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참담하게 떨어질 사마리아의 영광 [암 3:9-4:3]
 – 2024년 12월 07일
– 2024년 12월 07일 –
    
아모스는 사마리아 왕실과 상류층 여성들을 향한 심판을 선언한다. 사마리아는 북 왕국의 수도였다. 벧엘과 길갈은 중앙 성소의 역할을 했다. 여로보암 1세는 세겜을 중심으로 북 왕국을 건립하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 종교적 중심지로 삼았다. 훗날 오므리가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김으로써 명실상부 북 왕국을 대표하는 도시가 되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로도 알려진 벧엘은 계속 종교적 중심지로 자리했다. 더불어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넌 후 열두 돌을 세우고 할례를 행했던 길갈도 종교적 중심지로 주목을 받았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에 내리실 구체적인 심판의 내용과 그 이유가 열거되고 제시된다. 9~10절은 이방 나라를 증인으로 소환하여 이스라엘 심판을 예고하시고, 11~4:3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심판을 예고하신다. 벧엘의 제단을 정죄하시고는 바산의 암소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멸망을 풍자적으로 묘사하신다.
    
    
    
1. 사마리아 왕실의 죄악과 심판 선언(3:9~15절)
아모스는 3:2에서 언급한 “너희 모든 죄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9~10절에서 사마리아 왕실의 죄로 보여주며, 보응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11~15절의 심판으로 나타낸다.
    
9~10절은 사마리아 왕실의 죄악을 고발하면서 열방을 증인으로 소환한다. 아스돗과 애굽을 소환하는데 아스돗은 블레셋을 뜻한다. 이 열방의 민족들은 이스라엘 왕국 안에 심판받아야 할 죄악이 가득한 것을 목격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사마리아 산에는 요란함(메후마_혼란, 소란, 파멸)이 있고 학대(아슈크_압제, 억압)가 있다. 요란함이란 사회적인 불안정을 뜻하며 학대란 빈곤한 자들이 부요한 자들에 의해 수탈당하는 것을 뜻한다. 즉 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자신이 하는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 악행들을 오히려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지적한다. 열방이 알아차릴 정도로 심각한 죄악임에도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11~15절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예고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궁궐들을 훼파하실 것임을 상세하게 묘사된다. 이스라엘 사방에 대적을 일으키실 것이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힘을 쇠약하게 할 것이다. “힘을 쇠하게 하다”라는 원어는 “힘을 끌어내리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궁궐을 약탈할 것이다”라는 표현은 “궁궐이 약탈당할 것이다”로 수동형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요새화된 궁궐의 방어 능력을 끌어내리게 되어 결국 궁궐은 요새로서의 능력을 상실하고 정복당하고 말 것을 논리적으로 차례차례 설명한다. 12절은 멸망의 결과를, 비유를 통해 표현한다. 사자가 양을 잡아가면 다 먹어버리고 결국 다리나 귀 조각만 남기듯이, 이스라엘도 얼마 남지 못하게 될 것임을 말한다. 이를 위해 침상 모서리와 걸상의 방석을 말하는데, 걸상의 방석이란 긴 의자의 첫 조각을 뜻하기에 이스라엘이 정말 조금만 남게 될 것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14절은 “벧엘의 제단들”로 설명한다. 북이스라엘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제단을 세워놓고 제사를 드리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생각하였다. 자신들의 생각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 모든 행위는 우상숭배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들은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우상 제단의 뿔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겠다고 말씀하신다.
    
15절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죄악된 행태를 더 고발한다. 그들은 겨울 궁과 여름 궁에 계절을 따라 번갈아 가면서 살았다. 백성들은 압제와 탄식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화려한 상아 궁에 머물고 있었다.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겼고, 백성들을 돌보는 대신 자기 행복만 챙기려 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삶이었고 이런 삶이 가득 찬 궁궐들을 무너뜨리실 것이다.
    
주목할 것은 13~15절을 통해 “집(바이트)”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데, 13절에서는 “야곱의 족속(집)”으로 번역되었고, 14절에서 “벧엘”은 직역하면 “하나님의 집”이다. 또 15절에서 겨울 궁과 여름 궁과 상아 궁으로 번역된 “궁”은 “집”을 가리키는 “바이트”이다. 통합해 보면 13~15절은 야곱의 집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분의 집이라고 일컬어지는 벧엘에서는 우상숭배가 이루어지고 있고,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국의 집을 무너뜨리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집을 죄악으로 오염시킨 결과 이스라엘의 집이 무너지게 될 것을 보여준다.
    
