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위임한 바울은 이제 죽음을 앞둔 자신의 마지막 부탁을 말한다. 주변이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나고 외로움 가운데 있던 바울은 죽기 전에 디모데를 한 번 더 보기를 원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겨울의 추위를 대비하여 드로아에 두고 온 겉옷과 책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한다.
바울은 1차 투옥에서 석방된 후 그가 평소 소원했던 대로 서쪽 땅끝인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 후에 다시 동쪽으로 여행하여 그레데에 도착하여 디도를 남겨두고 로마로 돌아온다. 바울이 체포되어 두 번째로 투옥되었을 때 그는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두 번째 투옥에서 목 베임을 당해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1.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부탁함(9~13절).
9~10절에서 모두 떠나고 홀로 있는 자신의 상황을 알린다. 바울은 노년에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젊었을 때 힘 있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바울이 감옥에 갇혀 더는 세상의 소망이 없게 되자, 그렇게 많던 사람들은 바울을 버리고 떠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떠난 자 중에 바울을 배신한 자들도 있고 바울이 떠나보낸 자들도 있었다. 현재는 누가만 그와 함께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죽기 전에 디모데를 보기 원하는 간절한 마음(너는 속히 내게로 오라_9절)을 피력한다. 그런데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 사역을 두고 바울에게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속히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부탁한다.
10절은 이렇게 속히 오라고 말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많은 사람이 떠나고 바울은 외로운 가운데 있다. 젊어서 복음을 위해 담대하게 일했던 바울도 이제 죽음을 앞두고 연약한 한 인간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바울이 홀로 된 것도 마음 아프지만, 그보다 더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배신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바울을 배신한 것은 믿음을 배신한 것과 동일한 의미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고향 데살로니가로 떠났는데 이는 믿음을 버리고 과거의 세상적인 삶으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한편 그레스게와 디도는 바울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임무를 부여하여 다른 곳으로 보낸 것이다. 디도는 원래 그레데 섬에 남겨두었지만, 얼마 후에 그를 불러들이고 아데마를 대신 그곳으로 보냈다(딛 3:12). 또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내고 디모데로 하여금 바울에게로 오게 했다(12절).
11~13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드로아에 둔 겉옷과 책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한다. 마가는 요한이라고도 불리는데, 한때 바울을 실망하게 했지만, 지금은 바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1차 전도 여행을 바나바와 함께 떠나면서 마가를 동행시켰는데, 어떤 이유인지 밤빌리아에서 마가는 중도 하차한다. 그리고 2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려 할 때 바나바가 마가를 다시 데려가려 할 때 바울은 이를 극구 반대했다. 1차에서 중도 하차한 마가를 다시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일로 바나바와 바울은 크게 다투고 헤어진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육로로 전도 여행을 떠났다(행 15:36~41). 그러나 그 후에 바울과 마가는 서로 화해하고 마가는 바울의 사역에 동참했으며,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히기도 했다(골 4:10; 몬 24). 전승에 따르면 마가가 마가복음을 기록했고,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마가는 한 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신실한 복음의 일꾼으로 거듭났으며 바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두기고는 아시아 출신이었기에 디모데를 대신해서 에베소로 보낸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행 20:4). 바울은 두기고가 에베소에 도착하는 대로 디모데가 자신에게 오기를 원한다. 그리고 디모데가 올 때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들러서 겉옷과 책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한다. 이는 바울이 스페인에 다녀온 후 그레데와 에베소를 거쳐서 로마로 돌아올 때 두고 온 것들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떠나고 외로운 때에 주의 말씀과 함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려고 한 듯하다.
2. 바울을 대적한 자들(14~18절)
14~15절에서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악한 대적자인 알렉산더를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많은 해를 끼친 거짓 교사이다. 그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선동하여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하듯 바울을 반대하도록 주동했다. 이런 그를 바울은 “믿음과 양심을 버린 배신자”라고 규정하고 출교 조치까지 단행했다(딤전 1:20).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에베소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런 그를 향해 모세를 대적했던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셨듯이, 알렉산더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며 디모데에게 그를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16~18절은 로마에서 자신의 외로운 상황에 대해 알려준다. 바울이 처음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바울을 변호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바울을 버리고 떠났다. 특히 바울이 사용한 “버리고 떠났다”라는 표현은 10절에서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과 믿음을 배신하고 떠났듯이, 이들도 바울을 배신하고 떠났음을 드러낸다. 바울은 이렇게 믿음을 배신하고 떠난 이들로 인해 심히 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허물을 돌리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바울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지만, 주께서는 결코 자신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셨다는 사실에 관해 설명한다. 세상에는 영원한 참 친구가 없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떠나 홀로 외롭고 두려운 가운데 있었지만, 주께서 함께하셨기에 담대하게 감옥에서 복음을 변증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방인 권력자와 재판장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다.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다”라는 말은 아마도 당장 죽임을 당하지 않고 디모데를 만날 구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대한 설명일 가능성이 크다.
바울은 결국 감옥에서 순교하게 되지만, 그들 앞에서 복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를 지키셨다. 바울은 또한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지시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마지막 순교를 앞두고 끝까지 은혜로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다.
