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그 인자하심을 따라 부르짖는 자들을 구원하신다. 본 시편은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노래하고 1~22절은 광야에서 거주하던 자들 및 사망의 그늘에 매인 자들을 구원하신 내용을 노래한다. 본 시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라는 명령으로 시작하므로 “찬양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생에 행하신 기적”을 계속 언급하면서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을 뛰어넘어 인류 전체의 보편적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측면도 존재한다.
1. 여호와께 감사하라(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명령형으로 시작하면서 107편 전체의 내용을 규정짓는다. 본 시편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리는 찬송시이다. 찬양의 이유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 그리고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106편에서 이미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규명해 냈다. 언약 공동체의 맥락에서 인자하심을 풀어냈다. 107편은 훨씬 더 넓은 범주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의 주제를 다룬다.
광야에서 구원받은 자들(3~9절), 흑암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들(10~16절), 미련함에서 구원받은 자들(17~22절), 바다에서 풍랑으로 고통받던 자들(23~32절) 등의 여러 범주의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일반적인 의미의 인간 인생 전체를 다룬다.
“감사하다(야다)”로 번역된 동사는 “찬양하다”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지닌다. 찬양과 관련하여 이 단어가 지니는 기초적인 개념은 “고백”이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다. 시편에서는 이 단어가 이인칭 복수 명령형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 혹은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고 고백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2. 광야에서 방황하던 자들을 구원하신 여호와(2~9절)
107편에서 가장 주목해서 살펴야 할 부분은 “후렴구”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주로 한 개의 후렴구를 사용하는 데 비해 두 개의 후렴구를 사용한다. 먼저 인생이 당하는 고통을 묘사한 후, 후렴구1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표현하고, 그 이후 후렴구2를 통해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기적을 찬송한다. 후렴구1은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셨다(6, 13, 19, 28절)”로 시작하고 후렴구2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8, 15, 21, 31절)”로 시작한다.
2절은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을 언급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영원함을 선포해야 한다. 그들이 받은 “속량”은 2~3절을 통해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 모으신 것’으로 표현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로부터, 여러 고난으로부터, 그 백성들을 구원하셨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4절부터는 그 속량하심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 바로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차지 못하던 자들”이다. 그들은 주리고 목이 말라 영혼이 곤한 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근심 중에 부르짖으매 고통에서 건지셨다고 그 결과 그들이 거주할 성읍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들은 거주할 성읍이 없었는데(4절), 이제는 거주할 성읍이 생겼으므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후렴구2는 이러한 여호와의 구원 역사를 근거로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인하여 그를 찬송하라”고 명령한다.
3. 흑암에 앉은 자들을 구원하신 여호와(10~16절)
10절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곤고와 쇠사슬에 매인 자들”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실제로 죽임을 당했다기보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좋다. 매우 심한 환난 가운데 빠져 죽은 자들처럼 되었거나 혹은 죽음 직전까지 내려갔다는 뜻이다.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된 이유를 11절에서 제시하는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낮추시고 돕는 손길을 거두어가셨다(12절).
13~14절은 후렴구1, 15절은 후렴구2이다.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인하여 여호와를 찬송할 이유는 여호와께서 놋문과 쇠빗장을 꺾으사 구원하셨기 때문이다(16절).
4. 미련한 자들을 구원하신 여호와(17~22절)
“미련한 자”란 구약성경 안에서 “지혜문학”에 나오는 주제다. 언약을 강조하는 구속사 영역보다는 그 구속사를 경험한 백성들의 삶을 다루는 지혜의 영역에 속한다. 17~18절은 상황 묘사를 제공하는데, 미련한 자들이 죄악의 길을 따라 악을 범했기에, 음식이 그들을 혐오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결국 사망의 문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 단락의 후렴구는 19~22절까지 차례로 등장한다. 구원 방법으로 말씀을 보내셨고(19~20절),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을 찬양하라고 권고한 후 감사제를 드리자고 말한다(21~22절).
특히 “그의 말씀을 보내어”라는 말을 직역하면 “단 한 마디의 말씀”이다. 말씀 한 마디면 충분하다. 나의 죄악 때문에 밥맛 까지 잃어버릴 극심한 스트레스는 “단 한 마디의 말씀”이면 충분한 것이다. 나는 그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요약하면 1~22절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하여 세 번의 사이클을 통해 여호와의 구원을 노래하며, 그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한 기적을 찬양할 것을 명령한다.
나는?
