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엘리사 등장 배경_여호람과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 [왕하 3:1-12]
 – 2024년 09월 05일
– 2024년 09월 05일 –
북이스라엘 9대 왕 여호람에 대한 기록이다. 여호람은 자신들에게서 돌아선 모압을 정벌하기 위해 남 유다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출정했다. 하지만 출정 도중에 물이 떨어져 난관에 봉착한다. 여호람은, 이 상황에 슬퍼하며 하나님을 탓하며 하나님의 뜻을 속단한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선지자를 찾았고 엘리사가 있음을 알게 된다.
    
모압 왕 메사는 이스라엘에 반역하였는데 이 사실이 1868년 아르논 강 북쪽 디본 유적에서 발견된 메사의 비문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 비문에는 이스라엘이 과거 모압을 지배한 것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메사가 그 지배를 벗어난 것을 경축하는 내용이 있다. 또한 모압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된 것은 자신들의 신인 그모스가 자기 나라를 벌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이용했지만, 이제는 그모스 신이 자신들에게 승리를 주었다고 기록한다. 이 비문은 5절에 언급된 메사의 반란이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본문에서 언급된 전쟁은 이런 모압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이 연합하여 원정을 나간 전쟁 중 하나를 기록한 것이다.
    
    
    
1.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행적(1~3절)
3장의 기록은 1장에서 아하시야가 죽고 여호람이 왕이 된 이야기와 연결된다. 1~3절은 여호람 왕의 등극 공식이다. 등극한 때와 재위 기간, 수도 이름, 여호람에 대한 여호와의 평가로 이어진다. 여호람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같이 있다. 긍정적인 것은 바알을 섬기던 부모의 길을 버리고 바알 주상을 없앤 것이다. 여호람은 바알 신앙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왔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온전하게 돌아오지는 못했다. 이는 여로보암이 세워 놓은 단과 벧엘의 금송아지를 여호와라고 부르며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호람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이스라엘의 태생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북 왕조 초기부터 단과 벧엘의 송아지를 여호와라 부르며 섬겼기 때문에 없애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북 왕조는 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망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여호람은 완전해지지는 못했지만, 여호와를 바라보기 시작한 왕이었다.
    
    
    
2. 모압의 반란에 대응하기 위해 연합한 유다와 이스라엘(4~7절)
모압 왕 메사가 반란을 일으킨다. 모압은 다윗왕 때 완전히 굴복시킨 후(삼하 8:2)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있으면서 조공을 바쳤다. 4절은 목축업을 하던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매년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바쳤다. 모압은 매년 상당량의 조공을 바치며 충성하다가 아합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아합이 죽은 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으나 이스라엘의 국력은 급격히 쇠락했고, 급기야 아하시야는 병까지 들어 모압의 반란을 막을 수 없었다. 모압의 반란은 여호람이 왕이 되기 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이 된 여호람은 모압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군대를 모은다. “모든 이스라엘”을 모은 뒤 상황을 살펴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자를 보내어 배반한 모압 왕을 치기 위한 전쟁에 함께 하겠냐고 묻는다. 여호람의 요청에 여호사밧은 흔쾌히 따른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은 당신의 말과 같다”라는 말로 한마음으로 같이 싸우겠다는 의지를 전한다. 여호사밧이 이렇게 한 이유는 모압의 독립은 남북 왕조 모두에게 위협과 손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3. 광야에서 물이 없어 고생하는 연합군(8~10절)
여호람은 어떤 길로 가서 어떤 전술을 사용하여 싸울지 의논하며 연장자이고 전쟁 경험이 많은 여호사밧에게 조언한다. 여호사밧은 에돔 광야를 거쳐 모압의 남쪽을 치는 길을 제안한다. 좀 더 많은 군사가 이동하기에 북에서 모압으로 가는 길보다 쉽고 지나는 길에 있는 에돔의 도움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군사를 데리고 에돔 길을 지나가려면 에돔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에 자연스럽게 참전하게 되는 것이다. 모압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에돔의 입장에서도 모압이 강성해지는 것이 반갑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에돔 길로 행군하며 광야를 진군하던 중에 뜻밖의 장애물을 만난다. 그것은 바로 물 부족 문제였다. 연합군은 많은 군사들이 우회로로 움직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고 예상치 못한 물 부족을 겪게 된 것이다. 게다가 9절의 기록처럼 식량과 제물용으로 많은 가축들을 몰고 함께 진군하다 일정이 지체되며 물 부족이 심각해지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모압에 도착하기도 전에 물 부족이라는 심각한 재난을 만나게 된 것이다. 수적 우세를 통해 모압을 정벌하려던 삼국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물 부족으로 전쟁을 해보기도 전에 길에서 자멸할 위기에 빠진다.
    
이런 위기에 직면하자 여호람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모압 왕의 손에 넘기기 위해 불러 모으셨다며 여호와를 원망하고 탄식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정벌을 시작할 때 여호람과 여호사밧은 모압과 전쟁을 할지를 하나님께 전혀 묻지 않았다. 이들은 수적인 우위만 믿고 전쟁을 감행하려다가 물 부족이라는 난관에 직면하게 되고 여호와를 원망한다.
    
