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재앙을 내린 것 같이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렘 32:36-44]
 – 2024년 07월 16일
– 2024년 07월 16일 –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손에 넘겨지는 파국적인 재앙의 신학적 원인을 알려주신 후, 여호와께서 그 이후에 있을 구원을 약속해주신다. 멸망의 원인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 없이는 새로운 출발도 없다. 우상숭배의 필연적인 결과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임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의 약속은 예레미야의 탄식에 대한 본격적인 답변으로 ‘유배민의 귀향과 영원한 언약과 축복’을 약속하는 36~42절의 단락과 ‘유다 온 땅에서 밭이 다시 매매 될 것’을 약속하는 43~44절의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단락들은 “너희가 말하기를(말한바)”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예레미야 개인의 탄식 기도(16절)에 대한 응답으로 주신 말씀이기에(26절) 2인칭 단수인 “너”가 사용돼야 하지만, 36절과 43절의 인용문을 제외한 모든 문장에서 고발과 심판의 대상 혹은 구원의 대상은 언제나 3인칭 복수 “그들”이 사용되었다. 이는 예레미야의 개인적인 탄식이 여호와에 의해 공동체(너희)의 탄식으로 수용된 것이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 공동체를 지향하기에 36절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했다.
 
정리하자면, 심판 이후를 내다보는 예레미야의 탄식과 간구는 공동체를 대신하여 드려진 것으로 여호와께서는 이 기도에 대한 답변을 예레미야뿐 아니라 멸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들려주신 것이다. 
 
 
 
1. 구원의 약속(36~42절)
36절을 시작하면서 개역 개정은 “그러나”로 번역했지만, 원문을 직역하면 “그러므로 이제”이다. 원문 문장 구조에 따르면 심판(28~29절)과 고발(30~35절)로 이뤄진 첫 번째 말씀도 “그러므로”로 시작한다. 다만 36절에서는 “이제”가 더 추가된다. 심판의 말씀과 구원의 말씀이 모두 27절의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에 걸리는데, 무게중심이 구원에 더 가깝다.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상숭배의 늪에 빠진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손에 넘겨 징벌하시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처음부터 심판 이후의 회복을 내다본다는 것이다.
 
큰 진노로 민족들 가운데로 쫓아 보냈던 여호와께서 이들을 다시 모든 나라에서 모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하게 살게 하실 것이다(38절).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신 분께서 이제는 구원자로 함께 하신다. 당시 고대 세계관에 따르면 한 민족의 멸망은 그 민족이 섬기는 신의 패배를 의미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예루살렘의 함락과 포로 유배는 여호와의 징벌적 진노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이와 같은 일을 신학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바벨론의 손에 넘겨주시고 당신 백성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음은 다른 한편으로는 출애굽 이후 계속돼온 언약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파기된 언약 관계의 회복 없이는 구원도 없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던 것처럼, 민족들 가운데서 유배살이를 하는 자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그 언약 관계를 회복하신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 이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들은 그분의 백성이 된다(38절). 그리고 이 언약관계가 다시 파탄에 직면하는 일이 없도록 언약을 지킬 수 있는 길도 마련해 주신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우상을 겸하여 섬기다가 심판을 받았다. 다시는 이렇게 우상에게 한눈팔지 않고 하나님만 섬길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유배민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신다(39절). “한 마음”은 나누이지 않는 마음을 가리킨다. 즉, 우상 숭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신다는 의미다. “한 길”도 의미상 다르지 않다. 혼합주의에 빠진 자들은 열심히 우상을 찾아다니다가 환난을 당하면 또 여호와를 찾아와서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두 마음을 품거나 곁길로 빠지지 않고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서 자녀뿐만 아니라 후손까지도 복을 받는다. 그리고 새롭게 맺게 될 이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 쌍무적이었던 시내산 언약과 달리 여호와께서 일방적으로 의무를 지시기에 언약은 파기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등을 돌리지 않고 그들이 잘되게 해주시고 또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그들의 마음에 경외심을 주신다(40절).
 
이렇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언약 안에서 살아 갈 수 있도록 모든 필요조건을 충족시켜 주신다. 언약의 파기가 초래한 저주의 시대가 끝나고 언약의 회복과 함께 축복의 시대가 전개된다. 여호와께서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가나안에 심으신다(41절). 이스라엘이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당신을 섬기도록 여호와께서 직접 본을 보여 주신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등을 돌리지 않으시듯, 이스라엘은 여호와에게서 돌아서지 말아야 하고(40절), 여호와께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이스라엘을 돌보듯이 이스라엘은 온 마음과 장성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
 
42절은 37절의 경우처럼 심판과 구원을 하나의 연속된 사건으로 언급한다.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보내었던” 여호와께서 이들을 유배지에서 다시 고토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하시고, “이 백성에게 이 (모든) 큰 재앙(16:10)을 내리신 그분께서 이제는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신다.
 
 
 
2. 유다의 재건(43~44절)
43~44절은 처음의 표적 행위(7~15절)로 돌아간다. 이 땅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겨졌다(25절과 36절에서는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 또는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졌다)고 말한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곧 유다의 멸망이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는 땅의 매매 행위가 강조된다. 짐승마저 살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된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밭을 사고파는 일이 재개된다(43절). 사람들이 돈을 주고 밭을 사고 계약서에 서명하고 봉인하고 증인을 세운다(44절).
 
