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점점 희미해가는 이스라엘의 빛 [왕하 15:23-38]
 – 2024년 09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
므나헴 이후 이스라엘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계속해서 반란이 일어나는데, 베가, 호세아가 반란을 일으키고 왕위에 오른다. 앗수르의 침략은 더욱 거세져 이스라엘 땅을 점령하고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는 지경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격동의 마지막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왕인 웃시야와 요담으로 인해 이스라엘보다 덜 불안했다. 
 
군웅할거와 같은 시기를 이스라엘이 지나고 있을 때 앗수르의 왕은 디글랏 벨레셀 3세였다. 그는 주전 733년 다메섹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공격했지만, 다메섹이 45일간의 앗수르 포위 공격을 견디자, 공격 대상을 아래쪽 사마리아로 바꾼다. 이 공격으로 이스라엘의 많은 영토가 앗수르와 합병되어 앗수르의 영토가 되었다. 하솔이나 므깃도 같은 요새화된 도시들도 파괴되었다. 그리고 만 삼천 명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이 국외로 추방된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서너 세대 동안 인구가 고갈 되어 어려움을 겪었다. 이처럼 이스라엘 말기의 상황은 매우 녹록치 않았다. 
 
 
 
1. 이스라엘 왕 브가히야의 통치(23~26절)
므나헴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제 18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단 2년간 다스린다. 므나헴은 매우 잔인하게 백성을 다루었기에 그의 통치 기간에 불만을 품고 있던 세력이 어린 새 왕이 등극하자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브가히야에 대한 평가도 이전의 이스라엘 왕과 동일하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업적이 별도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의 부하인 베가가 길르앗 사람 50명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고, 사마리아에 있는 왕궁의 요새에서 브가히야와 그의 부하인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였다는 사실만 기록한다. 
 
베가는 브가히야의 군대장관 혹은 신하로 소개된다. 이는 그가 므나헴의 최측근 신하로서 보좌한 인물임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유추되는 것은 므나헴의 포악한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이들이 베가를 중심으로 모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이런 베가의 반란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한 곳이 길르앗이었고 그곳에서 50명의 용사를 보내 베가의 반란을 도운 것이다. 이렇게 브가히야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 아니라 자신의 왕궁 요새 안에서 최측근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광야 길도, 적들이 에워싼 전쟁터에서도 안전하나,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자신의 왕국 요새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2. 이스라엘 왕 베가의 통치(27~31절)
남 유다 왕 아사랴 통치 52년에 베가가 브가히야를 죽이고 제19대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그는 20년간 다스렸지만, 그도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가 통치하던 시기에 앗수르의 왕이 가장 앗수르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디글랏 빌레셀 3세였다. 이 시기에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대부분의 북쪽 도시들을 점령했다(주전 733년, 29절). 기록에 따르면 이때 이스라엘 백성 만 삼천 명을 포로로 끌고 간다. 이렇게 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다시는 경제와 군사적으로 회복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기에 호세아가 반란을 일으켜 베가를 죽이고 대신 왕이 된다. 호세아의 반란은 단순히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의 반란과 성격이 다르다. 디글랏 빌레셋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자신들의 왕인 베가를 폐위했고, 내가 그들을 다스릴 왕으로 호세아를 세웠다”고 기록한다. 즉, 베가는 앗수르의 손에 의해 제거 된 것이고, 앗수르의 하수인인 호세아가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3. 유다 왕 요담의 통치(32~38절)
다시 남 유다 왕조로 이야기가 넘어간다. 유다 왕조는 이스라엘의 19대 왕 베가 2년에 웃시야(아사랴)의 아들 요담이 왕위에 오른다. 요담은 아버지 웃시야가 나병에 걸려 별궁에 격리되었기 때문에, 약 10년 정도 웃시야를 대신해 이미 유다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웃시야가 죽자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것이다. 
 
요담에 대한 기록 중 특징적인 것은 그의 어머니를 소개할 때 다른 왕들은 출신 지역으로 소개했지만, “사독 가문의 딸”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사독 가문은 유다의 대제사장 가문으로 웃시야가 사독 가문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은 유다 왕정이 여호와 신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완전하게 여호와 신앙으로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여호와 신앙의 기반에서 어느 정도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요담은 이전의 왕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고, 백성들이 여전히 우상에게 분향하게 하였다. 한 번 잘못 들어온 우상숭배는 제거되기가 이렇게 힘들다. 이 시대에 유다에서 활동하던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유다에 대해 비판하면서 자신의 하나님인 여호와를 모르고 우상을 섬기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사 1:29).  
 
