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감독의 자격 [딤전 3:1-7]
 – 2024년 11월 05일
– 2024년 11월 05일 –
거짓 교사들이 활개 치는 시대에 참된 교회의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강조한다. 어떤 사람을 직분자로 세워야 할지를 다룬다. 감독의 자질은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되고 있다. 먼저, 감독 개인의 성품적인 자질에 관해 설명한다(2~3절). 그리고 자신의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한다(4~5절). 또한 신앙 경력이 짧은 초신자는 안 된다(6절). 마지막으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는 자라야 한다(7절).
 
교회의 안정화는 좋은 일꾼을 세우는 것이 관련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 사실은 변함없다. 문제는 적절한 후보자인데, 사도나 복음 증거자의 전도로 교회가 세워지기는 했지만, 초기 상태의 교회가 많았고 구약이나 예수에 대한 깊은 가르침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는 사도나 복음 전도자들이 지속해서 머물며 양육할 상황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거짓 교사들의 거짓 교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에베소 교회도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감동의 자질에 대한 설명은 한편으로 거짓 교사들의 합당하지 않은 자질에 대한 반박의 성격으로 봐도 무방하다. 즉, 바울은 당시 거짓 교사들을 염두하고 그들과 비슷한 사람은 결코 감독으로 세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감독의 자질에 대한 설명 마지막에 마귀의 정죄와 마귀의 올무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것은 사탄에게 내어준 바 되었던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같은 사람들을 상기 시킨다.
 
지도자의 자격에 있어 우선시 되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사역 수행 능력이 아니다. “됨됨이”다. 교회의 건강은 목회자들의 자격과 신실함, 그들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지도자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1. 감독의 자격(1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감독을 세울 때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할 것인지에 관해 설명한다. 감독(에피스코페)으로 번역된 단어는 교회를 돌보는 직분을 가리키는 것이다. 카톨릭에서는 주교를 가리키는 용어다. 개신교는 목회자로 이해해도 된다. 바울은 먼저 감독 직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표현은 “이 말은 믿을 만한 진실한 것이다”라는 뜻으로 목회 서신에서는 반복된다. 바울은 반드시 믿고 따라야 할 중요한 교훈을 강조할 때 이 표현을 사용한다. 이 표현을 통해 감독 직분을 맡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선한 일을 하려는 열망을 가진 자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감독이라는 직분은 자신의 명예나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감독이 되려는 동기와 목적이 되어야 한다. 바울이 이것을 강조하면서 추측하건대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그들은 선생이 되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은 없는 자들이었다. 딤전 6:5에 따르면 불의하고 탐욕적인 자들로서 경건의 말씀을 이용하여 물질적인 유익을 얻으려 하는 자들이었다. 바울은 “선한 일에 열망이 없는 자는 결코 감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선언한다. 감독이 되려는 동기와 목적은 반드시 선한 일에 대한 열망에서 출발해야 한다.
 
 
 
2. 일반적인 품성(2~3절)
감독이 되고자 하는 동기에 대한 설명에 이어 감독이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인격적인 자질에 관해 설명한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부정적인 측면에서 감독이 될 수 없는 자질에 관해 설명한다.
 
긍정적인 자질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고, 신중하고, 단정하며,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가르치기를 잘하고, 관용하는 자라야 한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하여 여러 명의 아내를 둔 자는 안 된다는 뜻이다. 반드시 결혼한 자라야 한다거나 이혼한 자는 안 된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일부다처제에 대한 반대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바울도 디모데전서를 기록할 당시 독신이었다. 절제하고 신중하며 단정한 것은 비슷한 자질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 자라야 한다는 의미다.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은 선한 일의 대표적인 예이다. 또 잘 가르치는 것은 감독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특히나 거짓 가르침이 많은 시대에는 감독으로서 필수적인 자질이었을 것이다.
 
또 바울은 감독이 될 수 없는 부정적인 자질에 대해 언급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책망 받을 만한 일이 있는 자는 감독이 될 수 없다.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말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엄밀하게 살펴보면 바울은 술 마시는 것 자체를 완전히 죄악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모데에게 건강을 위해 술을 조금씩 마시라고 권하기도 했다(딤전 5:23). 구타하는 사람은 감독이 될 수 없다. 감독은 잘 타이르는 자이여야 한다. 관용하는 것은 다투지 않는 것과 비교된다. 분쟁이 유발하는 자도 감독이 될 수 없다. 돈을 사랑하는 자도 감동이 될 수 없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는 것은 있는 것을 족하게 여기고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유익이 된다(딤전 6:6).
 
 
 
3.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4~5절)
감독의 일반적인 자질을 설명한 것에 이어 한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감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자녀들을 공손하게 잘 복종하는 자로 가르치는 자라야 한다. 이 권면은 특히 당시 교회가 가정 교회가 많았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가정은 작은 단위의 교회와 같았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를 잘 목회하지 못하면 큰 교회를 목회할 수 없듯이 먼저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감독이 될 수 있다. 즉, 자기 가정을 어떻게 다스리고 가르쳐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는 의미다.
 
바울은 목회 서신에서 가정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강조한다. 가정을 잘 다스리는 것은 감독뿐만 아니라 집사의 자격에서도 강조되고 있다(딤전 3:12).
 
 
 
4. 칭찬받는 자(6~7절)
새로 입교한 자는 감독으로 세우지 못하게 한다. 초대교회에서는 대부분이 새로 회심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초신자도 종종 교회의 중요한 직책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감독의 직분에는 회심하니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를 세우면 안 된다. 바울은 그 이유로 교만해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세상에서는 다스리는 직분을 맡게 되면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지만, 교회에서는 감독이 다스리는 자이지만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다. 교만은 교회의 감독 직분을 매우 세속적인 것으로 전락시키는 원인이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교만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지 강조한다. 그것은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마귀는 교만함으로 인해 영원한 심판에 처했다. 만약 감독이 교만해지면 그것은 마귀의 교만함을 따라가는 것이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마귀가 받게 될 그 정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독에게 교만은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무서운 적이다.
 
