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의 개혁은 그가 죽자 곧바로 사그라든다. 그의 아들들인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은 다시 여호와의 눈에 보시기에 악을 행한다. 그들은 언약 백성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이방 나라를 더 신뢰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바벨론을 사용하여 그들과 유다 백성을 심판하신다. 유다는 아직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심판과 재앙이 이미 시작되었고 그것은 오직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매우 철저하고 단호했음에도 유다는 개혁의 길을 계속 걷지 않는다. 결국 그의 아들 때부터 유다는 멸망의 길에 들어서고 만다. 한 번 들어선 멸망의 길은 그들을 내려놓지 않았다.
1. 여호아하스의 등극과 죽음(31~34절)
요시야가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오른다. 그의 나이 23세였다. 그런데 그의 재위 기간이 매우 짧다. 정치적으로 보면 그는 애굽의 바로에게 반기를 든 세력에 의해 왕으로 세워졌고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바로 느고는 여호아하스를 강제로 폐위하고 그 대신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운다. 요시야가 느고의 군대에 의해 죽었고 당시에는 유다가 애굽의 속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일축한다. 3개월간의 통치를 악하다고 평가하신 이유는 그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호아하스가 왕위를 잃고 애굽으로 끌려가는 모든 일을 겪는 동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은, 그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철저하게 당시의 정치 상황에 따라 움직였음을 암시한다. 그 결과 여호아하스는 바로 느고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하맛 땅 리블라에 갇히게 된다. 리블라는 그의 어머니 하무달의 고향이기도 하다.
애굽의 바로 느고는 여호아하스가 왕이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예루살렘으로 군사를 보낸다. 여호아하스는 이를 피해 어머니의 고향이자 군사적 요새가 있는 북쪽의 리블라로 도망한 것이다. 애굽 군대는 리블라로 도망한 여호아하스가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가둬버리고, 이렇게 바로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유다의 귀족들과 백성에게 벌금으로 은 백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내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여호아하스를 쫓아낸 느고는 여시야의 아들이자 여호아하스의 형인 엘리야김을 왕으로 삼는다.
이로써 엘리야김(여호야김)은 애굽의 봉신으로 충성을 다하기로 서약한 것으로 보인다. 여호야김을 속국의 왕으로 세운 후에 바로 느고는 여호아하스를 사로잡아 애굽으로 끌고 간다. 여호아하스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여호아하스가 애굽으로 사로잡혀 간 것은 정치적으로 더 이상 애굽에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 되었던 생활에서 풀려나면서 민족이 형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웠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여호아하스가 애굽의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은 것은 “역출애굽 사건”으로서, 머지않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멸망을 상징한다. 후에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예레미야가 애굽으로 가는 것과 같은 의미다.
유다는 요시야가 죽자마자 바로 주권을 잃고 애굽의 봉신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급작스럽게 멸망의 길로 들어선다. 애굽에 반기를 들었던 여호아하스와 달리 여호야김은 애굽 왕 느고의 모든 요구를 들어준다. 35절은 여호야김이 느고가 요구한 조공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이를 강제로 걷는다. “징수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출애굽기 5:6에서 ‘감독들’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하다. 이와같은 언어의 유사성은 이스라엘의 당시 상황이 출애굽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2. 여호야김의 등극(35~37절)
여호야김의 등극공식은 다른 왕들과 다를 바 없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1년간 통치한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스비다(루마 브다야의 딸)였다. 여호야김이 왕이 된 나이가 25세인 것을 보면 여호아하스보다 2살 위인 형이다. 그는 애굽의 힘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제위 기간 내내 바벨론의 봉신으로 있다가 바벨론에게 반역하는 바람에 바벨론으로 끌려 가면서 왕위에서 내려오게 된다. 저자는 그에 대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평가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주변의 어느 나라를 지지하느냐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느냐 아니냐가 매우 중요했다.
