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복음과 함께 살리라 [딤후 2:1-13]
 – 2024년 11월 14일
– 2024년 11월 14일 –

1:3-18을 통해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격려한 바울은 본문을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담대하게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라고 명령한다. 1장이 디모데의 낮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말이었다면, 2장은 맡은 책임을 담대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고취하는 말이다.

 

바울은 평생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았고, 지금은 로마의 감옥에 두 번째로 투옥되어 있는 상태이다. 두 번째 투옥은 첫 번째 투옥보다 바울에게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 디모데 앞에도 그러한 고난의 길이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십자가의 삶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런 디모데도 자신처럼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고난을 받는 자가 되라고 명령한다.

 

 

 

  1.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돼라(1~7절).

디모데는 대적들에 대한 두려움과 복음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담대하게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울은 디모데의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1장에서는 그가 얼마나 훌륭한 믿음을 가졌는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설명한 후에, 두려워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바울은 본문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라고 명령한다. 두 가지로 명령하는데, 첫째, 이제 더는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해지라는 것이다(1절). 디모데는 마땅히 강해져야 하고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미 딤후 1:7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라 능력의 영을 은사로 주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강해지는 것은 인간적인 용기와 자신감을 회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로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담대함의 원천은 그리스도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둘째, 바울에게서 들은 것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맡기라고 명령한다(2절). “내게 들은 것”이란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친 복음을 말한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복음은 이제 디모데에 의해서 다른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겨져야 한다. 디모데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계속해서 전파될 수 있도록 신실한 일꾼들을 가르치고 세워서 복음을 맡겨야 했다.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딤전 1:3).

 

3~4절은 1~2절에서 말한 바울의 명령을 감당하는데 반드시 고난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특히 거짓 교사들과 겨루어 그들로부터 성도들을 지켜야 하는 디모데에게 핍박과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감당하라고 명령한다. 바울은 세 비유를 통해 고난을 극복하면서 임무를 완수해야 할 필요성을 설명한다. 먼저 병사의 비유를 통해 바울과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로 부름을 받았음을 일깨운다. 병사는 마땅히 고난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하는 존재이다. 병사는 고통스러운 훈련을 감당해야 하고 언제라도 상관의 명령에 따라 피 흘리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전투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고난을 두려워하는 자는 병사로 복무할 수 없다. 또 좋은 병사는 자기 일에 얽매이지 않고 상관을 기쁘게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렇게 디모데가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려면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5절은 경기자의 비유다. 경기자가 상을 받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훈련을 감수해야 한다. 또 상을 받으려면 합법적으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훈련받고 실력이 있어도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상을 받을 수 없다. 이는 디모데가 사역을 감당하면서 고난을 받되 합법적이고 옳은 일을 하면서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거짓 교사들은 합법적으로 경기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속이고 비방하고 거역하고 모함하면서 경기하는 자들이다. 복음의 참된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디모데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은사를 받았다. 디모데가 하나님의 법에 따라 합당하게 경기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상을 받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의 사역에도 결코 결과를 위해서 부당한 과정이 정당화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서는 십자가의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6~7절은 농부의 비유다. 바울은 주인에게 공유된 일꾼이나 소작농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설명한다. 농부가 일하는 목적은 곡식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추수한 후에 곡식을 받을 수 있는 우선순위는 일한 농부에게 있다. 수고한 농부에게 주어지는 대가다. 성경에서 추수는 종종 종말론적인 심판을 상징한다. 곡식은 상급에 해당한다. 농부가 곡식을 얻기 위해서 땀 흘리며 일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듯이 복음의 일꾼들도 자신들에게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며 고난을 인내해야 한다.

 

바울은 세 가지 비유를 마치고 자신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깊이 묵상하라는 의미다. 이는 그것을 어떻게 실천적으로 삶에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라는 뜻이다. 이론적인 깨달음과 이를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말씀을 깨닫기는 쉽지만, 삶의 현장에서 그것을 적용하여 살아가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은 디모데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텍스트로 삼아 묵상하고 이를 복음에 비추어 해석하는 작업이다. 바울은 디모데가 이 세 비유를 묵상한다면 하나님께서 디모데가 어떻게 처신할지 깨닫게 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1. 복음과 함께 고난받음의 결과(8~13절)

세 가지 비유를 통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한 바울은 이제 바울 자신이 진실로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는 말로 명령만 하는 자가 아니라 본을 보인 지도자였다. 이 단락은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경기자로, 수고하는 농부로 살아온 바울 자기 삶에 대한 자전적 보고다. 바울은 8~9절에서 복음의 정체성에 관해서 설명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라”는 말은 당시에 널리 펴져 있던 잘못된 메시아 이해를 지적한 것이다. 당시에는 다윗의 씨로 오시는 메시아가 원수를 정복하고 영광스러운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드러난 복음의 진리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고난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 부활의 영광으로 들어가셨다. 마찬가지로 바울도 복음 때문에 갇혔지만, 복음은 매이지 않고 널리 선포되었다. 바울의 매임은 실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10절은 법대로 경기하는 자가 승리의 관을 얻는다고 했던 5절의 비유와 연결된다. 바울은 복음과 함께 고난받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는데, 인내는 복음의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법과 같다. 바울은 법대로 인내했고 그 결과 택한 자들이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게 된다. 택한 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바울에게 주어지는 승리의 관과 같은 것이다.

