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나는 생명의 떡이라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리라” [요 6:30-40]
 – 2022년 01월 21일
– 2022년 01월 21일 –
오병이어 다음 날 가버나움 회당에서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과 주님의 대화가 이어진다.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사람들이 연이어 질문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광야의 만나와 같은 표적을 요구한다(30-31절). 하지만 주님은 당장 빵을 달라는 그들의 요청에 진정한 하늘의 양식은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 하신다(32-33절). 그리고 자신이 그 생명의 떡이며 자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에게 생명의 떡을 먹일 것이라고 강조하신다(37-40절).


1.우리가 믿을 수 있게 증명해 보시오!(30-31절)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되려 정말 당신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증명해 보라고 재차 요청한다(30절).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30절)” 갈릴리 사람들은 이미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다. 그 표적을 보고 주님을 따라왔다. 그 표적을 보고 주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도 “믿을 만한 또 하나의 표적”을 달라하다니… 사람들이 원하는 표적은 무엇일까?

31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즉, 이들이 기대한 표적은 오병이어의 표적을 뛰어 넘는 기적을 바라는데, 적어도 “만나”쯤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세처럼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는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먹는 보리떡이 아니라 광야에서 내린 만나를 기대했다.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 주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는 이유는 모세처럼 “만나”를 하늘에서 내리게 하여 먹을 걱정 없는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이미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오병이어를 통하여 가르치셨지만 소용 없다. 자신이 원하는 기적이어야 했다. 인간은 이렇게 사악하다. 인간은 이렇게 이기적이다.


2.누가 생명의 떡을 주시는가?(32-36절)
백성들이 주님께 또 하나의 표적을 구할 때, 다른 번역본은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 라고 번역한다. 즉, 모세가 하늘에서 빵을 내린 것으로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 대해 주님은 분명하게 교정하신다. 출 16:4,5; 시 78:24를 인용하여 만나는 모세가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 주신 것이다. 모세가 가져 온 눈에 보이는 광야의 만나가 아니라 주님을 통해 주시는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 떡을 항상 달라고 말한다(34절). 이에 주님은 처음으로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나는 (생명의 떡) 이다”라는 표현, 즉 “에고 에이미” 하나님의 이름이다. 앞서 격랑의 바다 위를 걸어오시고 “에고 에이미”라고 말씀하셨는데(20절) 요한복음에는 7개의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가 나오고 그 첫 번째가 바로 “생명의 떡(6:48, 51)”이다 이후 “세상의 빛(8:12), 양의 문(10:7), 선한 목자(10:11,14), 부활이요 생명(11:25),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 참 포도나무(15:1,5)”라고 각각 선언하셨다.

*주님은 “생명의 떡”이시다. 주님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또 주님을 통해서만 생명을 유지한다는 뜻도 된다. 어떻게 가능할까? 35절 말씀에 매우 중요한 힌트가 있다.

*”내게 오는 자”이다. 믿음은 “오는 것”, “이동”이다. 옛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내가 주인이던 삶에서 주님이 주인인 삶으로 이동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동”의 삶이 분명하다. 그래서 믿음의 삶은 늘 예수님 앞으로 “나아 오는 것”이다.

*믿음은 주님께 (나아) 오는 것이다!


3.누구에게 생명의 떡을 주시는가?(37-40절)
35절에서 생명의 떡은 “나아가고, 구하고, 믿어야” 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37절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주신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주셔야 하고 우리는 그 은혜에 반응해야 주님을(생명의 떡을) 영접할 수 있다는(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시는 자”에게 생명의 떡을 주신다. 요 1:12-13절에서 이미 밝혔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또, “내쫓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당시 유대인들의 정결규례에 근거하여 구별되어 지던, 부정한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다는 것에 대하여 이제는 누구나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방인, 나병 환자, 38년된 만성병자, 니고데모와 같은 율법사, 왕의 신하 등 누가 와도 내쫓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38절)” 이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의 굳은 뜻(의지)” 때문이다.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계속적으로 믿는 이에게는 현재의 영생은 물론이고 영원히 죽지 않도록 그의 몸도 부활 시키실 것을 약속하신다(39-40절).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은 현재의 구원과 미래의 구원을 모두 포함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동시에 예수님이 하시고 계신 일이다.

*또, “잃어버리지 아니하고”에서 “잃어버리다(아폴뤼미)”의 의미는 오병이어의 기적 마무리때 주님께서 “남은 떡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12절)” 하라는 말씀의 “버리다”와 같은 단어이다. 떡을 버리지 않고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바구니에 담았듯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앞에 나아온 자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이사야는 55:1-6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미리 예언했다. 그들은 이사야의 말씀을 주님을 통해 보았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았다. “빵”이었다. 모세가 내린 만나가 필요했다. 배고프고 고단한 비루하기 짝이 없는 삶에 매일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 정도는 있어야 살만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내가 생명의 떡이다”고 직접 말씀하면서 육신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양식이 아니라 “영생(구원)”을 위해 주님께 나아와야 하고, 믿어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자신에게 나아오는 이는 누구라도 “결코 쫓아내지” 않으신다. 또, “결코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자신을 “바라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고, 죽음도 이 구원을 빼앗지 못하도록 “다시 살리리라” 약속하신다.

-내쫓지 않겠다,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결연한 주님의 모습은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 하시려는 굳건한 실제이시다. 더온누리공동체가 이런 주님의 모습을 본받는 교회이기를 소망한다. 상황과 여건, 신분, 인종 등 세상은 여러 기준을 세우고 쉽게 “내쫓고, 잃어버린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예수님처럼 더욱 더 하나님의 마음을 순종하며 내쫓거나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겠다.


*주님, 내가 원하는 떡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떡을 사모합니다.
*주님, 결코, 누구도 내쫓거나 잃어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의 마음 닮는 교회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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