3. 유다와 바벨론의 전쟁과 여호야김의 죽음(24:1~7절)
여호야김은 느고에 의해 왕이 되었다. 당시 애굽이 힘을 잃게 되고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침입으로 유다는 바벨론의 속국이 된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본문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이 시기에 바벨론에 반기를 든다. 바벨론이 애굽과의 전쟁으로 전력이 약화되자 그 사이에 여호야김은 애굽과 동맹을 맺고 바벨론에게 대항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오래가지 못한다.
바벨론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유다로 침공한 것이다. 2절에서 저자는 이 침공은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유다를 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침략으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3~4절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내치신 이유를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이것은 므낫세가 지은 악한 죄들인 우상숭배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불의와 불법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여호야김의 종교적인 죄 뿐 아니라 윤리적 사회적으로도 불의를 행하였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무죄한 자의 피가 가득했다는 말은 여호야김 통치의 때에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불법과 불의가 매우 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런 이유로 다시 여호와께서 왜 요시야의 회개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지 않으셨는지를 설명한다. 유다의 구원을 하니님께서 원하지 않으신 것이다.
5~7절은 여호야김의 죽음 공식이다. 다른 왕들과 다른 점은 그가 무덤에 묻혔다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대하 36:5~8에 따르면 여호야김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고 나온다. 그가 그의 무덤이나 조상들의 무덤에 묻혔다는 표현이 없기에 바벨론에서 죽은 것으로 추측한다.
이렇게 요시야의 두 아들 중에서 한 명은 애굽에서, 다른 한 명은 바벨론에서 포로로 생을 마감한다.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른다. 이 시기에 애굽은 쇠락하고 바벨론은 번성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 요시야의 신앙을 잇지 못한다. 여호아하스는 불과 석 달을 다스렸으나 악한 왕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아버지는 전무후무할 만큼 율법에 충실한 통치자였지만, 그 아들은 아버지의 신앙을 잇지 못한다. 반 애굽적인 성향을 가진 그는 애굽 왕 바로 느고의 침략을 받고 페위되어 애굽으로 끌고갔으며, 결국 거기서 생을 마감한다. “하나님을 떠난 왕을 하나님도 이스라엘 땅에서 떠나보내신 것이다.
-바로가 세운 왕 여호야김은 바로에게 충성한다. 그에게 갖다 바칠 조공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에게 은금을 징수하였다. 그러나 이렇듯 강대국의 비위를 맞추며 유다를 11년 동안 다스린 그를 하나님은 악하다고 평가하셨다.
-여호야김의 삶에는 아버지 요시야처럼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추구하기보다 애굽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몸부림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는 자는 하나님의 참된 친구가 될 수 없다. 세상을 기쁘게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판의 때가 무르익자 하나님은 유다 주변의 애굽과 바벨론을 일으키신다. 엎치락뒤치락 한 애굽과 바벨론의 전투, 바벨론과 아람과 모압과 암몬이 차례로 유다를 공격한 일 등은 모두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시는 수단이었다. 더 이상 우상숭배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유다의 죄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대신 내가 의지하고 있는 그것이 나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올 날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때가 이르기 전에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리라.
*유다가 벼랑끝에 서 있다. 므낫세의 악한 통치에 심판을 확정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여호아하스가 애굽으로 끌려 가는 것은 분명한 “역출애굽” 사건으로 끌려간 애굽에서 생을 마감한다. 여호아하스의 이런 모습은 유다 백성에게 선언된 “역출애굽”을 확실하게 각성 시키고 있다.
*바벨론이 득세하면서 애굽의 바로 느고는 영향력을 상실하였고, 유다 왕국도 바벨론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당시 활동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야김에게 바벨론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권면했지만 듣지 않는다. 오히려 흥분하여 말씀(두루마리)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른다. 여호야김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이 아니겠는가!
*오늘 나의 삶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 내가 살아내면서 무수히 판단하는 것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혹은 현실적인 안목과 경험에 머무는가?
*주님, 유다가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이제 고스란히 심판의 폭풍을 직면해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신대로 치밀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더욱 의지하고 신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