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사마리아의 절망과 소망 [왕하 6:24-7:2]
 – 2024년 09월 15일
– 2024년 09월 15일 –
아람과 얽힌 새로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6:24~7:20은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 포위당해 큰 기근이 든다. 음식과 물자는 소진되었고 백성은 굶주림으로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왕은 회개하지 않고 이를 모두 엘리사의 책임으로 돌리고 그를 죽이려 한다. 엘리사는 장로들과 함께 있다가 이런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하나님은 엘리사의 목숨을 지켜주셨고, 그를 통해 내일 성읍에 평화를 주시고 음식과 물자를 공급하실 것을 선언하신다.
    
    
    
    
1. 아람의 포위로 기근이 심각해진 사마리아(24~25절)
“그 후에”는 아람 군대가 엘리사에게 큰 굴욕을 당한 사건(15~23절) 이후를 가리킨다. 절치부심했을 아람 왕 벤하닷은 전면적인 대규모 공격(온 군대)을 단행했다. 벤하닷은 아람의 온 군대를 이끌고 와서 사마리아를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완전히 포위한다. 이렇게 포위된 상황이 길어지자, 사마리아 성안에 극심한 기근이 왔다.
    
기근이 얼마나 혹독한지 저자는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5 세겔이나 한다고 기록한다. 나귀 머리는 부정한 짐승으로 식용 금지 대상이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 그나마 요리를 해도 가장 맛없는 요리였다. 하지만 음식이 귀하니 이런 하찮은 음식도 천정부지로 값이 뛴 것이다. 보통 당시 한 달 월급이 은 1 세겔이었기에 은 80세겔은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만큼 성 안의 기근이 심각했다는 증거다. 비둘기 똥이 식용인지 땔감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1갑은 0.5리터이고 사분의 일갑은 125밀리리터 정도 되는 아주 적은 양이다. 그런데 은 5세겔를 주어야 할 정도로 사마리아의 물가는 지나치게 높아져 있었다. 이 정도면 사람이 거의 살 수 없는 정도가 아닐까?
    
    
    
    
2. 이스라엘 왕의 무능(26~30절)
이런 심각한 상황을 살피기 위해 왕이 성 위로 시찰할 때, 한 여성이 자신의 형편을 도와달라고 외친다. 왕은 백성의 요청을 듣고 일을 해결해 주거나 재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여성의 외침을 들은 왕은 여호와께서 돕지 아니하시면 자신은 도울 수가 없다고 대답한다. 백성을 살리고 죽이는 문제에서 자신은 철저하게 무능함을 인정한 것이다. 왕은 이 심각한 기근과 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한탄한다. 그러면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이에 여인은 다른 여인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오늘은 너의 아들을 잡아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잡아먹자고 이야기해서 자기 아들을 삶아 먹었는데, 다음날 네 아들을 내놓으라고 하니 자기 아들은 숨겼다는 것이다. 정말 끔찍하기에 그지없다. 이런 참혹한 이야기를 들은 왕은 자기 옷을 찢으며 애도를 표한다.
    
신명기 28:53~57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할 벌 가운데 심각한 기근으로 자기 아이를 먹는 재앙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사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벌어진 비극이며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연이어 보내셔서 숱하게 경고하시고 자신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주셨음에도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이 결과로 생긴 비극이었다.
    
    
    
    
3. 엘리사에 대한 왕의 분노(31~33절)
그런데 이스라엘 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참혹한 상황은 엘리사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엘리사가 15~23절에서 사마리아로 제 발로 들어온 아람 군대를 처리하지 않고 놓아주었기 때문에 아람 왕 벤하닷이 아람 군대가 받은 굴욕을 갚으려고 이처럼 온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 그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 아람 군대 진멸을 막고 도리어 배부르게 먹여 보낸 엘리사에게 이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아람 군대가 도발할 때마다 미리 언급을 해주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엘리사에게 분노하며 그를 오늘 반드시 죽이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엘리사를 죽임으로써 이 재앙으로 인한 죽음의 책임을 모두 엘리사에게 돌리려고 한다. 이때 엘리사는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 집에 있었고 왕은 엘리사를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다. 하지만 왕이 보낸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엘리사는,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장로들에게 “살인자의 아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다면서 망을 보다가 사람이 오면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일차적으로 ‘아합 왕의 아들’이란 의미이지만, ‘그가 곧 살인자’라는 의미도 함께 있다. 자신을 죽여 화풀이하려는 왕에 대해 엘리사는 살인자라고 부른 것이다.
    
