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유다의 원수가 되신 여호와 하나님 [애 2:1-10]
 – 2024년 10월 19일
– 2024년 10월 19일 –
2장도 1장과 동일한 히브리어 알파벳 시로 22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시온과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재앙이 여호와가 내리신 재앙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혼잣말(1~10절)과 특히 아이들의 고난 때문에 괴로움을 쏟아내는 시인의 혼잣말(11~12절), 여러 가지 시인의 탄식 말(13~19절)과 여호와께 대한 시인의 탄원(20~22절)으로 구성된다.
 
시인은 시온에 행하신 하나님의 가혹한 심판에 대한 슬픔과 원망을 감추지 않는다. “슬프다”를 외치면서 어쩌다 시온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깊이 토로한다. 마치 하나님을 가해자처럼 몰아세우는 듯이 처량하기에 그지없다. 본문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던 그날에 초점이 맞춰지고 격정적인 시인의 언어가 그의 처절한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1. 시온에 내리신 여호와의 진노(1~5절)
시온을 향한 여호와의 진노를 시인은 직면하며 바라본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거두시고 이스라엘의 모든 힘을 없애신 후에 시온의 원수가 되어 시온을 공격하신다. 하나님 진노의 불은 성전과 성벽을 모두 무너뜨렸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슬픔과 애곡만이 남게 되었다. “슬프다”라는 단어로 2장을 시작하는데, 이는 계속 장송곡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2장의 핵심 주제가 “여호와의 진노”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호와의 진노하심 징계의 첫 번째는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다는 것이다(1절). 구름은 출애굽기 광야 행진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성막을 짓거나 성전을 지었을 때도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으로 구름이 성전과 성막을 덮었다. 하지만 이제는 구름이 여호와의 진노를 상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예루살렘을 하늘에서 땅으로 던지셨다는 것은 그만큼 예루살렘의 영광을 땅에 던져 완전히 비참한 상황으로 만드셨다는 의미다. 더구나 이 진노의 날에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시온을 기억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구약에서 기억은 항상 구원과 연결되는데, 기억하지 않았다는 것은 구원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2절에서 여호와께서 모든 거처를 삼키셨다는 것과 긍휼히 여기지 않으셨다는 표현을 통해 자비가 많으신 여호와의 성품과 반대되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이제 이스라엘을 향한 자비가 중단되었음을 상징한다. 그 결과 딸인 유다의 모든 성채가 무너지고 지도자들은 부정한 상태가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었다. 여호와의 진노하심은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잘랐다. “뿔”은 힘과 능력의 상징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힘을 거두어 가셨음을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을 돕던 하나님의 오른손도 이제는 거두어들이시고 이스라엘을 돕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불살라 버리신다.
 
 
 
2. 시온의 원수 되신 여호와, 성전과 성벽을 허무시다(4~10절).
4~5절의 “원수같이”라는 표현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원수와 대적으로 등장하셨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대적을 향했어야 할 활이 이제 시온을 향해 있다. 이스라엘을 지키던 여호와의 오른손은 이제 분노를 불처럼 일으켜 딸인 시온의 장막 위에 놓으셨다. 이는 예레미야 10:25에서 예레미야가 야곱을 삼킨 이방인에게 내려달라고 요청한 벌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열방이 아닌 야곱에게 쏟으신 것이다. 5절에서는 “삼키다(발라)”라는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하여 여호와께서 유다 땅을 완전히 파괴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결과로 딸인 유다는 슬픔과 애통에 “처하게(많아지게)” 되었다.
 
6~7절은 성전을 파괴하시고 절기를 폐하는 여호와의 모습을 묘사한다. 초막을 무지막지한 힘으로 파괴하시고 흔적도 남지 않는 동산처럼 만드셨다. 이 묘사는 예루살렘과 성전 파괴를 가리킨다. 좀 더 확장하자면 이스라엘을 흔적도 없이 허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기도 폐하신다.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온에서의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6절). 이런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고 성전이 파괴되어 시온에서 더 이상 절기와 안식일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다. 이어서 여호와께서는 맹렬한 진노를 내려 왕과 제사장들이 큰 치욕을 당하도록 버려두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잘 가르치고 다스리기를 원하셨으나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나라를 망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신 것이다.
 
이어서 7절에서는 자신의 제단을 버리시고(거부하시고) 성소를 미워하셨다고 한다. 이것이 성전이 파괴된 이유다. 여호와께서 성소를 미워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망하기 직전에 예루살렘 성에서는 각종 이방 신들을 위한 제의가 행해졌으며, 죄지은 손과 피 흘린 손으로 부정한 제사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궁전의 성벽도 원수의 손에 넘기셨다고 표현하는데, 이제는 여호와께서 원수와 손 잡고 그들의 손에 성벽을 넘기신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적들은 여호와의 전에서 승리를 축하하며 잔치를 열고 떠들썩하게 먹고 마신다. 예레미야는 그 모습에서 마치 예전에 절기 축제를 즐기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떠올린다(7절). 이러한 씁쓸하고 가슴 아픈 풍경에 애통해한다.
 
