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 사람들로 인한 고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다룬다. 앞 단락에서 말세에 일어날 거짓 교사들의 불의한 행위와 그들이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말한 후에 이제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가르치며 살아왔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들의 행위에서 돌아서라고 했는데, 이제 디모데가 그렇게 돌아선 후 따라가야 할 모범에 관해서 설명한다.
1. 바울을 본받는 경건한 자가 돼라(10~13절).
거짓 교사들의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행위에 대해서 지적한 후, 이제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했던 자기 삶에 관해서 설명한다. 10~11절은 그런 바울의 삶에 대해 묘사하는 아홉 개의 목록이 등장한다. 이 목록은 거짓 교사들의 삶에 관한 직전 단락의 열여덟 개의 목록과 대조가 된다.
바울은 먼저 자신의 교훈과 행실이 어떠했는지 디모데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디모데는 바울의 교훈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바울의 교훈과 행실은 자신이 가르친 복음에 맞는 것이었다. 이는 거짓 교사들의 위선적인 행위와 대조되는 것이었다. 또한 바울은 겉으로 드러난 행실뿐만 아니라 속에 감추어진 의도와 믿음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과 달리 성도들을 속이려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의도와 믿음은 정직하고 진실하다. 바울에게는 진실한 믿음이 있었기에,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와 사랑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믿음과 인내와 사랑은 목회자가 지켜야 할 신앙의 덕목이었다(딤후 2:22). 거짓 교사들은 무정하고 잔인하고 포악하지만, 바울은 핍박 가운데 인내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사랑으로 가르쳤다. 이런 일들은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때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바울은 극심한 핍박과 고난으로 사망의 위험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구원하셨던 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만사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헌신했던 바울을 버려두지 않으셨다.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서 고난받은 바울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그러나 바울의 삶을 본받는 것은 디모데에게 두려운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바울을 본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격려한다(고전 4:11; 살후 3:7, 9).
12절은 경건한 자들에게는 핍박이 따라온다는 것을 일깨운다. 디모데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감당해야 하는 이유는 경건하게 살려는 자들에게 고난은 반드시 따라오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경험한 핍박과 고난의 삶을 일반화해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 그런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핍박을 이상하게 여기면서 놀랄 것이 아니다. 바울은 경건한 삶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삶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경건한 삶이란 뜻이다. 예수밖에는 경건한 삶이 없다. 예수께서 고난받고 죽으셨듯이 바울도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았다. 이제 디모데가 경건하게 살고자 한다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담대하게 감당해야 한다.
13절은 12절과 함께 경건한 사람과 악한 자들이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악한 자들”은 일반적인 표현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역하는 모든 자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속이는 자들”은 악한 자 중에서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 속이는 자들이란 말에는 마술사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데, 8절에서 언급한 얀네와 얌브레를 상기시키는 표현이다. 에베소 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속이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12~13절의 경건한 자와 악한 자의 대조는 바울과 거짓 교사들의 대조인 셈이다. 바울은 경건한 자이지만, 거짓 교사들은 속이는 자들이다. 경건한 자의 특징은 핍박과 고난을 받는 것이지만, 속이는 자들을 핍박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불의한 세상에 속하여 경건한 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앞으로 그들이 점점 더 악해져 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1절은 이미 말세라고 말하지만, 고통이 극에 달하는 말세는 앞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데, 이것은 불의한 자들이 서로 물고 뜯으면서 다투는 악한 습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딤후 2:24).
2. 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14~17절)
14~15절은 속지 않으려면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명령법인 것을 보면 지속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자들이 잘 속는다. 바울은 디모데가 이미 배우고 확신하는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디모데가 해야 할 일은 이미 배워서 알고 있는 지식과 확신 가운데 계속해서 거하는 것이다. 디모데는 이미 배운 지식만으로도 거짓 교사들의 잘못을 책망하고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디모데가 핍박에 대한 두려움과 복음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그 확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데 있다.
바울은 디모데가 이미 배운 것으로 인해 확신할 수 있는 이유를 두 가지 제시한다. 첫째, 디모데는 자신이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디모데를 가르친 자들이 믿을 만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는 뜻이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배운 사람은 자신의 지식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디모데를 가르친 스승은 그의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와 바울 자신이다(딤후 1:5~6). 이들은 디모데를 속이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경건하고 진실한 자들이기에 디모데는 자신이 배운 것에 대해 확신해야 한다.
