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무너진 예루살렘, 바벨론의 포로가 된 유다 [왕하 24:8-25:7]
 – 2024년 10월 15일
– 2024년 10월 15일 –
유다의 마지막 두 왕도 이전 왕들과 변함이 없다. 유다의 심판이 이미 예고되었지만 요지부동이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여호야긴은 느부갓네살의 침략에 곧바로 항복하고 왕이 된 지 3개월 만에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이후 바벨론 왕에 의해 왕이 된 시드기야는 나중에 바벨론을 배반함으로 자신뿐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사지로 내몰았다. 예루살렘은 포위되었고 시드기야 제11년에 함락되고 만다.
    
요시야왕 이후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하신 심판의 말씀들은 지체없이 실행되기 시작했다. 요시야의 아들인 여호아하스가 왕위를 계승했으나 3개월만 왕위에 있다가 애굽에 의해 폐위된다. 여호야김 왕도 바벨론의 속국으로 지내다 바벨론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폐위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른 것이다. 이렇게 요시야 이후 유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급격하게 망하고 있었다.
    
    
    
1. 여호야긴의 등극과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왕과 백성들(24장 8~17절)
여호야긴은 여호야김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사이에 왕위에 올라서 3개월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느후스(예루살렘 엘라단의 딸)다. 여호야긴도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여전한 우상숭배와 불의함이 예루살렘을 뒤덮고 있었다.
    
여호야긴이 왕위에 올랐을 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올라와 성을 포위한다. 당시 바벨론 연대기에 따르면 예루살렘 공격은 주전 598년 마지막 달에 시작하여 주전 597년 둘째 달에 끝난다. 즉, 여호야긴이 왕위에 있던 기간이 곧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한 기간이다. 3개월의 포위당한 끝에 여호야긴은 자신의 어머니와 신복들과 지도자들이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 앞에 나가 자발적으로 항복한다. 이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관대한 처분을 받는다. 그리고 바벨론 군대는 여호와의 성전에 침입하여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약탈하였고, 솔로몬이 만든 여호와 성전의 금 그릇을 잘라버리기도 했다. 이런 행동은 전쟁에 패한 신을 모욕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열왕기 저자는 이렇게 성전 보물들이 약탈당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전쟁에 져서 모욕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유다에 대해 심판하실 때 예루살렘 성전이 약탈당하고 파괴될 것이라는 예언이 지금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의 백성들과 지도자와 용사 만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를 포로로 끌고 갔다. 15~16절은 이때 끌려간 이들을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데려간 이유는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군사들은 바벨론 병사로 사용하기 위해 데리고 갔다. 장인과 대장장이는 전문성 있는 일을 시키기 위해 데리고 간 것이다. 이제 예루살렘에는 가난하고 힘없고 무능력한 자들만 남게 되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끌고 가는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그의 숙부인 맛다니야를 왕을 세우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꾼다. 족보상으로 시드기야는 여호야김의 형제이자 요시야의 아들이 된다. 요시야의 아들이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된 것이다.
    
    
    
2. 시드기야의 등극(24장 18~20절)   
시드기야는 21세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11년간 다스린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하무달(예레미야의 딸)이다. 하무달은 여호아하스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여호아하스가 폐위되어 애굽으로 끌려갔을 때 시드기야의 나이는 10세 전후였다. 시드기야는 여호야김의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 여호야김의 우상숭배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불의와 불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진노하심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그의 앞에서 모두 던져버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는 시드기야 왕의 재위 기간 내내 바벨론의 종으로서 간섭과 위협을 계속 받았다는 의미다.
    
저자는 유다의 현재 어려운 상황이 여호와의 분노 때문이라고 해설한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이 애굽과의 전쟁으로 잠시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바벨론에게 반역을 일으킨다. 한편 시드기야 통치 동안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조언했었다(렘 21:1~10; 34:1~3; 37:6~10; 38:17~23).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았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자들이 70년의 징벌 기간이 끝나면 돌아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드기야는 이런 예레미야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감옥에 가둬버린다.
    
한편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반역을 일으킨 것은 바벨론이 당시 팔레스타인에 대해 관여를 덜 하게 되고, 애굽은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하고 있었던 때여서 애굽의 힘을 믿고 반역을 괴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처럼 철저한 파괴뿐이었다.
 
