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위기와 절망을 직면할 때… [삼하 15:24-37]
 – 2022년 10월 14일
– 2022년 10월 14일 –

예루살렘 성을 떠나는 다윗의 뒤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충성스럽게 따른다.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모든 레위인들은 다윗이 가는 곳 어디나 언약궤를 모시고 동행할 태세였다. 언약궤를 통해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했다(24절).

그런데 다윗은 이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려 보낸다(25-26절). 아비아달은 대제사장이었고, 사독은 그가 대제사장일 때 언약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궤를 수종 들었던 아비아달의 부관이었다. 다윗은 그에게 압살롬이 아무리 나쁜 자이어도 언약궤는 해치지 않을 것이라며 성으로 다시 메어 가라 하였다.

이렇게 한 것은 전략적으로 압살롬 무리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 제사장 사독을 예루살렘에 돌려 보낸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독이 적임자였던 것은 그가 선견자였기에 압살롬에게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27-29절, 35절). 그는 성 안에서 압살롬의 정황을 다윗에게 알려 줄 것이다.

그리고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편 감람산을 심히 슬퍼하며 맨발로 오른다. 다윗과 함께 한 백성들도 모두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올랐다(30절). 그때 누군가 반역의 무리에 아히도벨이 있다는 말을 전한다. 다윗은 “주님 부디, 아히도벨의 계획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하여 주시십오(새번역_31절)”라고 기도하였다. 통곡 하며 오르는 감람산은 하나님을 향해 날선 영성이 다시 일깨워지는 길이기도 했다.

그렇게 오른 감람산 꼭대기에는 “아렉 사람 후새”가 슬픔을 못이겨 겉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뒤집어 쓴 채 다윗을 맞는다(32절). 다윗은 그에게 이중 스파이 임무를 준다. 그리고 사독과 아비아달에 무슨 말을 듣든지 전달 하라고 명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아들들인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시켜서 자신에게 말을 전달할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32-36절). 그런데 사무엘서 저자는 이 후새를 “다윗의 친구”라고 기록한다(37절).

피난길에 오른 다윗은 자신이 직면한 곤란한 상황 속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지혜를 동원한다. 그는 어떻게 이 상황을 직면하고 있는가?



1.온전한 신뢰(25-26절)
다윗의 피난길을 묘사하는 구절들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하나님의 궤를 다시 도성 안으로 옮기시오. 내가 주님께 은혜를 입으면, 주님께서 나를 다시 돌려보내 주셔서, 이 궤와 이 궤가 있는 곳을 다시 보게 하실 것이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싫다고 하시면, 오직 주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나에게서 이루시기를 빌 수밖에 없소.”(새번역_25-26절) 이다.

뜻밖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는 기색이 없다. 도리어 더욱 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 그의 신뢰는 하나님의 궤를 에루살렘에 돌려 보내는 모습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비록 피난을 떠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은혜를 주심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언약궤가 있는 성막에서 하나님을 다시 볼 수 있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피난의 상황의 참담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절망감이나 좌절감을 어떻게 공감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와 같은 참담한 상황에서 원망과 포기의 감정이 북받쳐 오를 법 한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을 믿는다.

아…. 다윗의 날 선 영성이 회복 되었다.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역전 시키실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제어하고 계심을 철저하게 신뢰하였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돌려 보내는 행동은 눈에 보이는 궤와 함께 하는 것보다, 그 궤를 통해 확인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에 안전이 달려 있음을 보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굳이 가지고 갈 필요 없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증명하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개인의 안위를 위해 광야로 함께 내어 갈 수는 없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언약궤라는 물건과 함께 있어서가 아니라 언약궤를 통해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신뢰한다는 의미이다. 나 이렇게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있는가?



2.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30절)
“다윗은 올리브 산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는 올라가면서 계속하여 울고, 머리를 가리고 슬퍼하면서, 맨발로 걸어서 갔다. 다윗과 함께 있는 백성들도 모두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언덕으로 올라갔다.”(새번역)

피난 가는 다윗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다. 저자가 굳이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지만, 저자는 우직하게 피난을 떠나는 왕의 모습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세밀하게 그의 모습을 묘사한다.

“머리를 기리고 맨발로 울면서…” 이런 조절과 낙망, 슬픔이 묻어나는 피난길의 묘사가 또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아들 압살롬의 무리들을 피해 도망하는 연약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무책임하고, 무관심했던 자녀들의 문제에 대한 태도들을 깊이 각성하고 회개하고 또 했을 것이다.