 

11~13절은 복음과 함께 고난받음에 대한 결론적 진술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면 그의 영광에도 참여하겠지만, 그것을 부인하면 주께서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다. 주와 함께 죽는 것은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와 함께 부활하는 것은 그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인내하신 것처럼 우리도 인내하면 그의 왕권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진실하고 신실하신 주의 말씀이므로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부르심을 받은 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촉구한다. 하나님은 성실하시므로 그 수고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강해져야 한다(1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만이 우리를 강하게 할 수 있다. 나는 무엇으로 강하고 담대할까?

 

-복음을 굳게 지키고 바르게 전하려는 복음의 일꾼에게 필요한 성품은 신실함이다(2절). 하나님의 복음은 신실한 자들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한편, 우리는 또 얼마나 충성스럽게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가? 나의 영적인 태만과 게으름으로 복음의 흐름이 나에게서 막히지 않아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가 다른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울 만큼 강해지길 원했다. 그 지도자들이 또 다른 제자들을 세워 신앙공동체가 건강하게 계승되기를 기대했다. 지식을 전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은혜와 복음에 사로잡힌 제자들을 길러내야 한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만 공동체는 참되게 성장한다.

 

-복음의 일꾼들은 훌륭한 병사들처럼, 경기장의 선수들처럼, 그리고 농부처럼 복음을 위해 최선의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3~6절). 복음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오늘, 나는 어떤 수고를 하고 있는가?

 

-복음 전도자의 삶은 절제와 절대복종만이 전부고 부르신 분만을 기쁘시게 하는 군사의 삶이다. 그것은 경기하는 자가 규칙을 잘 지키듯 전하는 복음대로 살아내야 한다는 규칙도 잘 지키는 자다. 농부가 풍성한 결실을 바라면서 인내하고 수고하듯이, 복음 전도자도 하나님의 보상만을 바라면서 수고로운 삶을 감내해야 한다. 주님께서 적용할 수 있도록 지혜와 총명을 주시지 않겠는가?

 

-어떤 상황에도 매이지 않는 능력의 말씀으로 일하신다. 바울은 그 말씀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다(9절). 하지만 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오히려 자유로이 더욱 강력하게 활동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다가 당황스럽고 힘든 일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전하는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여 힘을 내야 한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복음의 일꾼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리스도를 신뢰하여 인내해야 한다(10~12절).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도 지속적인 신뢰를 통해 그리스도와 깊이 연합하여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복음 때문에 참는 것이 있어야 한다.

 

-고난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 증거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부활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생명의 부활로 끝났듯이, 복음 전하는 자는 죽어도 복음은 죽지 않고, 복음 전하는 자는 매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으며,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고 또 영원한 영광을 얻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 자들이다. 그들은 왕 삼으려는 세상 유혹을 이기고 핍박을 참으며 복음을 사수하고 자랑하는 자들이다. 나 자신을 그리스도가 왕으로 다스리는 거룩한 영토가 되게 하는 자들이다. 말과 삶으로 복음에 침묵하는 것은 주님을 부인하는 일이요, 결국 주님의 부인을 자초하는 일이다. 주님은 늘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주님의 복음을 향한 우리의 반응도 늘 신실하기를 기대하신다.

 

*바울은 “내게 들은 바(2절), 내가 말하는 것(7절), 내가 전한 복음대로(8절)”와 같은 표현으로 자신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 안에 강하고(1절), 그 복음을 전주하며(2절),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고(3절), 복음을 생각하며(7절), 복음을 기억하라(8절) 라고 명령한다. 거짓 교사들로 인해 훼손된 복음을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처럼 간절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누리며 전하고 전수하고 있을까? 내가 달려갈 길이 선명하게 나에게 각인되는 아침이다.

 

*복음 안에 살고,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전수하며 살다가 주님 앞에 서리라.

 

 

 

*주님, 그리스도와 함께 산 자로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담대함으로 오늘을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복음 안에 살고, 복음을 전하며, 복음과 함께 살다가, 복음을 전수하고 주님 앞에 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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