    
    
3. 예루살렘 함락과 시드기야의 폐위(25장 1~7절)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 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함락하기 위해 올라왔다. 그들은 성 주변에 토성을 쌓고 2년간 포위를 한다. 성 주위에 토성을 쌓는 것은 공성전의 전형적인 방법으로 성벽보다 높은 단을 만들어서 성 위에서 방어하는 자들에게 화살이나 돌 등을 던지며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예루살렘 성은 2년 동안 포위되면서 심한 기근이 들어 먹을 양식이 떨어졌다. 성안에 기혼 샘이 있어서 마실 물이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양식이 바닥이 나버렸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이 파괴되자 모든 군사는 밤에 도망하여 아라바 길로 간다. 여기서 모든 군사에는 왕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길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이어지는 길로 요단강을 건너 모압이나 암몬으로 가려 한 듯하다. 당시 암몬과 모압은 반바벨론 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의 탈출 시도는 바벨론 군대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처로 실패하고 만다. 여리고 평지는 여리고 동편으로 마른 땅이 펼쳐진 곳인데, 탈출한 다음 날 이곳에서 붙잡히고 만다. 왕을 호위하며 함께 탈출하던 군대는 바벨론 군대를 보자 무서워 왕을 버리고 모두 떠나 뿔뿔히 흩어지고 만다. 시드기야 왕은 사로잡혔고 바벨론 왕이 있는 립나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판결받는다.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의 재판을 받는 것은 바벨론과 종주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시드기야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묶어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포로의 눈을 뽑는 것은 사람을 무능하게 만드는 처벌이었다. 삼손도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혔을 때 두 눈이 뽑히고 포로들이 하는 노역을 했었다.
    
유다 왕조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최후가 이렇게 마무리된다. 두 아들들이 죽고, 시드기야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면서 다윗 왕조가 문을 닫는다. 다윗 왕조를 세우신 하나님께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다윗 왕조를 벌하시고 문을 닫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서 받은 벌은 하나님이 주신 벌이다.
    
    
    
나는?
-마침내 심판의 날이 왔다. 선지자가 경고했던 그날이 왔다. 다윗 언약과 성전이 영원하리라는 유다의 기대를 꺾는 큰 파멸의 날이 마침내 오고야 만 것이다. 아무도 바벨론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의 기세에 여호야긴 왕과 신하들은 순순히 항복하고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다 내준다. 여호와의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다.
    
-예루살렘 가운데 비천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남은 자 없이 모두 포로로 잡혀갔다. 특히 용감하여 싸움에 나설 만한 자들을 잡아감으로써 유다를 완전하게 무력화시켰다. 그야말로 철저한 파멸이었다. 삶을 살아가다 이런 파멸과 같이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직면할 때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만용이 아니라 수용이지 않을까?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기면서 반항하기보다는 내 죄가 자초한 결과이며 일어나리라 했던 일이 일어난 것으로 여기며 담당하는 태도가 아니겠나….
    
-하나님의 뜻을 계속해서 저버릴 때 우리는 존귀한 사람들뿐 아니라 보물들, 심지어 거룩한 성전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음을 알게 하신다. 혹시 지금 나의 삶 속에서 1차 포로와 같은 중대한 환난과 고난이 있다면 영적인 환경들을 돌아보고 재 정돈해야 할 때가 아닐까?
    
-여호야긴이나 시드기야나 하나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특히 느부갓네살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따라 바벨론에 반역하고 만다. 불행하게도 유다의 역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나는 어떤 열정을 쏟고 있는가?
    
-만용이 화를 부채질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했다. 세상의 역사는 그를 민족을 위해서 장렬하게 모험을 감행한 영웅으로 추앙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참 선지자의 경고는 무시하고(렘 37:1~2), 거짓 선지자의 말을 따른(렘 28:1~12) 불신앙의 사람이라고 평가하셨다.
    
-때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의 상식과 기대를 저버릴 수 있다. 그럴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그 길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에 먼저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믿지 못할 것,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은 시드기야의 어리석음을 본받지 않아야 한다. 애굽의 도움을 기대하고 바벨론을 배반하였지만, 애굽은 시드기야의 영원한 우방이 되어주지 못했다(렘 37:7). 바벨론은 유다를 침공하여 2년 가까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끝에 함락시킨다. 군사들 틈에 끼여 도주하던 왕은 여리고 평지에서 붙잡히고, 그를 호위하던 군사들은 다 흩어져버린다.
    
-하나님을 떠난 왕을 보호해 줄 성읍도, 군사도 없었다. 시드기야는 아들들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후에 자신의 두 눈이 뽑히고 놋 사슬로 결박당한 채 짐승처럼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겉은 멀쩡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류는 이렇듯 먹고 먹히며, 달아나고 붙잡는 인생일 뿐이다.
   
*죄를 심판하시겠다는 말씀대로 마침내 예루살렘과 유다를 하나님 앞에서 쫓아내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기 때문에 유다를 한 번에 완전히 멸망하지 않으시고, 바벨론의 1차 포로 후 새로운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럼에도 유다는 다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고 하나님은 전보다 더 철저한 심판을 하신다. 내 삶에 하나님의 징계로 확연하게 다가오는 고난이 있다고 인정된다면, 그것은 지금이라도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님, 악한 길을 고집하는 왕들의 오만에 나라와 민족이 진멸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지도자의 혜안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지도자의 길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하게 되는지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끝까지 마음의 중심에 붙잡고 있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목양의 현장에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 말씀하신 대로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합니다. 주의 말씀을 떠나 세상 가치에 함몰된 인생에 기회를 끝까지 주시지만, 거부하면 결국 진멸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록된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 늘 주님의 말씀 따라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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