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렘 35:1-19]
 – 2024년 07월 21일
– 2024년 07월 21일 –
레갑 사람들의 순종과 대비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불순종을 고발한다. 레갑 사람들은 수백 년이 지나도록 조상의 명령을 지켜왔는데, 여호와 백성을 자랑하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분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본문은 27, 28, 32장의 경우와 같이 표적행위에 대한 보고이다. 표적행위는 일반적으로 “여호와의 명령과 예언자에 의한 명령의 실행, 그리고 여호와의 표적행위에 대한 해석”으로 구성된다. 이에 따르면 2절이 여호와의 명령이고, 3~11절이 예레미야에 의한 표적행위의 실행보고이고, 13~19절이 여호와에 의한 표적행위의 해석이다. 본문의 구조가 레갑 사람들의 표적행위가 주로 대화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해석의 초점이 레갑 사람들의 순종(18~19절)보다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불순종(11~17절)에 맞춰졌다는 점이다. 즉, 레갑 사람들의 순종을 배경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불순종을 고발하고 이등ㄹ에게 심판을 선포하고 있다.
 
표적행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레갑 사람들을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는 행위(2절과 5절)는 유혹이나 시험이 아니다. 레갑 사람들이 지금까지 마시지 않은 것을 전제한 요청이다.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불순종도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레갑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순종해왔던 것처럼,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불순종해왔다.
 
 
 
1. 34장과 35장의 관계
34장과 35장은 아무 관련 없이, 우연히 자리를 함께한 것처럼 보인다. 34장의 시대적 배경은 시드기야 통치 후반이고, 35장의 시대적 배경은 여호야김 시대 후반이다. 레갑 사람들의 시대를 뛰어넘는 순종을 보고하는 35장은 34장과 대비하여 읽도록 배치한 것이다. 레갑 사람들의 순종에 비춰 유다와 예루살렘의 불순종을 고발하는 35장은 34장의 배경 역할을 한다. 34장이 “불순종과 저주”가 주제라면, 35장은 “순종과 축복”이다. 불순종이 심판과 저주를 초래하고, 순종은 구원과 축복으로 응답받는다.
 
레갑 사람들의 순종 이야기는 시드기야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불순종을 더욱 더 부정적으로 돋보이게 만든다. 레갑 사람들은 조상 요나답의 명령, 곧 사람의 명령을 수 백년간 지켜왔는데, 예루살렘과 유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무시해왔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들이 그분의 명령을 사람의 명령보다도 더 하찮게 여긴다.
 
 
 
2. 레갑 사람들의 순종적 삶(1~11절)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때를 막연히 “유다의 욕시아 왕의 아들 여호야김 때(1절)”로 밝힌다. 말씀이 여호야김과 직접 연관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11절에서 더 정확한 배경을 살펴볼 수 있는데,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의 위험을 피해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살게 되었다고 밝힌다. 이는 열왕기하 24:1~2과 관련딘 사건이다. 주전 601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애굽 원정을 떠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간다. 이를 바벨론의 패배로 오인한 여호야김은 느부갓네살에게 바치던 조공을 중단한다. 하지만 애굽 원정에서 병력 손실이 적지 않았기에 느부갓네살은 배반한 여호야김을 즉시 징계하지 못하고 대신, “갈대아인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보내 유다를 약탈하게 한다. 이런 배경에서 보자면 주전 600년경 적들의 약탈을 피해 예루살렘에서 피난처를 찾은 듯 하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레갑 사람들의 집에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2절)”고 명령하신다. 이 명령에 따라 예레미야는 “하바시냐의 손자요, 예레미야의 아들인 아아시나와 그이 형제와 그의 모든 아들과 모든 레갑 사람들”여호와의 집에 있는 “익다랴의 아들 야아사냐와 그의 형제와 그의 모든 아들과 모든 레갑 사람들’을 여호와의 집에 있는 ‘익다랴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 하난의 아들들의 방’으로 데려가 그들에게 ‘포도주가 가득 담긴 단지와 잔을 내놓고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하다(3~5절).
 