3.기도와 치밀한 대응(행동_31절, 32-37절)
12장 이후 다윗에게 간구하는 공식적인 모습이 드디어 등장했다. 암논의 만행에도, 압살롬의 살인에도 그저 분노만 할 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은 것도 문제였지만, 이 과정에서 고뇌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더 안타까웠다.

그런데 드디어 다윗이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이 짤막한 기도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곳이 그가 압살롬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날 때 지은 것으로 알려진 시편 3편의 간구시이다. 시편 3편은 당장의 문제 해결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인도허심을 신뢰하는 굳센 의지의 찬송이었다.

각지의 전령들이 온 이스라엘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돌아섰다는 보고를 들을 때, 다윗은 감람산을 오르며 고백하고 또 고백했다. ‘나를 치려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사람들이 하나님도 나를 돕지 않는다고 빈정댑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소리 높여 부르짖습니다. 사방에 진을 친 자들이 천만 대군이어도 두려워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구원이 주님께만 있습니다!….”(시편 3:1-8)

*진정 놀랍지 않는가!

이렇게 기도한 다윗은 감람산 꼭대기에서 자신을 맞이한 후새에게 전략적 이중 스파이 임무를 맡긴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주신 감동을 따라 놀라우리 만치 침착하게 전략을 풀어낸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절망으로 내몰려도 그 마음을 평온케 하여 주시고 이성은 차갑게 식혀 주셔서 조급하지 않게 대응하도록 지혜의 영을 부어 주신다. 후새에게 이르는 전략 한 마디 한 마디가 훗날 다윗의 위엄을 신하들에게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들이 되었을 것이다.

*위기와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의지하는 이에게는 이와 같은 “폭풍속의 평안함”과 “치밀한 전략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침착함을 허락 하신다.



나는?
-참담했을 피난길이 하나님과 내밀해지는 찬란한 길이 되었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하나님과 교제하고 의지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사울을 피해 광야를 전전할 때 민감하게 하나님께 반응하던 그 영적감각이 감람산을 오르며 회복되어졌다.

-역시 믿음의 세밀한 결은 여전했다. 다만 지난 세월 동안 갈고 닦여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의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과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믿음의 결을 예리하게 세웠다.

-고난과 환난, 절망과 한숨이 믿음을 감추려는 덮개라면, 그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열어진 입과 마음의 통곡에서 오는 눈물은 믿음의 결을 더욱 예리하게 세우는 부싯돌과 같다. “주님 앞에서 통곡하는 눈물을 주님은 외면하실 수 없다.”


*피난길이 절망의 길이 아니라 날선 영성의 회복의 길이 되었고 장차 다윗의 나라도 다시 회복되는 입구가 되었다.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시편 3편) 놀라우리만치 침착하게 압살롬의 난을 평정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한다.

*매우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이 때의 판단이 향후 압살롬의 난을 평정할 중요한 결정이 되었다. 믿음으로 되돌려 보낸 궤로 인해 아비아달, 사독은 압살롬에게 별 의심을 받지 않게 되었고, 압살롬이 예루살렘 성에 도착할 때 성에 들어간 후새도 겉으로 보기에 자연스럽게 압살롬의 무리들을 맞이하는 형세가 되어 그들의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들의 내밀한 통치정보들이 후새와 아비아달과 사독의 아들들을 통해 다윗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 되었다.

*지피지기이면 백전불패라고 했다. 다윗은 압살롬의 내부를 훤히 꿰뚫을 진용이 갖춰졌고, 압살롬은 다윗에 대하여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이 반란은 이 순간 다위에게로 전세가 기울었다.


*이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백성들도, 하나님도 나를 버리신 것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부르짖으며 온전한 신뢰로 나아가는 다윗에게 때를 놓치지 않고 적재적소에 사람들을 배치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나의 능력, 지식과 지혜, 함께 하는 사람들을 꿰고 꿰어서 적재적소에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가 아니면 안 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외면치 않으시고 도울 길을 여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너무도 감격스럽다.



*주님, 상황은 필패인듯 한데, 그 가운데서 필승을 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아비아달, 사독, 그리고 그의 아들들, 후새….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무엇보다 다윗이 하나님께 다시 입을 크게 열었습니다. 입을 크게 여니, 그 위급한 상황에서 지혜의 입술을 열도록 해 주셨습니다. 저도 늘 하나님께 먼저 입을 열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입으로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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