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선한 싸움의 방법_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 [딤전 2:1-7]
 – 2024년 11월 03일
– 2024년 11월 03일 –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본격적인 권면이 시작된다. 직전 부분은 거짓 교훈에 대해서 라면, 이 부분부터는 거짓에 대응하는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기록한다. 1~2절은 디모데를 향한 권면으로 임금과 권세자들을 위한 기도 요청이고 3~4절은 기도의 목적을 설명한다. 5~7절은 하나님의 구원 과정에서 예수께서 하시는 역할로서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 되심을 다룬다. 특히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를 명령하면서 특별히 왕들과 권세를 잡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한다. 초대교회에서 교회를 핍박하는 주된 세력이었던 권세자들을 위해 기도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을 향해 분노하며 저주하지 말고 오히려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권한다.
    
    
    
1. 임금과 권세자들을 위한 기도(1~2절)
“첫째로 권하노니”의 첫째(프로토스)는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들과의 선한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기도”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거짓 교사들이 활개 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라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바울은 기도를 강조하면서 네 개의 표현을 사용한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권한 것이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는 비슷한 용어여서 각각의 단어가 가리키는 특별한 의미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다.
    
신약성경에서 사용되는 용례로 살펴보면 “기도(프로슈케)”는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고, “간구(데에시스)”는 히브리서 5:7에서는 간절한 호소의 기도를 의미한다. “도고(에튝시스)”는 디모데전서 4:5에서 식사를 위한 기도로 사용되었다. 즉 바울은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목적과 형식의 모든 기도를 강조하면서 이러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감사(유카리스티아)”는 구약성경과 초대교회에서 기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모든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하되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하면서 특히 “임금들과 권세를 잡은 자들”을 언급한다. 바울이 이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평소에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후 1세기 당시 왕들과 권세자들은 교회를 핍박하는 주된 세력이었다. 굳이 그들을 위해 성도들이 기도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바울은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라는 표현을 통해 임금들과 권세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초대교회는 네로 황제를 비롯하여 왕들과 권력자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성도들이 경건하고 단정한 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바울은 간절하게 세속적인 권력에 관해 관심을 두고 기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듯하다. 왜냐하면 통치자들의 정책이나 결정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2. 기도의 목적(3~4절)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의 목적이 단지 그리스도인들의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기뻐하시는 기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아마도 바울은 소수의 특별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의 영지주의적 구원관을 비판하고 있는 듯하다. 하나님은 계시의 지식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바울은 그 하나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소개한다. 하나님은 구원자로서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가 선한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그러한 기도를 통해 성도들이 경건하고 단정한 가운데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성도들이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함으로 그들이 구원받고 진리를 깨닫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대속(5~7절)
바울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목적임을 강조한다. 이는 우리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신 예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바울은 여기서도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구원관을 염두하고 그것을 반박한다. 영지주의의 신관은 이원론적이다. 영지주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초월적인 지고의 신이 있고, 그보다 열등한 신이 천지 만물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사람인 그리스도 예수라고 소개한다. 여기에서 ‘사람’이란 표현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께서 참된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 또한 영지주의의 주장인 “가현설”의 반대다. 영지주의에서는 구원자가 사람일 수 없다. 단지 사람처럼 나타났을 뿐 사실은 신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중보자이며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참된 사람이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셔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는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다. 영지주의와 기독교의 핵심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다. 영지주의는 계시의 지식을 받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구원자는 계시의 지식을 전달해 주는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와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은 구원이 영적 지식을 소유함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속적인 죽음을 통한 죄 사함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셔야만 했던 것은 그가 대속적인 제물로 돌아가셔야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원은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계획하셨던 것이며, 하나님은 때가 되어 그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것은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것이다. 영지주의에서 구원자는 소수의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왔지만, 그리스도 예수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선한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의 분명한 이유를 알린 바울은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이렇게 모든 사람을 위해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바울은 내가 사도가 되었다 고가 아니라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고 수동태로 설명한다. 이는 그를 사도와 전파자로 세운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거짓 교사들은 스스로 선생이 되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다. 바울은 하나님이 세운 자다. 바울은 그것이 참말이며 거짓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왜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해야 했을까? 그것은 디모데에게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했던 것 같다. 거짓 교사들을 상대해야만 했던 젊은 디모데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이 필요했을 것이다. 디모데는 바울의 신임을 받는 제자였다. 바울이 하나님에 의해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이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면, 그러나 바울로부터 세움을 받은 디모데도 하나님이 세우신 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디모데는 이러한 사실에 확신하고 거짓 교사들을 물리쳐야 했다.
    
    
    
나는?
-바울이 가르쳐주는 선한 싸움의 방법은 “기도”다. 기도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고, 나의 지혜가 얼마나 모자라는지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 내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일이다. 나를 핍박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앙갚음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선한 싸움이다. 내 마음을 힘겹게 하는 불의 앞에서 내 의로움을 내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를 구하는 기도로 맞서야 한다. 하나님의 힘으로만 할 수 있다. 바울은 모든 기도의 방식(간구, 기도, 도고, 감사)을 다 동원하여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권면한다. 임금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의미 속에서는 황제는 숭배의 대상이 아닌 구원의 대상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들이 아무리 복음을 박해하더라도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기에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원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한다.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이 늘 듣고 싶어 하시는 기도이다. 땅끝의 모든 백성이 당신을 앙망하고 오직 한 분, 참 신으로 인정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사 45:22). 임금들과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되, 그들의 구원은 물론이고 성도들이 평안한 중에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모든 사람”은 특히 믿지 않는 불신의 권력자들도 포함된다. 그들도 기도가 필요한 연약한 자들이며 무지한 자들이다. 그들이 잘 돼야 그 권력 아래서 사는 성도들도 경건과 단정함과 고요함과 평안함 가운데 살 수 있다.
    
-기도로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좋은 것은 그것이 구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하고 받으실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인 중의 괴수였던 바울이 가장 좋은 예이듯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며 구원의 진리를 알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망 없어 보이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기도하는 소리를 얼마나 듣기 좋아하실까?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사역에 함께 하는 일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중보자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주신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바울은 그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그는 차별 없고 경계 없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선포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한 유일한 대속물로서 모든 인간을 위해 중보자 되셨다. 그는 처음부터 사람을 차별하여 구원받을 사람과 받지 못할 사람을 가르지 않으셨다. 외모로 판단하시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모든 자들을 사랑하시고, 기회를 주신다. 바울의 사도적 소명은 바로 이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이방인 에베소 성도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지금도 이 복음의 소식을 기다리는 영혼은 반드시 있다.
    
*디모데에게 전체적인 명령(선한 싸움을 싸우라)을 내린 바울은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교회가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 것인지를 하나하나 다룬다. 그 첫 번째 가르침이 기도였다. 가장 먼저 기도에 관해 가르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교회 공동체 형성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바로 “기도”라는 것을 일깨운다. 
    
    
    
*주님, 우리 공동체부터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특히 이 땅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기도 대상이 “모든 사람”이었는지, 나를 위한 “모든 것”이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를 시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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