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계속되는 선한 싸움, 하나님의 사람처럼! [딤전 6:11-21]
 – 2024년 11월 11일
– 2024년 11월 11일 –
에베소 교회에는 다양한 신분과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그중에는 자연스럽게 가난한 자와 부자들도 있었다.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디모데와 부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권면의 내용은 동일하게 선행에 대한 강조이다. 디모데에게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고, 부자들에게는 선한 일을 많이 하라고 명령한다. 디모데는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성도들을 지켜야 하고 부자들은 가진 재물로 선한 일에 힘써야 한다.
    
    
    
1.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11~12절)
바울이 디모데에게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른다. 이는 디모데가 거짓 교사들과 달리 하나님의 참된 일꾼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짓 교사들과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피해야 할 것과 추구해야 할 것에 관해 설명해 준다.
    
먼저 피해야 할 것은 “이것들(타우타)”이다. 4~6절에서 언급한 거짓 교사들의 특징이다. 교만한 마음으로 아는 척하면서 변론과 논쟁을 일으키는 것과 부패한 마음으로 복음을 물질적 이익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재물을 사랑하는 탐심도 빼놓으면 안 된다. 디모데는 이런 것들을 피해서 달아나야 한다.
    
반면에 그가 얻기 위해서 좇아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이다. 하지만 이것은 쉽게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디모데는 이를 얻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은 힘든 투쟁을 통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 복음 사역자로 부름을 받을 때 많은 사람 앞에서 했던 신앙 고백을 디모데가 기억하고 힘써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취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이 명령을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지키라(13~14절)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명령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키라고 디모데에게 명령한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활동에 직면한 디모데에게 이 명령이 얼마나 엄숙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듯하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너에게 명한다”라는 말로 디모데에게 주어진 사명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에서 너에게 명한다고 말했다. 반면,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신’으로 소개한다. 이는 디모데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했던 선한 증언과 그리스도께서 빌라도 앞에서 하신 선한 증언을 대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서 증언을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바울이 의도하는 바는 디모데가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선한 증거를 보이셨던 것을 기억하고 그러한 태도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임을 격려하고 싶었다.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라는 말은 디모데가 완벽하게 명령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기보다는 디모데에게 주어진 명령이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는 것이란 뜻이다. 이것도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대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흠이 많은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책망받을 것이다.
    
    
    
3. 때가 되면 그가 나타나실 것이다. 그러니 충실하라(15~16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이 명령을 지키라고 한 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대해 설명한다. 이것은 바울이 당시 초대 교회 안에 재림 시기에 관한 잘못된 생각들을 염두하고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재림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에 있을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며,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시며,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분이시다. 어떤 사람도 그를 볼 수 없고 보지도 못했다.
    
이러한 설명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불가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재림 시기에 대해 더 이상 불필요한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이며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 속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돌리면서 그의 명령에 순종할 뿐이다.
    
    
    
4. 부자들이 피해야 할 것과 추구해야 할 것(17~19절)
이제부터 부자들에게 명령한다. 디모데가 피해야 할 것과 추구해야 할 것이 있었듯이 부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부자들이 피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부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잘못된 것이다. 부자들이 얼마나 교만하기 쉽고, 또 얼마나 자기 재물에 소망을 두기 쉬운지 모른다. 그리스도인은 재물의 허구성과 무가치함에 대해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재물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잠시 있다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 그것을 가져가지도 못할뿐더러 재물이 우리의 영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자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재물로 열심히 선을 행하는 것이다. 바울은 선행에 대해 세 차례 반복하며 강조한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선한 사람이 되어야 ”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재물을 후하게 주신 것은 선한 일을 많이 하게 하기 위함이다.
    
바울은 재물을 가지고 열심히 선을 행하는 것이 그들에게 큰 유익이 되는 길임을 상기 시킨다. 선한 일을 많이 하고 후하게 나눠주는 것은 장래에 자신이 살아갈 터를 닦는 것과 같다. 그 터는 참된 생명의 터이므로 잠시 있다 없어지는 이 세상의 일시적인 생명의 터와 다른 것이다. 부자들이 재물을 가지고 선을 많이 행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 참된 보물을 쌓는 것과 같다.
    
