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두 번째 전략을 제안한다. 다급히 도망친 다윗과 끄 무리들을 신속하게 뒤쫓아 다윗만 암살하는 작전이었다. 이 작전의 사안으로 볼 때 자신이 직접 1만 2천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겠다고 이야기 한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작전이 매우 좋은 전략임을 알았지만, 웬일인지 다윗의 부하였던 후새에게 다시 전략을 묻는다. 후새는 도망하는 다윗에게 좀 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자신이 지략을 총동원하여 압살롬이 직접 출정해야하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는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해서 다윗의 무리들을 압도해야 한다고 했다. 압살롬은 결과적으로 후새의 전략을 받아들였다. 압살롬은 왜 그랬을까?
1.주인공은 “나”이어야 한다!(1-3절)
아히도벨이 첫 번째 전략에 연이어 압살롬에게 재촉한 전략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전략이었다. 1-3절까지 아히도벨은 자신의 전략을 소개하는 부분에는 “내가”라는 표현이 각 구절마다 1회씩 표현된다. 총 4회의 “내가”라는 표현속에서 느껴지는 아히도벨의 확고한 전략 수행의지가 돋보인다. 압살롬의 안전을 고려한 듯한 지혜로운 전략이었다.
그런데 압살롬은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확고함이 있는 듯 하다. 11절은 이렇게 언급한다. “그러므로 저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을 임금님에게로 불러모아서,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군인을, 임금님께서 친히 거느리고 싸움터로 나가시는 것입니다.”(새번역) 이 구절에서 “임금님에게로…. 임금님께서”라는 표현을 통해 압살롬의 허영심과 교만을 자극한다. 역시나 허영심과 교만이 풍성한 그는 “탁월한” 아히도벨의 계략은 외면하고 자신이 한껏 드러날 수 있는 후새의 무모한 계획에 적극 동참한다.
2.하나님의 계획(14절)
압살롬에게는 다윗도 인정한 지혜로운 모사 ‘아히도벨’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되었다. 다윗은 피난길에 아히도벨도 압살롬에게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삼하 15:31). 과연 이 기도대로 하나님께서는 압살롬을 심판하시려고 움직이신 것이다.
압살롬의 마음 속의 깊은 욕망, 다윗을 넘어서려는 욕구에 지혜로운 전략보다 듣기 좋은 전략, 그러나 한 없이 무모한 전략을 선택하게 하신 것이다. 결국 실패는 자신의 욕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돌보는 이는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자신이 좋아하는 말을 취하기보다 지혜로운 이들의 지혜를 받아들인다. 스스로 자충수에 빠지지 않도록 들을 귀를 주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당부하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는 당부를 소홀히 여겨서는 곤란하다.
*내가 원하는 그림을 가득 그려놓고 그대로 이루어 주실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삶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의 마음과 선한 뜻을 분별하며 그 가치를 따라살아내기 위해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 하얀 도화지를 놓고서 주님께서 깨우쳐 주시는 대로 스케치부터 시작하자… 이미 채색까지 끝난 그림대로 이루어 달라고 알라딘의 램프처럼 하나님 앞에 서면 안 된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아직 온 이스라엘에 새로운 왕조의 체계를 입히기도 전에 이미 오랫동안 왕좌를 이어온 듯한 무모한 결정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아히도벨의 현실적이고 지혜러운 전략은 자신의 체면과 맞지 않다고 여길 정도로 그의 마음은 교만해져 있었다.
*이런 압살롬의 모습이 오늘날 나에게 숱하게 스쳐간다. 그래서 착찹하다.
*주님, 마음 속 깊은 곳의 욕망이 무모한 전략을 선택하게 했음을 봅니다. 나의 욕망이 아닌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지혜를 듣겠습니다.
*주님, 결국 말씀대로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 되었습니다. 기억하여 늘 주의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111:1-10]
이 시는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찬양시이다. 구조적으로 72개의 단어로 구성된 이 시의 특징은 할렐루야 이후 마지막 시행까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첫 글자가 시작되는 알파벳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