    
    
4. 엘리사를 찾아가는 왕들(11~12절)
여호와를 원망한 여호람과 달리 유다 왕 여호사밧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을 만나자, 여호와를 찾는다. 여호사밧은 예전에 아합과 함께 아람과 전쟁할 때도 아합에게 여호와의 뜻을 먼저 묻자고 제안하였고, 모든 선지자가 긍정적인 대답을 하자, 혹시 다른 선지자는 없는지 물으면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했다. 여호사밧은 최소한 아합이나 여호람보다는 여호와를 더 의지하는 왕이었다.
    
그는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는지 물으면서 그에게 여호와의 뜻을 알아보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북이스라엘의 신하 중 한 사람이 엘리사를 소개한다.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이라는 표현은 엘리야의 제자라는 의미이다. 신하의 증언으로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라는 사실로 참 선지자라는 신분을 확인받은 셈이었다.
    
당대에 엘리야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엘리사의 신분은 충분히 증명되었고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전쟁하러 올라가던 길을 돌이켜 엘리사에게 내려간다.
    
    
    
나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은 “미지근한 경건의 사람”이었다. 부모(아합과 이세벨)와 달리 바알의 주상은 제거했지만, 여로보암의 길을 떠나 우상숭배까지 근절하지는 못하고 여전히 악을 행하였다. 죄가 위험한 것은 “선을 품은 악”이기에 언제든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심하지 않은 죄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악의 언저리를 서성거리면 안 된다. 죄에 대하여 미지근하면 의식하지 못한 채 이미 죄와 벗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윗 이래로 속국이던 모압이 반역하여 조공이 끊기자, 이스라엘은 경제적인 타격을 입는다. 여호람은 이스라엘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유다 왕 여호사밧 및 에돔 동맹군을 형성하여 에돔 광야 길을 통해 모압을 치기 위해 진격한다. 여호람은 그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데는 관대하면서도 모압의 배신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에게는 지금 전쟁의 명분도 있고, 동맹군도 있고, 전략도 있었다. 하나님을 떠난 악한 왕에게는 그것이 승리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었기에, 하나님께 물을 필요도 없었다. 여호람의 삶은 모든 것을 다 갖춘듯한데, 그 안에 하나님만 빠진 삶이었다.
    
-기세등등하던 동맹군의 진격은 7일 만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광야 에돔 길이 모압을 공격하기 좋은 길이었지만, 동시에 자신들을 갈증으로 삼키기에도 좋은 지형임을 몰랐다. 이 세상에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엇을 가졌다고 자만하지 말고, 무엇을 잃었다고 절망하지 않을 일이다. 오늘 내 걸음을 멈추게 하는 일(사람)이 무엇이든, 그것 때문에 나 자신의 실상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뜻한 대로 되지 않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나자, 여호람은 여호와의 심판 의지를 성급하게 예단한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길을 선택한다. 물 없는 상황은 전쟁의 승패를 암시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이 전쟁에서 유일하게 소외된 단 한 분인 여호와께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성시키려고 주신 경고의 나팔이었다.
    
    
*여호람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다(2절). 비록 아합과 이세벨의 길을 따르지 않았지만,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우상은 버리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가 세웠던 바알을 다 철거했기 때문에 바알을 국교로 삼을 수 없었지만, 여호와 경배를 완전히 회복하려는 뜻에서 한 행동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여호람에게 여로보암의 죄악의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여호와 종교를 유일의 국교로 하되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 하고, 그것을 섬기던 여로보암의 죄악을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 외에 하나님처럼 나의 신앙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계속 용납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여호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유다와 병거를 의지했다(6~8절). 혹시 나의 삶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물질이나 경험 있는 사람을 더 의지하지 않는가? 모압 정벌을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출정 7일만에 막히자 의지하지도 않았던 여호와께 불평과 원망을 쏟아낸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여호사밧은 그들이 여호와를 기억하도록 만들었다(11~12절).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상에서도 믿음 있는 한 사람이 공동체를 살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기도 없이 시작했지만, 지금이라도, 그제서라도, 이제라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래야 산다.
    
*여호와를 기억하도록 선지자에게 가서 묻자는 여호사밧의 요청이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은 참 선지자로서 인정받고 등장하게 된 통로가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엘리사의 시대가 시작된다.
    
    
    
*주님, 하나님인 것처럼 믿지만 하나님이 아닌 것이 혹시 나에게는 없는지 더 세밀하게 돌아보겠습니다.
*주님, 여호사밧처럼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게 만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어떤 갈림길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겠습니다.
*주님, 상황과 여건 속에서 불평과 원망 보다는 지금이라도, 이제라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삶이 되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하나님 나라 통치가 이 땅에! [시편 114:1-8]

 이 시편은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111~118편)의 네 번째 시편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를 언급하며 시작한다. 그들과 함께하시고 나타나신 하나님을 회고하는 서술적인 찬양시이다. 찬양하라는 직접적인 권고의 말은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 [시편 112:1-10]

 111편과 쌍을 이루는 지혜 시편이다. 동시에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의 두 번째 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묘사하는데 이 사람이 지닌 신앙적 성품은 111편이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다윗이 바라본 메시아 [시편 110:1-7]

 본 시편은 150개의 시편 중에서 신약성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자기 변증에 1절이 사용되고(마 22:44; 막 12:36; 눅 20:43), 히브리서 5:6절은 4절을 인용한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