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의 백성이니, 백성답게 특권과 책임을 [암 3:1-8]
 – 2024년 12월 06일
– 2024년 12월 06일 –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에게 심판은 불가피했다. 본문은 이제부터 시작될 심판 예언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문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정하셨으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고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알리신 말씀을 성취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신탁을 내리셨으면 반드시 그 신탁이 이루어진다는 “예언의 확실성”을 여러 표현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전달한다. 주 내용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1~2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보응을 선포하고, 3~6절에서는 재앙의 확실성을 묘사하며, 7~8절은 이러한 심판 신탁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실성을 말한다.
    
    
    
1. 죄악에 대한 보응(1~2절)
먼저 아모스는 자신이 전달하는 예언이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게 해당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셨다는 것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출애굽 사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내산 언약 백성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킨다. 특히 “모든 족속(모든 가족)”, ‘모든 가족’을 언급함으로써 이 심판의 대상이 이스라엘 중의 몇몇 지파가 아닌 열두 지파 전체”를 가리키고 있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렇게 가혹하게 심판하시려는 이유는 “열방 중에서 오직 이스라엘 족속만 아셨기” 때문이다. “알다”라는 말은 단순한 지적인 지식 정도를 안다는 의미가 아니다. 경험을 통한 통전적인 지식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이스라엘을 아신다.”라는 체험적인 지식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안다”라고 말씀하시는 민족은 오직 이스라엘 민족뿐이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의 보응 대상이 된다는 근거와 이유가 된다.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었음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섰기 때문에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그들에게 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2. 재앙의 확실성(3~6절)
3절부터 등장하는 몇몇 문구들은 좀 더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느냐”라는 구절이다. 이는 사자가 먹잇감을 잡으면 그 먹잇감을 잡은 것을 자랑하면서 크게 포효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문장을 직역하면 “사자가 수풀에서 부르짖는데 잡은 먹이가 없겠는가?”이다. 이는 사자가 수풀에서 부르짖는다는 것은 이미 먹잇감을 잡았다는 명확한 증거라는 뜻이다. 3~6절까지 이러한 표현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젊은 사자가 굴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잡은 먹잇감이 있기 때문이고, 새가 덫으로 떨어지는 것은 누군가 땅에 덫을 놓아서 그 덫에 걸렸기 때문이며, 덫이 땅에서 튀어 오르는 것은 그 덫에 무엇인가 걸렸기 때문이다. 또 성읍에서 나팔 소리가 들렸다는 것은 전쟁이 발발했다는 표시이기 때문에 백성들은 당연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모든 표현은 6절 하반절의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라는 표현에 담긴 재앙이 임하는 것은 “여호와의 행하심”이라는 분명한 증거임을 설명해 주고 있다. *여호와의 행하심이 있기에 재앙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3. 예언 성취의 확실성(7~8절)
3~6절까지의 설명은 결국 7~8절의 “선지자를 통한 예언의 확실성”을 담보하기 위한 구성임을 알 수 있다. 아모스 1~2장에서 열방을 향한 심판의 사이클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향한 사이클로 발전해 나가도록 이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다”라는 구절은 잘못된 종말론적 주장을 펼치며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받아 자신이 선지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 구절은 3~6절에서 밝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비밀을 선지자에게 보이시면 그 비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서 지금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보이고 계신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취하실 예언이라는 의미이다. “먼저 보이고 행하신다”라는 예언이 아니라 “보이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라는 의미다. 이는 보이지 않은 채 일하실 수도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선지자들을 통해 보이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고야 만다는 것이다.
    
이는 8절에서 다시 한번 사자의 이미지를 통해 확인된다. 사자가 부르짖으니, 모두가 두려워하게 될 것이고,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 예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모스는 1~8절을 통해 자신이 전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 자신에게 주어졌으므로 자신은 전할 수밖에 없고 그 말씀을 들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팔이 울린 것처럼 두려워해야 하고 그 앞에서 떨면서 회개해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모든 열방 가운데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인데,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뒤틀어버렸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응보를 하려 하시니 그 말씀을 이제 전할 때 백성들이 듣고 회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나누는 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전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는 것이다. 아모스는 자신이 전하는 것이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아모스는 자기 선지자 됨이나, 나를 통해 주어지는 말씀이라는 시각을 부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강력하게 붙들려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전하는 것이며,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온전하게 깨닫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전하는 것이며,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온전하게 깨닫고 있다. 아모스의 이런 태도가 오늘날 목회자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필요한 태도 아닐까?
    
내가 전하는 것이 나의 이야기, 나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며 청중에게 그 주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깊이 자각할수록 우리 안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열정과 은혜가 깊고 넓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나는?
-언약 백성에게는 특권과 동시에 책임이 뒤따른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이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시고 임박한 심판을 예고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지극한 사랑으로 신실함을 보여주신 분이시다(1~2절).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아셨고 사랑하셨으며 그들과만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의 사랑 관심과 관대함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살아남지도 살아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은혜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는 악행을 일삼았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언약 백성다운 면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에 따른 심판은 당연한 보응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오게 된 특권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다른 곳에 눈 돌이지 않고 하나님만 알기로, 하나님만 섬기기로, 하나님 백성답게 살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신 새 언약의 은총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스라엘만 사랑한 하나님, 사랑한 신들이 많은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알았고, 이스라엘만 사랑했고, 이스라엘과만 언약을 맺으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고도 사랑하는 신들이 많았다. 그분 말씀 말고도 믿고 따른 말들이 많았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는 더 큰 사랑과 안내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이지만, 그렇다고 심판을 면제받는 권한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유 없이”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다. 아모스는 일곱 가지 수사적 질문을 통해 인과관계의 맥락 속에서 심판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주장한다(3~6절). 여러 자연 현상에도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나타나듯, 하나님의 심판에도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불가피한 심판을 촉발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죄”이다. 그들은 은혜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는 악행을 일삼았다. 그들은 선민이라는 특권이 심판을 면제받는 권한이 아니며 도리어 더 많이 받은 백성에게 더 큰 책임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릇된 선민사상, 들리지 않는 선지자의 호소…. 이스라엘은 심판을 전하는 아모스 선지자의 권위를 의심했다. 선지자는 일곱 개의 질문을 통해 심판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변호하고 그것이 임박했음을 암시해 준다. “이유 없는 심판”이나, “예고 없는 심판”은 없다. 이스라엘은 그릇된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신앙적으로 무감각하고 안일했으며, 근거 없는 거짓 확신 속에 편한 대로 합리화하며 살았다. 기막힐 노릇이다.
    
-아모스는 포효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두려웠기에 “예언하지 말라(2:12)”는 위협과 조소에도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하지 않은 현실을 보면서 때로는 회의와 갈등이 지나쳐 소명을 거스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소명에 사로잡혔다(6~8절). 장밋빛 복음으로 무성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 죄에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불편한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오늘날 아모스의 심정을 가진 목회자들이 실종될 때, 죄의 어둠은 더욱 깊어만 갈 것이다.
    
-가로막힌 말씀, 그러나 전하지 않을 수 없는 말씀…. 선지자는 심판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언하지 말라”는 사람들의 위협보다 사자처럼 포효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신적 소명과 말씀의 권위에 대한 확신,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물러나지 않고 할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가? 말씀이 아닌 것을 말씀처럼 전해달라는 세상의 유혹에 맞서 말씀을 말씀으로만 전할 용기가 있는가! 사자처럼 포효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을 펼칠 때마다 내게 들려질 터인데, 어찌 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님,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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