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함락은 심판의 정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서막이기도 했다.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에 걸린 예루살렘을 갈대아인들의 손에 넘겨 엄중하게 징벌하신 여호와께서 병을 치료해 낫게 해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1~3절)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였다(1절). 32:1~2에 따르면 유다 왕 시드기야의 열째 해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예레미야는 왕궁의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다. “두 번째”는 기도에 대한 두 번째 응답을 의미한다. 땅을 매매하는 표적 행위 이후에 예레미야가 여호와께 기도하고(32:16~25), 여호와께서 그것에 대한 응답을 주셨다(32:26~44).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두 번째 응답을 주신 것이다.
바벨론에게 포위된 채 멸망의 순간을 기다리는 백성에게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뜻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크고 은밀한” 미래를 계획해 놓으셨고, 우리가 부르짖으면 그 일을 알려주고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3절은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말씀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우리)가 당신을 부르면 그에게 응답하실 뿐 아니라 그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도 그에게 말해줄 것을 약속하신다(3절). 예레미야는 이미 32장에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그에게서 응답받았다. 그럼에도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직역_너는 나를 부르라).”라는 명령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기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실 준비가 되셨음을, 곧 심판의 시대가 끝나고 구원의 시대가 밝아옴을 전제한다.
2.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과 구원(4~9절)
4~5절은 예루살렘 성의 파괴와 죽음에 관해 서술한다. 바벨론 군대가 성 주변에 공성 축대를 쌓고 공격하자 포위당한 예루살렘 사람들은 성벽과 인접해 있던 집들을 허물어 병사가 주둔하는 공간과 병력을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공간과 통로를 확보한다. 거기에서 나온 돌은 성벽을 보강하는 건축자재나 무기로 사용했다. 이렇게 성을 방어하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를 하지만, 여호와께서 갈대아인들의 편에서 “노여움과 분함”으로 성을 공격하시기에 전혀 무익한 것이었다(5절). 예루살렘 사람들은 승리를 기대하며 싸우지만, 실상은 자기 파멸적 싸움이다. 허문 집들을 사람들의 시체로 채우려고 싸우는 것과 같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서 얼굴을 숨기셨기에 패배와 죽음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그들의 모든 악행” 때문이었다.
6~9절은 예루살렘 성의 치유와 영광을 선포한다.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절망과 죽음에서 소망과 생명으로 바뀐다. 심판(4~5절)이 끝나고 구원의 약속이 선포된다. “노여움과 분함으로” 예루살렘을 치셨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건강과 치유를 가져다주실 것을, 예루살렘 주민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평안과 진실을 보여주실 것을 약속하신다(6절). 여호와께서 의사가 되셔서 죽음에 이르는 불치의 병에 걸린 예루살렘을 치료해 낫게 하시고 “평화와 안정(평안과 진실)”을 풍성하게 경험하게 하신다.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멸망한 예루살렘이 외부의 위협과 폭력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게 된다. 이 약속을 7~9절을 통해 구체화한다.
첫째, 유다와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리신다(7a절). 심판 시대를 끝내시고 구원 시대의 문을 열어주신다.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케 함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한가지였기에 이스라엘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
둘째, 그들을 “처음과같이” 다시 세우신다(7b절). 이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떠났고, 땅은 주민도 짐승도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다. 하나님 백성이 생존의 위험에 처하지만, 여호와께서 그들을 번성하게 하여 수가 줄어들지 않게 하신다.
셋째, 모든 죄악에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용서해 주신다(8절). 무거운 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과거에 범한 죄악의 굴레로부터 온전하게 해방해 주신다. 용서는 여호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새 언약의 약속에 속하기도 한다.
넷째,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 앞에서 “기쁜 이름과 찬송과 영광”이 되게 하신다(9a절). 그들의 모든 악행 때문에(5절) 민족들에게 저주의 대상이 된 예루살렘이(26:6) 다시 민족들 가운데 높임을 받는다.
다섯째, 민족들이 보고 두려워 떨 정도로 예루살렘 주민에게 “모든 복”을 베푸신다(9b절). 여호와의 “노여움과 분함”의 대상이었던 예루살렘이 축복의 대상이 된다. “민족들이 두려워 떪”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조롱하던 민족들이 폐허가 된 도성을 “기쁜 이름과 찬송과 영광”의 대상으로 만드시는 여호와의 큰 능력을 보고 두려워 떤다는 의미다.
