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엄중한 경고에 유다 사람들이 강력하게 반발한다. 이들은 예레미야에게 대놓고 우상숭배를 옹호한다. 전에 우상을 섬길 때는 모든 것이 잘됐다면서 자신들의 우상숭배를 옹호한다.
1. 예레미야의 경고에 대한 반박(15~19절)
예레미야의 심판 선고가 적대적 반발을 초래한다.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의 선포에 반발한다. “모든”이 세 번 사용된다. 애굽에 사는 유다 백성 전체가 예레미야에게 맞선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여왕 제의”에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특히 19절에서는 여자들이 직접 예레미야에게 반박한다. 이들은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듣지 않겠다고 단절을 선언한다(16절).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예언자로 인정하면서도 그가 한 말은 거절한다.
이미 요하난 일행은 예레미야가 신탁을 왜곡했다고 거절했고(43:2~3), 바드로스의 유다 백성들은 그를 예언자로 인정하면서도 그의 선포를 거절한다. 그들은 조상들의 전통에 따라 살 것을 단호하게 선언한다(16~17절). 이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맹세한 대로 할 것이오. 우리와 우리 조상과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우리도 하늘 여신에게 제물을 살라 바치고, 그에게 술 제물을 바치겠소. 하늘 여신을 섬길 때에는 우리에게 먹을 양식이 풍족하였고, 우리가 잘 살았으며, 재앙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제물을 살라 바치는 일을 그치고 그에게 술 제물 바치는 일을 그친 뒤부터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부족하게 되었고, 우리는 전쟁과 기근으로 죽게 되었소(새번역_17~18절).”라고 말한다. 즉, 우상숭배를 그치자, 재난을 당했기에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우상을 숭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을 하늘 여왕의 진노로 돌린다. 여자들도 이에 동조하며 하늘의 여왕 제의가 자기 남편들이 인정한 공인된 제의였다고 예레미야에게 맞선다(19절).
애굽으로 내려간 자들은 유다 멸망의 원인을 신의 징계로 간주하지만, 징벌의 주체와 동기를 전혀 다른 것으로 이야기한다. 풍요와 안전을 보장해 준 하늘의 여왕을 섬기지 못하게 된 결과로 재앙과 파괴가 왔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해하는 유다의 멸망은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하늘의 여왕이 보낸 재난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하늘의 여왕에게 제사를 드려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는 예루살렘에서 이교적인 것을 모두 제거하고 여호와 종교의 순수성을 회복하려 했던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멸망을 가져왔다고 본 것이다. 왜냐하면 요시야의 개혁 이전의 삶이 개혁 이후의 삶보다 풍요로웠기에 우상숭배의 근절은 재앙을 불러온 잘못된 정책이 된다. 이미 바드로스의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축복과 안녕에 근거하여 신앙의 유효성을 판단하였다. 숭배자들에게 풍요로움과 안전을 가져다주면 그가 숭배할 만한 좋은 신이 되는 것이다.
“하늘의 여왕 제의”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에서 성행하였다. 왕들과 고관들도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술을 부었다. 제의에는 전체 가족이 참여하였는데, 여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아이들이 나무를 해오면 아버지가 불을 지피고 어머니가 가루를 반죽하여 과자를 만들었다(7:18). 여신이나 별의 모습을 본떠서 과자를 만들거나 과자에 그 모습이나 표상을 그려 넣었다. 이런 제의를 통해 땅의 축복과 재앙으로부터의 보호를 기원하였다.
2. 징계의 심판(20~30절)
예루살렘과 유다를 폐허로 만든 재난의 원인을 하늘의 여왕 제의 폐지에서 찾는 모든 백성에게 예레미야는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멸망이 우상숭배에 대한 여호와의 징계였음을 분명히 한다(20~23절). 우상숭배를 구원과 축복의 길로 옹호하는 모든 백성에 맞서 예레미야는 우상숭배가 심판과 재난의 길이었음을 주장한다. 여호와께서는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모든 백성 사이에서 행해졌던 우상숭배를 그냥 모르는 척 내버려두지 않으셨다(21절). 만연한 우상숭배를 기억하시고 재앙을 내리셨다. 그럼에도 애굽의 유다 백성은 자기 “조상들의 악행과 유다 왕들의 악행과 왕비들의 악행과 자신들의 악행과 아내들의 악행”을 잊어버렸다(9절).
여호와께서 이들의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더 참을 수 없었기에” 예루살렘과 유다가 “오늘과 같이 황폐하며 놀램과 저주 거리가 되어 주민이 없게” 되었다(22절). 여호와께서는 참으시며 기다리셨지만, 이스라엘은 악행에서 돌이키기는커녕 더 깊이 빠져 들었다(4~5절). 더 이상 참으심(기다림)이 무의미해졌기에 여호와의 분과 노여움을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쏟아부으셨다. 또 그들은 우상에게 분향할 뿐 아니라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과 법규와 여러 증거대로 행하지 아니하였기에” 오늘과 같은 재앙이 닥쳤다고 선포한다(23절). 참담하게도 바드로스의 유다 백성은 자신들이 경험한 비극적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같은 길을 감으로 비극이 반복되고 만다.
