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내가 치열하게 살아왔듯, 너도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딤후 4:1-8]
 – 2024년 11월 18일
– 2024년 11월 18일 –
3:16~17에서 성경의 교육적인 기능과 능력에 관해 설명했다. 그것은 복음 선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따라서 바울은 이제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명령한다. 지금까지는 바울이 그 일을 감당했으나 이제 디모데가 이어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물리치는 최고의 방법은 복음의 진리를 성도들에게 잘 가르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복음의 진리보다 사욕을 채워줄 헛된 가르침을 더 좋아하는데, 그것은 마지막 때가 되었다는 증거다.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복음을 전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인데, 그럴수록 디모데는 더욱 힘써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1. 디모데에게 주는 바울의 명령(1~5절)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이 사람을 바르게 하여 선을 행하기에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라면 디모데는 마땅히 그것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1~2절을 통해 복음 선포 사명과 명령을 엄중히 부여한다. ‘엄중하게 명령한다’라는 것은 “맹세와 함께” 명령한다는 의미다. 마치 경기를 앞둔 선수가 공정하게 규칙을 지키면서 경기하겠다고 선서하듯이 바울은 디모데가 맹세하게 하면서 명령하고 있다.
    
맹세할 때는 그것을 증명할 어떤 사람 앞에서 하든지 혹은 무언가를 걸고 하는데, 바울은 맹세의 신실함을 증거할 증인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재림, 하나님 나라를 두고 제시한다. 이는 그에게 주어진 복음 선포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명령한다는 것은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디모데에게 주어진 사명의 엄중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언급은 디모데가 선포하는 복음이 지금, 이 세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며, 복음의 미래지향적인 특징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니다(딤후 4:18). 디모데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 이러하기에 이 세상에서 복음으로 인해 고난받는 것에 대하여 너무 슬퍼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2절은 다섯 개의 명령법이 등장한다. 이는 모두 디모데에게 주어진 복음 선포의 성격을 묘사한다. 먼저 말씀을 “전파하라”는 복음 선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명령이다. “힘쓰라”는 항상 준비된 상태로 있으라는 뜻으로 언제든지 복음을 선포할 태세를 갖추고 있으라는 의미다. 디모데는 복음을 선포하기 좋은 때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힘들고 어려운 때(3~4절)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경책하라”는 명령은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여 교정하라는 뜻이다. 이는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행위를 염두에 둔 것이다. “책망하라”는 명령은 좀 더 일반적인 불순종에 대한 책망이다. 마지막으로 “권하라”는 명령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측면에서 성도들이 행해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명령은 3:16에서 말한 성경의 역할에 대한 재설명과 같다. *복음 선포에 대한 바울의 명령은 복음을 선포하여 가르치되, 잘못된 길을 가는 자들을 경책하여 돌이키게 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책망하여 올바른 길을 가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디모데는 이 일에 힘써야 한다.
    
3~4절은 2절의 말씀 전파 명령에 힘써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말씀 전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 복음을 전하고, 경책하고, 책망하여, 권면해야 할 이유는 앞으로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붙들기 싫어하고 이단적인 가르침을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의 탐욕 때문임을 밝힌다. 바울은 이미 말세의 특징으로 사람들이 더욱 탐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딤후 3:1~5). 탐욕적인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복음을 따라 사는 것은 핍박과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줄 거짓 교사들의 허탄한 이야기를 더욱 듣기 좋아하고 그것을 따라갈 것이다. ‘허탄한 이야기”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에 들어맞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통칭한다. 그것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처럼 탐욕적인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들릴 것이다.
    
5절에서 바울은 노파심에서 디모데에게 신중하게 직무를 감당할 것을 권한다. 성도들을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디모데 자신이 허탄한 이야기에 미혹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중하라”는 명령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라가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란 사실을 기억하고 조심하라는 뜻이다. “고난을 받으라”라는 말은 “고난을 견디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일부러 고난을 택해서 받을 필요는 없지만, 고난이 있을 때는 견뎌야 한다. 고난을 견디라는 것은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이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신중하게 고난을 견디면서 복음 선포의 직무를 다하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은 에베소 교회의 거짓 교사들을 상대해야 하는 디모데에게 아주 적절했다. 거짓 교사들은 경건의 모양은 가지고 있었기에 성도들이 자 속았고, 그들은 무정하고 모함하며 사나운 자들이었기에 디모데는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디모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중함과 인내였다.
 
    
    
2. 바울의 유언적 고백(6~8절)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령한 모든 것은 사실 지금까지 바울이 해왔던 일이다. 그는 자기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직감하고(6절), 이제 자신의 사역을 디모데에게 넘겨주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전제와 같이 다 부어진 인생이라고 말한다. 이는 구약의 제사 제도에서 나온 표현인데,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자신의 삶을 드러낸다.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7절에서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전력투구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운동선수의 삶에 비유한다. 전제로 부어진 삶의 비유가 헌신과 희생의 의미를 부각한 것이라면, 운동선수의 비유는 5절의 “네 직무를 완수하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선한 싸움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특히 이를 마라톤 경기에 비유했다. 이미 자신이 달려가야 할 모든 코스를 완주했음을 고백한다. 운동 경기는 법대로 해야 하는 것인데, 바울이 지켜야 했던 법은 “믿음”이다. 그는 믿음을 지키면서 모든 경기를 마쳤기에 승리의 면류관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에 거짓 교사들은 열심히 일했으나 믿음을 버린 열심과 수고였다.
    
