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을 향한 여호와의 진노가 전쟁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적이 바벨론을 침략할 때 그곳에서 유배살이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전쟁의 칼에 희생당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실 때 유배인들은 지체하지 말고 그곳을 떠나 목숨을 구해야 한다.
민족들이 여호와의 심판에 떨어져 멸망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멸망 이후의 운명에 관해서는 차이가 있다. 애굽(46:26)과 모압(48:47)과 암몬(49:6)과 엘람(49:36)에게는 심판 이후의 회복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 주어지고 블레셋과 에돔과 다메섹과 게달과 하솔과 바벨론에게는 심판의 말씀만 주어진다.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회복의 약속이 주어지지 않은 블레셋과 다메섹과 에돔과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생존을 지속적으로 위협한 민족들이었다. 특히 바벨론은 유다를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을 짓밟았다. 바벨론 신탁은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을 하나의 사건으로 제시해준다.
1. 나의 백성(45~46절)
침략군이 바닷물처럼 바벨론을 덮쳐 모든 성읍을 폐허로 만들고 바벨론 성벽도 무너지기에 사로잡혀 와 그곳에 사는 유다 사람들의 목숨도 위태롭게 된다. 벨이 삼킨 것을 끄집어내시는 여호와께서 유배민을 “내 백성”이라 부르시며 이들에게 바벨론에서 나와 당신의 진노에서 목숨을 구하라고 긴급하게 권면하신다(45절). 여호와의 진노는 바벨론을 향한 진노이지만 전쟁을 통해 구현되기에 바벨론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 파괴적 영향 아래에 놓이기 때문이다.
심판의 때가 다가올수록 바벨론 제국은 급격하게 불안해 진다(46절). 멸망 직전의 시대를 사는 자들에게 주는 권면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편 바벨론으로 끌려와 유배 살이 하는 자등ㄹ에게 바벨론의 정치적 혼란은 제국의 종말이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소망의 징조이자 이들을 두려움에 빠뜨리는 불안 요인이었다. 멸망의 시간이 가까이 올수록 불안한 소문이 계속 들려오기에 그런 소문에 휩싸여 실족할 기회도 더 많아진다. “마음을 나약하게 말며… 두려워하지 말라”는 유배민들이 전쟁의 위험에 버금가는 위기에 빠질 것을 시사해준다.
2. 보라 날이 이르리니(47~48절)
바벨론의 멸망이 우주적인 차원에서 선포된다. “그러므로”로 이어지며 유배민의 구원과 바벨론의 멸망을 긴밀하게 연결한다. 이어 권면의 말씀이 뒤따른다. 유다 백성들의 탄원(송사)에 대한 여호와의 판결의 성격도 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라고 언급하며 심판의 날이 지금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날은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신상들을 벌하시는 날로, 바벨론 온 땅이 치욕을 당하고 칼에 맞은 자들이 그 가운데 엎드러진다.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치실 때 우상들의 무능력이 그대로 노출된다. 우상들은 숭배자들이 칼에 맞아 죽어가지만 그들을 도와주지 못한다. 신상들로 가득한 바벨론이 죽은 자들로 더러워져 수치를 당한다.
바벨론의 심판에 창조세계가 반응한다. 바벨론을 “파멸시키는 자가 북쪽에서” 오기에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벨론을 두고 기뻐 소리친다(48절). 어떤 존재도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하지 않는다. 온 세상이 그 가운데 나타난 여호와의 구속 사역을 찬양한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사람을 포함해서 하늘과 땅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3. 칼을 피한 자들(49~51절)
49절에 대한 다른 번역본은 “온 땅의 칼에 맞은 자들이 바벨론 때문에 쓰러졌듯이 바벨론도 이스라엘의 칼에 맞은 자들 때문에 쓰러져야 한다.”라고 번역했다. 바벨론 때문에 민족들이 멸망한 것처럼 이스라엘 때문에 바벨론이 멸망한다. 바벨론이 여호와의 손에 들린 심판의 도구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허락된 것 이상으로 이스라엘을 가혹하게 짓밟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칼로 죽였기에 바벨론도 마찬가지로 칼에 맞아 죽어야 한다.
