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무조건 항복만이 살길이다 [렘 38:14-28]
 – 2024년 07월 27일
– 2024년 07월 27일 –
시드기야 왕이 시위대 뜰에 구금된 예레미야를 성전 셋째 입구로 불러 만난다. 왕이 예레미야에게 신탁을 묻자, 예레미야는 왕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준다. 왕은 여호와의 예언자 예레미야를 신뢰하고 그에게 신탁을 묻지만, 그가 전해주는 신탁에 순종하지는 않는다.
    
    
    
1. 예레미야에게 묻는 시드기야(14~23절)
시드기야 왕과 예언자 예레미야의 마지막 만남이다. “여호와의 성전 셋째 문”으로 불러 만난다. 이 문은 왕이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고 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왕궁과 성전을 이어주는 문인듯하다.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강하게 묻는다. “네게 한 가지 일을 물으리니 한 마디도 내게 숨기지 말라(14절)”라고 한다. 시드기야가 알기 원하는 “한 가지 일”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37:17에서는 예레미야에게 “여호와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고 묻는다.
    
왕의 요청을 따르기 전에 예레미야는 먼저 두 가지를 분명히 한다(15절). 먼저, 첫째는 자기 생명이 관련된 것이다. 고관들의 위협도 있었지만, 38:4~6에서 예레미야는 왕이 이들의 손에 자신을 넘겨버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 24절에서는 시드기야가 자신과의 대화를 누설하면 죽게 되리라고 위협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둘째는 시드기야 왕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관련된다. ‘가령 내가 왕을 한다고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다.’라는 말로 시드기야 왕에게 말해봤자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예레미야가 두 가지를 언급했지만, 시드기야는 첫 번째에 관해서만 답변한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의 “듣지 않음”에 관해서는 침묵한다. 시드기야가 듣기는 하지만 따르지는 않는 것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죽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목숨을 노리는 고관들의 손에도 넘기지 않을 것을 살아계신 여호와를 두고 “비밀히” 맹세한다(16절). 보통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시드기야는 “우리에게 이 영혼(생명)을 지으신”을 추가한다. 여호와를 생명을 주신 창조주로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백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지는 않는다.
    
예레미야의 답변(17~18절)은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시작한다. 예레미야가 이미 여러 번 선포했던 메시지다. 저항을 포기하고 자진해서 ‘바벨론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는 길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이렇게 항복하게 되면 가져오게 될 긍정적인 결과를 세 가지로 언급한다. “왕의 생명이 살아남고, 예루살렘 성도 불사름을 당하지 않으며, 왕의 집안도 살게 된다(17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항복하지 않으면 일어날 부정적인 결과도 세 가지로 언급한다. “예루살렘 성이 갈대아인들의 손에 넘겨지고, 그들은 성을 불사를 것이며, 왕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18절)”라는 것이다.
    
시드기야가 항복을 주저한다. 이유를 스스로 밝히는데, 먼저 항복한 유다 사람들에 의해 학대당할 것을 두려워한다(19절). 당시에 일부 유다 사람들이 저항을 포기하고 바벨론에 항복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드기야가 항복을 주저하고 또는 거절함으로 유다를 회복 불능의 완전한 파멸로 몰아넣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시드기야가 항복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시드기야를 향해 조언받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한 번 더 왕에게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간절하게 권면한다(20절).
    
왕이 항복할지라도 갈대아인들은 왕을 유다 사람들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다. 왕의 생각과 달리 일이 잘 풀려서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권면한다. 그러나 왕이 항복하기를 거절하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대로 행할 것이라고 선언한다(21절). 이때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한 가지 이상을 보여주신다(22~23절). 왕궁의 모든 여자, 왕의 아내들과 자녀들이 끌려가면서 왕에게 원망하고 성읍은 불사름을 당하리라는 것이다.
    
    
    
2. 예레미야에게 비밀 유지를 명령하는 시드기야(24~28절)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그에게 위협적으로 비밀 유지를 당부한다(24절). 그가 대화 내용을 누설하면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시드기야는 예레미야가 전해준 이상과 말씀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의 침묵은 예레미야의 조언을 거절했다는 암시이다. 또, 같은 유대 사람들에게 당할 학대가 두려운 시드기야는 여호와의 말씀보다 고관들의 움직임에 더 신경을 쓴다.
    
