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5:1-21 홍해 예배… 이런 예배 드리고 싶습니다!
홍해를 건넜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였다. 애굽의 하찮은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력으로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놀라운 구원을 하나님께서 행하셨다. 애굽 건너편 홍해 바닷가에 서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미리암과 여인들이 부르는 하나님만이 구원 되신다는 고백이 나의 고백, 나의 노래도 되어 주심을 믿는다.
자신들을 뒤쫓아온 애굽 군대가 홍해 속으로 수장 되는 것을 바라보며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 앞에서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감격 속에 부른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하고, 주님이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련다(새번역_2절).” 이렇게 감격의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 구원의 사건이었다. 그렇게 ‘좌불안석’하며 다다른 홍해의 넘실 거리는 파도 앞에서 뒤에서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가 일으키는 성난 모래바람이 큰 두려움으로 백성들을 뒤덮었다.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한 백성들은 아우성 쳤으나 모세는 담담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부여잡고 밤새 몰아치는 세찬 동풍에 몸을 움츠렸다. 마침내 해가 밝고 웅장하게 갈라진 홍해의 마른 바닥을 걸으며 건넜다. 뒤이어 맹렬히 쫓아오던 애굽 군대는 그보다 더 맹렬히 덮치는 홍해의 바다 속으로 영원히 수장 되었다.
하나님은 완전한 구원주 되신다.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은 홍해에서도 구출해 내신다. 전멸 당할 뻔 한 상황에서 온전하게 구원함을 받았으니 모세가 부른 노래는 감격과 감사 그 자체였다. 모세의 노래에 화답하여 미리암과 여인들이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화답하며 부른 노래는 홍해를 건넌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이었음을 고백한다.
“주께서(7,10,12,17절)” 행하신 일들을 꼼꼼하게 고백 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었음을 노래한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다보면 기이하고 신비한 일을 한번 쯤 경험 할 때가 있다. 남들의 간증을 들을 때는 그저 짧은 감탄에 머물지만, 나의 이야기는 다르다! 더 말하고 싶고 놓치지 않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면 그런 법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이야기하고 싶은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코시국이라 하여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이 있을 터인데, 하고싶은 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멈추지 않고 싶은 노래를 언제 불렀는지 가물가물하다… 아… 나의 노래 되시는 하나님이 너무 어색하다…
*요즘 나는 “주 예수 나의 산 소망(living hope)”라는 찬양에 푹 빠져 산다. 부르고 싶고 들려 주고 싶은 이 찬양이 나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감동의 격동을 일으키는 지 모른다.
*노래만 들어도 그런데,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산 역사를 경험하면 어떨까!! 모세의 노래나 미리암의 화답이 결코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모세는 무려 18구절에 걸쳐 홍해에서 구출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구원, 나의 찬송 되심을 노래하는 삶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하다.
*또한 이 노래는 모새나, 미리암만 부른 노래가 아니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1절)”, “미리암과 모든 여인도(20절)” 함께 부른 노래였다. 상상해 보았다. 모세가 시작한 모래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했을 것이다. 만들어진 노래가 없었기에 모세가 외치는 외침에 어쩌면 환호하며 동참했을 수 있다. 미리암은 여기에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며 동참 하고, 여인들도 기쁨의 몸짓으로 함께 했을 것이다.
*공동체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감격하고 감격한 것이다. 모두가 홍해를 건너며 그 기이하고 신비함을 경험했으니 당연하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에 모든 이들이 마음이 들썩거렸다.
*말씀을 들으며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선포되는 말씀에 나의 삶을 대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가 넘치는 예배와 찬양은 인격적인 반응이 당연하게, 자유롭게, 그러나 조화롭게 일어난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여 드리는 건강한 예배일 것이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예배를 드린 것이다. 정해진 형식은 없었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반응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어떤이는 환호로, 어떤이는 눈물로, 어떤이는 춤으로, 어떤이는 악기로 저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였다. 아…. 이런 예배 간절하다! 순서를 따라 엄숙하게 마치 장례식장에 온듯한 그런 예배가 아니라, 자유롭게, 은혜에 반응하나 결코 조화되는 여러 인격적인 반응들이 하나님께 올려 지는 그런 예배… 간절하다!
나는?
-홍해 건넌 직후 인류사 최초로 가장 큰 예배가 드려졌다. 그것은 주최측도, 진행요원도, 행사 안내 순서지도 없는 모두가 인격적으로 자발적으로 반응한 놀라운 예배 였다. 무려 250만의 하나님의 청중들이 홍해 건너 편 바닷가에서 노래하였다. 춤을 추었다. 홍해를 바다 밑, 마른 땅으로 건넌 기막힌 구원을 경험하고서 터져 나온 환호성과 노래, 춤과 악기들의 하모니가 한참을 그렇게 울려 퍼졌다! 아! 이런 예배…. 언제나 가능할까!
-사도 요한은 이런 예배를 감격 가운데 바라보았다.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 받은 온 무리가 보좌 위에 앉으신 어린 양 예수를 찬양하는 그 압도적인 모습을 바라본 것이다. 출애굽의 예배가 주님의 재림에서 완전하게 재현 되는 것이다.
-그 감격을 바라보며 나의 일상에서 이와같은 “하나님께 바치는 노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반응하는 노래, 결코 멈추고 싶지 않은 노래”를 불러야지… 일상에서 하나님 주신 감격에 반응하며 이어 불러야지!
*주님, 하나님으로 부르는 노래가 그치지 않도록 감격과 감동과 은혜 안에 거하겠습니다.
*주님, 홍해 예배와 같이 더온누리의 예배에 은혜를 부어 주십시오! 이런 예배 꼭 드리고 싶습니다!