8절은 이제 자신 앞에 놓여있는 미래를 바라본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믿음을 지켰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였기에 “의의 면류관”이 자신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이 인생 경기의 심판자는 주님이시다(딤후 4:1). 그는 의로우신 재판장이므로 공정하고 의롭게 판단하신다. 이 세상의 심판들은 뇌물에 매수되어 불의한 판결을 내리 수도 있지만, 주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바울의 삶은 무수한 재판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불의 속에서 억울한 판결을 받은 적이 많았다. 그러나 주님은 공정하게 판단하셔서 지금까지 바울이 당한 모든 억울함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실 것이다.   
    
    
    
나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한다. 유언서신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 바울이 남기고 싶은 권면은 디모데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말씀을 듣는 청중을 기쁘게 하기보다 심판하실 그리스도 앞에서 받은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며, 주께서 다시 오셔서 완성하실 그 나라 백성에 어울리도록 바르게 전하라고 엄히 명령한다.
    
-악한 세대가 꼭 들어야 할 메시지를 전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하겠다. 나와 우리 공동체를 통해 듣게 해야겠다.
    
-그러나 이런 세상은 말씀을 거절할 것이다. 복음을 아무리 전하여도 악한 세대에게 거절당할 것이다. 세상은 자기 죄를 인정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인을 예수님으로 바꾸라는 요구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도리어 이를 받아들이고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자들을 핍박할 것이다. 세상은 살던 대로 살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하는 자들을 좋아한다. 신기루 같은 세상을 보여주며 마치 실현 가능하다고 부추기고, 실재인 양 속이는 말씀에 환호한다. 돈과 권력과 쾌락을 약속하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어 누구나 영웅이 되고 싶고, 성공하고 싶으며, 출세하기를 꿈꾼다.
    
-그래서 이런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라는 복음을 환영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를 사는 복음 전도자들은 매사에 절제 있고 균형 있는 태도로 분별력을 갖추고 살아야 할 것이다. 거절과 핍박을 마땅한 일로 여기고 피하지 않아야 한다. 떠날 날이 올 때까지 뒤돌아보지 말고 전도자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우리 공동체는 우리가 이 길을 걸을 뿐 아니라, 이렇게 사는 전도자들을 외롭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말씀의 사람답게 살아내야 함께 걷는 이들이 실족하지 않으리라.
    
-말씀의 사람답게 사는 길을 끝까지 완주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소개하면서 디모데를 자신이 걸어온 삶으로 초대한다. 그는 주님의 전사로서 후회 없이 싸웠고, 신앙의 경주에서 끝까지 완주하였다. 네로가 아니라 예수님이 참된 재판장임을 확신한 바울에게 그가 투옥된 감옥은 더욱 옹골지고 알찬 신앙으로 창조되는 공간이었고, 의의 면류관을 받을 소망을 향해 비상하는 도약대와 같았다. 바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몸을 입고 누리는 참된 “자유와 해방”의 시작이었으니까….
    
*자신의 복음 전도의 삶을 후회하지 않고 확신 가운데 다음 주자에게 넘기고 소망으로 삶을 마무리하려는 바울의 모습이 큰 울림을 준다. 장차 하나님과 예수님이 완성하실 영광스러운 미래를 확신하고 다음 주자로 달려갈 디모데에게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확실하고 엄숙하게 명령을 내리는 그의 삶의 마지막이 너무도 아름답다. 나 또한 이런 마지막을 꿈꾼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분이시다(1절; 행 10:42; 벧전 4:5). 장차 세상 모든 사람이 그분 앞에서 심판을 받고, 이 모든 역사의 결말을 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하늘의 비밀을 아는 자들은 그들이 걷는 오늘이라는 삶을 엄숙하게 돌아보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2절). 그렇기에 우리는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말씀 전파의 직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일에는 오랜 끈기와 섬세한 가르침이 필요하다(5절). 내게 말씀을 받는 자들에 대한 조바심을 내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 타이르고 격려하기를 쉬지 않아야 하겠다.
    
*말세를 사는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전하는 성경 공부를 싫어할 것이다. 자기들의 욕망에 이끌려 귀에 간지러운 말을 해주는 사람들하고만 시간을 보내려 할 것이다(3~4절). 이는 파멸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말씀을 통해 기꺼이 자신의 삶을 교정하고 고치려는 수고 없이, 듣기에 좋은 말만 듣고 호기심만 가득 채우려는 성경 공부를 경계해야 한다. 내가 성장하고 성숙하며 변화되기를 갈망하며 성경을 배워 순종에 이르러야 한다.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서 최선의 경주를 다했다. 이제 자기 죽음마저도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 위에 붓는 향기로운 포도주처럼 부어지기를 열망한다(6~7절). 나도 먼 훗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믿음의 아들에게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려갈 길을 마쳤고, 믿음을 지켰다”라고 고백하는 삶을 달려야 하겠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다(8절).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의 길을 망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의인의 길을 인정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시 1:6). 하나님은 결코 자기 백성의 수고와 헌신을 잊지 않으신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바라보며 이 세상의 악과 고군분투한 모든 성도에게 승리와 영광의 상징인 의의 면류관을 주신다.
    
*그러므로 요즘 내가 싸우고 있는 선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겠다. 내가 잘 싸워 이기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마련하실 의의 면류관을 앙망하며 끝까지 분투해 보리라.
    
    
    
*주님,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날을 바라보며 오늘, 지금 여기에서 주님의 백성으로 마땅히 살아내야 할 복음의 삶을 전하고 가르치고 누리겠습니다. 그날에 나를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선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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