부지런히 살아가면, 말씀에 마음을 두고 성실하게 살아내면… 보살펴주시는 은혜가 마르지 않는다.
**자화자찬에 자멸하지 말고, 말씀으로 성실하게, 마음을 다하여…. 자자말성마…
*주님, 자화자찬에 취하는 어리석음을 거두어 주십시오.
*주님, 부지런히 살피고, 마음을 두어 제게 맡겨주신 더온누리를 목양하게 해주십시오. 성실로 행할 기회와 대상을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