홍해를 건넜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였다. 애굽의 하찮은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력으로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놀라운 구원을 하나님께서 행하셨다. 애굽 건너편 홍해 바닷가에 서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미리암과 여인들이 부르는 하나님만이 구원 되신다는 고백이 나의 고백, 나의 노래도 되어 주심을 믿는다.
자신들을 뒤쫓아온 애굽 군대가 홍해 속으로 수장 되는 것을 바라보며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 앞에서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감격 속에 부른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하고, 주님이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련다(새번역_2절).” 이렇게 감격의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 구원의 사건이었다. 그렇게 ‘좌불안석’하며 다다른 홍해의 넘실 거리는 파도 앞에서 뒤에서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가 일으키는 성난 모래바람이 큰 두려움으로 백성들을 뒤덮었다.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한 백성들은 아우성 쳤으나 모세는 담담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부여잡고 밤새 몰아치는 세찬 동풍에 몸을 움츠렸다. 마침내 해가 밝고 웅장하게 갈라진 홍해의 마른 바닥을 걸으며 건넜다. 뒤이어 맹렬히 쫓아오던 애굽 군대는 그보다 더 맹렬히 덮치는 홍해의 바다 속으로 영원히 수장 되었다.
하나님은 완전한 구원주 되신다.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은 홍해에서도 구출해 내신다. 전멸 당할 뻔 한 상황에서 온전하게 구원함을 받았으니 모세가 부른 노래는 감격과 감사 그 자체였다. 모세의 노래에 화답하여 미리암과 여인들이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화답하며 부른 노래는 홍해를 건넌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이었음을 고백한다.
“주께서(7,10,12,17절)” 행하신 일들을 꼼꼼하게 고백 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었음을 노래한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다보면 기이하고 신비한 일을 한번 쯤 경험 할 때가 있다. 남들의 간증을 들을 때는 그저 짧은 감탄에 머물지만, 나의 이야기는 다르다! 더 말하고 싶고 놓치지 않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면 그런 법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이야기하고 싶은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코시국이라 하여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이 있을 터인데, 하고싶은 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멈추지 않고 싶은 노래를 언제 불렀는지 가물가물하다… 아… 나의 노래 되시는 하나님이 너무 어색하다…
*요즘 나는 “주 예수 나의 산 소망(living hope)”라는 찬양에 푹 빠져 산다. 부르고 싶고 들려 주고 싶은 이 찬양이 나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감동의 격동을 일으키는 지 모른다.
*노래만 들어도 그런데,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산 역사를 경험하면 어떨까!! 모세의 노래나 미리암의 화답이 결코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모세는 무려 18구절에 걸쳐 홍해에서 구출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구원, 나의 찬송 되심을 노래하는 삶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하다.
*또한 이 노래는 모새나, 미리암만 부른 노래가 아니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1절)”, “미리암과 모든 여인도(20절)” 함께 부른 노래였다. 상상해 보았다. 모세가 시작한 모래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했을 것이다. 만들어진 노래가 없었기에 모세가 외치는 외침에 어쩌면 환호하며 동참했을 수 있다. 미리암은 여기에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며 동참 하고, 여인들도 기쁨의 몸짓으로 함께 했을 것이다.
*공동체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감격하고 감격한 것이다. 모두가 홍해를 건너며 그 기이하고 신비함을 경험했으니 당연하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에 모든 이들이 마음이 들썩거렸다.
*말씀을 들으며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선포되는 말씀에 나의 삶을 대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가 넘치는 예배와 찬양은 인격적인 반응이 당연하게, 자유롭게, 그러나 조화롭게 일어난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여 드리는 건강한 예배일 것이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예배를 드린 것이다. 정해진 형식은 없었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반응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어떤이는 환호로, 어떤이는 눈물로, 어떤이는 춤으로, 어떤이는 악기로 저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였다. 아…. 이런 예배 간절하다! 순서를 따라 엄숙하게 마치 장례식장에 온듯한 그런 예배가 아니라, 자유롭게, 은혜에 반응하나 결코 조화되는 여러 인격적인 반응들이 하나님께 올려 지는 그런 예배… 간절하다!
나는?
-홍해 건넌 직후 인류사 최초로 가장 큰 예배가 드려졌다. 그것은 주최측도, 진행요원도, 행사 안내 순서지도 없는 모두가 인격적으로 자발적으로 반응한 놀라운 예배 였다. 무려 250만의 하나님의 청중들이 홍해 건너 편 바닷가에서 노래하였다. 춤을 추었다. 홍해를 바다 밑, 마른 땅으로 건넌 기막힌 구원을 경험하고서 터져 나온 환호성과 노래, 춤과 악기들의 하모니가 한참을 그렇게 울려 퍼졌다! 아! 이런 예배…. 언제나 가능할까!
-사도 요한은 이런 예배를 감격 가운데 바라보았다.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 받은 온 무리가 보좌 위에 앉으신 어린 양 예수를 찬양하는 그 압도적인 모습을 바라본 것이다. 출애굽의 예배가 주님의 재림에서 완전하게 재현 되는 것이다.
-그 감격을 바라보며 나의 일상에서 이와같은 “하나님께 바치는 노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반응하는 노래, 결코 멈추고 싶지 않은 노래”를 불러야지… 일상에서 하나님 주신 감격에 반응하며 이어 불러야지!
*주님, 하나님으로 부르는 노래가 그치지 않도록 감격과 감동과 은혜 안에 거하겠습니다.
*주님, 홍해 예배와 같이 더온누리의 예배에 은혜를 부어 주십시오! 이런 예배 꼭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