-하나님은 언약을 잊지 않고 지켜 주셨다. 백성은 하늘의 왕을 버렸어도 하나님은 백성을 심판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으셨다. 스스로 선민이라고 자처한 나라는 멸망했지만, 하나님 나라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이어졌다. 대적의 손에서 속량하시고 동서남북 사방에 흩어진 자들을 주를 인정하는 모든 자들을 모아 새 백성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우리는 큰 은혜를 받았다. 형편이 어떠하든지 늘 감사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인자하심과 선하심으로 모든 일을 행하신다(1~3절). 원수를 무찌르시는 것도, 좌와 사망에서 나를 건져 주시는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도 나를 살리신다. 그 사랑에 감사하며 찬양하리라.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까지 이를 때에도 친히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고토로 돌아오는 길도 지켜 주셨다. 방황하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 안식의 땅에 이르게 하셨고 먹고 마실 것 없어 근심하며 부르짖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 안식의 성에 이르게 하셨고, 먹고 마실 것 없어 근심하며 부르짖는 이들의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셨다.
-인생길을 몰라 방황하는 자가 부르짖을 때 바른길로 인도하신다(4~9절). 마치 출애굽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내기 길을 잃고 헤맬 때 길을 찾아 주시는 그분이 곁에 계시는가? 그분이 내 영혼에 만족을 주시며 함께하심에 대해 어찌 찬양과 감사를 멈출 수 있을까?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여 스스로 쇠사슬에 매이고 흑암과 사망의 고통을 자초했던 백성들이 심판의 손을 드신 이에게 다시 나아가 자비를 호소했을 때, 주께서는 그 환난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기다렸다는 듯이 감옥에서 인도해 내시고, 맨 줄을 끊으시고, 놋 문을 깨뜨리시고, 쇠 빗장을 꺾으셨다.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암흑의 질곡일지라도 자책만 해서는 안 된다. 혼자서만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무엇이든, 주께서 끊으시고 깨뜨리시고 꺾으시도록 맡겨 드려야 한다.
-어둡고 캄캄한 곳에 갇힌 자를 풀어 주신다. 고통의 심연에서 하나님을 만나 간절히 호소하니 그 난관에서 그들을 구해 주신다(10~16절). 늦게나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자비를 구할 때 절대 외면하지 않으신다. 혹시 지금 구원의 길이 차단된 것처럼 견딜 수 없는 절망 중에 있는가? 잘못을 뉘우치고 말씀에 순종하여 살려고 하나님께 와서 도움을 요청할 때 절망은 서서히 걷힌다.
-우리가 미련하여 말씀을 떠나 악을 범했고 질병의 고난으로 돌려받았다.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죽고 싶을 만큼 고통을 받았다. 그런 백성의 기도까지 주님은 들으셨다. 말씀을 보내어 고쳐 주시고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내셨다.
-자기 범죄와 죄악 때문에 심한 질병의 고난을 겪는 자들에게 말씀을 보내 치료해 주신다.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죽음의 문턱까지 이른 사람이 주님께 소리치자 구해 주신다. 고침을 받은 자들은 감사의 제물을 올리며 환호 속에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전했다. 매번 나의 호소를 들으시고 도와주시는 주님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께 인생이 드릴 것은 감사와 찬양밖에 없다. 하나님이 내게 보이신 인자하심과 내 삶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깊이 묵상하여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하리라.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 사막과 같은 인생길에서 방황한다. 어디로 가야할 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막막함에 붙잡힐 때가 있다. 때로는 놋문이나 쇠빗장처럼 무언가에 꽁꽁 얽매일 때도 있다. 마음에 극심한 고통을 받아 밥맛조차 잃어버릴 때가 어디 한 두번인가? 하지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된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 증거다. 고통중에 부르짖는 하나님 백성의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부르짖으면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과 다름 없는 삶에 거주할 성읍(안정)을 주신다. 흑암에 앉은 것처럼 무엇인가에 얽매여 있는 쇠사슬을 끊어주신다. 자신이 지은 죄악(자기 중심성)에 밥맛조차 잃어버린 극심한 스트레스를 “단 한 마디의 말씀”으로 자유케 하신다. 부르짖으면 들어주신다. 이 말씀이 오늘 참 은혜가 된다!
*주님,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오늘을 능히 살아낼 수 있음을 찬양합니다. 구원 베푸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오늘 내가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단 한 마디의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제게도 그 말씀을 주셨음을 믿습니다. 또 주실 것을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