시드기야는 고관들이 예레미야가 자신과 나눈 대화를 물어볼 것을 예상하고 예레미야가 답변할 말을 가르쳐 준다(25~26절).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그들에게 말하라 한다. 왕의 예상대로 고관들이 예레미야를 찾아와 묻는다. 하지만, 예레미야가 달리 이야기하지도 않고, 대화에 관해 들은 바도 없기에 이들은 예레미야에게 별도로 묻지 않았다(27절). 이후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점령당하는 날까지 시위대 뜰에서 지낸다(28절).
    
    
    
나는?
-모든 상황이 두려웠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시드기야 왕이다. 예레미야를 성전 셋째 문으로 데려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의 신변을 보호해 주겠다고 비밀히 약속까지 했다. 그러면서 왕과 이스라엘에 일어날 일을 듣고 싶어 물었지만, 순종하려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짐작건대 예레미야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도 예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를 참 선지자로 알면서도, 그를 석방하지 않고 시위대 뜰에 머물게 한 것을 보면, 그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살고 저항하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뜻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므로 왕이든 백성이든 여전히 구원의 길은 열려 있었고 심판에 대해 핑계할 수 있는 길은 막혔다. 멸망의 날에 왕궁의 여인들이 부른 애가의 내용처럼 시드기야는 친애굽파 고관들에게 꼬임을 당하여 바벨론에게 저항했지만, 정작 멸망의 위험 앞에서는 그들에게 버림을 당할 것이다. 먼저 항복한 유대인들에게 학대당할 것을 두려워하지만, 정작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편, 예레미야를 통해 전달된 확실한 구원의 길을 수용할 마음이 없으면서도 예레미야에게는 살길을 알려준다. 예레미야는 왕의 충고대로 고관들 앞에서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왕의 충고를 순종하여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이처럼 시드기야의 살길도 예레미야의 말에 순종하는 것인데, 왕은 끝까지 거부한다. 남에게는 옳은 길을 잘 가르치고 전하여 구원하면서 자신은 정작 구원에서 멀어지고 영혼이 메말라가는 시드기야가 가엾다.
    
    
*변함없이 살길은 항복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납득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산다는 뜻도 포함될 것이다. 입에 발린 죄 고백과 죄송한 마음에 그치면 살길을 찾지 못하고 다시 죄의 길을 걸을 것이다. 내 안에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야 한다.
 
*무조건 항복해야 살아남게 된다(17절)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수용하고 스스로 성찰의 기회를 삼아 주님의 은혜를 기대하라”는 다른 표현이다. 지금 유다는 민족주의의 환상에 편승할 때가 아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지도자의 불순종과 백성의 죄를 뉘우칠 때이다. 그 첫걸음이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심판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시드기야의 불안과 초조함은 유다의 고관들이 두렵고, 이미 항복한 백성들에게 학대(조롱)당하는 것이 두려운 것에서 기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거나, 묵상하며 그의 뜻을 구하는 삶은 순종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여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만을 고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의 뜻을 구하는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백성을 보살피지도 않으며 왕의 자리 유지에만 급급한 시드기야의 모습과 같은 지도자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있어왔다. 정직하지도 않고, 통치 철학도 없고, 능력도 없는 지도자가 자리만 지키고 있을 때 백성들의 고통은 가중되기 마련이다. 이런 지도자가 있는 세상은 희망이 시들어 간다. 그런 지도력은 있으나 마나 한 것 아닌가… 남유다의 시드기야에게서 절망이 흘러나온다.
 
*예레미야의 항복 선언 요구가 단지 항복으로만 이해하고 친애굽 고관들의 강경함 사이에서 시드기야의 우유부단함이 느부갓네살의 분노만 더 키웠다. 통치 10여년 동안 하나님의 뜻과 백성의 안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무능함이 지도자에게서 드러나면 좌절만 커질 뿐이다.
 
*내게 맡겨주신 공동체를 섬기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집중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담대함으로 용기를 발휘하며 말씀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나아가야 함을 시드기야의 모습에서 배우게 된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나의 고집을 항복하고 인도하시는 손길을 신뢰하며 공동체에 영적 희망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더욱 주를 의지하리라.
 
    
    
*주님, 시드기야의 영적 우유부단함이 속상합니다. 어쩌면 나의 삶에서도 이런 머뭇거림 때문에 답답해하는 면이 없는지 살펴주십시오.
*주님, 예레미야는 변함없이 말씀을 선언하고, 시드기야도 변함없이 불순종합니다. 이왕이면 예레미야처럼 변함없이 내게 맡기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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