그러나 레갑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권유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자기네 조상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명령을 인용한다. 요나답의 명령(지침)은 네 개의 부정 명령과 한 개의 긍정 명령과 결과문으로 구성된다.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 살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머물러 사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6~7절)” 이 명령을 8~10절을 통해 성실하게 순종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로 시작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로 끝난다. “순종하여, 지켜”로 번역된 단어는 동사 “샤마”인데, “듣다”라는 의미가 있다. 특히 레갑 사람들은 이 명령을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순종했다고 말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집안의 모든 사람이 순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파종도 하지 말며”를 받아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아니하고” 고백하며 농경생활과 관련한 최소한의 것도 소유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이와같은 레갑 사람들의 기원에 대하여는 통일된 입장은 없다. 대부분 열왕기하 10:15~17을 배경으로 이해한다. 엘리사가 보낸 제자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은 예후는 열렬한 여호와주의자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자기편으로 끌여들여 혼합주의에 빠진 오므리 왕조에 반기를 들었다. 예후의 혁명에 가담한 여호나답은 그와 함께 사마리아의 바알 제사장들을 진멸해 버린다. 35장의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예후의 혁명에 가담한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같은 인물이라면 레갑 족속의 시조이자 스승은 요나답은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이 가나안의 바알 숭배로 오염되는 것에 맞서 싸운 인물이다. 예후가 반정을 시도한 때는 주전 845년 혹은 842년경이었기에 레갑 사람들은 240년 이상의 긴 기간동안 조상 요나답의 명령을 지켜온 셈이 된다. 그들은 이 명령을 지키기 위해 가나안적 농경 생활을 거절하고 천막에 살면서 반유목민 생활을 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생존 방식은 유목민 시대부터 내려오는 사회 종교적 흐름이라기보다는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 발생한 종파적 운동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3. 여호와의 말씀(12~19절)
여호와께서 직접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의 불순종을 레갑 족속의 순종에 대비하여 고발하신다. 레갑 사람들은 조상 요나답이 준 규정을 수 세기가 지나도록 변함없이 지켜왔는데, 유다 백성은 여호와의 계명과 율법을 거듭 불순종하였다(14~16절). 명령의 기원이 다르기에 유다의 불순종은 더욱 악하다. 레갑 사람들은 자신들이 준수하는 규정의 기원을 시종일관 ‘요나답’에게로 돌렸다(6, 8, 10절). 사람의 입에서 나온 규정도 추종자들에 의해서 그처럼 존중 받아왔는데,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명령은 그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의해 처음부터 무시되어 왔다. 하나님의 명령이 사람의 명령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
 
여호와께서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는(7:13, 27)” 유다 백성에게 “내가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19:15)”을 내리시기로 확정하신다(17절). 반면 조상 요나답의 명령을 그대로 실천한 신앙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레갑 사람들의 순종은 여호와에 의해 인정 받는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는 여호와 앞에 서 있을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19절, 33:18)이다. “여호와 앞에 서다”라는 표현은 제의적인 것으로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다” 또는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일하다”를 의미한다(신 4:10; 10:8).
 
 
 
나는?
-이스라엘은 절박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맹세까지도 상황이 호전되자마자 금방 저버렸지만, 레갑 족속들은 조상 요나답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예레미야가 권해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심지어 집도 짓지 않고 씨를 뿌리지 않고 포도원을 가꾸지도 않았다. 평생토록 장막에 거하는 불편한 삶을 고집했다. 지금 이들이 예루살렘에 잠시 거하는 것은 바벨론의 침공 때문이며 위험이 걷히면 또다시 성 밖으로 나가 조상의 명령대로 살 것이라고 말한다.
 
-놀라운 사람들이다. 불편을 참는 것은 고사하고, 형제를 압제하고 맹세를 깨뜨려서까지 움켜쥔 이익을 놓지 않았던 이스라엘과 너무나도 다른 태도이다. 불편하고 힘들고 손해 보는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께 신실하게 살고 있는가?
 
-레갑 사람들은 “사람”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도 긴 세월 동안(약 240년) 집도 없이 나그네로 살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도 아니고 끊임없이 무시하면서 살아왔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는 이미 죽은 지 오랜 한 인간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오신 것이다. 그들은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았고, 다른 신을 좇지 말라는 경고도 무시했으며, 큰 자부터 작은 자까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이렇게 오래도록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유지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인내를 증명해 주지 않는가?
 
-주인을 몰라보고 주님의 말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이스라엘에게는 선지자들이 누누히 경고했던 재앙이 임할 것이다. 하지만 조상의 명령에 오래도록 신실했던 레갑 족속에게는 대가 영영히 끊어지지 않는 복을 주실 것이다.
 
 
*레갑 사람들은 정착 생활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장막 생활(유목민)을 하면서 나실인처럼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조상의 명령에 순종했다(6~11절). 이 명령을 내린 요나답이 아합을 죽인 예후를 도와 바알을 숭배하는 자들을 척결하는데 힘썼던 것을 볼 때, 단순히 문화적인 명령이 아닌 듯 하다. 이 명령은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풍요의 신 바알을 숭배하는 것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던 삶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남긴 듯 하다. 레갑 사람들은 부유하고 안락한 삶의 위험(신 31:20)을 잘 알았고, 조상의 요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라고 믿었기에 잘 지킬 수 있었다(7절).
 
*레갑 사람들은 조상의 말이라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여 오래도록 순종하였다. 반면에 유다 백성은 선지자가 직접 와서 수없이 말했는데도 듣지 않았다(13~17절). 혹시 하나님께서 말씀과 상황과 사람들을 보내셔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 “말씀하신 길”로 가는 순종이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순종하기 원하셔서 “말씀하시되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셨다(12~17절).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께 성실하게 반응하고 순종해야 하리라. 매일 묵상하는 말씀이 형식이 아니라 실제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유다에게 재앙을 선포하셨다는 것을 깨닫기에 기록된 말씀을 일상에서 우직하게 순종하며 나아가기를 결심해 본다.
 
*선지자가 성전에서 권했는데도 거절한 그들의 성실함을 기쁘게 받으셨다. 하나님은 신실하고자 하는 레갑 사람들의 진심을 아셨기 때문이다. 말씀을 성실하고 우직하게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를 잊으면 안 된다.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살아내야 겠다.
 
 
 
 
*주님, 레갑 사람들의 신실함에 도전받습니다. 나의 삶의 걸음도 말씀따라 신실하게 걸어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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