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그는 흥하여야 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22-36]
 – 2022년 01월 10일
– 2022년 01월 10일 –
예수님의 오심의 목적을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 밝히신 주님은 갈릴리로 이동하시는 도중 요단강가에서 세례를 베푸셨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몰려가는 것을 바라본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스승 세례요한과 함께 이 일을 대화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세례요한은 예수님 보다 더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점차 예수님께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에 제자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26절)” 고한다. 이에 대하여 세례요한의 대답이 놀랍다.


1.걱정이 아니라 증언을 해야 한다(28절)
오히려 세례요한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앞서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증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몰려 가는 것을 걱정하지말고 오히려 더욱 그분께 가도록 증언 하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자리를 꿋꿋히 지켰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찾아와서 세례를 받더라도 자기 뒤에 오시는 이에 대한 증언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막상 그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셨어도 곧바로 그 사역을 정리하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자신의 사명을 위임해 준다. “너희들은 잊지 말고 오실 그리스도를 증언하여라”라고 말이다.

*예수님을 증언하는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자세이다. 오고 오는 세대에게 예수를 전하는 사명을 되물림 해야 한다. 이 땅의 교회들이 결코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할 사명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이다. 어떤 자세로 해야 할까?


2.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0절)
제자들의 근심어린 질문에 세례요한의 대답은 너무도 태연하고 당연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놀랍기 그지 없다. 사명 따라 사는 길에 성공만 있다는 착각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요한은 “쇠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드시 흥하여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은 아니라는 것을 보게 한다. 예수님이 증거 되기 위해 흥하는 것만이 증언의 능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쇠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세례요한이 보여 준다. 흥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쇠하는 것도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다.

*무엇보다 교회공동체는 늘 주님이 흥하도록 해야 한다. 주님이 흥하시도록 교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나는?
-세례요한의 사역에 위기(?)가 왔다. 적어도 제자들은 이것을 위기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위기가 아님을 알았다. 자신의 사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기꺼이 받아 들일 수 있었다.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주님의 일을 하면서 가장 큰 시험은 스스로의 비교의식이다. 별 다른 것 없는 듯 한데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다. 좁디 좁아진 마음이 주는 조급함은 사명을 잃어 버리게 만든다. 언제나 잘 나가가는 법이란 없는데도 어떤 대상, 어떤 사역과 비교의식이 생기면 그것만큼 극복하기 참 힘들다.

-인간적인 조건으로 보면 세례요한이 딱 그 처지다. 어쩌면 이제 막 사역을 시작하고 제자들이 따르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동일한 장소에서 이제 막 시작한 예수의 사역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제자들의 위기의식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세례요한이다. 그는 이것을 경쟁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계주로 바라 보았다. 자신이 먼저 달리다 이제 바톤을 예수님께 넘겨 드린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 힘껏 달리는 예수님에게 박수를 보내고 응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자리에 선 모든 이들은 함께 달리는 계주멤버다. 내가 힘껏 달릴 때도 있지만, 그들이 힘껏 달려야 할 때도 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 복음이 계속 세상을 향해 달려 갈 수 있다. 이것을 깨달은 후부터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부서 사역은 늘 부흥해야 하고, 하는 일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사역자의 은사이자 축복이라 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을 바라보며 부흥의 시간을 달릴 수도 있지만, 곧 쇠락의 때가 기다린다는 사실을 다시 깨우친다. 뭔가 흥하고 있을 수록 더 흥하기 위해 전력을 쏟는 것도 필요하지만, 언제든지 하나님의 때에 마무리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쓸데없이 나의 영혼을 좀 먹는 비교의식, 경쟁의식을 늘 털어 내야겠다.

-때로 내가 주역이 될 수 있겠지만, 다른 이도 주역의 자리에 서 봐야 하나님 나라가 건강하게 서 있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주인공만으로 드라마가 빛나지 않는다. 모두가 필요하다. 조연이든, 스텝이든 누구 하나 소홀하면 삐걱 거릴 수 밖에 없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쇠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였다. 아니, 자신이 쇠함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중심이신 예수님이 드러나야 하는 것을 받아 들였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쇠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않는 것이다. 무리하고 또 무리해서 욕심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결심하지만 늘 두 마음이 싸운다. 그래서 먼저 이 길을 선명하게 걸어가준 세례 요한이 고맙다!


*주님, 주신 사명은 함께 이루어 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앞서다가 뒤처 지더라도 실패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에 세우실 때 힘껏 달리다가도 쇠하게 하셔도 받아들이며 앞서가는 이를 응원하겠습니다.
*주님, 주님만이 흥하도록 사명 따라 살겠습니다. 제가 주인공이 되려는 유혹과 늘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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