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다른 교훈과 탐욕에 대한 경계 [딤전 6:3-10]
 – 2024년 11월 10일
– 2024년 11월 10일 –
바울은 성도들에게 경건으로 인도하는 권면의 말씀을 한 후, 이제 경건에서 떠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설명한다. 그들은 돈에 대한 탐심 때문에 진리의 복음을 버리고 떠난 자들이다. 돈에 대한 욕심이 모든 악의 근원이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진 것을 족하게 여기면서 경건하게 살 것을 명령한다. 바울이 이렇게 권면하는 배경에는 거짓 교사들이 진리의 복음에서 떠난 근본 원인은 돈에 대한 탐심에 있었다. 탐심은 경건의 복음을 물질적인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사용하게 했고, 모든 분쟁과 비방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바울은 돈에 대한 사랑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선언한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 안에 있는 세 그룹의 사람들(과부, 장로, 종)에 관한 지침을 준 후에 네 번째로 거짓 교사들에 관해 다룬다. 그들의 해로운 영향력은 1:3~7에서 율법에 관해 변론을 일으키는 것과 4:1~5에서 창조의 선함을 부인하는 것을 지적했다. 본문 3~5절은 거짓 교사들이 건전한 교리에서 벗어나 교회를 분열하고 탐욕으로 행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이런 모습을 통해 탐욕과 자족(7~10절), 부와 관대함(17~19절)에 대해 가르친다.
    
    
    
1. 진리의 말씀에서 떠난 거짓 교사들(3~5절)
바울은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믿음에서 이탈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며, 돈을 사랑한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경건에 들어맞는 다른 가르침은 거짓 가르침이며, 이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이미 교만해졌고,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의 가르침이 경건에 맞지 못하는 것은 변화된 삶을 끌어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화와 허탄한 말로 쓸데없는 논쟁과 말다툼에 빠져버린 영적인 환자들이었다. “교훈을 따른다”라는 말은 교훈을 충성스럽게 고수한다는 의미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을 흉악한 이리 떼에 비유하기도 했다(행 20:29). 1:6에서는 그들의 가르침을 “헛된 말”이라고 했고, 4:1에서는 귀신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바울은 바른 교훈의 두 가지 특징을 정의한다. 첫째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이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주장했으며(고후 13:3), 심지어 갈라디아인들이 그를 마치 예수 그리스도인 것처럼 영접했다고까지 했다(갈 4:14). 둘째로, 바른 교훈은 “경건에 관한 교훈”이다.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경건과 일치하는 가르침, 혹은 경건으로 이끄는 진리라는 의미다. 바른 교훈은 그리스도로부터 와야 하고 또 경건을 증진해야 한다. 이 사실을 부인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이다. 그래서 변론과 언쟁만 좋아한다.
    
4~5절은 거짓 교사들의 다른 교훈이 가져오는 다섯 가지 결과를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과 다툼”으로 언급한다. 투기는 타인의 재능에 대한 불평이고, 분쟁은 경쟁하고 다투는 마음이며, 비방은 상대 교사에 대한 부당한 행동이다. 그들은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로서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이다. 거짓 교사들은 경건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의 가르침을 팔아먹어 금전적인 이익을 얻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바울은 그들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교만하게 행동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교만”은 자신을 과장하여 부풀리는 것을 의미한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을 뽐내려고 하는 건전하지 못한 욕망을 가진 자들이다. 이러한 욕망이 변론과 논쟁으로 나타난다. 욕망에서 비롯된 논쟁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불의와 불법을 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과 다툼”이라는 열매를 통해 거짓 교사들이 어떤 존재이지 설명한다.
    
거짓 교사들은 마음이 부패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잃어버린 자들이며, 경건의 말씀을 물질적인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자들이다. 헬라어 원문은 마음이 부패한 것과 진리를 잃어버린 것을 “완료 분사”로 표현하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경건의 말씀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한다는 문장은 현재분사다. 이는 거짓 교사들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거짓 교사들의 마음이 부패한 것은 진리를 잃어버린 결과이다. 진리에서 떠난 그들은 마음이 부패해졌고 경건의 복음을 물질적 이익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거짓 교사들의 주된 관심사가 물질적인 이익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거짓 교사들은 복음을 경건한 신앙의 기초가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한 사람들이다.
    
    
    
2. 자족과 경건의 관계(6절)
거짓 교사들이 복음을 물질적 이익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지적한 바울은 이제 디모데에게 탐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라고 권면한다. *경건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6절을 헬라어 어순에 따라 직역하면 “큰 이익은 자족하는 경건이다”이다. 거짓 교사들은 이익을 물질적인 것에 두었다. 하지만 바울은 이 문장을 통해 경건이 주는 더 크고 위대한 이익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본문에서는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경건이 주는 큰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12절에서 “영생”이라고 연결한다. 영생이 물질적 유익과 비교할 때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 그런데 그 위대한 이익을 얻는 길은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경건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족하는 마음을 경건과 같은 것으로 묘사한다. 경건의 시작은 모든 죄의 근원인 돈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3. 자족해야 할 이유(7~8절)
바울은 자족하는 것이 큰 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 후에 자족해야 할 당위성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이는 물질에 대한 탐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설명하는 것이다. 바울은 인간이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죽을 때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 이외에 그 이상의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7절).
    