    
    
5. 헛된 논쟁을 피하라(20~21절)
바울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디모데가 피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설명한다. 피해야 할 것은 거짓 교사들과 헛된 논쟁이다. 헛된 논쟁에 휘말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지적한다. 어떤 사람들은 헛된 논쟁에 휘말려 믿음에서 떠난 자들이 있다. 그들은 헛된 논쟁에 휘말려 자신들이 가야 할 참된 길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잘못된 길로 가버린 자들이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디모데에게 경계를 주고 있다. 그렇기에 바울이 명한 것을 디모데가지키는 일은 먼저 헛된 논쟁을 피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네게 부탁한 말을 지키라는 말은 간수가 죄수를 감하고 지키듯이 그렇게 보호하고 지키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물론 디모데가 지켜야 할 것은 죄수가 아니라 복음이다. 복음을 지키기 위해 복음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헛된 논쟁에 참여하는 것은 복음에서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만약 디모데가 그렇게 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지키는 것은 열심히 복음에 따라 사는 것을 통해 성취된다. 이단을 설득하려고 그들과 함께 논쟁한다면 나도 모르게 그들처럼 다툼과 비방과 논쟁과 악한 생각에 물들어 다투는 자가 된다. 거짓된 것을 피하고 열심히 진리를 행하는 것만이 우리가 복음을 지킬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성도가 싸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는 악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의 선한 싸움의 방법이다. 그것은 힘과 권력과 돈으로 사람 숫자와 화려한 건물로 그 위세를 자랑하는 세상의 방법보다 훨씬 힘들고 오래 걸리고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승리의 길이고 주께서 인정하고 역사하시는 “선한 싸움”이며, 이미 소유했지만, 아직 그 완성을 기다리는(빌 3:12) 영생을 취하는 삶이 된다.
    
*결국 지도자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복음의 일꾼인 디모데에게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절제하고 훈련하는 삶을 본받으라고 했다. 그것은 적극적으로는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고 소극적으로는 다른 교훈을 좇는 자들의 경건치 못한 삶을 피하는 것이다. 영생 또한 선물이면서 동시에 선한 싸움을 통해 취할 대상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누릴 때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멸망으로 이끄는 부패한 교훈과 해로운 탐욕(3, 10절)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악에 대항하여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를 “좇아야” 한다(11~12절). 세상의 방법보다 훨씬 힘들고 오래 걸리고 미련해 보여도 이것만이 주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싸움, 승리의 길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예를 얻는 길이다. 때때로 믿음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고, 또 뒤로 물러나고 싶은 나약한 마음이 들더라도 믿음의 선한 싸움은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된다.
 
    
-성도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거짓 교사들은 당장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보상이 돌아오는 일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주의 종들은 생명의 주권자시며 몸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신실하셨던 예수님 앞에 사는 자들이다(히 12:2). 이 세상에 쌓아둔 재물이나 명성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흠 없고 책망받을 것 없는 자로 사는 것을 소망하는 자들이다.
    
*지도자 역시 물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세상이 물질을 우상으로 삼고 있어서 지도자의 길을 걸으려면 물질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손길을 성도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부한 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도리어 그들에게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나누게 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라고 권면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인정과 물질적인 보상에만 목매던 거짓 교사들과 달리 하나님의 사람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참된 증인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사는 자들이다(13~16절). 그들의 소망은 이 땅의 재물이나 명성이 아니라 주 앞에서 흠 없고 책망할 것 없는 자로 서는 것이요, 끝까지 증인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나를 부르시고 세우시고 보내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 때 쓰디쓴 세상의 거절과 상처를 견뎌내고 말씀을 똑바로 증언할 수 있다.
    
    
-성도가 멀리해야 할 것이 있다.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부자들에게 경고한다. 예수님 말씀대로 부자가 부자인 채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으로 선을 행하고 나누고 동정하는 자가 되지 않고, 돈 때문에 마음이 높아지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보다는 잠깐 있다가 없어질 허망한 돈에 소망을 두면 참된 생명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거짓 교사들의 망령되고 허황된 말과 변론을 피하라고 거듭 권면한다. 지금도 말씀을 맡은 이들은 경건의 복음을 훼손하는 성공주의, 번영주의, 은사주의 등의 유사 복음의 실체를 잘 분별하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만이 만왕의 왕이심(15절)을 아는 자들은 돈을 인생의 보호자로 여기지 않고 절대로 돈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돈이 군림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나의 삶은 어떻게 구별되고 있는가?
    
*사역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망령되고 허탄하고 거짓된 지식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시대가 마땅히 가르쳐야 할 교훈을 환영하지 않더라도 전해야 한다. 진리를 타협할 때 개인의 경건은 무너지고 교회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모임으로 전라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들의 망령되고 헛된 교훈과 변론을 피하고 자신이 부탁한 것(바른 교훈)을 끝까지 지키라고 거듭 권면한다. 그만큼 바른 가르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믿음을 허무는 이단과 유사 복음이 난무하는 시대에 복음의 진리를 진정으로 잘 깨닫고 분별하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 바른 교훈을 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든든히 서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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