3. 끝인사(19~22절)
19~20절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문안 인사를 전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글라우디우스 시대에 로마에서 쫓겨난 후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텐트를 만들었고, 나중에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가서 거기서 머물렀다(행 18:2). 에라스도와 드로비모는 바울의 동역자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은 바울과 함께 있지 않다. 특히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고 왔다고 말하는데, 그를 향한 바울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21~22절은 마지막으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한 번 더 독촉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로마 교회의 성도들 중에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를 비롯한 모든 형제들의 문안 인사를 전한다. 아마도 디모데가 이들을 모두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겨울 전에 속히 오라는 말은 두 가지 필요를 표현한다. 먼저 겨울이 오기 전에 바울의 겉옷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항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 전에 속히 출발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바울을 떠난 사람과 함께한 사람들의 면면을 담담히 소회를 밝힌다. 바울을 떠난 사람은 데마처럼 한때는 동역자였다가 복음을 위한 고난의 길을 외면한 채 세상을 사랑하여 떠난 이들도 있었고, 그레스게와 디도처럼 사역을 위해 떠난 이들도 있었다. 누가만 바울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바울은 떠날 기약이 가까워져 오자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속히 오라고 부른다. 한때는 선교 여행의 걸림돌이었던 마가를 이제는 유익한 자로 부른다. 바울은 남은 힘을 다하여 디모데를 격려하여 담대한 전도자로 세우고 누가와 함께 있던 마가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로마 사역을 감당케 하려 했을 것이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안위보다 동역자와 사명을 생각한 주의 종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주의 일꾼들이 세상을 사랑하여 떠나지 않고 찬란히 빛나는 믿음을 간직한 채 달려갈 길을 잘 마치도록 늘 증보해야 하겠다.
-바울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심하게 반대하여 어려움을 준 알렉산더를 각별히 조심하라고 경계한다. 그의 영향력이 클지라도 낙심하거나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의로운 재판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알고 계시며 그가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복음을 위한 바울의 삶을 보호해 주지 않고 떠났지만, 바울은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데마가 가버렸고, 아시아에 있는 모든 이가 버렸을 때(1:15)도 그랬다. 주님께서 변호인이 되어 주셔서 바울 곁에 서서 그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근신의 영(1:7)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판정에서나 감옥에서도 네로에게 굴복하지 않고 복음 전파자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었으며, 장차 천국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자신을 지키실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복음의 일꾼 바울과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함께 품으며 끝까지 신실한 동역자들이 있는 반면에,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과 하늘나라의 비전을 버리고 떠난 자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신실한 복음 전도자에게 적극적으로 대적한 사람들도 있었다(9~16절). 복음이 생동하는 곳에는 오늘날에도 이처럼 눈물겨운 헌신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슴이 바짝 마르도록 아픔을 주는 자들도 있다. 나는 복음의 일꾼들에게 어떤 동역자일까? 데마나 알렉산더의 자리가 아니라, 상황이 좋을 때든지 나쁠 때든지 끝까지 누가의 자리에 서있는 신실한 동역자가 되어야 하리라.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하신다(마 28:20).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건져 주신 하나님이, 모든 사람이 떠난 지금도 그이 곁에 계시면서 굳세게 해주신다(17~18절).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모든 악행에서 자기 종을 구원하셔서 끝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주실 것이다. 긴박한 위험에 놓였을 때든지 길고 긴 외로움에 지쳐 있을 때든지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복음을 위해 달려가는 나와 함께 하심을 신뢰해야 한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깊이 헌신한 동역자들에게 애정 어린 안부를 전한다. 그리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따뜻한 교제를 그리워하며 속히 와 달라고 당부한다(9절). 죽음을 앞두고 사람들을 향한 깊은 배려와 함께 자기 자신의 필요를 깊이 돌아보는 사역자를 통해 무엇을 깨닫고 있는가?
*바울은 자신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사랑하는 디모데의 심령에도 임하기를 열망하며 기도한다. 오직 이 은혜만이 연약한 사역자를 강건케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늘 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야 하지 않겠는가….
*바울이 디모데와 마가를 속히 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몸은 갇혀있으나 그의 마음에 여전한 하나님 나라 비전이 역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베소 교회 사역에 지친 디모데에게 직접적인 쉼을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누가와 마가와 함께 향후 사역을 구상하고 구체화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그의 마음은 17~18절의 고백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바울과 누가, 마가는 신약성경의 주요 저자들이다.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많은 동역자들이 그의 곁을 떠났으나 바울은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기를 원치 않는다는(16절) 고백이 이를 뒷받침한다. 떠나간 자들보다 남아있는 신실한 동역자들과 함께 앞으로 전도사역에 대한 꿈을 꾼다. 사람들에게서 받은 배신감이 클텐데도, 오히려 하나님 나라 비전을 굳게 붙잡는 그의 모습이 놀라울 뿐이다. 나도 이럴 수 있을까? 부디 이런 바울의 모습이 나에게도 훗날 자연스레 전수되기를 바랄 뿐이다.
*주님, 복음을 위하여 함께 목숨까지 나눌 수 있는 동역자를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여 고난을 이기게 해주십시오.
*주님, 끝까지 주님 나라의 비전을 향해 힘을 내는 바울의 모습이 도전됩니다. 저에게도 주님 만나뵈올때까지 이러한 열정이 식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