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빈 들에서 하늘 잔치… [요 6:1-15]
 – 2022년 01월 17일
– 2022년 01월 17일 –
갈릴리 벳세다 들판(빈 들)… 하늘 잔치가 벌어졌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듣던 이들의 배고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장정만 5천명을 먹이신다. 주님은 사람들을 섬기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셨다. 하늘 잔치를 맛본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잔치가 자신들의 삶에서 늘상 이어지기를 원했다. 주님을 왕으로 세우고 자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주님은 홀로 산으로 떠나가셨다. 주님은 세상 임금 되어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1.큰 무리가 따르니(2절)
갈릴리의 사역에 ‘큰 무리’가 모이고 따라 다녔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을 따라 다녔다. 이유는 분명했다. “…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2절)”

힘 없고 돈 없는 백성들이 건강 까지 잃게 되면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백성들의 삶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다. 어디를 가시든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매우 빨라서 주님께 치유 받기를 원하는 백성들의 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백성들은 주님의 기적들을 들으면서 자신의 삶도 기적의 수혜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예수님을 찾고 따르는 동기가 다 다를지라도 그 모든 문제를 알고 해결해 주시는 주님이시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2.큰 무리를 보시고(5절)
어딜 가시든 모여드는 백성들로 인해 예수님과 제자들의 수고가 멈추지 않았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주님께서는 또 다시 큰 무리가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서 함께 있던 제자들중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절)”이라고 물으셨다.

주님은 병고침을 위해서 라도 주님앞에 나오는 백성들은 단 한 명도 그저 돌려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항상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랬기에 이번에도 주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절)”고 물으신 것이다.

*주님은 섬기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규모와 상황에 개의치 않으시고 주님 앞에 나아오면 누구든지 섬기시려고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 나아오는 무리들은 어림 잡아도 너무 많다. 주님은 의도적으로 큰 무리가 나아옴을 보시고 빌립에게 시험해 보고자 하셨다(6절). 장정만 5천명, 어림잡아 2만명이 넘는 ‘큰 무리’를 어떻게 섬길 것인지 물으신다.


3.빌립 vs 안드레의 반응(7, 8-9절)
빌립은 머뭇거림도 없이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하더라도 이백 데나리온어치의 의 떡도 부족하다고 “계산”했다. 과학과 상식, 계산으로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안드레는 한 아이의 도시락을 주님께 소개한다. 그러면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있지만, 이 큰 무리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라며 도무지 이 “큰 무리”를 섬길 수 없다고 고백한다.
“여기에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새번역_9절)” 자기 도시락을 싸온 아이를 발견하고 주님께 데려오는 열정은 있었지만, 정작 마음속으로 “이렇게 했지만 과연 도움이나 될까?” 라는 마음이 걸린다.

이전에도 빌립은 늘상 계산을 먼저하며 섬겼을 테고, 안드레는 순수하게(?) 일단 행동하며 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그들이 본 큰 무리는 도무지 섬길 수 없는 규모였다.

*주님과 함께 갈릴리 지역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이번에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큰 무리들은 섬김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함을 깨닫게 한다.

*때로 우리의 계산과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큰 무리”를 만날 때가 있다. 빌립처럼 계산만 잘하는 제자, 안드레처럼 순수하게 일단 어떤 것이라도 행동하는 제자… 어떤 시도도 적용될 수 없는 “큰 무리” 앞에 확연하게 인정되는 한계상황을 만나면 그저 포기해야 할까?


4.예수께서 이르시되.. 축사하신 후… 나누어 주시고(10-13절)
빌립은 LTE급 계산 능력이 있었지만, 먹을 것은 주지 못했다. 안드레는 어떻게든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고자 하는 것은 있었지만 자기 자신조차도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안드레게 연결해준 한 아이의 보리빵 5개, 물고기 2마리를 축사하시고 나눠주셨다.

주님께서는 애초부터 이렇게 하실 뜻을 가지고 계셨다. 자기에게 나아오는 큰 무리를 보시며 빌립에게 질문을 던지실 때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다(새번역_6절)”

*주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으셨다. 그것은 굶주리고 배고픈 큰 무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주며 섬기시는 일이었다. 나누어 주되 그저 늘 배고픈 그들에게 곡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대로(11절)” 나누어 주셨다.