8~10절은 성전을 허무신 여호와가 성벽마저 허무시는 모습을 묘사하신다. 이 장면은 매우 세세하게 표현된다.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신 하나님이 줄을 띠신다. ‘줄’은 건물이나 벽을 짓기 위해 내리는 다림줄을 뜻한다. 원래 집이나 건물을 지을 때 주로 사용된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가 성벽을 허무실 때 다림줄로 측량하며 매우 계획적으로 하신다고 고백한다. 또한 성벽을 허무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않고 부지런히 계획한 일을 실행하신다고 고백한다. 이런 하나님의 사역을 보면서 성벽과 성곽은 통곡한다. 이는 성벽의 무너짐을 바라보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제 성문은 넘어져 땅에 묻히고 문빗장은 부서져 파괴되었다(9절). 예루살렘 사람들을 지켜줄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침략 속에서 왕과 제사장은 이방인의 나라로 끌려가고 그 성의 예언자들은 묵시를 받지 못한다. 이미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의 시간이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이전에 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백성들은 듣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말씀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이신 것이다.
 
이런 재앙에 대한 반응으로 장로들은 애도의 표시를 하며 침묵하고, 예루살렘의 처녀들은 땅에 머리를 대고 엎드린다(10절). 깊은 슬픔과 절망에 망연자실한 것이다. 장로와 처녀라는 대조는 성읍의 모든 사람이 이런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 없는 예루살렘은 폐허만 남는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자 예루살렘은 무너졌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영광이자 발등상인 성전도 돌보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거두시자 견고한 성이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나라 전체와 지도자들이 수치를 당했다.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을 만큼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하나님보다 성전과 법궤를 우상화한 이들을 향한 경고에(렘 3:16)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결과이다.
 
-내 죄와 하나님 진노의 심각성을 무디게 하는 데 십자가의 사랑을 이용한다면, 십자가마저 수단과 우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싸우신다. 이스라엘을 무력화하고 살육하신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던 오른손을 들어 원수같이 이스라엘을 치신다. 하나님은 한 번도 맹목적인 사랑을 약속하신 적이 없다.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능력과 긍휼을 쓸 수 있다고 하신 적도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를 이길 수 있는 세력은 없으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내 원수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삶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뿐이다.
 
-순종이 없다면 어떤 안전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이 없는 성막도, 절기와 안식일도, 제단도, 오아과 제사장도 인정하지 않으신다. 모두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대하신 것은 자기 백성과의 관계였지, 자기만족의 종교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율법을 무시하고 묵시를 외면한 백성들의 성 예루살렘을 원수들과 함께 직접 파괴하는 데 나서신다. 하나님 없는 그들의 유희를 통곡으로 바꾸셨다. 왕과 방백과 제사장과 선지자에 이어 장로까지 끊으셔서 예루살렘엔 더 이상 율법을 배우고 묵시를 듣고 모략을 세울 길을 다 잃게 하신다. 말씀 없이 세운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묵시 없이 얻은 안전은 신기루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유다의 원수를 자처하셨다(1~2절). 자기 백성을 보호해 주던 오른손으로 유다를 치시는 하나님을 보고 선지자가 탄식한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인 성전과 하나님의 발등상이었던 법궤가 유린당하게 하셨다. 또 유다 전역과 그 왕국 전체를 욕되게 하셨다. 하나님을 떠나 성전과 법궤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만 남은 유다에게 합당한 결과이다. 우리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가? 아니면 형식뿐인 종교를 믿는가?
 
*보호하시는 오른손도 거두셨다(3~4절). 뿔을 꺾으시고 맹렬한 불이 몰려오지만, 보호의 오른손을 거두신다. 되려 이스라엘의 원수가 되어 활을 당기시고 보호의 오른손을 심판의 손으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보호를 요청하고 의뢰하지 않고 나의 힘만 의지할 때 하나님은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고 우리의 원수를 자처하시게 될 것이다. 두렵지 않은가?
 
*바벨론이 아니라 주께서 “이스라엘”을 삼키셨다(6~7절). 유다는 눈에 보이는 바벨론 군대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 손길을 보아야 했다. 이스라엘의 성막, 공회 처소, 절기, 안식일, 오아과 제사장 등 모든 종교 제도를 파괴하셨다. 가장 거룩한 지성소마저 원수들의 손에 내어주신다. 더 이상 그곳엔 하나님이 안 계시고, 부정한 인간의 형식적인 행위만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는 어떠한가? 우리의 예배와 묵상에는 어떤가? 우리의 행사에는 또 어떤가?
 
*하나님께서 직접 손에 줄을 띠고 시온 성곽과 성문 훼파에 나서신다. 문이 열리자, 원수들은 자유롭게 성문을 드나들며, 왕과 방백들을 잡아갔다. 선지자들은 더 이상 묵시를 받지 못했다. 장로들은 슬퍼 탄식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정치, 종교적인 기능을 잃어버린 철저한 파멸의 참상이다.
 
*하나님 없이 쌓아 올린 나와 우리 공동체의 아성을 하나님께서 직접 허물어뜨리실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주님, 인격적인 하나님과 동행하겠습니다. 형식적인 관계로 만족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처럼 위선의 탑을 쌓지 않겠습니다. 늘 깨우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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