교만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감독은 외인에게서도 칭찬받는 자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외인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가리킨다.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지 못하는 자가 감독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바울은 다시 마귀의 올무에 대해 언급한다.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것은 역으로 비방을 받는 것과 같은 의미다. 비방을 받으면 마귀가 쳐놓은 올무에 빠지게 될 위험이 있다. 마귀는 교회 지도자를 올무에 빠뜨림으로 교회 전체를 타락시키려고 한다. 이런 마귀의 올무에 빠진 것에 대한 예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상기시킨 것이다(딤전 1:20).
 
감독은 교회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와 같다. 감독에 대한 비방은 교회에 대한 비방과 같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세상의 비방이 물밀듯이 덮쳐온다. 그 많은 비방은 대부분 칭찬받지 못하는 목회자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감독은 성도들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칭찬과 인정을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감독은 오늘날의 장로 직분과 비슷할 것이다. 감독의 자격의 첫 번째는 “선한 일(목회 사역)을 간절히 열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앞서야 한다. 또 내외적인 자격 요건도 갖추어야 하나, 동시에 성도들을 섬기겠다는 자원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그리고 감독은 공동체 안에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사역을 감당하기에 걸림이 되지 않을 만큼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한다. 즉, 신앙고백이 확실하고 그 고백에 어울리는 삶이 모두 필요할 때 성도들을 목양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를 잘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만 감독이 될 수 있다. 자녀들에게 권위를 인정받는 자가 교회에서도 온전히 삶과 인격에서 흘러나오는 권위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공동체 안팎의 신망이 좋다는 것은 곧 그의 삶에 바른 복음의 영향력이(열매가) 선하게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감독은 그에 걸맞은 인격이 성숙해야 한다. 자신의 욕구에 대해 절제하고 자제할 수 있으며, 갈등 상황에서도 온유하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술을 멀리해야 하고 교만과 투기와 분쟁이 특징인 거짓 교사와 달리 부드러운 합리성으로 분쟁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감독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돋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며 먹을 것과 잠잘 곳이 필요한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관대한 사람이어야 한다. 절제하고 자족하는 삶을 살면서 곤경에 처한 나그네를 섬기고 바울처럼 내가 아무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겠다. 지도자는 절제로 인한 불편한 삶을 자청함으로써 세상 방식대로 살지 않아도 주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말씀을 성도들 앞에서 먼저 살아내어 증명하는 자라야 한다.
 
-감독은 영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새로 입교한 자의 열정은 칭찬받을 수 있지만, 너무 빨리 책임을 맡으면 교만해질 수 있다. 신앙은 생명이기에 성장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는 이런 자격들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
 
*감독은 교회 안과 밖에서, 말과 행동에서, 신앙과 삶에서 늘 진실하고 정직하고 한결같아야 한다. 선과 의를 열망하고 성과 술과 돈의 유혹을 잘 이기며, 어디에서든 흠이 없고 본이 되는 자라야 한다. 경건에 관한 바른 교훈(1:5)을 무엇보다 잘 지켜 다른 사람을 권면하고 책망할 권위가 있어야 한다.
 
*바울이 감독의 자격을 논하면서 일에 대한 묘사보다는 성품, 가정생활, 믿음의 성숙, 교회 바깥의 평판에 집중하는 것을 본다.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보다 내적인 성숙을 지도자의 핵심 덕목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런 바울의 기준은 현대교회가 목회자의 외적인 능력과 그에 따른 결과에 집중하고 세상 기업의 소유주와 엇비슷하게 인식이 있는 것에 대해 통렬한 성찰을 하게 한다. 능력이 아니라 성품과 순종, 열정을 바라보는 바울의 안목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한다.
 
*담임 2년 차의 연단과 훈련은 결국 “사람”과 관련된 것이었다. 감독의 자격을 단순하고 단정하게 제시하고 이에 걸맞은 감독을 세우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 공동체와 함께 사역해야 할 동역자들을 기도로 구할 때 어떻게 구해야 할지에 대해 도움이 된다. 공동체에 대해 유익하고 헌신적이며 세상에서도 덕이 있는 그런 교역자가 세워지면 좋겠다. *지도자의 직분을 맡을 사람일수록 익을 시간이 필요하다(6절). 우리가 먹는 채소와 과일들은 거둘 수 있을 정도가 되기까지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토마토는 모종 후 2개월이 지나야 딸 수 있다. 사과는 묘목을 심고 최소 4년을 지나야 한다. 그 전에 열리는 열매는 뿌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따준다.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이러한데,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데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섣불리, 어설프게, 혹은 신앙 경력만으로 직분자를 세웠을 때 거짓 교사들이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 만큼이나 근심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상도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다. 쉽게 지도자가 되면 교회와 세상을 우습게 안다. 잘 익어가는 시간이 성숙한 지도자를 빚어낸다. 나도 빚어지고 익어가는 시간임을 안다. 다 익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어설프다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욱 겸손하게 나에게 맡겨주신 목사의 직임을 두려운 마음으로 감당하리라.
 
 
 
 
*주님, 저를 목회자로 부르셔서 여기까지 다듬어 세워주신 은혜가 새삼 깊은 감사가 터져 나오게 합니다. 기록된 대로 갖춰 나가보겠습니다.
*주님, 가정을 잘 다스리고, 교회 안에서 성숙한 사역자가 되겠습니다. 적어도 저 자신이 교회를 비판하는 원인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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