16절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임을 통해 디모데가 확신할 수 있는 둘째 이유를 밝힌다. 이는 그가 어려서부터 배운 성경이 가지고 있는 능력 때문이다. 성경은 디모데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주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깨닫게 된 성경 지식은 디모데에게 참된 구원의 지혜를 주는 것이기에, 자신이 배운 것에 대해 확신할 수 있다. 성경이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감동이란, 하나님이 바람을 불어넣으셨다는 뜻이다. 마치 태초에 인간을 만드신 후에 그 코에 바람(생기)을 불어 넣어 생명을 주신 것과 같다. 하나님의 호흡은 생명을 주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단순한 글자 모음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것은 성도들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의로운 자가 되도록 교육하는 능력이다.
17절은 성경이 기록된 목적을 밝힌다. 성경이 교육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다. 성경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완전히 무장시키는 데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선을 행해야 할 사명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부여하실 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주신다. 성경은 단지 어떤 교리적인 지식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할 능력까지 준다.
나는?
-거짓 교사들과 달리 바울은 진리 안에 거한 자신의 삶을 디모데에게 당당하게 제시한다. 바울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 그의 사랑과 믿음과 인내의 삶이 그가 진리의 사람임을 증명하였다. 바울은 이런 삶을 살아내므로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부귀와 명예 대신에 핍박과 고난을 감수해야 했다.
-바울은 경건하여 핍박받는 사람이었다. 디모데에게 이렇게 살라고 명령한다. 세상은 주의 날이 다가올수록 더 악해지고 더 속이면서 경건의 모양으로 경건의 능력을 대신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며 힘자랑하는 세상에서 오로지 예수님만 왕으로 모시고 경건하게 살려는 그리스도인들이 핍박받는 것은 당연하다. 경건은 진리를 지키고 진리대로 살고 하나님의 목표를 나의 목표로 삼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주의 나라를 소망할수록 세상 문화 속에서 숨 쉬며 사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명령한다. 주 안에서의 경건한 삶을 위해 “배우고 확신한 일에 (지속해서) 거하라”라고 권면한다. 이는 디모데를 가르친 이들(바울, 어머니, 외조모)을 신뢰할 수 있고,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한 것(성경)에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만이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처럼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이 세상을 이기고 구원을 얻는 참 지혜임을 가르쳐준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선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라고 명령한다. 성경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다. 누구보다도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뜻과 인격을 담아 기록하였으니, 그 말씀 앞에 나아가야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통해서 우리를 선을 행할 준비가 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해준다. 성경 없는 세상에는 “선”의 기준이 없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빛의 열매는 빛의 자녀요, 성경의 사람인 그리스도인만 맺을 수 있다.
*말세의 고통스러운 시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승리의 비결은 핍박받으면서도 경건하게 살며,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것임을 강조한다.
*복음의 일꾼이 겪는 온갖 박해와 고난 가운데서 그를 건져 주셨다(10~13절). 사실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뒤 따른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죽을 만큼 두들겨 맞아 정신을 잃기도 했다(행 14:8-22). 하지만 하나님이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신 자들은 그 모든 어려움에서 반드시 보호하시고 지키신다.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 다가오는 어려움 앞에서 위축되거나 뒤로 물러서지 말아라. 우리를 건져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도 복음과 함께 고난 받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세상은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로 점점 더 사악해질 것이다(13~14절). 이런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악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확실히 믿는 것들 안에 충실하게 머물러 있으라고, 단호히 명령한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이 오늘도 나는 성경을 통해 배운 이 참된 진리만을 붙잡을 수 있는가?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15절). 어린 나이부터라는 의미다. 유대교의 전통은 5세부터 구약성경을 배운다. 그만큼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임을 더 선명하게 알아차렸다. 여기에 바울에게서 들은 복음과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신앙 태도가 큰 영향을 끼친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알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그저 믿기만 하는 신앙이기보다, 알아갈수록 단단해지는 믿음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15~17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친히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셔서 성경을 기록하셨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오늘도 우리를 가르치시고, 질책하시고, 교정하시고, 의로움을 교육하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게 하신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유익들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가? 내 구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일상 속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주님, 헛된 가르침의 홍수 속에서 성경을 통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면서 세상의 악한 풍습을 이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