베냐민 땅은 예루살렘 북쪽 지역을, 예루살렘 사방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사방 지역을, 유다 성읍들은 방어시설이 갖춰진 유다의 주요 성읍들을, 산지는 예루살렘 남쪽의 유다 산지를, 저지대는 유다 산지와 해안 평야 사이의 완만한 구릉 지대를, 네겝은 유다 산지 남쪽의 광야지대를 가리킨다. 이로 보면 “이 땅”의 범위가 유다로 한정되고, 북 이스라엘은 제외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언약하신 대로 불순종의 대가로 각종 재앙을 허락하시겠지만(신 28:15~68),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뜻까지 포기하신 것은 아니었다(36~37절). 심판은 이 백성을 새롭게 창조하시기 위한 방편이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롭게 창조하시기 위해 먼저 그들이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한다(신 30:1~5).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약속 철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심판도 약속의 일부이며 약속을 이뤄가는 과정이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노여움과 분노로,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심판하셨지만, 우상 숭배자 아브람을 아무 조건 없이 선택하여 언약을 맺어 복의 근원이 되도록 기회를 주셨듯이 아무 자격도 없는 포로들에게 새 언약의 은혜를 베풀어 안전하게 돌아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실 것이다. 심판이 은혜의 일부임을 아는 자들이 회개하여 그 은혜의 관계에 참여할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시 돌아온 백성과 새 언약을 맺으셔서 그들 속에 새 마음과 도(말씀)와 영(겔 37:26~27)을 주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 삼으신다(38~41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을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말씀을 지킬 수 있게 하심으로 이 약속을 궁극적으로 성취하셨다(요 14:15~17).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복을 누리게 하셨다(엡 1:3~6). 
 
-심판은 기대를 버린 표현이 아니라 기대를 거는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셨기에 매를 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시 부르신 백성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니 그 백성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마음과 정성을 다해 언약을 지키실 것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 되고 우리 자신과 자손들에게 복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구든 하나님께서 친히 보살펴주시고 챙겨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마음과 정성을 다해” 우리를 빚으신다. 그 손길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한 사랑으로 화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라가 거의 망해 가는데도 조카의 토지를 사라고 하신 이유는 패역한 유다는 멸망하겠지만, 다시 회복되어 정상적인 토지 매매가 이루어질 날이 올 곳이기 때문이다(43~44절). 하지만 토지를 매매한 행위가 단지 정치, 경제적인 이스라엘의 회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란 현실의 어두운 밤 속에서 확신과 신뢰로 새벽을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땅만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향한 소망을 산 것이다.
 
-하나님의 복 주시려는 마음, 생명을 생명답게 존재케 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은 한순간도 변한 적 없으시다. 이 모든 재앙을 내리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복도 주실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이나 짐승이 살수 없을 만큼 황무지가 된 땅에 다시 사람들이 북적일 것이다. 예레미야의 토지 매매 행위는 사람들이 다시 밭을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인봉하고 증인을 세워 밭의 소유권을 분명히 할 날이 올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앙만 놓지 않는다면, 눈 앞에 펼쳐진 폐허의 공간이 풍요의 공간으로, 죽음의 공간이 생명이 약동하는 공간으로 변할 것이다. 실패는 기대한 만큼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기대를 접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41절)”,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42절)”, “내가 그들의 포로를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4절)” 연이어 확고하게 선언하며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심판의 가혹한 현실 속에서 소망이 된다. 힘들고 지치게 하는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약속의 말씀이 나를 더욱 굳건하게 세워주실 것을 확신하게 한다. 말씀이 힘이다!
 
 
*새 언약을 주시는 하나님의 확고한 마음이 잘 드러난다. 39~42절까지 “복을 위하여, 복을 주기 위하여, 복을 주되, 모든 복을 내리리라”와 같이 “복(토브(39, 41, 42), 야타브(40)”이 반복되어 사용된다. 또한 이 복을 누리기 위한 백성들의 태도와 관련하여 “경외(야레)”라는 표현도 39절과 40절에 연이어 강조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여 복을 주시기 위해 “한 마음과 한길(한결같은 마음과 삶)”, “경외함을 마음에 두심”, “나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 심으리라(뿌리를 굳게 내리고 살게 하겠다)”와 같은 은혜를 베푸신다.
 
*이렇게 하셔서 우리에게 베푸신 복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다. 예레미야는 조카 하나멜의 땅을 매매한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게 하신 이 땅에 완전하게 일상이 회복될 것을 땅을 매매하는 것이 유다의 전 지역(44절)에서 회복될 것을 예고한 것이다.
 
*하나님은 일상의 삶의 행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야 말로 최고의 은총이다. 하나님이 이 은총을 주시는 것이다.
 
 
 
 
 
*주님, 심판의 고통이 지나야 구원과 회복의 때가 오리라는 것을 바라봅니다. 지금 내가 걷는 길에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의 인내로 주님과 늘 동행하겠습니다.
*주님, 말씀이 힘인 것을 선명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서 찾습니다. 나의 힘이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바라봅니다. 일상의 행복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확인합니다. 오늘이라는 일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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