바울은 태어나고 죽는 것을 이 세상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는 이 세상에서의 인생이 전부가 아니라 어딘가에서 들어왔듯이 또한 어디론가 가야 할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갈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기에 무엇을 저축하고 쌓아두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욕심이며 그것은 모든 죄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가진 것을 족하게 여기는 자족하는 마음은 우리를 경건으로 인도한다.
    
    
    
4. 물질에 대한 탐심은 모든 죄의 근원(9~10절)
자족하는 것이 경건의 길인 반면에 탐심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설명한다. 부자가 되려는 자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빠진다. 시험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시험을 극복하면 연단을 받아 더 굳건한 믿음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탐욕을 가진 자들이 시험을 받게 되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올무에 떨어지게 된다.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탐욕적인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부자가 되려는 욕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설명한다. 그것은 시험에 빠지게 하고 올무에 떨어져 탐욕적인 사람으로 전락하게 만들며, 결국 멸망에 빠지게 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는 가룟 유다이다. 그는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아 예수를 죄인들에게 파는 올무에 걸려들었고 결국은 망하고 말았다.
    
주의할 것은 바울은 돈이 많은 부자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욕구에 맹목적으로 집착할 때, 시험에 빠지고 올무에 떨어지게 됨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가진 것 자체는 죄가 될 수 없지만,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다. 이것은 가난한 자에게나 부한 자에게나 동일하다. 돈에 대한 탐심은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많은 근심 가운데 고통을 받게 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많은 근심을 찌르는 가시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돈에 대한 욕심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어 괴롭힌다.
    
    
    
나는?
-바른 교훈과 다른 교훈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진리에서 나온 경건에 관한 교훈이 아니면 “다른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복음에 합당한 경건한 삶을 촉구하는 지식이 “바른말”을 형성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경건한 삶을 가능케 하는 비밀이기에(3:16), 이 진리를 떠나 자기도 모르는 말을 퍼뜨린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변론과 말싸움을 낳고, 공동체 안에 투기와 분쟁, 비방과 악한 생각을 심는다(1:4, 6). 바른 복음을 향한 지적 진통을 피해서는 안 되지만, 자기만 옳다는 교만한 마음에서 출발한 지식은 듣는 사람들마저도 오만하고 분파적인 사람이 되게 할 수 있기에 피해야 한다.
    
-다른 교훈은 부패한 마음으로 이끈다. 경건에 관한 교훈을 버릴 때 마음이 부패해지고, 결국 경건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데만 몰두하게 된다. 자기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게 하고 종교를 상업적 이득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다. 자기를 부인하고 버린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 곳에서는 지금도 돈과 힘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라는 유혹에 넘어질 것이다.
    
*바른 먹거리가 건강을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바른 앎, 바른 영적 양식이 바른 삶과 인격을 형성한다. 그릇된 교훈은 이미 인간의 욕망 때문에 변질된 교훈이며, 상한 음식이다. 그 음식을 섭취한 자들은 교만하고 자기 의에 충만해진다. 타인을 무시하고 시기하고 다툼과 변론을 일으킨다. 경건의 능력 없이 경건의 모양만 꾸며서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한다. *부패한 지식은 부패한 사람을 낳는다.
    
-바른 교훈은 자족하는 마음으로 이끈다. 가진 것을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하는 경건한 마음 자체가 큰 이익이다. 삶은 내가 스스로 만족할 만큼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로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는 동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하나님이 먼저 아시고 챙겨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마 6:25 이하; 히 13:5). 돈 자체는 악하지 않지만,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 부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될 때 갖은 시험과 올무에 걸려 넘어지고, 해로운 정욕의 노예가 되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멸망에 이르게 된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면 믿음도 버리게 되고, 만족하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을 근심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자가 된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된다. 바울은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왔는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고 다 두고 떠날 나그네 인생이니 쌓는 데 골몰하지 말라고 한다(6~8절). 삶은 내가 만족할 만큼 스스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로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물질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이 자족의 마음과 능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경건이 주는 큰 이익이 있다. 세속적인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경건을 추구하면 그 경건이 우리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세속적인 이익은 아니지만 세속적인 이익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을 얻는다. 돈의 유무와 권력의 유무에 상관없이 잘 먹고 잘 입기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과의 참다운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하나님과 참된 관계를 방해하는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돈”이다. 소유이다. 소유로 존재를 대신하려는 유혹이 모든 악의 출발이다. 눈에 뵈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눈에 뵈는 사람들의 환호와 인정에 기대어 살아간다. 먹고 입는 것마저도 권력 행위로 삼고, 돈으로 꾸민 경건의 모양마저도 자신에게 기여하게 한다. 이런 그들은 살았으나 죽은 자이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악의 뿌리며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도자의 타락 원인이요, 우리가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다. 돈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될 때 갖은 시험과 올무에 쉽게 걸려 넘어지고 해로운 욕심과 근심의 노예가 된다. 감사와 자족이 떠난 자리에는 언제나 불평과 탐욕이 자리를 차지한다. 아직 누리지 못한 것을 셈하기보다는 이미 가지고도 누리지 못한 것을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은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전락시키지만, 바른 교훈을 추구하는 자들은 훈련과 자족을 통해 경건의 큰 이익을 누린다.
    
    
    
*주님, 바른 교훈이 건강한 삶으로 이끄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바른 복음은 바른 삶으로 이끄는 것도요.
*주님, 제게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고 자족하며 살겠습니다. 자족하는 경건의 마음을 주십시오.
*주님,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물질에 더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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