요담의 업적은 예루살렘 위쪽 문을 건축한 것이다. 이는 사독 가문의 어머니의 영향으로 예루살렘 성전 제의를 중요하게 여겨 성전을 보수하고 개축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요담의 모습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뿌리 깊은 악습을 뽑아내지 못하는 모습으로, 호세아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산당까지 완전히 제거했을 것이다. 
 
남 유다에서 여호와의 산당까지 제거하며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간 인물은 후에 등장하는 히스기야왕과 요시야 왕뿐이다. 히스기야의 경우 우상을 제거하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였고 요시야의 경우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개혁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준 훌다 선지자의 말을 믿고 행동으로 옮겼다. 요담 당시에도 이사야 선지자가 유다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사야 6장에 나오는 이사야의 소명 기사는 웃시야가 죽고 요담이 왕으로 즉위하던 때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담은 이사야의 말을 온전하게 순종하진 못했다. 요담이 우상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순종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군을 보내 유다를 공격하게 하신다. 당시에는 앗수르가 너무 강하여 이에 위협을 느낀 아람과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앗수르에 대항하였고, 이 동맹에 유다가 참여하기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이 촉구에 응하지 않았기에 이들은 유다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이 모든 일이 여호와께서 주관하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요담은 죽은 후에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하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38절).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반란과 대조적으로 유다는 평안하게 왕위가 계승되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행한 왕들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시고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반역의 역사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반역으로 차지한 왕위를 반역으로 빼앗겼다. 왕의 자리는 차지하고 빼앗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력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고 여로보암의 죄에서 조금도 떠날 생각이 없이 스스로 왕이 되어 자기 힘으로 그 왕권을 유지하려는 자들의 권력까지 하나님은 책임져 주시지 않는다. 화려한 권력의 그늘을 스스로 경험하도록 두신다. 교회든 세상이든 사명보다 자리를 탐하는 정치놀음은 늘 있어왔다. 내가 속한 곳에서, 내가 선 자리에서, 그럴듯한 명분으로 치장한 다툼에 가담하지 않고 오로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삶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에서 20년을 다스리면서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살았던 “베가”의 이스라엘에게 앗수르 침공을 허락하신다. 앗수르의 디글락 빌레셀은 북이스라엘 여러 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갔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그때 벌어질 일들을 가장 신랄하게 맛보게 해준 사건이었다. 그러니 이만할 때 돌아서야 했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도 순종하지 않으면 결코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야 했다. 하나님께서 작은 실패를 통해 내 허물을 드러내시고 더 큰 실패를 막아주신다.  
 
-유다 왕 요담은 아버지 웃시야(아사랴)처럼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였고 예루살렘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는 등 성전을 소중히 여겼지만 여전히 아버지처럼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결성한 연합군을 불러 그런 유다를 치셨다. 나의 삶에도 성전과 산당이 공존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의 산당이 사라지기 전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이 나를 징계하실 채찍은 내 주변에 많이 있을 것이다. 
  
-개혁은 왕을 바꾸고, 세상을 뒤엎는 혁명을 일으키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성령으로 새로워지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 
 
-반역은 반역으로 이어졌다. 브가히야를 반역하여 왕이 된 베가는 호세아의 반역으로 브가히야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반역으로 왕이 된 자가 다시 반역으로 폐위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내 이권을 차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동일하게 그 상처가 돌아온다. 
 
-문둥병으로 죽은 웃시야에 이어 그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었다. 그런데 역시 산당은 없애지 않는다. 또한 성전 윗문을 건축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유다 백성의 신앙 부흥을 이끌지는 못했다. 그의 관심은 암몬을 치기 위해 나라를 정비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대하 27:2 이하).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하고 놀라운 일을 해도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에 성실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셔서 다시 하나님께 신실하기를 원하신다. 베가 왕 때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납달리와 갈릴리 전 지역을 점령하고 백성을 앗수르로 끌고 갔다. 이방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는 것은 언약적 저주이다. 하나님께 반역하고 여전히 죄에서 떠나지 않는 백성을 향한 징계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은 유다에게도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군을 보내 전쟁을 일으키도록 하셨다. 삶의 어려운 문제들이 일어나는가? 채찍을 들어서라도 약속의 자녀를 바로 세우시려는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 하나님에게서 떠난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고, 고난에 처해지더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봅니다. 
*주님,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이스라엘은 점점 하나님의 빛에서 멀어져 갑니다. 어떻게 할까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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