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아합 가문에게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심판 [왕하 9:27-37]
 –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09월 20일 –
이스르엘에서 요람(여호람)을 제거한 예후는 도망친 유다 왕 아하시야를 쫓아가 처단한다. 한편 예후가 반역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계책을 세워 단장을 하고 그를 기다린다. 돌아온 예후를 도발하여 자신이 그를 도울 자임을 과시한다. 그러나 주변의 신하들이 예후의 명령을 따라 그녀를 위층에서 던진다. 결국 이세벨은 즉사하고 하나님이 예고하신 대로 그녀의 시신은 개들의 먹이가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다.
 
 
 
1.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인 예후(27~29절)
예후가 요람(여호람)을 죽이면서 아합과 이세벨의 우상숭배와 악행 때문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들은 유다 왕 아하시야는 자신의 어머니 아달랴가 요람(여호람)의 남매이자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기에 자신도 아합 가문 사람으로 간주하여 죽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달랴가 유다 왕과 결혼 한 이후 유다와 이스라엘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합 가문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열왕기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하시야에 대하여 아합 집과 같다고 지칭하며 악한 왕으로 평가했다. 예후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아하시야의 삼촌 요람(여호람)을 죽였기에 자신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아하시야도 죽이려고 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아하시야는 일단 할머니 이세벨이 있는 사마리아로 도망하기 위해 남쪽 길인 벧하간 길로 도주한다. 하지만 요람을 죽인 후 전력으로 쫓아오는 예후에게 결국 이스르엘에서 16km 떨어진 이블르암에서 따라잡히게 되고 그곳에서 접전을 벌이다 중상을 입는다. 그러자 아하시야는 사마리아로 가려는 계획을 돌이켜 므깃도로 도주한다. 하지만 무사히 도착한 그곳에서 예후와의 전투에서 입은 중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는다. 그의 부하들이 시신을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윗 성에 있는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한다. 이는 여호람의 시신이 나봇의 밭에 버려진 것과 대조가 된다. 여호람은 죽어서까지도 평안을 누릴 수 없었지만, 아하시야는 그나마 죽어서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에게 내린 특별한 은혜 때문이었다.
 
 
 
2. 이세벨을 죽인 예후(30~33절)
이블르암에서 아하시야에게 치명상을 입힌 예후는 도주하는 아하시야를 더 이상 쫓지 않고 이스르엘로 진격한다. 그의 최종 목표는 이세벨이었고, 그녀를 죽이는 것이 중상 입은 아하시야를 처리하는 것 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예후가 이스르엘 왕궁에 도착했을 때 이세벨은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미고 왕궁의 창에 서서 이스르엘 왕궁으로 오는 예후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모습은 태후로서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뿐 아니라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을 죽이러 오는 예후와 맞서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예후가 왕궁 문으로 들어오자 그를 향하여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고 묻는다. 아들 여호람도 예후를 평안하냐라고 물으며 맞았고 결국 최후를 맞이했었다. 즉 이 상황이 전혀 평안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반어적 표현이다. 이세벨이 예후를 시므리로 부르는데, 시므리는 바아사에게 반역을 일으키고 겨우 7일 동안만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다가 오므리가 반란을 일으키자 왕궁에 불을 지르고 죽은 인물이다(왕상 16:15~18). 이세벨은 예후의 반란은 시므리가 맞이한 최후처럼 될 것이라고 조롱하고 저주하고 있는 것이다.
 