    
    
2. 상류층 여성들을 향한 심판 선언(4:1~3절)
본문을 시작하며 “바산의 암소”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북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죄악상을 고발한다. ‘바산’은 요단 동편에 있는 비옥한 지역이다. 이곳은 풍성한 목초지와 가축들로 유명했다. 또 바산은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웠다. 본문은 사마리아의 산에 바산의 암소가 있다고 말한다. 사마리아가 북이스라엘의 수도이므로 바산의 암소들은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며 기름진 것으로 살찌우던 사마리아 상류층 여성들을 조소하는 말이다.
    
이 바산의 암소들이 심각한 죄악을 범하고 있었다. 힘없는 자들을 학대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었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남편을 향해 술을 가져오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러한 사마리아의 행동은 자신들의 남편이 되시는 하나님께 그들이 어떠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유다.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기며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하는데도 자신들의 의무는 저버리고 먹고 마시기에만 힘써서 살진 바산의 암소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1절은 북이스라엘 지도층의 여인들을 조롱하는 풍자하고 할 수 있겠다.
    
2절은 그러한 암소들이 맞이하게 될 결과를 그려준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그 암소들을 갈고리에 걸어서 끌고 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심지어 그 암소들을 물고기 낚는 낚시로 끌고 가실 것이라고 하신다. 물고기 낚는 낚시로 끌고 간다는 것은 암소들이 더 이상 암소답게 풍요로운 모습이 아니라 마치 물고기와 같이 작아지게 될 것이라는 조롱의 의미다.
    
3절은 이 모든 일의 결국을 선명하게 표현한다. 암소들은 한 마리씩 차례로 성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며 하르몬(지역을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성 밖의 어떤 특정 지역을 의미하는 듯하고 ‘멸망’을 뜻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에 던져지게 된다. 이스라엘은 바산의 암소처럼 스스로를 풍요롭게 하려고 가난한 자들을 수탈하고 남편 된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는데,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생선과 같이 수치스럽게 취급하시고 결국 암소들은 성 밖으로 나가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1~3절은 이스라엘에게 임할 심판을 아이러니한 풍자를 통해 조롱하며 이스라엘 죄악상의 참담함을 고발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은 이방 나라를 불러 이스라엘의 악한 실상을 보게 하신다. 이로써 그들이 자랑하던 욕망의 바벨탑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다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스라엘 기득권층, 지도자들의 죄악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아스돗과 애굽을 증인으로 초대하신다(9~10절). 부와 권력을 고유한 자들은 힘없는 백성을 상대로 학대와 폭력, 강탈을 일삼으며 재물을 모아 향락만 추구한다. 이로써 이방 나라들을 향해 있던 심판의 칼끝이 사마리아를 향하게 될 것이다. 아모스 시대의 죄악상을 보면 지금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바른 일을 행할 줄 모른다.” 하시는 하나님의 뼈아픈 지적이 고통스럽다.
    
-“바른 일을 행할 줄 모르는” 지도자의 무도함에 온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상식과 합리성을 벗어난 무속에 기반한 그의 결정이 나라와 민족의 가치와 미래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시고 계셨고, 이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셨다. 어느 사람도 상상하기 힘든 자충수를 두면서 그의 무식한 권력 행사 욕이 자기 자신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온 세상에 드러난 그의 무도함과 무식함, 무속과 우상에 찌든 그의 통치력에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다.
    
-이방보다 더 악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들춰내신다. 이스라엘을 재판하는 자리에 약자를 착취하고 우상숭배와 사치를 일삼는 나라 아스돗과 애굽의 권력자들을 증인으로 초대한다. 이스라엘을 곧잘 습격하던 블레셋을 불러 자기 백성 중 약자들을 약탈하는 만행을 목격하게 한다. 언약 백성이 이방인보다 더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을 만천하 드러내신 것이다. 열국의 면류관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던 나라가 열국의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스스로 힘을 빼지 못하면 강제로 쇠하게 하신다(11~15절). 사치와 향락의 처소인 궁궐과 종교적 부패와 타락의 상징인 벧엘을 허무실 것이다. 적군의 침입에 궁궐을 누비던 자들은 극소수만 살아남을 것이고 벧엘로 달려가 제단 뿔을 잡더라도 도피처가 되지 못할 것이다. 특권층의 전유물인 크고 화려한 별장도 다 파괴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무시기 전에 먼저 주님께 돌아와야 한다. 지금은 유흥을 즐길 때가 아니라 가슴을 치며 통곡할 때고 엄위하신 하나님을 대면해야 할 때이다.
    