45절에서 “나의 백성”으로 표현된 것이 49절에서는 “칼을 피한 자들”로 불린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바벨론에 머물지 말고 어서 떠나야 한다. 바벨론의 멸망을 귀향과 구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가나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나 여호와를 기억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속에 떠올리며 바벨론을 떠나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배민들은 나름대로 정착했고 예루살렘은 여전히 폐허로 남았기에, 유배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모든 면에서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모험에 가까운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다. 그들은 “여호와를 생각하며(기억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는 말씀을 통해 돌아가야 할 고향이 “예루살렘”임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오직 여호와와 예루살렘만 바라보라는 권면에 “우리”가 탄식으로 응답한다. “조롱을 들었기에 우리가 수치를 당하였고, 이방인들이 여호와 집의 거룩한 곳들에 들어왔기에 모욕이 우리 얼굴을 덮었다(51절).” 당시 세계관에 따르면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의 형편을 생각하기만 하면 유배민들은 수치심에 얼굴을 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호와의 성전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혔다. 이것은 고대의 다신론적 사고에 의해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바벨론의 신 마르둑에 의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패배를 의미했다. 그런데 바벨론을 무너뜨리는 멸망의 칼을 피한 자들은 좌절과 수치의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4. 보라 날이 이르리니(52~53절)
52절은 47절을 거의 문자적으로 반복한다. 53절은 새로운 내용으로 48절을 보충한다. 바벨론의 운명이 멸망으로 확정됐기에 바벨론의 모든 시도가 헛일이 된다. 바벨론이 하늘 끝까지 올라간다 할지라도 접근이 불가능한 높은 곳에 요새를 만든다 할지라도 살아남지 못한다. 바벨론이 어떤 대책을 혹시 마련하더라도 바벨론을 쳐서 멸망시킬 자가 여호와로부터 오기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책을 마련할지라도 무용지물이 된다.
나는?
-여호와는 자기 백성에게 바벨론을 반드시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이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와 하란을 떠나는 데 큰 믿음이 필요했듯이, 칠십 년 동안 고생하여 간신히 정착한 땅을 떠나는 것이 이방 땅에 머무르는 것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나라 이곳저곳에서 크고 작은 변란들이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바벨론 제국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을 믿는 일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나약하게 말고 소문에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믿음은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더 크게 들을 때 생긴다. 그 소리에 반응할 때 믿음은 더 커진다. 그 믿음의 결과를 목도하게 되면 믿음은 강직한 신뢰가 된다.
-바벨론은 반드시 무너진다. 바벨론이 무너지는 날은 올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꼭 올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한 그들을 그 우상들과 함께 멸하실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바벨론의 압제 아래 신음하던 모든 나라가 기뻐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스라엘을 죽여 엎드려 두고두고 수치를 안겨준 것처럼 그들도 죽임을 당하여 엎드려질 것이다.
-심판의 날은 분명히 올 것이니 오늘 같은 날이 영원할 것이라고 자만하지 말고, 오늘 같은 고난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낙담해서도 안 될것이다.
-바벨론에서 떠난 자들에게 당부하신다. 오직 그 마음을 여호와로 채우고 예루살렘을 잊지 말라 하신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을 멈추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집을 유린한 바벨론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까지 솟고 높은 곳에 요새를 만든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멸망시킬 자를 보내서 꼭 끌어내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다시 살아날까 염려하여 뒤돌아보지 말라는 것이다.
-신앙의 여정은 본향을 향해 돌아가는 길이다. 떠나온 세상이 부른다고 멈추면 안 된다. 나의 마음을 여호와의 마음으로 채우고 본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포로된 백성에게 바벨론에서 벗어나라고 하신다. 자기 백성이 안전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가 분명하나 동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과 용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세상에서 분리하신 후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것은 더 이상 무너질 세상에 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과연 어떨까?
*하나님의 백성이 당한 모욕을 회상하고 있다. 칼을 피한 자들은 예루살렘을 뒤로하고 정처 없이 끌려가야 했다. 성전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는 것은 도저히 견디기 힘든 치욕이었지만, 그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하지만 그 모욕과 수치를 안겼던 바벨론을 멸하시기로 하나님이 결정하셨다. 막을 자가 아무도 없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도무지 없다. 이것이 우리에게 분명한 경고와 위로가 된다.
*원치 않는 상황에 휘말릴 때가 있다. 쉴새 없이 몰아치는 삶의 문제들에 몸과 마음이 낙심하고 지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럴때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 너희는 먼 곳에서라도 주님을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 속에 두어라(새번역_50절)” 먼 곳에서라도 주님을 생각하고 예루살렘(하나님 나라)을 마음 속에 두어라고 말씀하신다. 바벨론 제국의 중심부에서 비록 포로민의 삶을 살았지만, 적응하고 안정적(?)인 삶을 누렸을 것이다. 그런데 바벨론이 흔들리자 그 안정은 금새 깨지고 만 것이다. 바벨론이 아니라 주님을 생각하고 의지하는 삶이어야 한다. 오늘도 주님을 생각하고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마음 변치 말아야 하리라.
*주님, 칼을 피한 자들에게 보라 날이 이르렀다 선포하시면서 멸망당할 바벨론에서 떠날 것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시기 위해 악을 심판하시는 공의로움이 나에게도 분명한 경고가 됩니다. 늘 말씀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무너질 세상 속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라하시는 주님의 권면을 마음에 새기고 붙잡겠습니다. 세상의 소리가 아닌 주님의 음성을 더 선명하게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