예후는 이세벨의 목소리를 듣고 대답하지 않고 그녀가 있는 창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편에 설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예후는 “누구냐”를 반복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편에 서라고 독촉한다. 이는 이세벨이 아무리 자신만만하게 대처한다 하더라도 이미 상황은 자신에게 기울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때 내시 두세 사람이 이런 예후의 모습을 내려다보았고, 예후는 그들에게 이세벨을 밑으로 던지라고 명령한다. 그들은 예후의 명령을 따라 이세벨을 밑으로 던져 버린다. 이세벨의 입장에서는 예후의 반란보다 자신의 곁에서 입의 혀처럼 굴던 하인들의 배신이 더 뼈아팠을 것이다. 그녀의 피가 담과 말에게까지 튀었다는 것은 창밖으로 내던져져 매우 비참하고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음을 뜻한다. 더 나아가 예후는 그런 이세벨의 시체를 밟는다. 오랜 세월 동안 북이스라엘에 바알 신앙을 퍼뜨리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며, 온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그 영향력을 남 유다까지 퍼지게 한 이세벨은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3. 이세벨에 대한 엘리야의 예언이 성취됨(34~37절)
이렇게 이세벨을 죽인 예후는 이세벨의 시체를 그대로 두고 왕궁으로 들어가 먹고 마시며 잔치를 즐긴다. 그는 일부러 이세벨을 장사 지내는 것을 지연시키며 그녀의 비참한 죽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잔치를 하던 중, 예후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이세벨을 장사 지내라고 명령한다. 예후는 이세벨을 저주받은 여자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저주대로 처벌받은 여자라는 의미다. 저주받은 여자이지만 장사 지내주는 것은 그녀가 왕의 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후는 이세벨을 이스라엘의 왕비로 보지 않고 이방 나라의 공주로 부르며 경멸한다. 예후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장사하려고 이세벨의 시신을 찾았지만, 두개골과 두 발과 두 손밖에 찾을 수 없었다. 예후가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벌이는 사이에 이세벨의 시신은 짐승들에 의해 훼손되고 유실된 것이다. 이세벨은 죽은 후에도 시신이 먹히는 성경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저주를 받은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들이 이 말을 예후에게 전하자, 예후는 이런 이세벨의 최후가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스르엘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 것이라는 예언은 열왕기상 21:23에 나온다. 본문 37절에서는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고 언급하는데, 이 말은 예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발언은 예후가 엘리야의 예언을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세벨의 시신은 산산이 부서지고 없어져 이스르엘 땅에 거름처럼 흡수되고 이세벨의 흔적이 이스라엘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예후는 개가 먹을 것이라는 엘리야의 예언을 이세벨이라는 존재가 이스라엘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악인의 이름이 기억되지 않고 사라지는 벌을 받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여호와를 대적하는 일에 앞장 섰던 이국의 공주이며 철저한 바알 신봉자였던 이세벨은 여호와께서 내린 심판을 받고 역사상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다. 여호와의 대적은 시스라처럼, 이세벨처럼, 아합처럼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매우 단호한 성격의 예후는 여호와의 선택을 받은 이후 아합 가문의 사람들을 죽이는 데 조금도 망설이거나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예후의 이런 성격이 하나님께서 아합의 가문을 심판하는 데 적합했고, 그를 아합 가문의 심판자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은 악과의 교제를 싫어하신다. 유다의 왕인 아하시야도 요람(여호람)과의 정략적인 결혼과 동맹으로 악한 자들과 교제한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27~29절).
 
-아합의 사위가 되어 아합의 가문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유다 왕 아하시야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아하시야는 예후를 피해 병거를 타고 므깃도까지 도주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다윗에게 주신 은혜 때문에 아하시야는 요람과 달리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하는 일과 어긋난다면, 동맹도 우정도 영원하지 못하며, 오늘의 충성이 내일엔 배반과 변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살길은 므깃도까지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아합 가문의 죄의 길에서 달아나는 것이었다.
 
-이세벨은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순간에도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몄다. 죽음을 직감하고 왕의 어미로서 위엄을 지키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예후를 ‘시므리’라고 부르며 조롱하였다. 이것은 예후 역시 주군을 반역하여 권력을 얻었지만 7일 천하로 끝난 시므리(왕상 16:9~20)처럼 될 것이라는 저주였다. 하지만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한 허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배반의 저주는 예후가 아니라 이세벨 자신에게 돌아갔다. 이세벨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한 신하들이 그녀를 창밖으로 던졌고 예후는 처참하게 망가진 이세벨의 시체를 밟음으로서 심판이 그녀에게 임하였음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진정한 위엄과 기품은 화장을 하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물질이나, 권력도 아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경외하는 삶을 지켜 나갈 때 그 안에서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누릴 수 있다.
 
-빠짐없이 성취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개들이 이세벨을 먹었다. 이세벨이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호의는 개들이 먹다 남은 시신이 매장 되는 것이었다.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해 주신 예언이 단 하나도 빠짐없이 성취되었다. 내가 죄에 눈감는다고 하나님도 그런 내 죄에 눈감으시지 않는다.     
 
-예후는 이세벨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고 심판의 의의를 설명한다(36~37절). 이세벨의 죽음은 하나님께 반역한 것에 대한 심판이었음을 증언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속히 철저하게 회개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경고하실 때 즉시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지 않을까!
 
 
 
 
*주님, 선포하신대로 철저하게 이루어진 심판에서 하나님의 단호함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롯이 믿고 따르는 삶이어야 함을 절감합니다. 그리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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