-악의 중심지인 사마리아를 철저하게 파괴하실 것이다. 권력과 부의 중심지인 사마리아와 종교의 중심지인 벧엘이 약탈과 파괴의 현장으로 변하게 하실 것이다. 권력자들의 횡포와 공포와 강포가 가득하고 자비와 살롬이 무너진 사회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유일하게 “알아준(3:2)” 대상인데도 올바른 일을 행할 줄 “알지 못하고”, 약자를 향해 폭력과 강도질을 하여 왕궁 요새를 쌓아 누리는 데만 열중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 지역에서 생산되지도 않는 상아로 개인 저택을 장식했다. 가난한 백성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겨울 궁과 여름 궁을 계절을 따라 오갔다. 높고 화려한 자리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심정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다. 부요함이 가져올 혜택만 생각하지 말고 부가 빼앗아 갈 미덕도 무엇일지 묵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숱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을 눈감아 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이방 군대를 보내 포위하고 방어벽을 허물고 침입하여 그간 부정하게 쌓아둔 재물을 약탈하게 하신다. 그래서 그들의 영화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기로 작정하니 아무도 이스라엘을 보호할 수도, 건져낼 수도 없을 것이다. 애써 본들 사자의 입에서 건져낸 것은 양의 두 다리뼈 조각과 귀 조각뿐일 것이며, 모서리밖에 없는 침대와 다리만 남은 안락의자 신세에 불과할 것이다. 참담한 폐허만 확인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상아로 치장한 사마리아 졸부들의 화려한 별궁도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다. 다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한 파괴와 약탈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유한 사마리아의 지도층 여인들은 남편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약자를 압제하며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4:1~3). 그렇게 쌓은 불의한 재물로 기름진 땅의 살진 소처럼 자기 배만 채우며 호사를 누렸다. 하지만 때가 되면 그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끌려갈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누리는 모든 것은 불안한 풍요요 위험한 번영일 뿐이다.
    
-기름진 땅의 실진 소들처럼 사마리아 상류층 여인들은 남편의 지위와 권력을 남용하여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다. 그렇게 축적한 부를 사치와 호화로 탕진하였다. 하지만 때가 되면 푸줏간으로 끌려가는 살진 소처럼 갈고리에 꿰어 끌려갈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을 걸고 꼭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다짐하신다. 이들이 당할 수치는 이들에게 당한 자들의 수치보다 더 혹독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을 걸고 꼭 그렇게 하실 거라고 다짐하신다. 두렵지 않은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 악하고 그래서 더 심한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백성들과 딴 세상을 살고 있던 사마리아의 지도자들과 부인들의 모습에서 윤석열과 김건희, 그리고 그들에게 부역하는 악한 무리들이 겹치는 것이 무리일까? 자기안위, 자기논리에 함몰되어 자기국민을 처단 대상으로 인식하고 계엄이라는 막중한 정치행위를 단지 경고하기 위해 행사한 그에게 더 이상 지도력을 부여하면 안 된다. 물론 윤석열의 뒤에서 이런 일을 부추겼을 김건희라는 희대의 무뢰한도 마찬가지다. 나라와 국민을 자기만족의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그들에게 더 이상 이 나라의 운전대를 맡기면 안 된다. 기막히게도 이런 시국에 아모스 묵상이 왜 이리 촌철살인과 같은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확실하고 두렵기만 하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앞에 두고 돌이킬 기회를 주고 계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주술과 무속으로 나라를 운행하는 지도자에게 축복하고 부역한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새겨 들어야 하고, 그저 정치와 종교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유신시대의 앞잡이었던 교회지도자들이 설파한 논리에 잠식당해 시국에 묵묵부답이었던 교회지도자들에게도 강력한 경고가 된다.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삶으로 드러내야 하는 이 땅의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은 악한 지도자들에 대하여 단호하게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임을 이제라도 회복해야 하겠다.
 
*국민의 안전과 평안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의 정권유지와 정적에 대한 탄압에 혈안이 되어 민주주의 국가에서 독재 국가로의 회귀를 서슴치 않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성도들의 행동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지금은 기도와 행동이 함께 가야할 때이다.
    
    
    
*주님, 마음이 원하는 대로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나라와 민족의 통치권을 악한 일부 지도자들의 손에서 거두어 주십시오. 오늘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보여주십시오. 이 나라를 지켜 주십시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다윗이 바라본 메시아 [시편 110:1-7]

 본 시편은 150개의 시편 중에서 신약성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자기 변증에 1절이 사용되고(마 22:44; 막 12:36; 눅 20:43), 히브리서 5:6절은 4절을 인용한다.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 [말 1:1-14]

 말라기는 표제(1절)가 말해주듯 여호와의 ‘신탁’이다. 말라기에 “여호와가 말씀하셨다”는 말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메시지는 바벨론에서 돌아와 유다 지역에 거주한 포로 후기 공동체를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