3. 유다와 예루살렘의 번성(10~13절)
예루살렘과 유다가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라고 탄식하는 “너희”에게 주신 말씀으로 10~11절은 “사람도 없고”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고, 12~13절은 “짐승도 없다”에 대한 답변이다. 또한 9절의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절망과 탄식 소리만 들리는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가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로 가득 찬다(11절). 사라졌던 축제와 결혼 잔치가 돌아오고,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경험한 자들의 감사제로 성전도 기쁨을 되찾는다.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삶도 “처음과같이(7절)” 다 회복되어 즐거움과 기쁨 안에서 하나가 된다.
짐승도 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하여졌던 예루살렘과 유다에 다시 생명이 자라난다. “산지 성읍들과 평지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면과 유다 성읍들에” 목자들이 양 떼를 쉬게 할 목장이 다시 생긴다(12~13절). 눈으로 세지 못하고 손으로 하나하나 세야 할 정도로 양들이 불어난다.
나는?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 의해 감금된 상태에서도 하나님께서만 열어가실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장래를 바라본다. 그의 생애에 가장 위태로운 때,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밑바닥에서, 유례없는 크고 영광스러운 일을 본다. 겉으로 보기에 예레미야가 갇히고 백성들이 자유롭게 보이지만,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소유한 예레미야였다. 하나님이 주인으로 계신 시간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바벨론에 둘러싸인 예루살렘과 다름없는 인생이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을 거부하고 갈대아와 싸운 자들은 예루살렘이 무너질 때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해가 없는 세상에 생명을 기대할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 자비의 얼굴을 가렸을 때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은 없다. 그러나 평안과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심판을 마땅한 것으로 인정하고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결국엔 고쳐주시고 처음처럼 회복하실 것이다. 나아가 더 나은 백성으로 빚어서 더 나은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죄악을 용서하시고 다시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며, 열국 앞에서 수치와 조롱의 대상이었던 예루살렘을 찬송과 영광의 도시가 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받는 복과 샬롬을 보면서 열국은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
-주의 심판으로 사람도 떠나고 짐승도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되었다. 결혼 잔치의 기쁨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사라졌다. 하지만 주께서 돌아오시는 날, 도시의 거리와 가정에 다시 ‘처음처럼’ 즐거워하는 소리, 찬양의 소리, 감사제를 드리는 소리가 흘러나오게 하실 것이다. 텅 빈 초장엔 다시 양들과 목자들이 가득할 것이다. 주의 영광이 돌아올 때 우리 삶에 참 생명도 돌아오는 것이다.
*뜰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회복의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심으로 위로하신다(1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기쁨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다가 고난을 겪는 선지자를 챙기신다. 주를 위해 핍박받는 자리에 주님께서 주의 말씀으로 위로하여 주신다. 이 얼마나 감사한가!
*일을 행하시고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뜰에 갇힌 예레미야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이루실 것이다(2~3절). 종말을 사는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새로운 창조가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완전한 회복과 안식이 완성될 날을 기대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이다. 시위대 뜰 기둥에 묶여 무너져가는 예루살렘 성과 함께 무너져가던 예레미야에게 건네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다.
*포로였던 자기 백성을 치료하여 낫게 하시고, 시체로 가득 찼던 성에 평화와 안전을 주실 것이다.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께 수치와 오욕을 안겨주었던 이름 이스라엘이 기쁨의 이름이 될 것이다. 이 백성에게 베푸신 모든 복과 평안을 보고 이방인들이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 이 백성에게 베푸신 모든 복과 평안을 보고 이방인들이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6~9절). 이것은 이미 부분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리고 예수님의 초림으로 성취됐지만, 궁극적으로 주의 재림 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취된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면 세상의 염려로 황폐하신 우리 마음과 정신을 치유하실 것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이름을 버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될 것이다.
*적막하고 황폐했던 성읍에 다시 찬양과 기쁨과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소리가 가득하게 하실 것이다. 양과 목자가 있는 풍성한 초장으로 바뀔 것이다. 내가 거하는 곳이 목자되신 주님이 거하실 초장이 되고 나는 양이 되어 주의 음성을 따라 걷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에게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베풀고 계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는 하나님께서 깨어진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난 날처럼, 처음처럼” 되돌리기 위한 곳이다. 하나님을 신뢰하여 말씀의 힘으로 살아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는 곳이다. 깨어진 세상에서 우리 더온누리교회가 이 은혜가 더욱 역동하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이 땅에 보이신 것이 교회이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충만한 교회이기를 소망한다.
*주님, 심판 받는 예루살렘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회복의 약속을 선포해 주시는 사랑을 기억하겠습니다. 내게 부르짖으라는 주님의 마음을 붙잡고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일을 만드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이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