엘리사는 장로들에게 왕의 사자에게 죽지 않기 위해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참 의아한 것은 전에 불 말과 불 병거의 호위를 받는 것을 보면서 담대하였던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취약한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꼭 불 말, 불 병거가 없어도 여전히 엘리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엘리사가 말하자마자 왕이 그를 죽이려고 보낸 사자가 도착하였고, 그들은 재앙이 여호와한테서 왔는데 언제까지 여호와를 기다려야 하느냐고 묻는다. 이는 더는 기다릴 수 없고, 기다리지도 않겠다는 말이다. 더는 여호와의 말씀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대로 엘리사를 죽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왕이 스스로 여호와께 대한 소망을 거두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거의 똑같은 상황이 남 유다 말기 바벨론에게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질 때 반복된다. 바벨론 군대에 포위당한 예루살렘 성은 기근이 겹쳤고,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비극이 반복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거부한 것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4. 엘리사의 응답과 장관의 불신(7:1~2절)
더는 여호와께 희망을 걸지 않는 왕에게 엘리사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한다. 엘리사가 선지자로서 처음으로 선지자 신탁 형식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한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습니다. ‘내일 이맘때쯤에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에 사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에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새번역_7:1).” 내일 이맘때 극심한 기근이 해결될 것이다. *한 스아는 대략 7.3리터인데, 밀가루 한 스아가 비둘기 똥의 1/20 가격밖에 안 되게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그만큼 양식이 풍성해질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왕의 측근인 장관은 이런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문을 내신다 해도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릴 뿐이었다. 이런 불신앙에 대하여 엘리사는 네가 반드시 볼 것이지만, 그것을 먹지 못할 것이라는 심판을 선언한다. 이런 장관의 불신앙 모습은 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 모습을 대표한다.
    
분명히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씀을 선포했는데도, 고위 관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대놓고 무시한 것이다. 왕은 물론이고 장관의 이러한 반응은 그 시대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둔감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신앙이 죽었다. 신앙의 기근이 심해졌다. 그러자 삶의 기근이 몰려왔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자비로운 공급자 역할을 중단하시자 물가가 폭등하고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때 사마리아의 왕은 더 이상 왕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면 우상을 혁파하고 하나님만이 홀로 다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도록 하는 일이었지만, 되려 엘리사 선지자에게 분노를 쏟고 그를 죽이기로 하였다.
    
-하지만 정작 죽여야 할 것은 이스라엘을 에워싸는 불 말과 불 병거를 보지 못하고 우상숭배에 젖어 있는 이스라엘의 불신과 탐욕이었다. 아무리 극단적인 아픔과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내 삶의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그분의 말씀을 덮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려움 앞에서 이스라엘 왕은 선지자를 죽이려고 사마리아를 에워쌌던 아람 왕처럼(6:14) 되었고, 재앙이 여호와로부터 온 줄을 알면서도 여호와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극단적인 어려운 상황일수록 내가 말씀에 귀를 막고 여호와의 도움과 회복을 기다리지 않기로 결심하면, 여호와께 나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다.
    
-이스라엘 왕은 여호와를 기다리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사는 다음 날이면 아람이 물러가고 시장도 정상화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지만 하늘에 창을 내신 여호와(시 78:23)가 지금도 살아 그 역사를 이루실 줄 믿지 않는 장관은 그 영광을 보고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보다 시험을 더 크게 여기면 안 된다. 물질적인 어려움이 내 믿음까지 삼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엘리사를 통해 이룩한 평화는 잠시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하여 놀라운 권능을 보이셨음에도 여전히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을 아람 왕 벤하닷을 통해 징계하신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대적으로 등장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릇된 길로 갈 때 바른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징계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징계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징계하신 후에 건지신다.
    
*나귀 머리나 합분태(비둘기 똥)는 부정한 것들이다(신 14:4~8). 그런데 포위된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해지자 이런 것들도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는다. 아람 군대에 포위당해 물자 공급이 끊어지자 벌어진 끔찍한 상황이었다(24~29절). 사람은 자신이 의지하는 양식이 끊어지고서야 하나님께 무릎 꿇고 돌아온다. 죄와 벗하여 영적 기근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지혜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지도자답지 못했다(30~31절). 성안의 비극적이고 참담한 상황은 아람 군대를 곱게 돌려보낸 엘리사 때문이라고 책임을 떠넘긴다.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의 피부병을 고쳐주고, 아람 군대에 먹을 것을 주고 풀어 주었기에 그들이 침공할 힘이 있게 된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나는 나에게 맡겨주신 목양의 책임을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지 않겠다. 나에게 맡기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늘 씨름하며 책임지겠다.
    
*엘리사는 절망의 상황에서 소망을 선포한다(7:1~2). 사마리아 성에 다시 양식이 생기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한다. 이때 한 장관이 엘리사의 예언을 조롱한다.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 여러 번 기적을 분명히 보여주셨음에도 엘리사의 예언을 믿지 않는 것이다. 혹시 나는 여러 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못하는 자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사마리아 성에 절망이 가득하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소망을 선포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이 이와 같지 않은가! 하나님 나라 복음이 소망 자체가 아닌가!
    
    
    
    
*주님, 신앙의 기근이 삶의 기근이라는 심판을 불러왔음을 봅니다. 믿음이 풍성하고 건강하여 늘 주님의 은혜 안에 있기를 소망하겠습니다.
*주님, 말씀을 믿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니요. 혹시 우리 공동체가 그렇지는 않겠지요?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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