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옛 언약은 파기되고 영원한 새 언약이! [렘 31:23-40]
 – 2024년 07월 12일
– 2024년 07월 12일 –
유배지에서 귀환과 땅의 축복은 여호와께서 세우신 구원 계획의 일부였다. 여호와께서는 그 이상을 준비하신다. 언약을 지키지 못해 징벌받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누구나 여호와를 알 수 있도록 그분의 법을 각 사람의 마음에 기록해 주실 것이다. 22절까지는 에브라임의 구원을 중심으로 말한다면, 본문은 유다의 회복을 중심으로 서술한다(23~26절). 이어서 27절 이하는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을 서술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서술을 통합하는 시도를 보인다. 이로써 예레미야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 모두의 회복을 선언한다. 이어서 “새 언약”의 약속이 등장하는데, 그런 이유로 예레미야 31장은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본문 중 하나가 되었다.
    
새 언약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시내산에서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배반이 초래한 심판으로 파기됐다. 여호와께서는 언약 파기의 문제를 시내산 언약의 갱신이 아니라 새 언약으로 해결하신다. 여호와께서 유배에서 돌아오게 한 구원 공동체와 맺으시는 “새 언약”은 세 가지 점에서 시내산 언약과 구별된다. 첫째, 이혼이 가능한 부부관계와 유사한 시내산 언약과 달리 새 언약은 파기될 수 없는 언약이다. 조건이 없기에 언약을 위반한 백성에게 조건 없는 용서가 선포된다. 둘째, 그 규정이 돌비에 기록된 옛 언약과 달리 새 언약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법을 사람의 마음에 기록해 주신다. 여호와의 법이 내면화되기에 이스라엘은 그분의 법을 준수하며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스라엘은 불순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셋째, 여호와의 법이 각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내면화되기에 그분을 알기 위해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여호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러므로 구원 공동체의 각 구성원이 여호와와 내밀하고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1. 유다의 회복과 심판의 극복(23~30절)
15~20절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 멸망한 북 왕국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주어진 말씀이었지만, 23~26절은 주전 587년 바벨론에 멸망한 유다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심판을 받고 유배 갔던 유다의 운명을 여호와께서 되돌리실 것이다. 돌아온 유다 유배민들은 여호와의 축복 가운데 시온에서 풍족하고도 평화롭게 살게 될 것이다. 24~25절은 12~14절에서 시온에 주어진 축복의 약속이 유다로 확대되고 있다. 시온을 중심으로 “유다와 그 모든 성읍(성읍에 거주하는 자들)”과 농부와 목자들이 함께 사이좋게 지낸다. “지친 자들(피곤한 심령)”이 물을 마음껏 마시고 “허약해진 자들(연약한 심령)”이 모두 배불리 먹는다. 저주 아래 놓였던 땅이 여호와께서 복을 내리시는 의롭고 거룩한 땅이 된다. 26절의 예레미야가 잠에서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다”라는 표현은 걱정 근심이 없는 평안한 삶의 표상이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구원은 먼 미래에 있을 사건이지만, 예레미야는 이를 이미 맛보고 있었다. 유배민들의 구원과 회복의 약속은 예레미야의 단잠 안에서 벌써 현재화하고 있는 말씀이었다.
    
유배에서 돌아오는 것은 회복의 시작에 불과하다. 전쟁과 멸망보다 더 힘겨운 것은 그 이후의 생존이었다. 파괴된 고향에 남은 자들은 황폐해진 땅을 일구며 힘겹게 생존을 이어가지만, 일상이 된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폭력과 약탈의 절망적인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이 모두 파괴되었기에 아이들이 태어나더라도 살아남지를 못했다. 백성의 수는 계속 줄어들어 민족의 유지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사라지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주신 미래 구원의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현실은 너무 절망적으로 보였지만, 이는 이스라엘의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여호와께서 개입하시면 그냥 극복될 수 있는 절망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시”를 뿌려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다시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생명을 끊으셨던 여호와께서 사람과 짐승의 생명력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 주거지에는 사람이, 숲에는 짐승이 다시 많아진다. 29~30절은 죄책의 문제에 대한 답이다. 조상의 잘못으로 나라가 멸망했는데, 왜 그 멸망에 관여한 적이 없는 후손이 유배살이해야 하는가? 예레미야는 여러 사변적인 설명을 거절하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볼 것을 권면한다. 구원 시대에 각 개인은 자기 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것이다.
    
    
    
2. 새 언약(31~34절)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 백성의 불순종이 의지적이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들에게는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할 능력도 없음을 확인해 준다. 여호와의 용서와 은혜로 시내산 언약이 갱신된다고 해도, 이를 준수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본문은 이와 같은 당혹스러운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여호와께서 계획하신 언약은 출애굽의 조상들과 맺은 시내산 언약의 갱신이 아니라, “새 언약”이다(31절). 조건적인 시내산 언약은 불순종으로 좌초됐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남편이셨음에도 이스라엘은 남편 여호와를 떠나 가나안에서 알게 된 바알을 쫓았다(32절). 이로써 이스라엘이 결혼 언약의 의무를 지속해서 무시함으로 여호와의 결혼 관계가 파탄이 났다.
    
