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산다는 것 자체가 거룩함이다 [욥 27:1-23]
 – 2023년 12월 02일
– 2023년 12월 02일 –

욥의 발언이 계속된다. 욥을 정죄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그들의 정죄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자신의 결백을 굳게 선언한다. 그는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마땅한 처벌을 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욥은 하나님의 사심과 자신의 삶을 두고 자기의 결백함을 주장한다. 자신의 맹세가 결코 거짓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 온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또 자기를 정죄하고 대적하는 원수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이 임할 것을 바라며 그 내용을 친구들에게 선포한다. 또한 친구들이 계속해서 지적한 악인의 운명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1. 하나님이 어찌하시든지(2~6절)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당함을 버리셨지만, 자신은 온전함을 끝까지 버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결코 불의를 말하거나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솔직하게 하나님을 자신의 정당함을 물리치고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라고 표현하면서도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이는 자신이 정직한 말을 하고 순전하고 의롭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실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2절에서 하나님은 때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을 허락하시지만, 내 의로움을 알고 계시며 그 억울함을 풀어주실 유일한 재판관이기도 하다. 정직하게 표현하되 굳건하게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3~6절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순전함과 의로움을 주장하여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과 연결하는 욥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친구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숨결이 자기 코에 있는 동안 불의와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이 덮쳐와도 하나님을 더 찾고 가까워져야 한다. 고난이 하나님과 더욱더 가까이하게 해야 한다.

 

 

 

  1. 원수는 악인 같다(7~23절).

욥의 친구들이 원수가 되고 악인이 되었다. 그들이 걱정하고 정죄하는 욥이 아니라 친구들 자신에게 희망이 없는 것이다. 환난 때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으시며, 많은 이익을 거두어도 주께서 그 영혼을 거두시면 무익한 사람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7~23절에서 욥은 자신이 비록 고난을 겪고 있지만, 하나님께 심판받을 자들은 결국 악인들일 것을 굳게 확신한다. 궁궐 같은 악인의 집과 성은 기초가 튼튼하지 않아 쉽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또한 죽음이 갑자기 악인을 채갈 것이며, 그가 영향력을 끼치며 지배하던 모든 영역과 거주지에서 그 흔적이 제거될 것이다. 이 말들은 비록 자신이 고통받고 있으나 악한 자의 종말처럼 파멸되지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로 결국에는 구원받으리라는 소망을 내비치는 것이다. 심판 때 사라져 버릴 이 땅의 보물을 쌓는 데 열심을 내지 말고 영원히 녹슬거나 좀먹지 않는 하늘의 보물을 쌓아두는 데 힘써야 한다.

 

악인들의 호소와 기도는 거절될 것이다. 이제껏 하나님을 신뢰하는 교제와 기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어떤 위로 받지 못하며 오히려 절망적인 상태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악인은 남부러울 필요가 없는 성취를 이룰 수도 있다. 자손은 번성하고 재물은 풍부하고 집은 웅장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않으시고 던져버리실 것이다. 아무리 그 심판의 손에서 달아나려 해도 수치만 당할 것이다. 그분이 작정하시면 모든 게 사라지는 데 단 하루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날이 되면 지금 욥을 조롱하고 수치를 주는 자들이 사람들에게서 조롱당하고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 이것이 악인들의 분깃과 기업이다. 죽음과 파멸뿐인 악인들의 삶이다.

 

 

 

나는?

-고난 가득한 삶이지만, 살아가는 것 자체가 거룩함이다. 고통은 뜻밖의 불청객이다. 고통은 악한 것이며, 극한의 고통은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세계까지 파괴한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사무치는 고독 속에서 자신마저 부정하기 십상이다. 욥이 취한 삶의 태도는 어떤 것이었을까?

 

-욥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빼앗으신 분처럼 보였다(2절). 욥이 줄곧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신학적 범주에 가두고 피도 눈물도 없는 비인격적인 신으로 만드는 친구들의 논리를 인정할 수 없었다.

 

 

-욥이 만난 하나님은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무조건 옳다는 주장은 신학적으로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주장에 갇힌 하나님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때로 무서운 감시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욥은 무섭고 도식화된 하나님을 거부한다.

 

-수학적 신학적인 신을 거부하고 진지한 물음을 던질 때 새로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누군가한테서 듣고 배운 도식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찾아 도와주시고, 소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삶 자체가 거룩함이다. 욥은 자신을 죄인 취급하는 세 친구를 향해 “나의 원수(7절)라고 날을 세운다. 갑자기 찾아온 엄청난 고난 속에 처한 욥에게 친구들은 위로자가 아니라 원수로 느껴졌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확신함으로써 살아남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주었다. 이때 욥처럼 자신의 믿음을 방어함으로 삶의 의미를 확보해야 한다. 삶은 그 자체로 귀한 것이며 특별히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진퇴양난의 순간에 생(生)을 붙드는 자체가 거룩함이다.

 

 

*성경이 말하는 삶의 의지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에게 우정이 느낄 수 없을 때, 당신의 진실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한편, 자신의 독특한 재능과 소명이 있다는 것을 기뻐하고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했다.

 

*포기하지 않고 산다는 것 자체가 거룩함이다. 고난 가득한 삶이지만 살아가는 것 자체가 거룩함이다.

 

 

 

*주님, 산다는 것 자체가 거룩함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산다는 것, 자체가 거룩함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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