25절은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한 여호와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거절하는 애굽 바드로스의 유다 사람들을 풍자적으로 신랄하게 고발하신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와 너희 아내들은 입으로 서약한 것은 꼭 실천하는 자들이다. 너희는 서약한 그대로 하고야 말겠다고 했고, 너희는 하늘 여신에게 제물을 살라 바치고, 또 그에게 술 제물을 바치겠다고 했으니, 너희의 서약을 지킬 테면 지키고, 너희의 서약을 실천할 테면 해보려무나!(새번역_25절)” 이렇게 하늘 여왕을 섬기겠다고 서원한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려 칼과 기근으로 마지막 사람까지 진멸하실 것이다(25~28절). 애굽 땅에 사는 유다 사람들을 모두 멸망시켜 다시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주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자”가 없게 하신다(26절).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여호와께서 지켜보시다가 이들에게 재난을 내려 “칼과 기근”으로 모두 전멸시키고 소수의 사람만 유다 땅으로 돌아가게 하신다(27~28a 절).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지, 하늘의 여왕 숭배자들이 한 말이 맞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28b 절).
29~30절을 통해 여호와께서 선포하신 말씀의 확실성을 보여주기 위해 표징을 주신다. 이 표징을 통해 애굽의 우상 숭배자들에게 선포한 심판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그리고 우상숭배가 구원의 길임을 주장하는 자들의 말이 틀렸음을 보여주신다. 그 표징은 유다 왕 시드기야를 “그의 원수 곧 그의 생명을 찾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셨듯이, 애굽의 왕 호브라(주전 589~570년)를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기실 것이다(30절, 참조 37:5). 즉,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했듯이 유다가 의존했던 애굽도 같은 운명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우상을 믿어온 하나님의 백성들…. 애굽에 내려오기 전에는 좋든 나쁘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겠다며(42:6) 겉으로라도 순종하는 척하던 이들이 이젠 아예 대놓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한 말을 듣지 않겠고 대신 자기들이 한 말을 실행하겠다고 도전한다. 애굽의 유다인들이 하늘의 여왕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먹을 것을 풍성하게 주고 재난을 당하지 않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루살렘과 유다를 황무지로 만든 하나님에 대한 진한 원망이 베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재난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여왕에 대한 불순종 때문에 찾아왔다고 여긴 것이다. 남편들도 허락하여서 한 것이니 정당하지 않으냐고 강변하는 뻔뻔스러움이 기가 막힐 뿐이다. 어떤 어려움 없이 형통하게 해주시는 하나님만 믿는다면, 그것은 살아 계신 주권자 하나님이 아니라 언제든 내 기대를 저버리면 폐기될 수 있는 내가 만든 우상일 뿐이다.
-하늘의 여왕에게 제물을 드리는 일은 여자들이 하게 되어 있었다(15, 19절). 그런데 율법에 따르면 여자들은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맹세를 할 수 있었다(민 30:7~16). 이를 근거로 여인들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으면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명백한 “혼합주의”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얼마든지 기독교의 형식을 잘 따르고 있다고 합리화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나의 유익을 위해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강변하면서 실제로는 나의 욕심과 세상 법칙을 신봉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무엇인가?
-“무슨 말씀이든 청종하겠다(42:5, 6).” 사람들이 이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는 말을 듣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판단 기준은 눈에 보이는 번영과 성공이었다. 우상숭배 할 때는 잘 나갔는데, 요시야의 종교개혁으로 우상숭배를 중단하자 전쟁에서 패하고 기근이 닥쳤다고 한다(16~18절). 오늘날의 번영신학이며 긍정의 힘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간증에 마음이 솔깃한가? 자기 부인과 고난의 삶을 요구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 거슬리는가? 그렇다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니라 우상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인가….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우상숭배를 기억하고 계셨다. 애굽의 유다인들이 이전에 하던 대로 기억하여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겠다고 하자, 하나님께서도 유다 왕들과 고관들과 백성의 악행과 가증한 행위와 그 악행을 참지 않고 심판하신 일을 기억해 내겠다고 하신다. 예루살렘의 우상 숭배자들이 당한 황폐함과 놀람과 저줏거리 됨이 과거 유다 땅의 일만이 아니라 오늘, 이 애굽 땅에서도 임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하물며 우리 시대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바드로스의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우상숭배 때문이란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황무지와 폐허가 된 고향을 떠나 애굽에 왔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갖은 핑계를 댄다. 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내 잘못을 합리화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왜 일까?
-하나님은 하늘의 여왕에게 서원한 대로 행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도 그들을 멸절하고 심지어 그들이 의지하던 애굽의 왕까지 심판하겠다고 하신다. 그때 소수의 피신자만이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임을 알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우리의 삶에 간섭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실 때가 죄인들에게는 가장 끔찍한 심판의 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포기하시기 전에 경고를 들어야 산다.
*주님, 우상숭배를 못 하게 해서 멸망했다고 말하는 바드로스의 유다 백성이 안타깝습니다. 우상 때문에 멸망 당했으나 끝까지 우상을 포기하지 못하는 가엾은 인생을 봅니다. 쓸데없이 우상숭배 고집을 피우는 가련한 인생이 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