*큰 무리가 과연 그 자리에서 먹기만 했을까? 다른 복음서에서는 마을에서 한참이 떨어진 지역이라고 했으니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여분의 음식을 챙겼어도 남은 부스러기 음식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찰 정도였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 양식을 창조하셨다. 빈들에서 말씀을 들었던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으셨다. 주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은 육신이 회복되고, 마음은 기쁨과 감격으로 가득 찼으며, 두 손에는 하늘 양식의 부스러기가 들려져 있었다.

*빌립의 계산, 안드레의 대책없는 행동 너머 말씀이신 주님의 “축사”는 장정만 5천명, 어림잡아 2만명이 넘는 백성들의 배고픔을 일거에 해결하셨다. 말씀이신 하나님이시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나는?
-오병이어 기적은 “생명의 양식”되신 주님을 증언하는 표적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매일 공급 받았던 “만나”를 주시던 것과 같다. ‘빈들’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느라 배고픔에 지친 백성들은 주님의 “말씀 한 마디”로 보리빵과 물고기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배불리 먹었다.

-배급받아 나누어 준 것도 대단하다 할 수 있겠지만. 빈들에서 하늘잔치는 궁핍한 잔치가 아니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배불리 먹었고, 열두광주리가 남는 풍성한 잔치였다.

-주님께서 계시는 곳에 이런 하늘 잔치가 가능하다. 창조주 하나님이시 주님의 말씀 한 마디면 배불리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니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적어도 양식 걱정 없겠다 싶었다. 백성들은 벳세다에서의 이 표적을 보고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열광했다. “그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만나를 공급받게 하였던 “모세”와 같은 이라는 것이다.

-늘 배고픈 삶에 풍성한 한끼를 누렸다. 백성들은 그 풍성함을 늘 누리고 싶었다. 예수님만 왕 삼으면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 삼자고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님은 이것을 아시고 “혼자 다시 산으로(빈들로) 물러가셨다(15절).”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 수록 그 사람들에게서 얻을 영광에 취하면 안 된다. 그럴 수록 주님처럼 “다시 빈 들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과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는, 인간의 욕망의 소원들이 넘쳐나기 보다 하나님과 긴밀한 영적 대화가 넘쳐날 수 있는 “빈 들(산)”로 나아가야 한다.

*익숙한 오병이어 기적의 본문에서 오늘은 예수님의 백성들을 섬기시려는 긍휼의 마음, 백성들의 환호보다 “하나님과 더 함께 하려는 빈 들(산)으로 다시 나가시는 모습”이 뇌리에 각인 된다.

*예수님처럼 더 섬겨야지, 나에게 맡겨주신 이들에게 “하늘 양식” 풍성히 먹이기 위해 더 섬겨야지… 때로 나의 한계가 분명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말씀의 주님, 빛의 주님, 하나님이신 주님”을 끝까지 붙잡고 “하ㅡㄹ 양식”의 풍성함을 끈질기게 바래야지…

*예수님처럼 더 빈 들로 나가야지… 더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 들 때, 사람들이 환호 할 때, 그럴 수록 예수님처럼 “빈 들”로 “빈 들”로 … 나가야지…. 사람들의 영광돌림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 돌릴 수 있는 “빈 들”로 나가야지…

*세상 영광과 욕망이 난무하여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발견하기 어려울 수록 … 그 자리를 연연하기 보다, “혼자 다시 빈 들로(산으로)” 떠나가야지… 늘 떠나가야지… 그 곳에 하나님이 기다리실 테니… 빈 들로 더욱 나가야지…


*주님, 주님이 영광이 화려한 세상이 아니라 홀로 직면할 빈 들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빈 들을 “다시” 찾고 찾는 영성을 지키겠습니다.
*주님, 모두가 한계라고 포기할 때가 주님의 말씀의 능력이 드러날 때임을 믿습니다. “축사”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그립습니다.
*주님, 빈 들이 하늘 잔치가 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 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 태국 빈 들이 그립습니다. 코로나를 물리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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