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다윗의 행동을 나단을 통하여 심판의 메세지가 선포된다. 나단은 먼저 한 부자의 가난한 사람의 어린 양을 빼앗는 이야기를 다윗에게 들려주고 맹세까지 하며 그 부자를 죽여야 한다고 격분한 다윗에게 그 부자가 바로 다윗이라고 말하면서 여호와의 심판을 전한다.
본문은 다윗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분쟁들의 서론 격이다. 이 분쟁은 선포된 여호와의 심판의 응답이다. 다윗의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칼은 다윗의 아들들인 암논과 압살롬, 아도니야의 죽음임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왕가의 내분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많은 백성의 희생을 초래할 것이다. 압살롬으로 밝혀지는 다윗의 이웃은 다윗의 처들과 공개적으로 동침할 것이다. 압살롬의 반란은 세바의 반란으로 이어지고 이는 이스라엘 왕국의 큰 위기를 불러온다. 밧세바와의 간음으로부터 시작된 죄악에 대해 회개한 다윗을 용서하셨으나 그 죄에 대한 징계는 피할 수 없었다.
1.다윗에게 말씀을 보내시는 하나님(1-6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신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말씀을 보내신다. 이스라엘의 왕 위에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있다. 자신의 권력의 정점에 있다고 착각하는 다윗에게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존재임을 일깨우신다. 자신을 살리기도 혹은 죽일수도 있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이 사실을 듣게 하시려고 선지자를 보내신다. 또, 죄로 인해 이미 멀리 곁나간 다윗이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마음으로 선지자를 보내셨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 하는 피조물임을 일깨우신다.
1절의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는 저자의 기록은 다윗에게 선포될 재앙의 메세지가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들려주실 말씀은 “이야기”이다. 당시 시대는 왕의 모사나 책사들이 왕과 중요한 정세를 논할 때 주로 비유를 활용하여 치열하게 대화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나단이 다윗에게 양과 소가 많은 부자와 암양 한 마리 뿐인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에 다윗이 주의를 기울이고 반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다윗 이미 이야기 속의 부자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임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완악해져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나를 향해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지 않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이다. 사실 다윗에게는 밧세바와의 간음 이후 임신기간과 출산의 적어도 열달이 넘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이 시간 동안 자신이 이 모든 상황을 제어하고 있고 완벽하게 죄는 감추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훨씬 더 밝게 다윗의 모든 행위들을 지켜보고 계셨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후 나단을 보내셔서 다윗이 들어야 할 말씀을 들려 주신다. 진정으로 다윗을 살리기 위한 말씀을 들려 주신다.
2.다윗을 심판하시는 하나님(7-14절)
나단의 이야기 속 부자가 다윗이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새번역_9절),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새번역_10절) 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다윗의 모든 행동에는 “하나님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것,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깃들어 있었다. 하나님은 이 부분을 간과하지 않으셨다. 특히 개역개정에는 “업신여기고(바자_9-10절)”가 두 번 반복하여 기록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무시하다, 가볍게 여기다는 의미가 아니라 “천하게 여기고 비웃으며 경멸했다”는 의미다. 다윗과 밧세바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란 듯이 비웃고 경멸하며 저지른 범죄임을 분명히 하셨다.
한편 다윗이 아무리 세상적으로 훌륭한 업적을 이룬 왕이라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의 왕이다. 그도 역시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해야 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순간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왕의 자리는 무의미해지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지 않는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한 다윗에게 무시무시한 심판이 선고된다. “백주”에 저지른 범죄이기에 “백주”에 수치를 당할 것이다. 다윗이 나단의 고발 앞에 곧바로 회개하여 죽음만은 면하겠지만(13절),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비방 받게 하였으니 그와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잃을 것이다. 다윗의 집안에는 이 죄로 인해 칼(부림)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강력한 경고에 즉시로 회개 했는데 왜 이런 저주가 선포 되었을까? 그것은 회개가 스스로 손쉽게 죄의 용서에 대하여 용납하고 책임회피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다윗은 나단의 이야기 앞에서, 저주의 선언 앞에서 부정하거나, 핑계하거나, 가혹하다고 항의 하지 않는다. 그대로 받아들인다.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용서를 구한다. 본문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시편 51편의 부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바셋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 앞에 깊은 고통의 회개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끊어내지 말아 달라고 울부짖었다.
-다윗은 말씀 앞에 솔직하게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며 깊은 애통의 회개를 드렸다. 죄에 연약한 인생이지만, 회개하는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죽음에 떨어지도록 두지 않으신다. 성경은 이렇게 파렴치한 죄를 저질렀지만, 그 죄로부터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로 돌아온 다윗을 일컬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다.
-한편 나단 선지자의 모습은 요압과 분명한 비교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와 같은 파렴치한 부자가에 분노하며 그를 벌해야 한다는 다윗 앞에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외쳤다. 선지자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라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과연 그럴까?
-오늘날 교회 안에 회개, 죄, 심판 등의 메세지가 사라졌다고들 한다. 평범한 성도들의 죄의 모습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일부 목회자들의 모습을 보면 나단의 외침이 분명 큰 울림이 있다.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은 지금 이스라엘의 최전성기를 열었고, 특히 이스라엘의 원수 블레셋을 완전히 제압한 위대한 왕이다. 그와 같은 절대권세의 왕 다윗의 면전에서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외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윗이 그 이야기에 분노할 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선지자란 그런 사람이다. 권력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언할 수 있고, 그를 향하여 기꺼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절대권력의 부당한 명령서 앞에 아무런 몸부림도 쳐보지 않고 자신과 전장을 함께 누렸던 용사를 죽음의 자리로 함께 동조하여 내 몬 요압과 분명 비교된다.
-나단의 이런 모습은 나에게 큰 도전이 된다. 나단은 죽어서 안겨야 할 하나님의 품만 이야기한 선지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공의와 정의가 지금 이곳에 이루어져야 함을 선포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통치를 피안의 세계로만 한정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이 세상이 곧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임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분이시기에 인간이 죽어서 가는 천국만 강조하며 이 땅에서 드러나야 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이름의 존귀함을 외면하는 것을 거부한다.
-하나님의 뜻은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뜻에 순종하여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필요한 자세가 나단 선지자의 자세다. 지금 내가 이곳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반쪽 믿음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구원의 완성이자 시작이다. 십자가의 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음은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시작됐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 나라 백성은 세상에 속해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통치를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백성은 “말씀”을 따라 사는 존재들인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이 그 사람이오!”라고 외친 나단과 같은 선지자적인 담대함을 나의 목회의 현장에서 오롯이 순종하며 감당해야 하는 것을 외면하면 안 된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지금 이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 졌을 때 다윗처럼 반응하며 그 말씀 따라 회개하여 살아내야 하는 존재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통치 안에 사는 백성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주님, 말씀에 반응하여 회개하고, 죄의 저주를 받아들이는 다윗의 모습이 내 삶의 경고가 됩니다. 말씀을 통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111:1-10]
이 시는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찬양시이다. 구조적으로 72개의 단어로 구성된 이 시의 특징은 할렐루야 이후 마지막 시행까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첫 글자가 시작되는 알파벳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