새 언약에서는 시내산 언약의 경우처럼 의무 규정이 돌비(신 9:9~16)에 새겨지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법(가르침)을 각자의 가슴 속에 넣어주시고 각자의 마음에 주신다(33절). 새 언약이나 시내산 언약이나 법이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새 언약은 법을 준수할 수 있는 필요조건마저 여호와께서 마련해 주셨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호와의 의지를 경험하게 된다. 마음이 여호와의 법을 기록하는 장소가 되기에 여호와의 법을 잊거나 무시하지 않게 되고, 여호와의 법을 잊거나 무시하지 않기에 언약 관계가 파기되지 않고 영원히 유지된다. 물론 새 언약도 시내산 언약처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를 목표로 한다. 또한 각 사람의 마음에 여호와의 법이 각인돼 있기에 다른 사람에게서 그분의 법을 배울 필요가 없게 된다. 시내산 언약 시대에는 비천한 자나 지도자나 여호와의 길과 하나님의 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는데(렘 5:4~5), 새 언약 시대에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모두 여호와를 알기에 “너는 여호와를 알라”하고 가르치지 않는다. 새 언약은 여호와께서 일방적으로 죄의 용서를 선언하시고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맺으신다.
    
    
    
3. 여호와의 구원 의지(35~40절)
35~37절은 여호와의 새 백성에 대한 구원 약속(의지)을 잘 드러낸다. 구원 약속은 여호와께서 하신 약속이기에 어떤 경우에도 되돌려지지 않는다. 창조 질서가 여호와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 앞에서 언제까지나 한 민족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여호와께서 지으신 하늘과 땅을 측량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행위를 살펴보시고 진멸하시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전에는 행위의 악함 때문에 이스라엘을 버리셨지만, 앞으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38~40절은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언급한다. 새 언약(31~34절)과 새 백성(35~37절)의 약속이 새 예루살렘(38~40절)에서 정점에 달한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이 “여호와를 위하여 재건”되고, 여호와의 성으로서의 특별한 지위가 재건된 성에 주어진다. 지리적 언급이 일부 불분명하지만, 아마도 북쪽(하나넬 망대)에서 서쪽(모퉁이 문)을 거쳐 남쪽(가렙 언덕_힌놈 계곡의 북동쪽)을 지나 동쪽(고아_힌놈 계곡의 북쪽, 기드론 계곡 서쪽) 방향으로 기술된다. 특히 예루살렘 서쪽과 남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는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로 불리며 어린아이의 희생 제사가 드려졌던 도벳 사당이 있었다.
    
이와 같은 도시였지만, 새 언약의 예루살렘은 “여호와를 위하여” 새롭게 건축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은 회복을 약속하신다. 유다를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때에 그들은 “의로운 처소요,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전이 있는 시온을 향해 축복할 것이다. 여호와를 위하여 예루살렘도 재건되어 영원히 뽑히지도 않고 전복되지도 않을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가 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저주를 거두시고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실 것이니” 유다 고을마다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고 모두 예전의 평안과 번영을 누릴 것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까지도 열정적으로 심판하셨던 하나님(렘 7:20; 21:6)께서 바로 그 열정으로 뽑고 파괴하여 넘어뜨렸던 것을 다시 세우고, 심으실 것이다(렘 1:10). 심판이 혹독했던 만큼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지독할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지독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회복시키신 하나님은 새 언약으로 온전한 관계를 주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맺은 옛 언약을 파기하였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새 언약을 다시 세워 시작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백성의 마음에 기록하여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다 알게 하실 것이다. 무엇보다도 조건 없이 죄 사함의 사랑을 베푸심으로써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을 부리던 백성(8:10)을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들로 새로 지으실 것이다. 어떤 처벌로도 죄를 만족시킬 수 없고 사람을 바꿀 수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와 형벌의 악순환을 깨뜨리시는 무조건적인 용서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하나님은 온전한 나라로 회복시켜 주신다.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자연과 맺은 “언약(규정)”에 신실하여(창 8:22) 혼돈의 세력을 제압하시고 이 세상이 조화롭고 질서정연하게 유지되게 하신다. 그런 하나님이시니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도 신실하여 꼭 이스라엘을 영원한 나라로 세우실 것이다. 아무도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새롭게 지어가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과 지혜를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결심과 의지도 꺾지 못한다.
    
    
*예레미야는 자기 생전에는 보지 못할, 먼 훗날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마치 단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마음이 상쾌했다(26절). 아직 성전이 파괴된 채로 남아 있지만, 선지자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회복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세상의 각종 부조리함에 분노로 살아가는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바라보면 이런 분노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 언약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과 달리 각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친히 새기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새 언약의 백성은 여호와의 뜻을 스스로 알아 순종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31~34절). 이는 성령께서 친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이다(요 16:13). 성경을 바르게 잘 가르치는 교사가 없어서 답답한가? 성령께 도움을 구하면 그가 친히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나는 성경을 읽기 전에 성령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고 있는가?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께 귀 기울이며 깨닫기까지 애쓰는 것이 곧 묵상이다.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통치하신다. 이 구절은 새 예루살렘의 재건을 가리킨다. 그 성에는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거하실 것이다. “하나넬 망대”에서 “모퉁이 문”까지 건축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예루살렘 성 전체를 건축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렇게 성의 윤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고백하는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하게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구하고 누리고 있는가?
    
    
    
*주님, 온전한 회복이 모든 영역에서 선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들은 예레미야가 꿀잠을 자고 일어난 듯 상쾌한 마음을 오랜만에 누리는 것을 봅니다. 막막하고 좌절된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회복 약속이 답답한 순간을 시원케 하시는 단비와 같은 은혜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말씀의 약속이 나의 마음과 영혼을 상쾌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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